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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4화 〉2구역(23) (144/218)



〈 144화 〉2구역(23)

*(경고)이번화 중후반부까지 잔인한 묘사가 있습니다.






나이가 이제 스물둘 밖에 안 되는 젊은 성전사 셰이의 삶은 굴곡이 굉장히 심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대부분의 기억이 풍화되고, 그렇기에 얼마 안 남은 기억을 꼭 붙잡고 있는 제1막, 부러울 것 없이 행복했던 유년기.

이단, 정확히는 공포 숭배자들에 의해 한 순간에 행복했던 가정이 박살나고 가장 소중했던 부모를 잃은데다가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이단의 어느 심처에서 온갖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실험들을 당했던 제2막,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었던 절망스러운 소년기.

기적적으로 유스티티아 교단에게 구해진 이후 여신을 섬기고 이단을 징벌하는 성전사로서 성장했던 제3막, 굳세게 다시 일어난 성장기.

그 성장기의 끝에 방황하고 있던 그녀를 헨드릭이 제 용사대에 영입한 이후로, 막연히 일생의 목표로 삼고 있던 ‘던전의 완전 붕괴’를 정말로 이루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는 현재. 인생의 제 4막을 보내고 있다고 해도 좋을 지금, 힘들고 괴로울 때도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기쁘고 보람차고 충만한 삶을 살고 있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었던 그녀에게 잊고 싶지만 잊지 못하는 끔찍한 일들이 재현되고 있었다.


“실험 번호 42-2. 그분의 힘을 혈관에 직접 주입했을 때와 피부에 접촉했을 때의 효율 비교, 그  번째.”

“저번엔 시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시험했었지. 피부 접촉  직접 주입이었나.”

“그렇습니다. 이번엔 동시 진행  동시 비교 실험입니다. 좌반신은 혈관에 직접 주입, 우반신은 피부에 접촉하면서 경과를 지켜볼 것입니다.”

“예상되는 결과는 어떻지.”

“같은 기운이라도 수용 방법에 따라 신체가 보이는 반응이  유의미하게 차이가 났습니다. 실험체의 좌반신과 우반신이 다른 반응을 보이는 건 확정적이고, 심하면 뒤틀릴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안정 작업은.”

“염려 마십시오. 가장 신경 쓰고 있는 부분입니다. 이 정도 되는 실험체를 벌써 죽게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좋아. 5분 후 시작하지.”


일루미나에게 쏘아졌던 검붉은 빛을 대신 맞은 셰이는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눈을 감았다 떠보니 기괴한 눈알괴물과 동료들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왜.

자신이.

 살도 채  된 시절의 몸에 들어와있으며.

왜.  찢어죽이고 갈아죽여도 시원찮을 폐기물들이 자신의 몸을 지분거리고있는 건지.

인지의 괴리는, 어마어마한 고통에 의해 단숨에 좁혀졌다.


“꺄아아아아악--!!”

“고통, 그리고 거기서 찾아오는 공포에서 비롯된 비명. 좋아. 아주 좋아. 이것도 다 기록하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이번엔 더 길게 절개해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지- 지지지직-

“아, 아아- 아아아아악-!”

그들은 작디작은 몸을 목부터 음부 바로 위까지 정확히 반으로 갈랐다. 마취와 진통 따윈 없었다. 오히려 소녀의 비명소릴 분석하며 즐기고 있었다. 그들은 우반신 곳곳에 거뭇거뭇한 덩어리들을 붙인 다음,좌반신 곳곳을 다시 가르고는 똑같은 덩어리들을 몸 안쪽에 집어넣었다.

소녀의 비명은 계속됐다.

“성대가 벌써 상한  같습니다.”

“치료하게.”

“예.”

아무 상처도 없는 성대만을 치유했다. 비명을 하도 지르느라 목이 쉬었다는 이유로.

쇼크를 일으키지도, 과다출혈로 죽지도 않았다. 이들은 산제물의 공양과 그로부터 파생한 생체실험의달인이었다. 소녀가 죽지 않을 아슬아슬한 선에서 극한의 고통과 공포를 뽑아내고 분석했다. 그들이 찾아낸 이 소녀는 특상등품의 실험체였다. 나름 귀중히 다루었다. 그게 오히려 소녀에게 불행이었다. 죽지 못하고 계속 실험을 당해야 했으니까.

소녀, 셰이는 단숨에 극한의 무기력함과 고통과 공포에 사로잡혔다.

*

“실험 번호 77. 거짓된 힘과 그분의 힘을 동시에 주입할 때 일어나는 현상.”

“어떤 거짓된 힘이지?”

