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5화 〉2구역(4) (125/218)



〈 125화 〉2구역(4)

[정예 괴물, <공포의 예술가>와 조우했습니다.]
[압도적이며 기괴한 광경을 목격한 용사대가 순간적으로 경직됩니다.]
[속도 체크를 건너뛰고 <공포의 예술가>가 먼저 턴을 잡습니다.]

‘씨발!!!’

좆됐다.

압도당했다.

예전에 1-2에서 공포무새에게 나랑 카야가 압도당했던 것처럼, 우린 공포의 예술가, 게이머들 통칭 사이코패스가 몸을 일으켜 우리에게 느릿느릿 다가올 때 어떠한 행동도  수 없었다.

그 때 이후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압도적인 무력감.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꼴사납게 흐느끼거나 주저앉지 않는 것뿐이었다.

“이런 깊은 곳까지… 불신자들이 들어오는 것은… 굉장히… 오랜만이라… 환영하는 게… 서투를 수가 있다네….”

‘환영은 니미!’

2구역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끕이 좀 더 되는 놈이라서 그런가? 1구역에 비해 말이 좀 많은 느낌이었다.

“어떤가… 내 작품들은… 아직… 걸작을 만들어내진 못했지만… 수작 정도는… 된다고 생각하는데….”

‘씨발 사이코패스새끼가! 좆같은 소리 지껄이지 말고 공격이든 뭐든 하라고 차라리!’

나야 저놈을 알고 있었다. 물론 일러스트와 글자를 통해 본 거랑 이렇게 직접 보는 거랑은 느낌이 천지차지였지만, 그래도 익숙했다. 하지만 동료들은 아니었다. 내가 고백을 하고 나서 이것저것 정보들을 말해주긴 했지만… 그런다 해도 몇 천 시간 동안 몇 백 판을 클리어하면서 많이 상대해본 나랑 같을까?

절대 아닐 것이다.

저놈의 말이 한마디씩 늘어날 때마다 동료들의 움찔거림이 더 심해지고 있는 걸 바라만 봐야 했다.

“이곳까지… 도달한 불신자들이라면… 더한 예술품을… 만들 수 있겠군….”

[공포의 예술가]
최대체력 : 113/113
공격력 : 11~12
방어력 : 5
속도 : 4


저놈의 스펙이 떠올랐다. 체공방이 1구역 보스였던 공포의 손보다 더 높긴 했지만 이곳이 2구역이라는 것과 최고난도 뻥튀기가 된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1-2에서 만났던 공포무새처럼 이놈도 무투파는 아니었고 피지컬 자체는 타 2구역 정예 괴물에 비해 약한 편이었다.

하지만 왜 짜증나느냐.

“우선… 같이 예술을 논해보기 전에… 내 예술품들을 선보이도록 하지….”

가장 기나긴 공포를 찬미하기 위해 ‘예술’을 한다는 설정이 있는 이 미친놈은, 자신의 ‘예술품’들을 이용한 전투방식을 구사했다.

 말은 즉.

“일어나거라… 내 아이들아….”

[공포를 찬미하는 자들]
[예술품들이 비명을 지르며 예술가의 부름에 응합니다.]

이놈은 소환형이었다.

사이코패스놈의 부름에 ‘탑’을 구성하고 있던 시체들 중 가장 위에 있던  구가 가면들처럼 걸려있던 얼굴 벽에 흐느적거리며 걸어가더니, 어느 얼굴을 집어들어 안면에 부착했다.

“우욱…!”

혐오스럽고 기괴한 건 그게 끝이 아니었다. ‘예술품’들이 얼굴을 장착한 순간, 검은색으로 꿈틀거리는 무언가가 그들의 나체 위를 감싸더니 삽시간에 무구를 장착한 누군가가 된 것이다.

하나는 기사처럼, 다른 하나는, 마치 수녀처럼. 그 모습은 마치… 셰이와 카야를 조악하게  뜬 것 같았다. 베스티아 옆에서 가면을 쓰고 있던, 이름도 생각 안 나는 그놈보다 훨씬 지독한 모독이었다. 카야와 셰이의 눈동자가 살벌해졌다.

“….”

빠드득-

[예술품-성전사]
최대체력 : 48
공격력 : 4~8
방어력 : 6
속도 : 4

[예술품-전투 수녀]
최대체력 : 40
공격력 : 5~8
방어력 : 5
속도 : 4


스펙을 보니 빼박이었다. 이름부터가 노골적이었고, 예술품들의 스펙은 원본이라 할 수 있는 셰이와 카야를 따라갔다.

