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화 〉2구역(17)
아.
죽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이 저거랑 부딪치면 죽는다.
나는… 용사대의 최전방에 서있는 최초의 관문이자 대장님을 지키는 첫 번째 문지기다.
버텨야 한다. 쓰러지면 안 된다.
결코.
결코… 이런 곳에서 쓰러질 수는 없어.
동료들을 위해.
이단의 박멸을 위해.
그리고… 날 믿어주는 대장님을 위해.
반드시 버텨내겠어.
그러니 두렵지 않아.
두렵지 않아.
“두렵지 않아!!!”
**
멀리서 보면 별 거 아닌 것 같았던 파도가 가까이서 보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밀려오는 것처럼, 검은 기운을 잔뜩 머금고 있는 사이드는 해일처럼 셰이를 덮치기 시작했다.
“씨발,셰이---!!!”
우리들의 외침은 악명 높은 연타 공격, 그 첫 번째 공격의 충돌음에 파묻혔다.
[가차없는 수확]
쾅-!
[공포수확자가 셰이에게 2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5/24]
[셰이의 체력이 1 회복됩니다.]
[남은 체력 16/24]
[셰이가 반격합니다.]
[셰이가 공포수확자에게 3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30/104]
콰앙-!
[공포수확자가 셰이에게 3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3/24]
[셰이의 체력이 1 회복됩니다.]
[남은 체력 14/24]
[셰이가 반격합니다.]
[셰이가 공포수확자에게 5의 데미지를 입힙니다.]
[남은 체력 25/104]
콰아앙-!
[날카로운 일격!]
[공포수확자가 셰이에게 7의데미지를 입힙니다.]
[남은 체력 7/24]
[셰이의 체력이 1 회복됩니다.]
[남은 체력 8/24]
[셰이가 반격합니다.]
[셰이가 공포수확자에게 3의 데미지를 입힙니다.]
[남은 체력 22/104]
콰드드득--!!
[공포수확자가 셰이에게 4의 데미지를 입힙니다.]
[남은 체력 4/24]
[셰이의 체력이 1 회복됩니다.]
[남은 체력5/24]
[셰이가 반격합니다.]
[셰이가공포수확자에게 4의 데미지를 입힙니다.]
[남은 체력 18/104]
----------!!!
[공포수확자가 셰이에게 5의 데미지를 입힙니다.]
[남은 체력 0/24]
“아……….”
“안 돼---!!!”
“셰이---!!!”
더 롱 테러 2구역에 등장하는 정예 괴물 공포수확자의 트레이드마크, 가차 없는 수확.
무자비한 연타 공격에도 셰이는 필사적으로 받아치며 버텨냈다. 높은 방어력과 자체 회복력 덕분에 눈부신탱킹을 보여주었다. 전신에 피를 흘려가면서도 틈을 놓치지않고 반격하며 분투하는 모습은 전율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확자놈의 연격은 뒤로 갈수록 점점 강해졌고, 결국 마지막 다섯 번째 공격에서, 셰이의… 셰이의 체력이….
“셰이!! 정신 차리십시오!!! 셰이!!!”
“셰이… 셰이…! 일어나아아…!!”
셰이의 체력이 0이 되었다.
메인 탱커 사경 및 행동불능.
피로 된 웅덩이에 쓰러진 셰이의 모습을 보니, 심장이 아릿했다.
내가 명령해서. 일말의 주저 없이 괴물의 시선을 끌어, 그 공격을 오로지 홀로 감당했기 때문에 미안해서.
동시에 저 무시무시한 공격을 받은 게 그녀라서.
공격당한 게 그녀라서 이 정도에 그쳤을 거라 생각하는 내 자신이 순간 혐오스러워서.
당장이라도 격하게 뭐라도 토해내고 싶었다. 욕설이든 도끼든 저놈의 대가리든.
“일루미나! 당장 턴 안 넘기고 뭐 하는….”
“셰이!!! 저, 정신이 들어? 응?”
“셰이! 정신이듭니까?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특성 ‘필사적임’이 발동합니다.]
[셰이가 사경을 박차고 나옵니다.]
[셰이의 체력이 1 회복되었습니다.]
[남은 체력 1/24]
“버텼…어요… 대장님… 헷….”
“우, 움직이지 마십시오! 상처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신이 흘린 피로 물든 셰이가 끝내 클레이모어를 지팡이 삼아 스스로 일어났다. 카야도, 일루미나도 섣불리 셰이를 부축하지 못했다. 홀로 일어서겠다는 셰이의 의지가 너무나 강력했기 때문이었다.
“수확…같은 소리하고… 자빠, 졌네… 어린…아이보다도… 낫질에… 소질 없는… 쓸모없는… 쓰레기괴물 주제에…!!”
