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8화 〉신중한 준비(5) (98/218)



〈 98화 〉신중한 준비(5)

아르가 말했던 대로, 아르의 변신은 3분도 채 가지 못했다.

“…지쳤어. 변신은 효율이 안 좋아.”

급한 대로 셰이의 옷을 걸친 아르는 완전히 찢어져버린 누더기(3분 전까지 옷이었던 것)들을 그러모았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삽시간에 원래 사이즈로 쪼그라든 아르는 가뜩이나 키가 큰 셰이의 옷에 반쯤 파묻힌 상태였다.

“카야.”

“예.”

“어땠어?”

“….”

“내 눈엔 짐승처럼은 안 보였는데.”

물론 흉포한 분위기나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거나 늑대 귀가 솟아나긴 했지만, 내가 생각했던 거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었다.  막말로 키가 막 2m 이상 자라나고 온몸에 털이수북하게 나고 얼굴도 늑대같이 변할 줄 알았으니까.

그냥  정도는 늑대 수인 정도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은가.

“몸 상태가 안 좋거나, 변신에 익숙지 못해서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도… 계속 데리고 있으면서 관찰을 하겠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공격성은 보이지 않았잖아요. 적어도 언니가 말했던 대로 인간의 피를 탐하는 짐승 같지는 않았어요.”

“하아….”

카야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시선은 어느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아르에게 향해 있었다.

“셰이.”

“네, 대장님.”

“네가 저쪽 침대에서 아르랑 같이 자.”

“알겠어요! 저녁 먹기 전에 우선 씻겨야겠어요.”

셰이는 졸고 있는 아르를 안아들고는 욕실로 들어갔다.

“카야. 잠깐 얘기좀 하자.”

“예.”

- 뭐, 뭐야!

- 가만히 있어요. 꼼꼼히 씻어야죠.

- 만지지 마! 아! 어, 어딜 만지는 거야! 앗! 저리 가!

- 깨끗이 씻어야 밥을 먹을 수 있어요.

-만지지 말라고! 거, 거긴…!

셰이가 아르를 훈훈하게 씻기는 소리를 bgm 삼으며 카야를 달래기 시작했다.

“카야. 솔직히 난 늑대인간에 대해서  몰라. 방금   처음이기도 했고.”

“예.”

“당장 아르를 용사로 받아들이지는 않아. 잘 싸우는지도 모르고, 수준도 어느 정도 맞아야 하고, 우리랑 잘 맞는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본인의 의지가 제일 중요하지. 게다가 이제 1일차잖아? 아직 시간은 많아. 그냥 셰이가 혹시나 해서 데려온 후보일 뿐이잖아.”

“…예.”

“후보는 많을수록 좋잖아. 아르가 마음에 안 들면, 반대하면 돼. 아니면 네가 더 훌륭한 후보를 데려오면 돼. 그렇지만 무턱대고 죽이는 건,그것도 셰이의 맹세까지 걸려있는 상대를 죽이려 했던 건… 좀 심했던 거 같아. 교리 때문이야? 아니면 안 좋은 경험이라도 있어?”

“둘 다, 입니다.”

카야는 욕실 쪽을 바라보며 주먹을 쥐락펴락했다.

“저는 지금 혼란스럽습니다. 늑대인간은 인간을 해치는 괴물에 가까운 짐승이라고 배웠고, 실제로 목격했던 놈들도 배웠던 그대로였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사지가 뜯기고 내장이 흘러내렸습니다. 인간의 탈을 쓴 짐승들은 인간을 먹이를 삼으면서도, 그 행위 자체를 즐기는 삿된 존재들이었습니다.”

우드득-

창틀을 쥔 카야의 손에 힘이 들어가자 나무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놈들은 수컷은여자를 범하고, 암컷은 남자를 범합니다. 조금 괜찮다 싶은 여자들은 데려가서 아이를 낳을 때까지 살려뒀다가 젖을 뗄 정도가 지나면잡아먹고, 남자들은 종마 노릇을 하다가 말라 죽습니다. 그리고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는,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

“셰이가 말했던 대로, 그 짐승들이 전부 다 그러지는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배운 바, 겪은 바, 들은 바로는 전부, 하나 같이 동일한 습성을 지닌 아주 위험한 놈들입니다. 그 아르라는 짐승이라고,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엄청 불안한데, 이곳에 함부로 데리고 온 셰이에게도 화가 나는데… 대장님과 셰이는 아무렇지 않아하시니 제가 이상한 건가,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건가 혼란이 옵니다.”

“그랬구나.”