‘더 롱 테러에선 그냥 다양한 클래스를 흉내낸 소환물이 나타난 것뿐이었는데….’

[공포의 예술가의 예술을 목도한 용사들이 굉장한 충격을 받습니다.]
[셰이 멘탈리티 –10]
[카야 멘탈리티 –5]
[유진 멘탈리티 –9]
[일루미나 멘탈리티 –11]

두 마리를 소환한 것도 모자라 전역 멘탈리티 공격까지. 그 와중에 카야는 공포를 극복한 자와 굳건한 신념 특징 덕분에 이름에 ‘공포’가 들어간 괴물 상대로 50%에 육박하는 멘탈리티 저항을 보여줬지만… 별로 좋지 않은 패턴이었다. 시작하자마자 소환이라니, 재수가 없었다.

[속도 체크]
셰이 : 4
카야 : 4
유진 : 7
일루미나 : 5
예술품-성전사 : 4
예술품-전투 수녀 : 4
공포의 예술가 : 4

[유진의 턴이 앞서게 됩니다.]

이제서야 정상적으로 속도 체크가 이루어졌다. 내가 선턴을 잡은 건 다행이라 할  있겠으나, 막막했다.

‘낙인을 찍으면 뭐해? 3열에 있는데.’

저놈이 시작하자마자 두 마리나 소환하는 바람에1열에서 3열로 밀려났다. 내가 낙인을 찍는다 해도, 카야의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와 셰이의 정의 집행 및 정의의 심판은 2열까지만 타격할 수 있었다.

그 말은 즉, 앞에 놈들부터 처리하거나 나 혼자 사이코패스놈을 타격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낙인 안 찍어도 때려볼만 하긴 한데….’

잠시 데미지 기댓값을 계산해보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소환물이 쌓이면 곤란했다. 수가 늘어나거나, 강화되면 더 걷잡을 수 없어졌다. 게다가 저놈은 소환만 할  아는 놈이 아니었다.

목표는 그나마 최대 체력과 방어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예술품-전투 수녀.

생김새는 많이 다르지만, 그래도 꼭 타락해버린 카야를 공격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굉장히 좆같았다.

[대가리 분쇄]
[유진이 예술품-전투 수녀에게 18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22/40]


‘쯧.’

거의 반피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치명타는 터지지 않았다. 하지만 좆같은 기분을 제외하고 생각한다면, 전투 상황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나와 일루미나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의 속도가 4로 동일했기 때문이었다.

“일루미나.”

“….”

“일루미나!”

“으, 으응!”

“세 번째 현을 튕길 시간이야.”

“아, 알았어!”

2-2에 들어온 직후부터 정신없이 눈물콧물토사물을 쏟아내던 일루미나는  호통에 반사적으로 베이파를 들었다. 얼굴은 엉망진창이었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그녀의 연주 솜씨는 뛰어났다.

[습격의 선율]
[일루미나의 선율이 용사들의 마음을 달랩니다.]
[모든 용사 멘탈리티 +2]
[‘타고난 가희’ 특징으로 인해 1의 멘탈리티를 추가로 회복합니다.]
[모든 용사 치명타율 +5]
[모든 용사 속도 +1]
[‘타고난 가희’ 특징으로 인해 1의 치명타율이 추가로 상승합니다.]

아군 전체의 속도가 올랐다. 경쾌한 선율이 동료들의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속도 체크]
셰이 : 5
카야 : 5
유진 : 8
일루미나 : 6
예술품-성전사 : 4
예술품-전투 수녀 : 4
공포의 예술가 : 4

[셰이와 카야의 턴이 공포의 예술가와 예술품들의 턴보다 앞서게 됩니다.]

[셰이와 카야의 속도가 같습니다.]
[속도 굴림]
셰이 :6
카야 : 4

[셰이의 턴이 카야의 턴보다 앞서게 됩니다.]

이번엔 셰이가 이겼다. 전투 상황  누가 이겨도 상관은 없었다. 내가 지금 고민하는 건 하나를 타격할지, 두 놈을 동시에 타격할지였다.

‘정의 집행은… 아니다. 일단하나 줄이고 시작하자.’

셰이에게 정의의 심판을 지시했다. 셰이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살벌했는데, 그 눈빛만으로 괴물들을 태워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죽이고 죽이고  죽여주겠어.”

[정의의 심판]
[셰이가 예술품-전투 수녀에게 6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6/40]
[예술품-전투 수녀가 심판에 굴복합니다.]
[예술품-전투 수녀가 상태이상 ‘기절’(1턴)에 걸립니다.]
[예술품-전투 수녀에게 심판의 낙인이 새겨집니다.]
[낙인은 3턴간 유지됩니다.]

