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화 〉2구역(25)
압도적 존재감.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
신체를 짓누르는 무형의 기운. 뇌를 헤집고 쑤시는 수많은 파편화된 정보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뇌가 실시간으로 망가지는 기분.
A가 A로 안 보이고, B가 B로 안 보이고, C가 ㅍ□□■….
「■■」
귓가에, 아니면 뇌리에 한 단어인지 한 글자인지 한 문장인지 모를 무언가가 계속 반복되었다.
「■■」
■■…? ■■가 뭔데…?
「■■」
아. 아아. 그거… 그거?
「■■」
아냐.
「■■」
아니라고.
「■■」
꺼지라고.
「■■」
아니야….
「■■」
아냐.
「■■」
…….
「■■」
….
「■■」「■■」「■■」「■■」「■■」「■■」「■■」「■■」「■■」「■■」「■■」「■■」「■■」「■■」「■■」「■■」「■■」「■■」
씨발….
「■■」「■■」「■■」「■■」「■■」「■■」「■■」「■■」「■■」「■■」「■■」「■■」「■■」「■■」「■■」「■■」「■■」「■■」「■■」「■■」「■■」「■■」「■■」「■■」「■■」「■■」「■■」「■■」「■■」「■■」「■■」「■■」「■■」「■■」「■■」「■■」「■■」「■■」「■■」「■■」「■■」「■■」
「■■」「■■」「■■」「■■」
씨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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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 개소리 집어쳐!!!
**
[경외의 시선]
[가장 기나긴 공포의 편린을 목도한 용사들의 정신이 뒤틀립니다.]
[용사들의 멘탈리티에 악영향을 끼칩니다.]
[셰이 멘탈리티 –24]
[카야 멘탈리티 –19]
[유진 멘탈리티 –23]
[일루미나 멘탈리티 –26]
[공포의 눈이 셰이에게 0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8/24]
[공포의 눈이 카야에게 1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5/20]
[공포의 눈이 유진에게 1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6/20]
[공포의 눈이 셰이에게 3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5/24]
가까스로 저 덩어리에서 눈을 뗐다. 아니, 내가 뗀건가? 모르겠다. 저것을 눈에 담은 그 순간부터 필름이 끊긴 것처럼 기억이 통째로 날아갔다. 덩어리는 없어져있었지만 우스꽝스런 자세는 그대로였고 세상이 깨진 유리처럼 조각나보였다. 엄청난 멀미가 발생했다. 엄청 빨리 돌아가는 믹서기에 탑승한 기분이었다. 구토감이 치솟았다.
‘씨발씨발씨발씨발.’
악취 나는 토사물과 함께 피를 한가득 토해냈다. 어질어질했다. 또 구토감이 치솟았다. 하지만 추가로 떠오르는 메시지가 구토감을 쏙 들어가게 했다.
[셰이의 멘탈리티가 –100을 초과했습니다.]
[공포가셰이를 잠식합니다.]
[셰이가 공포의 잠식에 저항합니다.]
“아.”
내 시야는 아직 깨진 유리창 같았고, 그래서 엎드려있는 셰이 또한 여러 조각으로 깨져보였다. 근데 그게 마치 셰이의 현재 상태인 것처럼 보여 굉장히 불안했다.
저번 두 번의 잠식이 있었으니, 이번에도 잠식당한다면 세 번째.
각성과 잠식도 결국은 확률싸움이었기에, 언제 각성해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이번엔 내심 포기했다. 그녀의 멘탈리티가 단시간에 너무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셰이가 잠식당하는 건 거의 확정된 거고, 적어도 후유증이라도 덜 남기를 기도하고있었다.
‘아. 일루미나도 잠식 뜨겠네….’
과연 무슨 잠식이 뜰지, 저번처럼 무기력 같은 게 뜨면 안 될 텐데….
그 짧은 시간에도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부디, 이 이상 고통받지 않기를.
부디, 다시 일어날 수만 있기를.
어떻게든 나랑 카야 둘이서 조지고 귀환할 테니까, 완전히 붕괴하지만 않기를. 그렇게만 버텨준다면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치유될 때까지 함께 있어줄 테니까, 보살펴줄 테니까, 사랑해줄 테니까….
극심한 두통과 구토감을 참고 간절히 기도하고 기도했다.
그때, 메시지가 떴다.
눈을꼭 감고, 연쇄 잠식에 대비했다.