[셰이가 반격합니다.]
[셰이가 공포수확자에게 8의 데미지를 입힙니다.]
[남은 체력 10/104]
셰이가 사경에 빠지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최후의 성전의 효과는 끝나지 않았고, 체력이 1 회복되자마자 그녀는 어디서 힘이 났는지 끝내 클레이모어를 휘둘러 마지막까지 반격하는데 성공했다.
“하악, 하악, 하악….”
“불신자 따위가… 감히…!”
“더러운… 괴물 따위가… 감히! 하하하하하!”
누가 봐도 수확자가 셰이를 궁지에 몰아넣은 게 맞는데, 오히려 죽다 살아난 셰이가 피를 토하면서도 큰 소리로 웃으며 수확자를 조롱하고 있었다. 같은 편이 봐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일루미나가 턴을넘깁니다. (남은 턴 :2)]
[셰이의 낙인이 사라집니다.]
[셰이는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습니다.]
[셰이가 턴을 넘깁니다.]
할 게 없는 일루미나의 턴은 다시 스킵했고, 셰이의 턴도 최후의 성전 페널티로 인해 삭제됐다.
하지만 수확자놈의 현재 체력은 고작 10. 그에 비해 용사대의 남은 공격횟수는 카야, 그리고 나 이렇게 두 번.
둘 다 미스가 뜨지 않는 이상, 못 죽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힐링을 못하는 게 아쉬울 뿐, 지금은 셰이가 사경에 들어서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카야!”
“예! 넌, 끝이다.”
콰드득-!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카야가 공포수확자에게 18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체력 –8/104]
[공포수확자가 죽었습니다.]
[보상 : 22금화, 붕대, 랜덤 스킬 스크롤, 죽음의 시간]
카야의 공격은 마지막 일격이 되었고, 공포수확자는 그대로 머리가 터져버렸다. 머리를 잃은 몸은 부들부들 떨다가 사이드를 놓치며 털썩 쓰러졌고, 떨어진사이드는 그대로 축소되는가 싶더니 보상 아티팩트가 되었다.
털썩-
“셰이!”
하지만 지금은 아티팩트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수확자놈의 연속 공격을 모두 받아내는 것도 모자라 체력이 0이 되어 쓰러졌는데도 기어코 사경을 걷어차고 일어나 최후의 반격을 날릴 때도, 그 이후에 곧바로 카야가 마지막 일격을 날릴때조차버티고 서 있던 셰이가 그대로 쓰러진 것이다.
“어떡해… 어떡해…!”
일루미나는 눈물을 펑펑 흘리며 셰이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냈고, 나랑 카야는 잽싸게 갑옷을 벗겼다. 완전히 피범벅이 된 상체를 보고는 헛숨을 들이켰다.
“세상에….”
안 그래도 흉터투성이인 셰이의 상체가… 완전히 걸레짝이 되어있던 것이다. 저런 상처를 입고 다시 일어나서 반격까지 했다는 것 자체가 기적처럼 보였다. 만약 내 몸이 저랬다면, 난 절대 셰이처럼은 못 했을 것 같았다.
“내의는 버리고, 일단 깨끗이 닦은 다음 약초랑 붕대로 잘 감아야되겠어.”
“예. 대장. 어깨 좀 들어주십시오. 예, 그리고 일루미나. 배낭에서 붕대와 약초 좀 넉넉하게… 아니 아예 배낭을 통째로 가져와주십시오.”
“으응!”
멘탈리티 하락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아직 여유가 있기도 하고, 또 셰이를 도저히 이 상태로 놔둘 수 없었다. 더 롱 테러에선 1체력이든 풀체력이든 똑같이 움직였지만, 여기선 아니었다. 그건 1구역 보스 방에서도 절실히 느꼈던 바였다.
‘식량도… 어느 정도 먹어두는 게 낫겠다.’
넉넉해진 예산 덕분에 배낭도 훨씬 좋은 걸 구비했고, 그 덕에 식량도 최대한 많이 구비하긴 했었다. 하지만 갈림길이랑 비밀방에서 상당히 소비했기 때문에 평상적인 소비 속도를 생각해보면 그렇게 여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1체력은 아무리 방어력이 높은 셰이라도 너무 간당간당했다. 사경 페널티는 한 번 빠지면 복구도 안 되고, 멘탈리티피해도 끔찍했다.
지금은 미래의 안정성을 현재의 체력으로 끌어와야 하는 타이밍이었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다 했는데, 어찌하시겠습니까.”
“일단은… 조금이라도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야겠지. 만일 오래걸릴 거 같으면, 저번처럼 업고 가는 수밖에.”