“같은 공간에 있는 것 자체를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저 짐승이 어려서 그런지, 아니면 변신에 서툴러서 그런지 그 삿된 짐승의 모습이 적게 드러나긴 하나… 참혹했던 시체들과 자매들의 비명소리가 생생합니다.”

카야는 세일럼에 오기 전에도 무슨 수라장을 겪은 것일까.

“이해한다고 말하면 기만이겠지. 그래도 네 행동의 당위성을 일부나마 알게 된 건 사실이야. 솔직히말해줘서 고마워. 근데 카야.”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그녀의 뺨에 손을 대 날 바라보게 했다.

“하프엘프는, 부당한 차별을많이 받지? 어렸을 때부터 쭉?”

“…예. 교단에서는 안 그랬습니다만.”

“단지 네 부모님이 엘프와 인간일 뿐이잖아. 종족을 초월한 사랑을  것뿐이잖아. 딱히 네 부모님이 무언가 큰 죄를 저지르거나, 네가 죄를 저지른 건 아닐 거 아냐. 그치?”

“…예.”

“그럼 말이야. 내 말 듣고 화가 나겠지만, 난 이렇게 생각해. 엘프와 인간의 혼혈이라는 이유로 어렸을 때부터 부당한 차별을 받았던 너와, 늑대인간이라는 이유하나만으로너에게 공격받은 아르는 비슷한 게 아닐까 하고.”

“…!!!”

무표정에 가까웠던 카야의 표정에 금이 갔다.

“알아. 넌 잘못한 게 없었지.  부모님도 잘못한 게 없었지. 잘못은 어디에도 없었지. 그냥 그뿐인데 넌 박해를 받은 거야. 네가 하프 엘프라는이유  사실 하나만으로.”

“대장, 그건!”

“그런 면에서, 아직 아무 것도 저지르지 않았을 확률이 높은 아르는… 그저 늑대인간으로 태어났을 뿐이잖아. 셰이가 어떠한 사특함도 느끼지 못했고, 유스티티아님께서 맹세까지 받아주셨다고 했잖아. 만약 아르가 정말 네가 말했던 대로 그런 흉악한 짓을 저질렀다면, 유스티티아님이 셰이의 맹세를 받아주지 않으셨을  같은데. 아냐?”

카야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말에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일까? 어떻게 자신에게 그런 심한 말을 할 수 있냐며 원망하고 있을까?

“너와 아르, 둘 중 누구의 편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난 당연히 네 편이야. 그치만 아까 모습, 상당히 무서웠어. 네가 겪었던 일들은 정말 안타깝지만, 그건 아르와는 별개의 일이잖아. 죄를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죄를 저지른동족들의 죄를 들먹이면서 공격하면… 당하는 입장에서 얼마나 억울하겠어.”

“…대장.”

“어?”

“잠시, 혼자 있다 오겠습니다. 저녁은 둘이, 아니 셋이서 해결하시면 됩니다.”

“카야? 어디 가려고? 카야!”

카야는 붙잡으려던 내 손을 피하며 순식간에 여관을 빠져나갔다. 갈 곳 잃은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쓰읍….”

미어진다 미어져.

어째 우리 용사대는 사연 없을 때가 없는 건지.

카야의 마음도 이해가 가고, 셰이의 주장도 일리가 있었으며, 아르의 기분도 짐작이 갔다.

- 대체 언제까지 씻는 거야!

- 대체 머리를 얼마나 안 감은 거예요?

- 몰라 그런 거.

“진짜 모르겠다. 뭐가 맞는 건지.”

어둑해진 야경을 바라보며 찬물을 드링킹했다.


**

‘대체 이 사람들은, 뭐야?’

깊은 밤이 되었다.

세일럼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따뜻한 물에 몸을 씻고, 처음으로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처음으로 제대로 된 침대 위에서 제대로  이불을 덮은 아르는 지금 꿈을 꾸는 게 아닌가 싶었다.

“으응… 대장니임… 흐응….”

“저, 저리 가!”

“헤헤… 음냐, 어디 가세요….”

당연히 꿈은 아니었다. 자신을 무슨 인형이라도 되는 듯 꽉 껴안고 있는 금발 교단 여자의 감촉이 이렇게나 생생하니까. 특히나 등에 닿고 있는 흉악할 정도의 부드러운 존재감은, 정말 짜증나게도 이젠 기억마저 흐릿한 어머니의 품을 떠올리게 했다.

네가 겪었던 일들은 정말 안타깝지만, 그건 아르와는 별개의 일이잖아.

- 죄를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죄를 저지른 동족들의 죄를 들먹이면서 공격하면… 당하는 입장에서 얼마나 억울하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말도  돼. 말도  되는 얘기야.’

