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73화 〉3구역(2) (173/218)



〈 173화 〉3구역(2)

‘씨발씨발씨발…!’

인정할  없었다.

물론 어렸을  내가 친모를 존나 두려워했던 건 팩트였다. 지금 내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강해져서 썅년썅년 거리는 거지, 그전에는 떠올리는 거 자체가 금기였다.

그래도 그 망할 집구석을 탈출하면서, 그리고 이곳에 오면서 그 그림자에서 많이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그랬는데.

그때 느꼈던 감정들이.

그 이면에숨어있던 악의가.

내가 미처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던, 내면 깊숙한 곳에 묻혀있던 누적된 죽음의 공포가 해일처럼 쏟아졌다.

지독한 폭력이었다.

‘아. 아. 아.’

내가 지금까지 저렇게 많이 죽을 뻔했다고?

그래서 지금도 그렇게 죽는다고?

여기서 살아나가도 머지않아 죽을 거라고?

어쩌면 내 뇌는 매우 충격적인 순간의 기억들을 일부러 휘발시켰는지도 몰랐다. 안 그랬다면 진즉 못 버티고 죽었거나, 자살하거나, 최선이 어느 정신병동에 실려가는 게 아니었을까.

어쩐지 사경을 헤매도 셰이와는 다르게 금방 회복할 수 있었던 건, 이미 60번 넘게 헤매서가 아니었을까.

모르겠다. 무서웠다. 내가 봤던 게 거짓이 얼마나 포함되어있을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난 이미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뇌가 본능으로 차단했던 기억들이 이성을차리려는  의도를 짓눌렀다.

어딜 살아남을라고 그리 추하게 발버둥치냐고.

죽음을 재촉한 건 너 자신이라고.

66번이나 사경을 헤맸으니, 진짜로 죽을 때도 됐다고.

날 지독하게 옥죄던, 제각기 다른 죽음의 가능성들이 내게 이만 포기하라고, 이만 눈을 감고 편해지라고 속삭였다.

‘아….’

어둠이라는 옷을 두른 죽음은 영원한 안식일지니.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았지만 눈을 뜨고 있다는 의식 자체는 유지하고 있었는데,  의식이 점점 허물어졌다.

이렇게 아등바등 버티는  의미가 있나. 너무 과한 욕심이 아니었을까. 몇몇 순간들을 빼면 태어나면서부터 계속 좆같았던 인생, 여기서 끝내도 되지 않을까….

지금까지 살아온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지 않을까. 대체 내가 뭘 잘못했기에. 지쳤다. 쉬고 싶다. 포기하면 편해. 눈을 감아. 생각을 멈춰. 편안히. 안식을 맞이해. 죽으면, 죽을 위험은 더 이상 안 겪어도 되니까……….

모든 걸 내려놓고 진짜로 눈을 감으려는 그때, 들릴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운명.

-  운명은 곧 대장의 운명. 언제나 어디서나 대장과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맹세.


- 제 목표는던전의 말살이에요. 대장님과 함께할 거예요.


소원.

- 나만의, 그리고 우리만의 전무후무한 이야기를 엮고 싶어.

우정.

- 친구…헨드릭은 친구야. 내 첫 친구.

약속.


반드시 무사히 돌아오겠다고 약속해주세요. 모든 걸 잘 끝내면, 그때 저와 아이를 보러 와주세요. 나중에 태어날 제 아이에게, 당신이 골라준 이름을 불러주세요. 그렇게 약속해요.


66번의 죽음을 넘어서며 만들어낸 소중한 인연들로부터 비롯된 기억들이 들고 일어섰다.  작고 소중한 기억들은 수많은 사경을 헤맨 공포에게 중과부적으로 눌리고 있었다. 하지만 찬란히 빛나는 그 기억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살아라.

살아서 이 기억들을  키우고 싶지 않느냐.

내 목숨은, 내 존재는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운명에 진하게 엮인 이들을 내버려둘 셈이냐.

살아라. 버텨라. 살아라. 버텨라. 살아라. 버텨라.

나를 믿고 버티고 있을 동료들에게 믿음을 보여라.

잊지 마라.

나는.
카야는.
셰이는.
일루미나는.

공포에 맞서는 용사들이다.

아직 진정한 공포의 모습도 목도하지 못했는데, 진짜 죽는 것도 아니고 죽을 뻔했던 기억과 감정 때문에 두려워하고 죽으려는 게 말이 되나.

