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6화 〉친구(1) (166/218)



〈 166화 〉친구(1)

“네? 아르가요?”

“아르에게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아르?”

내 반응을 살피던 동료들이 제각기 관심을 표했다. 걱정과 의문이 섞여있었다.

“주인장. 혹시 이 쪽지를 받은  언젭니까?”

“어제 밤이었나.”

“어제 밤? 그럼 혹시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거라는지에 대한언질은 없었습니까?”

“거기까진 모르겠군. 그쪽 일행이방에 있나 물어서 내가 당분간 자리 비울 일이 생겨서 지금은 없다고 말했었지. 그러더니 다급하게 나한테 쪽지로 쓸 작은 종이가 없냐고 하더니 뭔가를 휘갈기고는 곧바로 뛰쳐나가더군. 이게 전부야.”

“…고맙습니다.”

도와줘라는 단  단어. 어제 밤. 굉장히 다급한 글씨와 태도. 정황상 어디론가 도망쳤을 것 같은 여관주인의 증언.

“일단  이대로 아르를 찾아보려 하는데, 너희들은? 참고로 명령하는  아냐.”

“무슨 말씀 하시는 겁니까. 당연히 찾아야지 않겠습니까.”

“맞아요. 비록 그렇게 헤어지긴 했어도….”

“으음. 나도 혼자 있어 봐야 심심하기만 할 뿐이니까.  감이 도움이  수도 있고.”

“…음, 그래. 그럼 무기를 제외한 다른 짐들은 방에 놓고 다시 내려오는 걸로.”

마차로 장기간 이동하는 건 생각 이상으로 피곤한 일이었다. 그래서 여독이 풀리진 않았지만, 불쌍한 늑대소녀를 외면할 수 없었다. 괜히  용사대에 끌어들여 모르고 있었던 그녀의 종족의 본성을 깨워버렸다는 죄책감도 있었고 그 이후에 그녀에게 일방적으로 큰 은혜를 입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2구역에 진입하기 전, 괜찮은 음유시인을 못 찾아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있던 그 때. 아르는 홀연히 나타나 일루미나를 툭 던져놓고 다시 홀연히 사라졌었다. 보답은 딱히 바라는  없다는 듯 아주 쿨하고 시크하게 말이다. 결과적으로 그녀가 주워온 음유시인은 한 번 트러블이 있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2구역을 돌파하는데 큰 공로를 세웠으니, 그 은혜는  배로 뻥 뛴 셈이었다.

우린 지금 옷차림 그대로 다시여관을 나왔다. 그리고 아르의 집에 직행했다.

“아르가 집에 있을까요?”

“아니, 그럴 확률은 낮을 거 같아. 말을 들어보면 굉장히 자존심이 강한 아이 같은데, 헨드릭한테 급박하게 도움을 요청하고 다시 도망쳤다는 걸 봐서는 이미 집은 안전한 장소가 아니라는 거였겠지?”

“그래도 들를 필요는 있습니다. 현재아르가 어디에 있는지, 무슨 상황에 처했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뭐라도 단서를 얻어야 하니까.”

“그건 그래.”

내 생각도 같았다. 여기에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하다못해 유선 전화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라서 뭔가 알아내려면 직접 발로 뛰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르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외강내유형의 상처 많은 늑대인간 소녀라는 것과, 그녀의 집이 굉장히 허름하다는 것 정도였다.

‘아무리 같이 지낸 시간이 짧았다지만, 알고 있는 게 너무 없었네.’

기댈  하나 없이 이 험난한도시에서 꾸역꾸역 버티며 살아온 소녀가, 무슨 심정으로 내게 도움을 요청했을지 상상이 안 갔다. 여관에 찾아갔는데 내가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또 어땠을지. 다급하게 쪽지를 남기고 다시 뛰쳐나갔을 때의 모습은  어땠을지.

내게 아르는 동료였던 이들 중 하나였지만, 아르에게 난 그 이상의 존재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맙소사.”

“이 정도면,  이상 집이라고 말하기는….”

우리들의 주력으로 아르의 집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하지만 우릴 반긴 건 집이라고 하기에 상당히 어폐가 있었던 하자 많은 건축물이 아닌, 쑥대밭이었다.

누군가 철저하게 뒤지고 파괴한 흔적이 가득했다.

“일단 여길 조사하자. 그래야 다음 목적지를 정하지.”

“예, 대장.”