“…이해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내가 내뱉은 말이지만 참 잔인했다. 단기간에 의식을 차린다고 해도 그랬고, 의식을 차리지 못한다고 해도… 어느 쪽이든 셰이는 만신창이인 몸을 이끌고 전진해야 한다는 말이었으니까.
“….”
물론 그건 셰이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카야도 그렇고, 심지어 나조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실제로 내가 도중에 기절할 때를 대비해 그녀들에게 미리 말해두기도 했다. 지금 셰이를 상대로 한 것들처럼 진행하도록 말이다. 즉, 이건 미리 정해놓은 매뉴얼에 따른 행동에 가까웠다.
‘라엘라님, 유스티티아님.’
하지만 난 기계가 아니었다. 던전 원 데이 투 데이 도는 게 아니면서도 매번 마음이 너무 아팠다. 매뉴얼이 있어서, 수천 시간의 간접적 경험이 있어서 갖고 있는 감정과 상황과는 다르게 해야 할 일을 어떻게든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지만… 지금 이 순간 드는 생각이 내 마음을 더 옥죄었다.
그건 바로 ‘익숙해짐’이었다.
조금쯤 던전 그 자체와 공포새끼의 수작에 익숙해지면서 내가 겪는 고통의 역치 값이 높아졌고, 동시에 동료들이 겪는 고통 또한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다.’에서 ‘마음이 너무 아프지만 던전을 돌다보면 어쩔 수 없어.’ 정도로 바뀌어버린 내 자신이….
“씨발…….”
“헨드릭?”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이 과정 자체가 베테랑이 되어가는 거고, 멘탈이 단단해지는 거라고 평할 수도 있었다. 어쩌면이런 걸 신경 쓰고 있다는 것 자체가 아직 무르다고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 감정에 너무 익숙해져버린다면… 설령 던전을 끝까지 돌파한다 하더라도 그 끝에 선 내가, 그리고 동료들이. 내가 알던 내가 아니고 내가 알던 동료들이 아니게 될 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들었다.
‘어쩌면 좋을까요. 라엘라님.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유스티티아님. 내가 가는 길이,방법이 옳은 거겠지. 카야. 셰이. 일루미나.’
여러모로 괴로운 고뇌의 시간이었다.
**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그러니까 대충 전원의 멘탈리티가 20정도는 까였을 정도로 흘렀다. 셰이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지만 아직몸을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고, 우린 식량을 체력 회복용으로 까먹었다. 셰이를 많이 먹이는 게좀 힘들긴 했지만 어쨌든 합쳐서 무려 10개나 까먹었다.
[체력]
셰이 : 9/24
카야 : 12/20
유진 :13/20
일루미나 : 12/15
[멘탈리티]
셰이 : -45
카야 : -23
유진 : -34
일루미나 : -62
마음 같아선더 쉬고 싶었지만 멘탈리티 하락 속도가 점점 가팔라지고 있었다. 게다가 셰이도 자기 때문에 더 지체할 수는 없다고, 자기 때문에 출발 안 할 거면 어떻게든 기어갈 거라고 하는 바람에 휴식을 그만두었다. 셰이는 내가 안아들었다. 저번처럼 카야가 자신이 업겠다고 했지만 단호히 거절했다. 무장을 한 셰이는 엄청 무거웠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감내할 만했다. 단순히 그녀의 근골과 갑옷의 무게뿐만 아니라 그녀가 지닌 책임감의 무게까지 짊어지고 싶었다.
셰이는 내게 안기는 것까지는 사양하지 않았다. 기어서라도 나아가겠다는 게 거짓은 아니었지만 그 이상 고집을 부릴 수 없다는 걸 알았기에 타협을 본 듯 했다.
“대장님.”
“그래.”
“저 무겁죠…?”
“어. 무겁네.”
“…내려줘요.”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걸 보니 조금은회복된 모양이었다. 셰이는 정말로 내려가려는 듯 꿈틀거렸지만 내가 단단히 안았다. 상처가 눌렸는지 신음소릴 냈다.
“셰이는 안 무거워.”
“네?”
“근데 우릴 지켜주는 셰이는 무거워.”
“….”
“그러니 아무리 무거워도 들고 갈 거야. 끝까지.”
“…대장님.”
평소보다 훨씬 느린 전진이었지만.
지랄맞은 함정 하나 없었다.
타닥-
2-7의 문 앞에서, 셰이는 자신이 짊어졌던 무게를 다시금 짊어졌다.
가슴을 내밀며 크게 숨을 들이킨 그녀는 카야를, 나를, 그리고 일루미나를 스윽 둘러보더니 씨익 웃으며 문을 밀었다.
끼이이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