이 이상 시간을 끌면더 우스워질 뿐이다.

눈을 떠라.

그리고 동료들의 등대가 되어라.

여기서 영원히 멈출 것이 아니라면.

‘내가, 내가쫄았다고? 내가 포기하려 했다고? 동료들한테는 정신 차리라고 그렇게 말해놓고, 내가 정신을 놓으려 했다고? 씨발 쪽팔리게!!!’

“이 씨발 관음증변태공포무새새끼가!!!”


욕과 함께 눈을 떴다.


**


[죽음의 공포에 맞닥뜨렸습니다.]
[수많은 죽음을 경험한 용사들의 의지가 꺾이고 신체가 무너집니다.]
[셰이 멘탈리티 -44]
[카야 멘탈리티 -36]
[유진 멘탈리티 -50]
[일루미나 멘탈리티 -55]

[동료용사들의 존재로 인해 죽음의 공포를 극복했습니다.]
[관계도에 비례해 유진의 멘탈리티가 회복됩니다.]
[카야 – 6]
[유진 멘탈리티 +12]
[셰이 – 5]
[유진 멘탈리티 +10]
[일루미나  4]
[유진 멘탈리티 +8]


“미친….”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자마자  반긴 건 온몸이 뒤틀리는 감각과 어마어마한 멘탈리티 데미지를 입었다는 좆같은 메시지였다. 하지만 그 다음 메시지에서 눈이 크게 뜨였다.

‘아니 여기서 관계도가 뜬다고?’

관계도는 사실상 잊고 지냈었다. 카야나 셰이의 긍정적 특징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과 동료들과의 사이가 그만큼 깊구나 정도만 알려주는 수치라고 추측했다.  처음 카야와 관계를 맺고 관계도 수치가 오픈될 때만 해도 ‘아 이거 뭔가 숨은 기능이 있겠지.’라고 생각했다가 드러나는 효과가 아무것도 없어서 내심 실망했었는데….

메시지를 읽고 상황을 파악하고 있자 여전히 깜깜했던 시야가 서서히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목소리가 사라졌던 순서대로 동료들의 모습이 보였다.

“라엘라님, 어리석은 딸이 길을 잘못 들지않게 굽어살펴주십시오.”

카야는 무릎을 꿇은 채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입술에서 피를 어찌나 흘렸는지 턱이랑 목, 그리고 갑옷이 붉게 물들어있었다.

“헨드릭… 유진이 부디 무사히 죽음을 이겨낼 수 있기를. 유진, 당신이라면 이겨낼  있을 겁니다. 누구도 도전하지 않는 길을 개척하는 당신이라면. 그런 당신을 따라 기꺼이 그 길을 따라가기로 결정한 이가 셋이나 있습니다. 유진. 당신은 우리들의 불빛입니다. 등대입니다. 당신을 끝까지 따라가고 싶습니다. 부디, 무사하기를. 이겨내기를. 그리고 언제나처럼 이끌어주기를.”

카야는 내가 바로 옆에 나타났는지도 모르고 기도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녀가 겪은 공포는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녀의 기도는 대부분 날 위한 것이었다. 가슴속에서 뭔가 울컥 올라올 것 같았다.

“…카야.”

“……유진!”

일어나려다 앞으로 고꾸라지려는 카야를 잽싸게 받아냈다. 그녀의 얼굴은 안도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자기가 무사해서가 아니라, 누가 봐도 내가 무사해서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카야를 걱정하면 되는 거지.’

“무사해서 다행이다, 카야.”

“무사하실  알았습니다, 대장… 으읍!”

입안에 카야의 피가 가득 찼다. 그녀의 입술이  아파 보이긴 하지만 참을 수 없었다.

[동료 용사가 대장의 존재로 인해 죽음의 공포를 극복했습니다.]
[관계도에 비례해 동료 용사의 멘탈리티가 회복됩니다.]
[카야 – 6]
[카야 멘탈리티 +17]

카야와 격한 재회의 키스를 나누던 도중 그녀의 멘탈리티 또한 회복되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셰이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녀는 아예 클레이모어를 바닥에 박고 양손으로 짚은 자세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표정만 보면 아주 편안히 자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모습이 자못 오연하면서도 동시에 성스러워보여서 입술을 진작 뗐음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

“…헤헤.”

“셰이!”

“다행, 이에요.”