우린 쓰레기 더미가 되어버린 아르의 집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아르의 집이라고 해봐야 굉장히 좁았기 때문에 더미도 그리 크진 않았으나 혹시 들쑤시다가 안쪽에 물건이 망가질 수 있었기에 신중히 걷어냈다.

우린 곧 아르가 사용했던 것들…로 추정되는 물건들을 몇  발굴할 수 있었다.

“다 모으긴 했는데… 이걸로 뭘 알아낼 수 있을까요?”

“으음….”

막막했다. 정말 잡동사니들밖에 없었다. 낡은 포크라든지, 이가 빠진 접시라든지, 걸레인줄 알았는데 펼쳐보니 옷이었다든지… 절로 숙연해지는 것들밖에 없었다.

‘수색견이나 탐지견 같은 거 보면 물건에 배어있는 냄새 맡게 한 다음에 추적하던데,안 되겠지?’

내가 생각하고도 어처구니없었다. 일루미나에게 실례였다.

“어쩌면 여기가 무너지면서 단서가 망가졌을 수도 있겠네.”

“하지만 이곳을 제외한다면, 딱히 단서를 얻을  있는 곳도 없습니다.”

“아르는… 딱히 친하게 지낸 사람은 없었던 걸로 알아요. 자길 이용하고 등쳐먹고 어떻게든자빠뜨려보겠다는 이들밖에 없어서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 적이 있었으니까요.”

“하아… 아르 이 녀석아… 아무리 급해도 뭐 때문에 그런 건지, 어디에 있는지, 적어도 중 하나라는 알려줘야 도와주든 말든 할 거 아니냐….”

그만큼 급박했다는 거겠지만 도와주려는 입장에선 상당히 답답했다. 특히 여독도 풀지 못하고 곧장 움직이다보니 육체에 피로도 상당히 쌓여있기도 했다.

“가만…?”

“어?”

“가만 있어봐.”

 상황을 어찌 타개해야 할지 머리를 쥐어뜯고있을 때, 일루미나가 눈을 번뜩이더니 갑자기 땅을 파기 시작했다.

“일루미나. 지금 뭐하는….”

“뭔진 모르지만, 읏챠. 일단 찾긴 찾았네.”

‘아니, 대체 어떻게 찾은 거야?’

내 경악은 뒤로 하고, 흙먼지를 털어낸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건 다름 아닌 낡은 주머니였다. 그리고 그 주머니는 낯이 익었다.

“대장님. 그거!”

“어. 내가 아르한테 줬던 주머니야. 금화  넣어뒀었지. 일루미나! 빨리 열어봐.”

일루미나가 다른 손으로 조심스럽게 주머니를 개봉한 뒤 탈탈 털었다. 주머니 안쪽에서 수십 개의 금화가 쏟아졌다.

“이 녀석, 내가 준 거 하나도 안 썼네. 고맙다고, 잘 쓰겠다고 말해놓고서….”

“일루미나. 금화가 끝입니까? 더 없습니까?”

“응. 금화 말고 들어있는  없, 잠깐만.”

일루미나는 주머니의 안팎을 뒤집었다. 주머니 안쪽엔 굉장히 작은 글씨가 빽빽하게 적혀있었다.

“글자?”

“같은 글씨체인 거 같긴 해요.”

“어서 읽어봐!”

“헨드릭, 너라면 발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여기에 적어. 사실 종이 살 여력이 없기도 하지만.”

“아니, 결국 발견한  맞긴 한데….”

뒷말을 들으니  이렇게 짠내가….

「벌써 공간이… 난 들킨 것 같아. 쫓기고 있어. 여길 아예 벗어나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그건 더 위험할 것 같았어. 여긴 복잡하니까. 숨을 곳도 많을 거 같아서. 근데 이젠 한계야. 너한테 피해를 끼치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의지할 데가, 너 밖에…」

글은 거기서 끝이었다. 문맥상 여관에 들르기 전에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엔 꽝은 아니었다. 단서가 하나 있었다.

“들켰다니. 그거 맞지?”

“예.”

늑대인간, 인간을 잔인하게 사냥하는 포식자. 인간들이 적대하는저주받을 종족.

아르는 그 종족의 피를 절반 물려받은 늑대인간 혼혈이었고, 그녀가 들켜서 도망가야 하는 건 이 사실 외에는 없으리라.

“아무리 그래도 신전 쪽으로 도망가진 않았을 거야.”

“빈민가에 숨어들었을까요?”

