〈 97화 〉신중한 준비(4)
“카야, 일단 그 발은 내려놓고. 진정하자. 셰이가 데려왔으니 이유가 있겠지. 그치?”
“네, 네. 맞아요.”
카야의 움직임은 재빨랐고 머뭇거림이 없었으며 냉혹했다. 셰이의 팔뚝을 물고 창문을 향해 필사적으로 뛰어가던 소녀의 뒷머리를낚아채 바닥에 메다꽂아버린 카야는, 녹색 빛으로 빛나는 로자리오를 들고 소녀의 가슴을 짓밟고 있었다.
셰이가 데려왔다면 분명 저 소녀가 네 번째 용사 후보일 터. 셰이가 공격당했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그래도 대응이 과했다. 뭐 때문에 이런 과민반응을 보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카야를 진정시키려 했다.
“아뇨. 설명이 먼접니다.”
하지만 카야가 내 말을 거부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어조도 너무 차갑고 단호했다. 반론을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셰이. 설명.”
“네, 네. 언니!”
셰이의 목울대가 울렁이는 게 보였다. 그녀도 조심스럽게 로자리오를 꺼내며 설명을 시작했다. 처음 소녀와 부딪친 것부터 범상치 않은 속도로 도망친 것과 호기심을 느껴 추적에 나선 것. 결국 집까지 쫓아가서 꾀를 써 포획에 성공하고 대화를 위해 억지로 데려온 것까지.
설명을 전부 들은 난 카야를올려다보며 덜덜 떨고 있는 소녀를 바라봤다. 아직 동료도 아니고 어떠한 관계도 없어서 그런지 약식 프로필도 뜨지 않았다.
“셰이는 성전사가 되면서 교육받지 않았던 것입니까.”
“교육, 이요?”
“로자리오가 반응하지 않았습니까. 거기에 몸집에 비해 날렵한 속도와 질긴 힘까지.”
“아악!”
카야가 발에 힘을 실었다. 소녀가 몸을 버둥거렸다. 저러다 갈비뼈가 부러질 거 같아 말리려는 그때였다.
“본 모습을 드러내라, 짐승.”
“뭐? 짐승?”
“짐승, 이요?”
카야의 차디찬 말에 소녀의 발버둥이 멈췄다. 소녀의 얼굴에 체념이 스쳤다.
“사람의 피를탐하는 저주받을 짐승의 피가 섞인 삿된 자들. 인간의 탈을쓴 짐승.”
“흐윽.”
꾸우욱-
“이 짐승은, 늑대인간입니다.”
“난, 짐승, 아니야…! 사람도, 안 먹었어! 아아악!”
“모든 말하는 짐승은 그런 식으로 말한다.”
카야의 말은 충격이었다. 저 작은 소녀가 늑대인간이라고? 겉으로 볼 땐 그냥 사람과 다를 바 없는데?
“본 모습을 드러내라, 짐승. 그렇지않으면 가슴이 함몰되어 죽을 테니.”
“본 모습을 드러낸다 해도, 짐승이라면서 죽일거잖아! 그럴 거면 그냥 죽여! 내 말을 듣지도 않을 거면서, 왜 나는 네 말을 들어야 하는 건데!”
“쯧.”
“잠깐! 잠깐만요 언니!”
“뭡니까, 셰이.”
“그, 로자리오가 반응하긴 하지만 저 소녀에게서 사악함이 느껴지진 않았어요!”
“그럼 이 로자리오들이 잘못됐다는 겁니까? 라엘라님과 유스티티아님의 기운이 잘못됐다는 겁니까?”
“그건 아니지만… 언니.”
셰이도 나 못지않게 충격을 받은 거 같았다.
“이 소녀를 데려오면서 절대 해치지 않겠다고 유스티티아님께 맹세했어요. 유스티티아님은 받아들여주셨구요. 제가 대장님이랑 언니는 좋은 사람이라면서 데려왔는데….”
하지만 그녀는 소녀의 옆에 다가가더니 한쪽 무릎을 꿇고 카야의 발을 붙잡았다.
“셰이! 뭐하는 겁니까!”
“절 봐서라도, 한 번만 이야기를 해보면 안 돼요? 전 도저히 이 소녀가 삿된 자로 보이지 않아요.”
“정녕 모르고 있는 겁니까? 이 말하는 짐승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는지? 그건 교단의 형제자매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 소녀가 그 죄를 저질렀다는 확증이 없잖아요!”
“하아, 셰이. 짐승은 짐승입니다. 사람처럼 생겼는데 왜 짐승이라고 하겠습니까? 지금은 어려서, 아니면 무슨 사정 때문에 사람을 해한 적이 없다고 할지라도 언젠간 사람을 해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껏 발견된 짐승들은 하나같이 전부 다! 사람을 해쳤단 말입니다!”