기절은 먹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치명타는 터지지 않았다. 셰이는 분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모독적인 예술품들을 치우고 예술가놈의 배때지를 갈라버리고 싶다는 의지를 온몸으로 표출하고 있었다.

다음은 카야의 턴이었다. 그녀는 아무  없이 자신을 흉내내고 있는 예술품을 향해 철퇴를 치켜들고 있었다.

‘기절 안 걸린 놈을 때려 피를 깎아놓는 게 나을까, 아니면 상관없이 팬 놈 또 패는 게 나을까.’

어려웠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근거가 있었다. 하지만 카야의 모습을 보니, 어느 쪽을 선택해도 괜찮다면 그녀의 의지를 존중해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네 뜻대로 휘둘러, 카야.”

움찔했던 카야는 한 차례 심호흡 후,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예술품의 머리에 철퇴를 휘둘렀다.

퍼어억-!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전율적인 일격!]
[카야가 예술품-전투 수녀에게 26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0/40]
[예술품-전투 수녀가 죽었습니다.]
[괴물을 박살내는 일격에 용사들이 전율합니다.]
[셰이 멘탈리티 +4]
[카야 멘탈리티 +2]
[유진 멘탈리티 +4]
[일루미나 멘탈리티 +3]

치명타가 떴다. 오버킬이라 데미지 낭비가  아까웠지만, 못 죽인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하지만 치명타를 띄우거나 괴물을 조졌을 때 미소를 짓던 카야는 전혀 웃지 않았다. 은근히  칭찬을 바라던 눈치도 보지않았다. 셰이와 마찬가지로, 카야는 지금 악귀가 되어 있었다.

‘제발… 또 소환만 하지 마라. 차라리  대 맞을 테니까.’

우리의 턴은 끝났다. 괴물들의 턴이 시작됐다.

[예술품-성전사와 공포의 예술가의 속도가 같습니다.]
[속도 굴림]
예술품-성전사 : 4
공포의 예술가 : 2

[예술품-성전사의 턴이 공포의 예술가의 턴을 앞서게 됩니다.]

셰이를 모방한 듯한 예술품이 검을 치켜들었다. 그 모습이  아까 셰이의 공격 동작마저 모방한 것처럼 보였고, 계속 폭언을 중얼거리던 셰이의 이 가는 소리가 한층 더 심해졌다.

[셰이 멘탈리티 -5]
[카야 멘탈리티 –4]
[유진 멘탈리티 -4]
[일루미나 멘탈리티 –5]

예술품이 공격하려는 모습을  순간, 셰이의 발작이 터졌다. 그리고 괴물의 검이, 그런 셰이를 향해 떨어졌다.

[공포를 찬미하는 검]
[예술품-성전사가 셰이에게 0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24/24]
[셰이 멘탈리티 –4]

그나마 다행인 건 공격 범위도 셰이와 비슷한 건지 1열의 셰이를 공격했다. 소환물의 공격은 치명타라도 터지지 않는 이상 셰이에겐 흠집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존재 자체가 모독적인 것에 공격을 받았다는 것이, 셰이의 멘탈을 흔든 것처럼 보였다.

‘큰일이네. 저런 부과효과도 더  테러에선 없던 거였는데.’

제발, 제발, 제발.

재소환만큼은제발!

간절히 기도했다. 라엘라님! 유스티티아님! 제발!

“내 예술품이… 마음에 들지 않는가 보군….”

“안 돼 이 씨발새끼야!”

“이번엔… 마음에 들기를 바라지….”

“아,  돼!”


[공포를 찬미하는 자들]
[예술품들이 비명을 지르며 예술가의 부름에 응합니다.]


압도당했을 때 벌어졌던 일들이 반복됐다.

하지만… 같으면서도 달랐다. 시체가 일어나서얼굴을 장착하고, 검은 기운에 몸이 휘감긴 것까지는 동일했지만….

[공포의 예술가의 예술을 목도한용사들이 격분합니다.]
[셰이 멘탈리티 –11]
[카야 멘탈리티 –6]
[유진 멘탈리티 –10]
[일루미나 멘탈리티 –11]

예술품-성전사의 뒤에 나란히 선 새로운 두 개의 예술품, 그놈들의 모습은 명백히 나와 일루미나를 본 뜬 상태였다.

“우리들만으로도 모자라서, 대장과 일루미나까지!”

“….”

“아직… 예술품은… 많이 있다네… 마음에 드는 것… 하나 없겠나….”

예술가놈의 음산한 목소리와 예술품들의소름 돋는 표정이, 우릴 지독하게 옭아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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