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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5화 〉마음가짐(8) (115/218)



〈 115화 〉마음가짐(8)

“셰이!!!”

쿠우웅-!!

셰이가 포탄처럼 날아갈 때 났던 굉음처럼, 그녀가 땅에 추락하는 소리도 범상치 않았다.

“아악, 아으으윽….”

“셰이!”

누가 봐도 비자발적으로 추락한 셰이는 사지를 떨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나는 장소도, 상황도 잊고 그녀에게 달려가려 했지만 누군가 앞길을 가로막았다.

이곳 건물들을 봤을  느꼈던 위압감.

 위압감이 사람에게서 느껴졌다.

“그쪽인가.”

“예?”

“커헉!”

인지할 수 없었다. 누군가 앞길을 가로막았고, 그 다음엔  몸이 허공에 들려 있었다.

 누군가는 한손으로 가뿐하게 내 목을 붙잡더니, 셰이를 향해 내밀었다.

“일어나. 그럼 네가 지키고자하는사람이 죽을 거다.”

“으으… 아아…? 대장, 님…?”

“크읍!”

어찌나 힘이 센지 내 목을 붙잡은 손을 떼어내려 해도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수틀리면 당장이라도 내 목이 꽥 꺾일 것 같았다.

‘씨발, 이게 뭔…!’

숨이 점점 가빠졌다. 본능적으로 발버둥치다보니 안 그래도 모자란 숨이  빨리 소모됐다. 손을 비롯한 온몸에서 힘이 점점 빠져나갔다. 피를 토하며 아득바득 몸을 일으키려는 셰이의 모습이 점점 흐릿해졌다.

“당장… 당장 내려놔요!!!”

“기술을 제대로 발현해봐라. 그럼 이 남자는 무사할 테니.”

“아무리, 스승님이라도… 아무리 스승님이라도!”

셰이야.  짧은 새에 또 얼마나 심하게 다친 거야. 어?부디 괜찮아야  텐데….

이내 그녀의 절규마저 심해에 가라앉듯 먹먹해졌다.

**

툭-

전사장의 손에 매달려있던 헨드릭의 고개가 힘없이 떨어졌다.

믿을 수 없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셰이는 삐걱거리는 몸을 이끌고 다가갔다. 하지만전사장은 그녀가 다가가는 만큼멀어졌다.

“네가 지키고자하는 사람이 당했을 때, 그렇게 황망하게 바라만보고 멍청하게  거냐? 뭐라도 행동을 해야 할 것 아니냐. 복수를 하든, 제대로 지키든.”

“대장님… 대장님….”

“쯧.”

전사장은 손에 든 남자를 바라봤다. 마음에 들면서도 들지 않았다. 이리저리 방황하던 수제자를 제대로 붙잡아준 것은 고마운 일이었지만, 그녀의 연인이 것은 꽤나 불편한 일이었다.

지금도 봐라.

수년 넘게 함께해온 스승보다 기껏해야 몇  함께한 제 연인을 더 중시하고 있지 않나. 자신을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좀 과격한 방법이긴 하지만 확실한 자극을 위해서였는데, 설마하니 죽었는지 살았는지 구분조차 하지 못할 줄이야.’

이 남자가 셰이에게 그만큼 소중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리라. 그랬기에 전사장은그만두지 않았다. 후환이  두렵긴 하지만, 끝까지 배우겠다고 고집을 부린  셰이였다.

‘독신인데 어째서 딸 가진 아버지가 된 기분이드는 것이지.’

전사장은 남자의 목을 쥔 손에 힘을 뺐다. 의식을 잃은 남자는 약하긴 하지만 제대로 숨을 쉬기 시작했다.

“지금 그 감정. 그걸 모조리 쏟아내라. 적을 죽일 검이 아니라, 아군을 지킬 검으로 너만의 방패, 너만의 요새를 만들어내란 말이다!”

“대장님…!”

“괴물에게 당하면, 이렇게 느긋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만약 던전에서 이 남자가 괴물에게 진짜로 당했다면! 지금쯤 시체조차 남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좋은 거냐? 이미 네가 지키고 싶은 사람이 죽고 나서, 그 괴물을 죽이는 걸로 괜찮은 거냐? 그게 싫어서 내게 찾아온 거 아니냔 말이다!”

“대장님….”

“정신 차려! 네가 다가오면 이 남자만 더 위험해질 거다! 그 자리에서, 떠올려! 지키기로 맹세했으면, 지켜라! 지킬 대상만 생각해라! 이 남자가 더 심한 꼴을 당하기 전에!”

셰이의 클레이모어가 움찔했다. 전사장은 절대 ‘공격’을 통한 방어를 허락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기술을 배우기 위해선, 그것도 어중이떠중이 기술이 아니라 제대로  기술을 배우기 위해선 어중간한 마음으로는 배울 수도 없고 배우더라도 절대 제 효율을   없다 했다.