하지만…….
[셰이가 저항에 성공합니다.]
어?
어……?
내가, 지금… 잘못 본 건가?
“난… 결코….”
[잠식을시도한 공포를 물리친 셰이가 각성합니다.]
“쓰러지지… 않아….”
[셰이가 정신이상 ‘회광반조’에 걸립니다.]
“지켜야 할 것이… 있는 한…!”
[극한의 고통과 외압을 오로지 의지 하나로 초월하여 ‘회광반조’ 상태가 되었습니다.]
[‘회광반조’ 상태는 3라운드 동안 지속됩니다.]
[지속시간 동안 멘탈리티가 변동하지 않습니다.]
[걸려있던 모든 디버프가 해제됩니다.]
[공격력이 20% 증가합니다.]
[속도가3 증가합니다.]
[명중률과 치명타율이 상승합니다.]
[지속시간이 끝나면 전투불능상태에 빠집니다. 이는 해제할 수 없습니다.]
[전투불능상태에서는 방어력이 50% 감소하며, 멘탈리티 감소율이 100% 증가합니다.]
[사경에 들어서거나 구역 보스를 죽이면 해제됩니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희미한, 하지만 눈을 뗄 수 없는은빛 광채에 둘러싸인 셰이가 어느새일어나서 클레이모어를 들고 눈깔괴물을 겨누고 있었다.
회광반조.
죽기 직전에 잠시 왕성해지는 상태를 뜻하는 단어이자, 지금껏 더 롱 테러에선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새로운 각성 상태였다.
단어 뜻 그대로, 셰이에게선 불과 1분 전까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평상시보다도 더 굳건하고, 날카롭고, 위압적인 기세를 뿜으며 좆같은 눈깔괴물의 기운을 물리치고 있었다.
‘극한의 고통과 외압을 오로지 의지 하나로 초월하여라니… 셰이….’
셰이 주위의 은빛 광채가 꼭 그녀의 정신력을 불태워서 나오는 빛처럼 보였다.
저 빛이꺼지기 전에.
그녀의 정신이 더 불타기 전에.
“셰이! 카야!”
“예!”
가장 처참하게 쓰러졌지만, 그럼에도 다시 일어나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셰이에게 이끌린 나와 동료들의 전투력은 단순히 수치로보이는 것 이상으로 치솟았다.
[정의의 심판]
[압도적인 일격!]
[셰이가 공포의 눈에게 35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21/173]
[공포를 압도하는 일격에 용사들이 공포를 이겨냅니다.]
[카야 멘탈리티 +5]
[유진 멘탈리티 +6]
[일루미나 멘탈리티 +5]
[공포의 눈이 심판에 저항합니다.]
[공포의 눈이 상태이상 ‘기절’에 저항합니다.]
[공포의 눈에게 심판의 낙인이 새겨집니다.]
[낙인은 3턴간 유지됩니다.]
속도가 빨라진 셰이의 클레이모어가 눈깔괴물의 눈깔을 무자비하게 후벼팠다.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카야가 공포의 눈에게 18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3/173]
[셰이의 체력이 3 회복됩니다.]
[남은 체력 21/24]
[카야의 체력이 1 회복됩니다.]
[남은 체력 16/20]
[전투수녀의 서원 효과가 사라집니다.]
거기에 카야가 셰이가 쑤신 곳을 철퇴로 후려치기까지… 눈깔새끼는 단숨에 빈사 상태가 되었다.
“이럴 수는, 이럴 수는 없는 법이다! 정신력이 극에 달한 극소수의 용사들이 그분의힘을 이겨낸다고는 하지만, 결코, 결코 저런 식으로는…!”
“아가리 닥쳐 병신새끼야!”
낙인의 지속시간은 끝났다. 하지만 눈깔새끼의 남은 체력은 고작 3. 용기의 선율 버프를 두른 상황에서미스를 띄우지 않는 한 못 죽일 리는 없을 것이다.
만일셰이가 잠식에 걸렸다면, 그 여파로 일루미나도 잠식에 걸렸을 것이고 어떤 변수가 전투를 망칠지 몰랐겠지만… 셰이가 각성해버리는 바람에 눈깔괴물새끼의 바람은 초장부터 분쇄됐다.
“입 터는 새끼는 그냥 뒤지면 되는거야!!!”
“그럴 수는, 이럴 수는 없는 법이다!”
퍼억-!
