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화 〉2구역(10)
“후우….”
깊은 빡침이 올라왔다. 어쩌면 더 롱 테러에서 갈림길을 통과한 용사들이 지긋지긋하다, 말라 죽을 뻔했다는 대사를 내뱉은 건 사실 이놈 때문이 아니었을까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그야말로 새로운 타입의 난적이었다. 더 롱 테러를 하면서 방어형, 반격형, 떡대형의 괴물도 당연히 상대해봤지만 세 가지 모두가 섞인 혼종에 강력한 자기회복력까지 갖추고 있다니.
만약 저기서 방어력이 더 높아진다면? 반사 비율이 더 높아진다면?
하루 종일 공격만 하다가 반사뎀에 뒤진다고?
뒤진다 하더라도, 그딴 식으로 뒤질 수는 없었다!
“제발, 비켜라 좀!”
[대가리 분쇄]
[유진이 최후의 문지기에게 25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66/158]
[문지기의 의지가 발동됩니다.]
[문지기가 체력을 5 회복합니다.]
[남은 체력 71/158]
[유진의 체력이 3 감소합니다.]
[남은 체력 12/20]
‘그래. 2중첩까지 걸었는데 20은 넘어야지.’
결국 저놈의 방어력 및 힐량과 우리들의 딜량 간의 싸움이었다. 설상가상 치명타가 더럽게 안 터지고 있는 현 전투에서, 버프 유지 시간인 3라운드 안에 어떻게든 데미지를 우겨넣어야만 했다. 일루미나는 버프 유지를 위해 턴을 넘겼고, 다시 카야의 턴이 되었다. 그녀 또한 치명타를 터뜨리지 못해 굉장히 조급해하고 있었다.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카야의 공격이 빗나갔습니다.]
“…!”
하지만 그 조급함과 초조함이 과했던 것일까. 스킬 명중률 보정 28에 버프 명중률 보정 18까지 더해진 지금 상태에서 미스를 띄우고 말았다.
“괜찮아.”
“….”
“괜찮아.”
“대장….”
“괜찮아.”
[정의의 심판]
[셰이가 최후의 문지기에게 11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60/158]
[최후의 문지기가 심판에 저항합니다.]
[최후의 문지기가 상태이상 ‘기절’에 저항합니다.]
[최후의 문지기에게 심판의 낙인이 새겨집니다.]
[낙인은 3턴간 유지됩니다.]
[문지기의 의지가 발동됩니다.]
[문지기가 체력을 1 회복합니다.]
[남은 체력 61/158]
[셰이의 체력이 1 감소합니다.]
[남은 체력 12/24]
문지기는 방어력뿐만 아니라 상태이상 저항력까지 높은지 기절을 두 번 연속 저항했다. 기절을 먹인 사이 딜을 퍼붓겠다는 계획은 물 건너가고 문지기의 턴이 되었다.
설마, 또 그 개 같은 스킬을 반복하겠어?
“절…대…절…대…로…!”
[문지기의 저항]
[최후의 문지기의 체력이 50% 미만이 되었습니다.]
[최후의 문지기가 한 라운드 동안 받은 모든 피해만큼 체력을 회복합니다.]
[최후의 문지기의 체력이 36 회복됩니다.]
[남은 체력 97/158]
“아니 씨발! 작작해 이 새끼야!! 차라리 공격을 하라고오오!!!”
한 라운드를 투자해서 30의 체력을 깠는데 보란 듯이 36의 체력을 회복해버리는 문지기의 만행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차라리 저 검을 휘둘렀으면 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저 미친 자힐은 안 할 테니까!
“하, 하하, 하하하….”
“대장….”
“대장님….”
“헨드릭….”
손에 힘이 빠졌다. 하마터면 도끼를 놓칠 뻔했다. 반사적으로 손잡이를 움켜쥐었지만, 손바닥이 어찌나 부어있고 또 얼얼한지 절로 이가 갈렸다.
‘어쩌면, 저것도 반복되면 더 악랄해질 수 있다는 거지. 방어력이 더 높아진다든가, 힐량이 늘어난다든가, 반사 데미지가 높아진다든가. 어느 쪽이든 좆같은 방향이야.’
나도, 카야도, 셰이도. 치명타를 3연속으로 띄우지않는 이상 저 바퀴벌레 같은 벽을 뚫기는 요원해보였다. 하지만 무슨 저주라도 먹은 건지 이번 전투에서 치명타는 완전히 깜깜 무소식.
만약 일루미나의 버프가 꺼지기 전에 저놈을 잡지 못한다면… 그 뒤의 미래는 보이지 않았다.
‘일단 나부터 다시 공격해보자.’
만약 여기서 치명타가 뜨면.
뒤가 없는 도박수를 안 던질 수도 있었으니까.