“아직 사람을 해친 적이 없다면 죄인이 아니잖아요!”
“셰이! 그럼 미래에 희생될 사람들은, 셰이가 책임질 수 있습니까?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이야기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가 곁에서 지켜보면 되는 거 아니에요?”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이 짐승을, 지켜본다? 계속?”
카야가 팔짱을 꼈다.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셰이. 셰이가 배려심 있고 착한 건 알겠지만, 대장도 계신 곳에짐승을 들여놓다니.”
“이미 추가 요금도 냈어요.”
“그깟 은화 몇 개 정도는 버린 셈 치면 됩니다. 게다가 셰이, 잊은 겁니까. 지금 저 짐승을 변호하는 당신의 팔뚝을 물어버린 게 저 짐승이라는 사실을?”
“이 정도야 뭐 다친 축에도 못 끼니까요. 제가 억지로 데려온 것도 사실이고.”
“이런 위험요소를 데려오는 것도 모자라 함께 지내다니, 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언니!”
카야는 완강했다. 셰이도 자신의 맹세가 걸려있었기에 쉽사리 물러나지 않았다. 대립은 계속됐고 소녀는 여전히 카야에게 밟혀있는 상태였다. 카야와 셰이의 언성이 점점 커졌다.
‘진짜 늑대인간이라고.’
도저히 상상이 안 됐다. 늑대인간에 대한 정보는 지극히 피상적이었다. dlc가 발매되기 전 조금씩 풀렸던 클래스의 대략적인 특징과 배경설명 정도가 다였다.
늑대인간(이하 늑인)은 인간 폼과 늑대 폼이 있는 유일무이한 쉐이프쉬프터라는 점, 사람들에게 터부시되는 존재이며 교단에게 적대 받고 있다는 점, 개체수 자체는 적지만 신체 능력은 뛰어나다는 점 등등. 판타지 소설에도 흔히 나올 법한 설정이었다.
막연히 존나 센 전열클래스일 것 같은 이미지가 있었지만, 눈앞에서 오들오들 떠는 소녀를보니 전혀 매칭이 안 됐다.
“언니… 정말 이렇게까지 제 맹세를 뭉개실 거예요? 딱 한 번, 대화 정도는 해봐도 되잖아요!”
“이 짐승을 못 알아보고 그런 맹세를 한 셰이가 실수한 겁니다. 그리고 걱정 마십시오. 셰이는 열심히 보호하려 했으니. 피는 제가 묻히겠습니다. 손 떼십시오. 셰이에게 힘을 쓰고 싶지 않습니다.”
“언니!”
“손 떼십시오.”
“언니 진짜 이렇게까지!”
“그만.”
“대장. 겉보기에만 이렇지, 속에는 짐승의….”
“그만하라고 했어.”
카야가 입술을 깨물었다. 이렇게 강압적인 태도를 취하는 건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카야와 셰이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고, 자칫 잘못하다간 피를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
카야의 의견은 확고하고, 셰이는 유스티티아님께 맹세를한 상황.
둘의 의견은 충분히 접했으니 중재를 해야 했다.
나는 소녀에게 다가갔다.
“대장!”
“괜찮아.”
카야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나는 소녀의 머리맡에 쭈그려 앉았다. 소녀의 머리와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의 짙은 검은색이었다. 거기에 누가 봐도 판타지 미녀, 금발 미녀인 카야와 셰이와는 다르게… 얼굴에 동양적인 특징도 좀 섞여있는 것 같아서 묘한 감정이 들었다.
“이름이 뭐야?”
“….”
“카야. 발 좀 치워줄래.”
“대장. 그랬다간 대장에게 위해를 가할지도 모릅니다.”
“생각해보니까 너무 자세가 굴욕적이잖아. 대화하려고 해도 그럴 마음이 싹 사라질 정도로. 그러니까 일으켜 세워줘. 치료도 해주고. 당장 받아들인다는 것도 아니고 대화 정도는 괜찮잖아?”
“대장님!”
카야의 얼굴이 더 딱딱해졌다. 반면 셰이는 역시 대장님이라면서 함박웃음을 지었고. 카야에겐 미안했지만 난 셰이의 손을 들어주었다.
‘dlc 정보에선 늑인과 수녀는 동시 편성이 불가능하다고 나와 있었어. 만약 저 여자애가 늑인이 맞다면….’
그리고 정말로 저 여자애를 영입한다는 것도 아니었다. 카야는 기분이 상하겠지만, 셰이는 여신님께 맹세까지 한 상황이었다.
“놔줘. 의자에 앉아도, 문이랑 창문만 제대로 지키고 있으면 되잖아.”
“…알겠습니다.”