아군을 지키기보다 적을 공격하는 자는 전사의 마음가짐이지, 누군가를 수호하려는 자의 마음가짐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형성된 이단에 대한 굳은 증오는 이미 셰이라는 인간을 구성하는 중요 요소였고, 그걸 후순위로 미룰 수 없으면 결코 이 기술을 배울 수 없었다.

“그게 안 되면 지금이라도 사사를 포기하면 된다.  성전사지 수호자는 아니니까. 사실 넌 지금도 훌륭한 성전사다. 웬만한 성전사들보다 나을 거다. 굳이 기술을 배우지 않아도 대부분의 공격은 네가 받아낼 수 있겠지.”

“….”

“차라리 이 기술보단,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갈고 닦는 것이….”

“포기하지, 않아요.”

“그렇다면, 말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옮겨. 이 남자, 소중한 사람 아니었어? 그렇게 꾸물거릴 시간조차 아까울 텐데?”

“반드시… 반드시…!”

셰이는 클레이모어를 아예 땅에 박아버렸다. 그리고는 검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오른손은 검의 손잡이를, 왼손은 로자리오를 잡으며 눈을 감았다.

저 사람을 지키고 싶다. 지키고 싶다. 지키고 싶다. 지키고 싶다. 지키고 싶다. 지키고 싶다. 지키고 싶다.

아니.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걸 위해서라면 어떠한 고통도 감내할 수 있다.

떠올려라. 제발 떠올려라.

이단을 죽이는 것은 다른 사람이 대신 해줄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를 지키는 것은 용사대에서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대장님. 카야 언니. 그리고 일루미나 언니까지.

다른 사람을 지키는 건 수호자의 역할이라고? 나는 한없이 전사에 가까운 성전사니까, 힘들 거라고?

아니다. 그게 아니다.

나 셰이는 정의의 길을 걷고 있는 유스티티아님의 성전사이기도 하지만, HAT의 최초의 성벽이자 최초의 관문이다.

내가 있음으로 인해 나머지가 든든해질 수 있다면. 난 이미 우리 용사대의 수호자였다.

방패가 없다고? 그렇다면 내 몸 자체가 방패가 되리라.

진짜 수호자가 아니라고? 내 동료에 한해서지만, 그들을 수호하고자하는의지만큼은, 수호자에 필적하리라.

의지가 충만한 건 좋지만 이단을 썰어댈 줄만 알지, 수호자 클래스도 아니면서 어떻게 무슨 수로 지킬 거냐고?

HAT는 특이한 용사대고, 나는 저 괴물 같은 스승님이 인정한 천재다.

그러니 어떻게 지켜야 할지에 대한 정보가 없다면…….


“내방식대로, 지키겠어.”

클레이모어가, 로자리오가 밝게 빛났다. 셰이의 몸은 두 물건보다 더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전사장의 시선에 경악이 담겨 있었다.

셰이와 그녀의 클레이모어와 로자리오에서 나온 은빛 광채가 하나로 뭉쳤다. 뭉쳐진 광채는 쏜살같이 날아가 헨드릭의 심장에 꽂혔다. 둘 사이엔 은하수 같은 은은한 빛의 선이 어리고 있었다.

“끄흑!”

로자리오를 놓친 셰이가 목을 부여잡았다. 동시에 전사장의손에 매달려있던 헨드릭이 의식을 차렸다.

“어, 어어… 어? 셰이!!”

“대장님을… 놔요.”

“정말,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전사장이 헨드릭을 내려놓았다. 콜록콜록 헛기침을 하며 잠시 비틀거리던 헨드릭은 셰이에게 곧장 달려갔다. 그가 셰이를 끌어안자 둘 사이를 이었던 은색 실이 끊어졌고, 그녀는허물어지듯 그의 품에 안겼다.

“셰이! 셰이!!”

셰이는 웃으며 기절해있었다. 황급히 목 옆의 맥을 짚어 그녀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한 헨드릭은, 갑작스런 폭력에 항의하려 고개를 돌렸다.

[셰이가 새로운 스킬, 셰이의 집념을 각성했습니다.]
[셰이의 집념]
- 상태이상 '절대 뒤로 밀려나지 않음'을 얻음
- 방어력 1 증가
- 지정한 대상이 기존에 입은 피해를 자신에게 옮김(자신의 현재 체력을 넘는 피해를 옮길 수는 없음)
- 지정한 대상이 공격당하면 대신 방어함(방어력 보정 -33%)
[셰이의 기존 2스킬, 성전사의 집념이 사라집니다.]

‘이건…!’