그러나 그 분위기는 헤픈 웃음에 박살났다. 황금빛 눈동자를 드러내 우릴 바라본 셰이가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동료 용사가 대장의 존재로 인해 죽음의 공포를 극복했습니다.]
[관계도에 비례해 동료 용사의 멘탈리티가 회복됩니다.]
[셰이 – 5]
[셰이 멘탈리티 +18]


분위기가 박살나면 어떤가. 그녀가 무사한 게 중요했다. 우린 셰이를 얼싸안고 마구 키스를 퍼부었다. 2구역 보스 때 멘탈 공격을 세게 받은 셰이였기에 걱정했었는데,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 그녀의 정신은 한 층  굳건해진 모양이었다. 물론 공포 자체는 위력적이었는지 셰이의 얼굴이랑 목이 식은땀으로 한가득이긴 했지만… 아주  버텨냈다. 이제 문제는 일루미나였다.

‘패턴대로라면 지금쯤 일루미나가 짠 하고 나와야 하는데.’

죽음의 공포를 무사히 빠져나왔다는 것에 웃음을 짓고 있던 우리 셋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꿀꺽-

입이 바짝 말랐다. 메시지만 따지면 일루미나는 죽은 게 아니었다. 멘탈리티가 깎였음에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건, 아직도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뜻이리라.

“일루미나….”

일루미나가  있던 자리엔 그녀가 메고 있던 가방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믿자.’

나는 등불이니까. 내가 굳건하게  있으면 일루미나는 길을 헤매지 않을 테니까.

카야랑 셰이가 기도를 올리고 나 또한 간절하게 일루미나의 극복을 염원했다.

체감  약 30분 후.

우리의 염원은 이루어졌다.

털썩-

“일루미나!”
“일루미나 언니!!”

[동료용사가 죽음의 공포를 불완전하게 극복했습니다.]
[멘탈리티가 악화되지도 회복되지도 않습니다.]

반절 정도는.

일루미나는 패닉에 빠져서 자해라도 했는지 몸 곳곳이 깊게 파여있었고, 눈물과 땀, 그리고 배설물까지 지린 상태였다. 굉장히 처참한 꼴이었다. 우리는 이곳이 휴식처가 아니라는 것도 잊고 황급히 물과 수건을 꺼내 일루미나의 전신을 닦아내고 치료했다.

“아으….”

“일루미나! 정신이 들어?!”

“흐으, 으으….”

“대장님! 물  통  주세요!”

“수건도 부탁드립니다!”

“알았어!”

“아브브르르르르!”

“가만, 가만 있어요 일루미나 언니! 아야! 물지 마요!”

“아아아아으으…!”

“셰이! 더  누르십시오!”

“알았어요! 일루미나 언니, 미안해요!”

일루미나는 의식은 있는 것 같지만 우릴 못 알아봤다. 거기다 마구 발버둥쳐서 셰이가 억눌러야 했다.

죽음의 공포.

죽지 못해 살아가던 불쌍한 유년기와 수십 년 간의 평탄치 않았던 수녀 생활을 거친 카야. 지옥 같은 실험체 생활을 겪었던 셰이. 기억 못 하는 것까지 합쳐서 66번 죽을 뻔한 나.

우리에 비해 일루미나는 그런 경험이 없었고, 처음으로 겪어본 공포에 정신이 나가버린  아닐까 싶었다.

‘씨발, 3-0 바깥이네?’

와중에 우린 지금 3-0에서 3-1로 가는 통로 위에 서 있었다. 셰이가 고작 한 발자국 내디뎠을 뿐인데!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악의가 공포를 유발합니다.]
[셰이 멘탈리티 -0]
[카야 멘탈리티 –3]
[유진 멘탈리티 –5]
[일루미나 멘탈리티 –6]

[멘탈리티]
셰이 : -26
카야 : -26
유진 : -30
일루미나 : -67

‘와씨 지랄났네 지랄났어.’

3구역인 게 확 실감이 났다. 갑툭튀한 관계도 회복 보너스가 있었기에 저정도였다. 환장하는 것은, 우린 이제 3-0을 나섰다는 것이었다. 일루미나를 업고 가는 건 가능했지만 전투는커녕 의사소통도 제대로  되는 상태였다.

“대장.”

“카야.”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합니까?”

“….”

“명령을.”

나도 모르겠는데…?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솟아올랐다가 겨우 한숨으로 토해냈다.

“하….”

욕도 아니고 그저 세상에서 제일 깊은한숨이 절로 나오는 걸 보니… 역시 여긴 3구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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