[대가리 분쇄]
[유진이 공포의 눈에게 16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3/173]
[공포의 눈이 죽었습니다.]
“크르륵, 가장 기나긴 공포시여…!”
눈깔새끼, 공포의 눈의 눈이 구역질나는체액을 흩뿌리며 비산했다.
피할 힘도 없어서 상당히 맞고 말았지만, 이어지는 메시지를 보니 그딴 건 정말 사소한 일이 되었다.
[더 롱 테러 최고난도 ‘가장 기나긴 공포’의 던전 제 2구역을 클리어했습니다.]
[용사대 HAT는 원하는 경우, 2구역을 거치지 않고 바로 3구역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1구역 보스, 공포의 손을 처치하고 떴던 메시지가 다시 한 번 뜨자 온 몸에 힘이 쫙 빠졌지만 동시에 영혼 깊숙한 곳에서 끌어오른 무언가가 환호성이 되어 터져나왔다.
“씨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알-----!!!”
깼다, 깼어!
이번에도 어떻게 좆되나 싶었는데 깼다고 씨발!!!
털썩-
“셰이이이!!!”
“셰이!! 대, 대장님! 셰이가! 셰이가-!!”
“지금 당장 무기랑 짐 다 챙겨! 바로 귀환하고 수도원부터 간다!”
내 승리의 포효는 금세 끊겼다. 지속시간이 끝난 건 아니지만 보스가 죽었기에 셰이의회광반조가 곧바로 풀려버렸고, 곧 전투불능상태에 빠져 쓰러졌기 때문이었다. 우린 기뻐할 새도 없이 다급하게 짐을 챙기고 세일럼으로 귀환하기로 했다.
‘그래도… 1구역 끝나고 셰이랑 카야 둘 다 죽기 직전까지 몰렸던 거에비하면, 많이 나아진 거겠지?’
보상이랑 레벨업 등은 나중에.
지금은 셰이를 치유하는 게 우선이었다.
“세일럼으로!”
**
“눈이 당했다.”
“믿을 수 없군.”
“혹시 그분께선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나.”
“없었다. 그것보다 저 용사들은.”
“다시 올 것이다. 무조건.”
“그러겠지. 대비를 해야 하지 않겠나.”
“누가 나설지는 그분께서 결정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전까지는….”
“우선 그분께 직접 묻도록 하지. 그분께선 모든 것을 내다보시고 헤아리실 테니.”
“가장 기나긴 공포를 위해.”
“가장 기나긴 공포를 위해.”
**
“티티.”
“왜.”
“힘을 함부로 주지 말라고 한 건 티티 아니었어?”
“그랬지.”
“근데?”
“안 그랬으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갔을지도 몰라서. 그리고 내가 주는 힘을 최고로 잘 받아들이는 상태이기도 했고.”
“대가는? 꽤 많이 치른 거 아냐?”
“생각보다 많이 치른 건 아냐. 그 아이의 의지가 워낙강력해서 살짝 떠밀어준 수준이지. 물론 안 밀어줬다면 끝이 안 보이는 내리막길로 굴러떨어질 것 같아서 밀어준 거긴 하지만.”
“…그 녀석이라면, 우리의 지나친 개입은 눈치 챘을지도 몰라.”
“과한 걱정이야. 그 정도까진 아닐 거야.”
“칫, 어째 저번이랑 반대가 된 거 같네.”
라엘라와 유스티티아는 한동안 말없이 구슬을 바라봤다. 구슬엔 녹색 빛에 휩싸인 성전사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저 아이들은 저렇게 고통받았으면서도 포기하지않고 앞으로 더 깊은곳으로 들어갈 거고, 그만큼 더 힘들어지겠지. 우리의 영향력은 더 약해질 거고.”
“응.”
“전까지는 그래도 일말의 기대감이 조금 섞여있는 반신반의였어. 하지만 이번에도 그놈의 하수인을 물리치는 걸 보고, 조금은 마음이 바뀌었다고 해야 하나. 어쩌면, 저 아이들이 우리가 해내지 못했던 걸 해낼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더 커졌어. 처음은 우연이나 행운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두 번은 아니야. 둘은, 셋을 내포하니까.”
“….”
“조만간, 날 잡아보자.”
“설마, 티티. 너…?”
“그래.”
유스티티아가 구슬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왕 관심 가지고 눈여겨본 거, 언제 한 번 강림해봐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