사실 그녀는 욕실 밖의 대화를 전부 듣고 있었다. 신경이  쓰일 수가 없었다. 대장이라는 자와 자신을 공격했던 자의 대화였다. 놓칠 수 없었다. 금발 교단 여자로 자신을 방심시켜놓고, 둘이서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인간의 탈을  짐승들은 인간을 먹이를 삼으면서도, 그 행위 자체를 즐기는 삿된 존재들이었습니다.

- 그놈들은 수컷은 여자를 범하고, 암컷은 남자를 범합니다.

동족이 저질렀다던 끔찍한 행위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회색 교단 여자의 이야기도. 오늘 처음 본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검은 머리 남자의 이야기도.

양쪽의 이야기는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와는 거리가 멀었다.

‘정말로, 모든 동족이 그런 짓을 저질렀다는 거야? 그럼… 아버지도?’

그럴 리가 없다.

애초에 인적이 드문 곳에 숨어 살던 부녀였다. 먹을 것은 사냥과 채집으로 해결했다. 씻는 건 계곡에서 해결했다. 잠은 오두막과 동굴 속에서 잤다. 교육은 아버지에게 받았다. 아버지는 거의 항상 자신과 함께였다. 부녀가 다른동족을 만난 적도 없었다. 집에 손님이 온 적도  번도 없었다.

그러니 아버지는 그런 해로운 짐승이 아닐 것이고, 그렇다면 저 회색 교단 여자의 말은 거짓말일 확률이 있다.

“…찝찝해.”

그렇게 속편하게 결론지을 수는 없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동안 그쪽으론 감히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단어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도망자였다?’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말도  되는 일이었다. 자상하고 아는 것도 많았고 힘도 셌고 할 줄 아는 것도 많았던 아버지가,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도, 겉으로만 볼 땐 인간과 다를 바가 없는데 어째서 그렇게까지 깊은 곳에 숨어 있어야 했을까.’

그러나 견고했던 방어막에 한 번 균열이 생기자 균열이 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한  이어진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어머니.’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기억도 잘 안 나는 어머니. 정확히 언제, 어디서, 무슨 이유로 돌아가셨는지도 기억이 안 났다. 분명 철이 들면서 아버지께 여쭤봤던 것 같은데, 그것도 기억에 남는 게 없었다.

‘아버지는 그 화제에 대해선 항상 말을 아끼셨어.’

엄청난 슬픔, 그리고 후회가 담긴 얼굴을 하고서.

그녀의 어머니에 대해 그녀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정보는, 어머니의 종족이 ‘인간’이었다는 것.

‘인간인 어머니랑 결혼했을 정도면, 마을이든 도시든 인간들 사회에 어느 정도 녹아들었다는 얘긴데….’

그럴싸한 추리는 추리끼리 만나 살이 급격하게 불어났다. 상당한 시간 후에, 추리가 도출해낸 결론들을 되새긴 아르는 현실을 부정했다. 아니, 자신의 말도 안 되는 추리와 그걸 생각해낸 머리를 부정했다.

“말도 안 돼!”

“뭐가 말도  되는데?”

깜짝 놀란 아르는 갑작스레 들린 검은 머리 남자의 목소리에 펄쩍 뛰어오르…진 못했고 여전히 셰이의 팔에 갇혀있었다.

“뭐가 말도 안 되는데?”

“몰라.”

“에이. 맛있는 거 그렇게 많이 먹었으면서 이미 뱃속에 들어갔다고 입 싹 씻는 거야? 질문 하나 정돈 괜찮잖아?”

“그렇게 많이 먹지 않았어!”

“쉬이, 셰이 깰라.”

아르는 왠지 모르게 검은 머리 남자의 말을 따라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짜증났다. 아직 완전히 믿을  없는 이들인데.

자신 편을 들어줘서인가 싶기도 했지만, 묘하게 거부감이 적었다.

“뭐… 말하기 싫으면 말고.  대신조용히 잤으면 좋겠어. 잘 자.”

집요하게 물어올 같았던 그가 예상 외로 곧바로 포기하고는 이불을 들썩거렸다.

“아버지가.”

“어?”

아르는 변덕을 부렸다.

“어머니를 죽인 게 아닌가 싶어서.”

“…뭐?”

이 인간이라면 자신이 내린 결론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어떻게 해석할지 궁금해져서.

“어머니가 살던 곳을 해친 게 아닌가 싶어서. 이성을 잃고. 그리고 도망친 거지. 아주 깊숙한 곳에.”

아버지는   번도 내게 완전히 변신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어.

난, 단 한 번도 변신한 적 없었고.

“잠깐, 그럼….”

아르의 말은 거기서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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