날 바라보는 동료들의 시선이 간절했다. 그녀들도 아는 것이다. 내가 이번에 터뜨려줘야 한다는 것을. 카야도, 셰이도 뻥뻥 터뜨릴 땐 장난 아니지만 결국 딜 포텐셜이 제일 높은 건 나라는 것을.
“제발!”
[대가리 분쇄]
[유진이 최후의 문지기에게 27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70/158]
[문지기의 의지가 발동됩니다.]
[문지기가 체력을 7 회복합니다.]
[남은 체력 77/158]
[유진의 체력이 3 감소합니다.]
[남은 체력 9/20]
어림도 없었다.
치명타는 이번에도 터지지 않았다. 이전까지가 많이 터졌다고, 보상 판정을 받는 것 같았다. 물론 그딴건 아니겠지만 계속 이런 꼴을 반복하다보니 의심암귀가 생겼다.
“헨드릭.”
“왜.”
“명령, 안 해줘?”
터덜터덜 제자리로 복귀하는 내게 일루미나가 물었다. 그녀의 손은 베이파의 현들을 덮고 있었는데, 평소라면 절대 첫 음으로 건드릴 일 없는 네 번째 현에 손가락이 올라가 있었다.
그녀도 아는 것이리라. 이런 식으로 가다간 답이 없다는 것을. 그래서… 내가 내릴 명령이 무엇인지 눈치 챈 것 같았다.
“괜찮겠어?”
“으응. 마음 아프긴 해도, 되돌릴 수 있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저 괴물을 못 죽이면… 되돌릴 수 없을 테니까.”
“…그래.”
나는 각오를 다진 음유시인에게, 제 악기의 현을 끊으라 명했다.
“…내 앞을 가로막는 적에게, 단장의 고통을.”
투우웅-
[절현]
[음유시인이 절현을 각오합니다.]
[선율의 효과가 사라집니다.]
[직전 선율 : 용기의 선율]
[절현의 데미지가 증가합니다.]
음유시인의 첫 번째 튕김은 특별했다. 그걸로 선율의 방향이 결정되니까. 그 중에서도 절현 스킬을 보유한 일루미나가 첫 번째로 튕기는 네 번째 현의 음색은… 굉장히 묵직하고 음울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엄청나게 큰 북을 두드리는 것 같은 울림이 네 번 연속으로 울려퍼지고….
띠잉---!
숨 막히는 침묵 끝에 첫 번째 현이 끊어지며 절현이 시작됐다.
[강력한 일격!]
[일루미나가 최후의 문지기에게 6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띠이잉---!
“더 없는 좌절을.”
[날카로운 일격!]
[일루미나가 최후의 문지기에게 9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투웅---!
“절현의 고통을.”
[치명적인 일격!]
[일루미나가 최후의 문지기에게 16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뚜우우웅---!!
“영원히 안고 살아가기를.”
[전율적인 일격!]
[일루미나가 최후의 문지기에게 26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도합 57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20/158]
[음유시인의 각오가 담긴 최후의 선율에 용사들이 분연히 일어납니다.]
[셰이 멘탈리티 +18]
[카야 멘탈리티 +16]
[유진 멘탈리티 +17]
[일루미나 멘탈리티 +12]
[문지기의 의지가 발동됩니다.]
[문지기가 체력을 7 회복합니다.]
[남은 체력 27/158]
[일루미나의 체력이 6 감소합니다.]
[남은 체력 9/15]
[일루미나는 향후 4턴 동안 스킬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음유시인이 보유한 혼신의 죽창, ‘절현’. 기본 공격력이 꼴랑 5~9에 불과한 일루미나가 애지중지하게 여기는 악기의 줄을 끊어내면서까지 선보인 필살기는… 그야말로 전율적이었다.
한 현, 한 현 끊어낼때마다 일루미나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지는 동시에 베이파에서 무형의 기운이 문지기를 강타했고 그 기운은 점점 갈수록 강해져, 마지막 현인 네 번째 현을 끊어냈을 땐 석상처럼 굳건했던 문지기놈이 신음소릴 내며 움찔했을 정도였다.
끊어낸 줄이 4개라서 그런지 스킬 사용 4턴 불가라는, 버퍼에게 있어서 어마무시한 페널티를 받았지만….
도저히 끝이 안 보일 것 같았던 문지기놈의체력이 단숨에 최대 체력의 2할 밑으로 떨어졌다. 비록 2중첩 용기의 선율은 사라졌지만, 할 만 했다.
만약 이번 라운드에 못 죽였는데, 저놈이 3연속으로 자힐을 써댄다?
‘씨발 재수 없는 생각하지 말자. 이쪽은 올인이야!’