“빛과 정의의 유스티티아입니다. 그분의 힘을 제대로 목도한 성전사 하나가 들어왔습니다.”

“좋아. 예상되는 결과는?”

“보통의 경우는 상극의 힘을 버티지 못하는 신체가 융해되거나 폭발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실험체는 극미량 정도면 멀쩡할 것 같습니다.”

“멀쩡하다면?”

“거짓된 힘과그분의 힘이 융합된 적은 없지 않습니까?”

“뭐라?”

“그분의 힘을 모욕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완전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흐음….”

“이미 허락이 떨어진 일입니다.”

“그렇다면, 좋다. 시작해보지.”

“예. 절개하겠습니다.”


*

“실험번호 89. 전신이 불타고 있는 상태에서 얼마만큼 그분의 힘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가.”

불탔다.

“실험번호 94. 체내에 남아있는 혈액의 비율에 따라 그분의 힘을 받아들이는 효율이 어떤 차이를 보이는가.”

산 채로 피가 뽑혔다.

“실험번호 99. 극도의 포만 상태와 극도의 기아 상태에서는 어떠한 차이를 보이는가.”

억지로 출산 직전의 임산부처럼 배가 부풀었고, 굶어 죽기 직전의 거지처럼 앙상해졌다.

“실험번호 103. 처녀막의 유무에 따른 차이 고찰.”

차가운 쇠막대기에 소중한 곳을 꿰뚫렸다.

“실험번호 124. 뜨거운 곳과 차가운 곳에 따른 차이 고찰.”

탈수로 죽을 것만 같은 곳에서, 당장이라도 얼어죽을 것만 같은 곳에 방치당했다.

“실험번호 149. 사지를 움직이지 못할 때. 첨언. 어느 쪽 사지의 힘줄을 자르느냐에따른 차이와 팔의 힘줄만 잘랐을 때  다리의 힘줄만 잘랐을 때의 차이 포함.”

“실험번호 201. 잠을 자지 않았을 때,  경과에 따른 차이 고찰.”

계속 비명을 질렀다. 지르고 싶어서 지르는 게 아니었다. 그냥 나왔다. 너무 아파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울었다. 저들은 눈물의 양까지 기록했다.

애원했다. 무시당했다.

욕했다. 저주를 퍼부었다. 오히려 흡족해했다.

혀를 깨물었다. 죽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실험 주제가 생각났다 했다.

몸은 자라나는데, 실험은 끝나지 않았다. 성장하면서 변수가 생겼다고 같은 실험도 반복됐다.

원래라면 8년 정도에 거쳐서 받았던 수많은 실험들. 그 극악무도한 고문들을 쉬는 시간 없이, 회복기간 없이 초고속으로 받고 있는 중이었다.

불가능이란 없었다.

애초에 여긴 셰이의 내면에 잠재된공포로 재조합된 세상이었으니까.

셰이는 미칠 거 같았다.

유스티티아님.
대장님.
카야 언니.
일루미나 언니.
스승님.

구해주세요.
절 여기서 구해주세요.

대답은 없었다.
구원은 없었다.

눈물을 흘리며 빌어도 실험은 계속됐다.

공포의 눈의 수작이라는 걸, 이건 현실이 아니라는 걸, 제대로 된 기억도 아니라는  인지하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 고통들은 너무나 똑같았으니까. 이 고통을 겪는데 이성을 차린다? 그래서? 이성을 차리면 금방 여길 벗어날  있나?

사고가 단순해졌다.

아파.
고통이 싫어.
누구라도 좋으니 날 구해줘.

대장님!
대장님!!

“실험번호 257. 시력을 완전히 상실했을 때.”

아아… 대장님.
대장님, 믿어요.
대장님…!

“실험번호 257-2. 청력까지 완전히 상실했을 때.”

대장님…?
대장님.
대장님…  보여요. 안 들려요.
근데 여전히 너무 아파요 대장님.

“실험번호 257-3. 모든 감각을 완전히 상실했을 때.”

대장 님
대 장 님
대 장 님
대 장 님
대… 장…

…….

“실험번호 299. 가임기 여성의 자궁이 그분의 힘을 직접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대한 고찰.”

아.

아아.

아아아.

아.

기계처럼 대장님이란 단어를 필사적으로 되뇌던 셰이의 사고가 멈춰버렸다.

**


셰이는 극도의 공포심을 보였다. 내가 다가가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카야! 잡아!”

“예!”

믿음직하고 용맹한 셰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대체 뭘 경험한 것일까.

상상조차  갔다.

1구역에서 정신붕괴로 죽을 위기에까지 갔던 때도 저 정도는 아니었다. 심지어 지금은 그때보다도 심신이 단련된 상태였다.