카야는 여자애의 가슴에서 발을 뗀 후 잽싸게 창문 쪽을 가로막았다. 셰이는 문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별 의미는 없었다. 여자애는 날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할 뿐, 전혀 탈출할 의지가 없어보였으니까.
나는 동료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여자애에게 손을 뻗었다. 그녀는 내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홱 돌리더니 스스로 일어나려 했다. 카야가 움찔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여자애는 바들바들 떨면서 겨우 일어나는데 성공했다. 가슴이랑 등이 아픈지 찡그렸으나 앓는 소릴 내진 않았다.그녀는 카야의 눈치를 보더니 의자 끄트머리에 걸터앉았다.
‘의도한 건아니지만 좋은 경찰 나쁜 경찰이 정해져버렸네.’
카야 때문에 첫 인상은 최악이겠지만, 동시에 카야 덕분에 나나 셰이는 상대적으로 ‘좋은’ 사람인 것처럼 보일 확률이 높았다.
‘아니, 그것보단… 그냥 체념에 가까운 거 같네.’
나도 일어난 다음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카야와 셰이는 양쪽에 서 있었다.
“이름이 뭔지 알 수 있을까? 난 HAT용사대를 이끄는 헨드릭이라고 하는데.”
“…아르.”
“그래, 아르. 다짜고짜 데려와서 폭력을 행사한 건 미안해.”
“….”
아르는 딱 이름만 내뱉고는 입을 다물었다. 체념도 체념이었지만 적개심도상당했다. 딱 필요한 대답만 하겠다는 것처럼 보였다.
“세일럼엔 혼자 살아?”
“그래.”
“용사?”
“아니.”
“여기 온지는 얼마나 됐어?”
“몰라. 아마도 몇 주일 정도.”
“용사가 될 생각은 있고?”
“딱히.”
“용사를 안 할 거면, 세일럼엔 왜 온 건데?”
“말하고 싶지 않아.”
죄다 단답형이었다. 대화라기보단 취조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셰이에게 눈짓했다. 그녀가 대화하고 싶다고 데려왔으니 뭐라고 말 좀 해보라는 거였다.
“아르. 정말 늑대인간이 맞아요?”
“맞아.”
“그렇다면… 보여줄 수 있어요?”
멍하니 탁자 중앙을 바라보던 아르가 셰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셰이와 눈이 마주치자 이내 코웃음을 치더니 턱끝으로 카야를 가리켰다.
저 여자가 있는데 어떻게 변신하냐는 뜻이리라.
셰이는 카야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냈고, 카야는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지 이를 악물고는 고개를 돌렸다. 사실상의 허락이었다.
아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지금은… 아마 오래 유지 못할 거야. 그럴 생각도 없고. 그리고 그 상태에선 알아 듣는 건 가능하지만 말하는 건 힘들 거야.”
“알았어요. 절대 공격하지 않을게요.”
“흥.”
아르는 가슴에 손을 얹고서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스읍- 하아… 스읍- 후우….
심호흡이 한 차례씩 거듭될 때마다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나약한 아르의 신체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키가 커지고 골격이 커졌다. 팔다리가 길어지고 탄탄한 근육이 붙었다. 검은색 눈동자가 한쪽은 붉게, 다른 한쪽은 은빛으로 물들었다. 인간과 닮았던 귀가 사라지고 머리 위에 새로운 귀가 생겼으며,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 발톱이 튀어나왔다.
카야보다도 훨씬 작고 왜소했던 아르는, 셰이보다 약간 작은 키까지 훌쩍 자랐고 근육은 셰이보다도 훨씬 더 탄탄해 보였다. 실전압축근육 느낌이었다. 거기에 원래부터 차갑고 도도했던 얼굴엔, 방해하는 건 무엇이든 물어뜯고 찢어버리겠다는 흉포함이 담겨있었다.
그 변화는 너무나 드라마틱하고 신기해서, 카야마저도 숨을 죽이고 지켜봤다.
변신하는 과정에서 옷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했던 거적데기가 죄다 찢어져 나신을 드러낸 아르가 휙휙 자신의 몸과 주위를 둘러보더니 카야를 발견하곤 이를 드러냈다.
“아르르…!”
“저 짐승이…!”
“아르!”
선홍색과 은색의 오드아이가 날 강렬하게 노려봤다. 워낙 시선이 흉포해서 순간 쫄리긴 했지만….
‘저 바짝 선 귀가 꼭 날선 강아지를 보는 것 같단 말이지?’
겁 많은 유기견에게 천천히 다가가 조금씩 친해진다는 생각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아르. 그 상태에서도 우리 말을 이해한다고 했으니, 한 가지 시험해보고 싶은 게 있어. 간단한 거야.”
“….”
“손.”
아르는 내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더니 이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