엉망이 된 베이파를 들고 멍하니 서 있는일루미나의 어깨를 토닥였다. 실제로 이 스킬을 사용한건 이번이 처음인 듯, 넋이 나간 모습이었다. 갈고리로 등을 꿰뚫리고, 겨우 극복하고 조금씩 육체의 아픔이 나아지나 싶더니 내 명령에 의해 제 손으로 베이파의 현들을 모조리 끊어냈으니 정신적 고통이 파고든 것이리라.
일루미나도, 나도 필요성을 인지했고 행했다. 그럼에도 그녀가 슬픈 마음이 드는 건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음유시인의 마음을 내가 어찌 알리오. 어설픈 위로는 하지 않았다.
카야의 턴이었다. 그녀 또한 일루미나의 선전에 크게 고양된 모습이었다. 용기의 선율은 꺼졌지만, 기백만큼은 그 이상이었다.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카야가 최후의 문지기에게 4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23/158]
[문지기의 의지가 발동됩니다.]
[문지기가 체력을 4 회복합니다.]
[남은 체력 27/158]
하지만 15라는 무지막지한 문지기의 방어력과 용기의 선율의 부재는 너무나 뼈아프게 다가왔다. 거기다 저 빌어쳐먹을 문지기의 의지가 조금의 예외라도 없다는 듯, 그 조그만 데미지까지도 다시 흡수했다. 존나 약올랐다.
“걱정 마세요.”
“셰이?”
“잘 될 거예요. 고작, 이런 이상한 곳에서 멈추기 위해 나아간 건 아니니까.”
그때 피곤함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얼굴에 누가 봐도 억지 미소를 띄운 셰이가 저벅저벅 앞으로 걸어가 클레이모어를 휘둘렀다.
[정의의 심판]
[강력한 일격!]
[셰이가 최후의 문지기에게 9의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8/158]
얼핏 보면 힘이 잔뜩 빠진 휘두름 같아 보였지만… 놀랍게도 치명타를 띄웠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하필이면 9뎀이라 저놈에게 티끌만큼도 피해를 못 입힐 테니까.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그만큼, 버텼으면… 충분하잖아!”
“물…러…날…수…없…다…!”
지금껏 계속 기절을 먹이는데 실패했던 셰이가 공격이 끝나고도 문지기와 경합을 벌이고 있던 것이었다!
“설마!”
[셰이의 의지와 최후의 문지기의 저항이 길항합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말처럼, 셰이는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문지기의 높은 상태이상 저항력을 뚫기 직전까지 온 것이다.
제발.
셰이라면!
[저항 굴림]
셰이 : 5
최후의 문지기 : 3
“이제, 그만, 비켜달라고! 제발!!!”
“크…아…아…앗…!”
[최후의 문지기가 저항에 실패했습니다.]
[최후의 문지기가 상태이상 ‘기절’(1턴)에 걸립니다.]
[최후의 문지기에게 심판의낙인이 새겨집니다.]
[낙인은 3턴간 유지됩니다.]
셰이의 클레이모어가 마침내 문지기의 갑옷 일부를 꿰뚫은 순간, 은빛 광채가 터지며 문지기의 전신을 옭아맸다.
“이…럴…수…가…!”
[최후의 문지기가 턴을 넘깁니다.]
[최후의 문지기가 상태이상 ‘기절’에서 벗어났습니다.]
문지기의 의지는 처음부터 10 미만의 데미지를 블락하는 게 아닌, 맞고 회복하는 메커니즘이었기 때문에 셰이의 정의의 심판을 맞고 기절한 시점에서 발동될 수 없었고 행동 또한 원천봉쇄 당했다. 그 어떤 악랄한 패턴이 나올지 몰라 심장이 터질 것만같았는데…!
“셰이!!!”
카야가, 내가, 일루미나가 셰이의 이름을 외쳤다. 고작 9뎀이었지만, 9뎀이 아니었다. 일루미나의 공기화와 우리들의 남은 체력, 밝기 등을 고려해봤을 때 90뎀 이상의 가치가 있는 타격이었다.
문지기의 남은 체력은 18. 낙인은 아직 남아있고, 남은 공격횟수는 나 포함 셋.
셋 중 둘만 10데미지를 넘기면 끝이었다.
[대가리 분쇄]
[파멸적인 일격!]
[유진이 최후의 문지기에게 36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8/158]
[최후의 문지기가 죽었습니다.]
[유진의 체력이 4 감소합니다.]
[남은 체력 5/20]
“원…통…하…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하하하하하하하학, 쿨럭!!!”
“대장!”
“대장님!!”
“헨드릭!!!”
마지막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극적으로 터진 치명타에, 셋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반사뎀이 존나 아파 피를 토하지만 않았다면, 더 멋있는 마무리였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