“지금으로선 그랬을 확률이 높아보여. 넓기도 하고 지저분하기도 하고 복잡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세일럼의 빈민가는 상당히 넓습니다. 최대한 빨리 수색하려면 흩어져야 할 텐데,아르를 쫓고 있는 자들을 홀로 상대하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맞는 말이야.”

결단을 내려야했다. 마치 던전에서 갈림길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위험성을 안고 스피드를 중시할 것인지 아니면 일행의 안전성을 중시할 것인지 빨리 선택해야했다.

“둘둘로 나누자. 나랑 카야, 셰이랑 일루미나. 이렇게 흩어지자. 나는 서쪽을 맡을테니 셰이는 남쪽을 맡아줘. 아르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너희들 안전이라는 것도 명심하고.”

“네, 대장님. 명심할게요.”

내가 택한 건 절충안이었다. 아르를 돕고 싶은 건 맞지만 내 동료들의 안전보다 우선시할 수는없었다.

“가자, 카야.”

“예, 대장.”

그래도 최선을 다해 찾으리라.

땅을 박차고 달려나가자 흙먼지가 팍 피어올랐다. 아르의 집이었던 곳은 그들이 사라지자 다시 폐허가 되었다.

**

‘억울해. 억울해. 너무 억울해.’

아르는 울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여유도, 그럴 기분도 아니었다. 가뜩이나 배도 곯은 상태에서 오랜 시간 쫓기다 보니 체력이 방전된 상태였다.

‘그저,  권리를 주장했을 뿐인데….’

아르는 스스로가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비록 헨드릭 및 그의 동료들과 어울렸던 시간은 짧았지만, 그 시간이 있었기에 살아가는 이유를 찾을수 있었고 자존감을 끌어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더 이상 호구처럼 굴지 않았다.  전까진 그냥 어떻게든 늑대인간(혼혈)인 것을 들키지 않고 생존 그 자체에 중점을 뒀다면, 지금은 정식 용사로 등록할  없겠지만 한때나마 진짜 용사들과 함께했던 동료 ‘아르’로서 살아가기로  것이다.

여전히 다른 이들과 친하게 지내진 않아도 조금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당연히 감 좋고 실력도 좋은 그녀가  실력을 더 드러내자 의뢰달성률도 높아졌고, 당연히 떨어지는 보상도 자연스레 높아졌다.

문제는 거기서 발생했다.

헨드릭과 헤어진 이후부터 순차적으로 마음의 준비를 하던 아르는 이전에떼먹힌 건 불문으로 할 테니 지금부터는 제 몫을 받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껏 그녀와 의뢰를 같이하던(이용하던)이들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아르는 반항했지만 쪽수는 이길 수 없었다. ‘인간으로서는’.

그때처럼 본능을 일깨워 변신한다면, 용사도 못된 찌끄레기들이 몇 명이 달려들어도 자신 있었지만… 그럼 그녀의 삶은 거기서 끝이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인적 없는 산속 깊은 곳에 평생 숨어 지내야하겠지.

그건 싫었다. 그래서도망쳤다. 필사적으로 발버둥쳐서 가까스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하필, 정말 재수가 없게도 아르를 쫓던 이들 중 한 명이 아르의 저항에 꽤 심한 부상을 입어 치유 수녀를 찾아갔는데 그 수녀가 부상당한 부위에서 꺼림칙한 기운이 느껴진다며 동행을 요구한 것이다.

 수녀는 상당히예민한 편이었고, 일반 사람이라면 절대 구분할 수 없는 희미한 기운을 계속 포착해냈다. 아르를 쫓던 이들은처음엔 이렇게까지 쫓아가야하나 싶었지만, 그녀한테 다친 이들도 있었고 이미 일이 이렇게 된 거 그녀에게 본때를 보여 잘 이용해먹기 위해 끝까지 추적하기로 했다.

아르만큼 빠르고 능숙하게 움직이진 못했지만 그들은 수가 많았고, 수녀의 추적은 느리지만 확실했다. 가까스로 떨쳐낸 것도 벌써 4번째. 아르는 이번에 따라잡히면 끝일 거라 직감했다.

‘그래… 괜히 나 때문에 피해보는 것보다는, 차라리 엇갈린  나아.’

최후의 휴식이 될지도 모를 잠깐의 숨돌림 후, 여력이 남아있을 때 최대한 거리를 벌리기 위해 아르가 개구멍을 막 빠져나간 그 때였다.

“여기 있었네.”

“…!”

“한참 찾았잖아.”

등줄기가 찌릿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