황당함과 분노는 곧 경악으로 치환됐다. 기절한 셰이와 메시지를 번갈아보던 헨드릭은, 바로 옆에 털썩 주저앉은 거한을 그제서야 똑바로 쳐다볼  있었다.

“그 아이는날 괴물이니 뭐니 하지만, 진정한 괴물은 그 아이다.”

“그.”

“다짜고짜 목을 조른 사과하지. 아무리 이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였다곤 해도 말이야.나중에 깨어나면또 한 번 사과하겠다.”

전사장이 고개를숙였다. 헨드릭은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사장은 큼지막한 손으로 셰이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더니 허탈한 웃음을  내뱉었다.

“마음가짐을 고쳐먹어야 한다느니, 넌 수호자가 아니라느니 잘난  떠들었다. 내심 포기했으면 했다. 던전행이 힘든 건 당연한 일이지만, 이 기술을 배우고자 한다는 것 자체가 자신이 더 큰 고통을 짊어지겠다는 선언이나마찬가지였으니까.”

“그렇습니까.”

“그래도 일부러 못 배우게 하려는 억지를 부리진 않았다. 실제로 배우기 어려운 기술이고, 어쩌면  아이는 영영 배우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몇 년도 아니고,  달도 아니고, 하다못해 몇 주도 아닌… 고작 이틀 만에. 그것도 원래 기술도 아니고 자기 방식대로 창조해버릴 줄이야.”

전사장은 헨드릭의 어깨를 쥐었다. 어깨가 우그러드는 감각에 헨드릭이 몸서리를 쳤지만, 전사장은놓아주지 않았다.

“그게 다, 헨드릭 당신의 존재 때문이지. 기술을 자기 방식으로 깨우친다는 건, 단순하게 아이가 천재라서 가능한 영역이 아니다. 당신을 지키고자하는 저 아이의 마음이, 뿌리 깊게 박힌 증오조차 일시적으로 이겨낼 정도로 강력했다는뜻이다. 그만큼 당신이 저 아이에게 대체 불가능할 정도로 소중한 존재라는 뜻이고. 그러니… 부디  아이의 마음가짐이 변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

“아, 알겠습니다. 그럴 일은 절대로 없을 겁니다. 절대.”

헨드릭의 대답에 만족했다는 듯 그제서야 손에 힘을 뺀 전사장이 일어났다. 그는 셰이에게 줄  있으니 내일 다시 찾아오라며, 깨어나면 잘 좀 얘기해달라고 부탁하고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셰이….”

헨드릭은 한동안 일어날 수 없었다. 셰이가 새로 익힌 스킬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마음가짐이… 너무나 간절하고 고맙고 또 무거워서.


**

“대장님!”

“그래.”

“대장님, 대장님!”

“그래, 그래.”

“대장님, 대장님, 대장님!”

“그래, 그래,그래.”

내 등에 업힌 셰이는 바보같이 웃었다. 내가 무사하다는 것에서 웃고, 생각보다 새로운 스킬을 빨리 배웠다는 것에서 또 웃고,  스킬이 자신의 의도대로 만들어졌다는 것에서 또 웃었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업어주는 걸로 웃고 있었다. 은근슬쩍 엉덩이를 만지자 턱으로  어깨를 응징했다. 하필이면 전사장이 어루만졌던 곳이었다. 1초 만에 항복했다. 그러자 셰이는 또 헤헤 웃었다.

“대장님.”

“어.”

“이 정도면… 지킬 수 있겠죠?”

“넌 지금까지도 우릴 잘 지켜줬어.”

“대장님이 그렇게 말해주는 건 고맙지만, 전 그걸로는 만족할 수 없어요.제가 쓰러지기 전까진, 아무도 쓰러지는 걸 보고 싶지 않아요.”

“그렇다고 너도 쓰러지면 안 되지.”

“그거야 당연하죠! 당연한데, 기왕이면 대장님은 최대한 늦게 쓰러졌으면 좋겠어요. 대장님이 쓰러질 때마다 제 가슴이 얼마나 아팠는지 알아요? 제가 다 막아줄 거예요.”

“그래? 셰이 뒤에  숨어야겠네.”

“그럼요? 제 뒤에 잘 숨으세요!”

“네, 누나.”

“읏.”

셰이의 숨소리가 급격하게 가빠졌다. 목과 귀가 그녀의 날숨에 축축해졌다.

“하, 한 번 더요.”

“뭘?”

“그, 그거요! 그거!”

“그게 뭔데?”

“아 대장니임!”

“네, 누나?”

“으읏! 하,  번만 더.”

“한 번은 진즉 지났는데요, 누나?”

“핫! 하, 한 번만 더!”


알고 보니 셰이는 나랑 동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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