카야도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는데, 셰이의 상태가 너무 심각해서 그런지 정신이 바짝  거 같았다. 그나마 카야의 손길엔 저항 정도가 약했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카야 멘탈리티 –4]
[유진 멘탈리티 –5]
[일루미나 멘탈리티 –5]

셰이의 발작이 발동됐다. 처참할 정도로 망가진 셰이의 모습은  부정적 특징이 아니더라도, 우리들의 멘탈을 박살내기에 충분했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왜… 대체 뭘 경험했기에 날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거야…?’

눈물이 흘렀다. 거슬려서 손등으로 훔쳤는데 손등이 붉었다. 피눈물이었다.

“호오. 내 시선을 받고도 곧바로 붕괴하지 않고 버티다니, 대단한정신력이군.”

“다물어.”

“손을 처치한 용사대답군. 한땐 손을 비웃었지만, 직접 상대해보니 보통 어중이떠중이 불신자들은 아니군. 인정하지.”

“입 싸물라 했어.”


분노가 차올랐다.

순위로만 따지면 이번이 아마 1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너무 화가 나서 온몸이 저릿저릿했다.

[공포의 눈]
체력 : 137/173

1초에 3번 이상 뛰는  같은 심장 때문에 숨이 절로 가빠졌다. 계속 심호흡을 했다. 너무 흥분하다간 공격을 망칠  같았기 때문이었다.

‘제길….’

흥분이 가라앉기는커녕 더욱 커져갔다. 소중한 동료가, 사랑하는 여자가… 항상 1열에 서는 탱커라서 가뜩이나 공격도 제일 많이 받아내는 셰이가… 어떤 고통을 받더라도 끝내는 웃으며 일어나고 버텼던 셰이가…!

‘그래… 차라리 분노에 몸을 맡기자.’

어정쩡하게 휘두르니, 단숨에 저 눈깔을 터뜨려버린다는 마음가짐으로!!!

“뒤져-----!!!!!”

[대가리 분쇄]
[압도적인 일격!]
[유진이 공포의 눈에게 45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92/173]
[용사들의 암담한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걷어냅니다.]
[셰이 멘탈리티 +1]
[카야 멘탈리티 +4]
[유진 멘탈리티 +5]
[일루미나 멘탈리티 +4]

“크윽, 감히…!”

도끼에 묻은 피를 눈깔새끼에게 흩뿌렸다. 좋아하지도 않았다. 들뜨지도 않았다. 저놈을 족치지 않는 한, 이 분노는 풀리지 않을 것이다.

일루미나는 조각상처럼 얼어붙어 있었다. 셰이가 자기 대신 공격을 맞고  이후, 계속 저랬다. 아니, 수도꼭지가 고장 난 것 마냥 눈물이 줄줄 새고 있으니 그건 다른가.

[일루미나가 턴을 넘깁니다.]

어차피 2중첩 습격의 선율을 유지 중이었다. 조금 정도는 가만히 놔둬도 상관없을 것이다…라기 보단, 누굴 돌봐줄 여유가 없었다. 일루미나에게 다가간 순간, 그녀가 괜한 화풀이 대상이 될 것 같았다.

가까스로 구역질을 참았다.

셰이를 붙잡고 달래던 카야가 몸을 일으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카야는 나랑 일루미나를 보더니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윽고 셰이의 머리를 쓰다듬다 이마에 짧은 입맞춤을 한 카야는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내 멱살을 붙잡아 끌어내렸다.

“셰이가 도망갔다고, 겁에 질렸다고 바로 포기한 겁니까?”

“너도 봤잖아,  표정. 날 뭘로 착각했는진 몰라도 단순히 겁에  질렸다 수준이 아니었어. 억지로 다가갔다간 그녀에게 악영향을….”

“셰이는 내게 안겨있으면서도 대장님을 중얼거렸습니다!”

“…!”

“필사적으로 견딘 겁니다! 또 하나의 깊은 상처가 생긴 겁니다! 그 정도도 예상 못하는 겁니까? 셰이가 누굴 가장 의지하며 그 고통을 감내한 건지?”

카야가 거칠게 멱살을 놓았다. 잔기침이 나왔다. 그녀는 철퇴를 들어 눈깔에게 겨누었다. 기세가 흉흉했다.

“셰이를 저렇게 만든 저 괴물을 으깨버릴 겁니다. 그리고 대장. 당신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셰이를 구원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카야의 철퇴가 눈깔새끼를 제대로 후리는 것을 보며, 여전히 내게서 물러나려는 셰이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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