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92화 〉가장 기나긴 공포(6) (192/218)



〈 192화 〉가장 기나긴 공포(6)


[멘탈리티]
셰이 : -76
카야 : -86
유진 : -112(응징의 분노)
일루미나 : -98

[체력]
셰이 : 23/41
카야 : 20/34
유진 : 9/28
일루미나 : 13/24

‘…이거 참.’

실제로 흐른 시간은 얼마  되겠지만 체감상으로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공포놈의 스킬 때문에 헤맸고, 또 스킬에서 깨어난 직후 몸 상태가 병신 같았으며 곧바로 잠식 저항까지 해야 했기에 동료들의 컨디션은 미처 살피지 못했었다.

턴당 체력 회복과 공격 적중 시 멘탈리티 회복이 붙어있는 활력의 선율이 적용되어 있으니 뭐가 문제냐 싶겠지만, 문제는 일루미나의 공격 스킬이 절현 말고는 전무하다는 것.

즉, 일루미나가 이번 턴에 절현을 하지 않는 한 공포의 시간 지속 효과 때문에 턴 종료 시 잠식 저항 상태에 빠지는 건 확정적이었다.

‘아니, 잠깐만. 절현해도 문제잖아? 절현 발동하는 순간 선율 효과가 사라지니까 절현으로 공격해도… 아니지, 절현은 무조건 치명타니까 치명타 멘탈리티 회복이 있었지! 그럼 당장은 잠식 저항은 피할 수 있을… 아, 근데 그럼 4치명타라 저놈 반사 데미지에 일루미나 체력이 거덜  텐데…?’

버프를 유지하거나 강화하면 일루미나의 멘탈리티가 당장 –100을 돌파.

절현을 발동하면 멘탈리티는 4치명타 회복 덕분에 당장은 모면할 수 있지만 일루미나의 체력이 거덜나고 체력 및 멘탈리티 회복 버프 비활성화.

만약 그녀가 각성하지 못하고 잠식당한다면?

도미노처럼 카야 또한 저항 상태에 빠질 것이고, 셰이 또한 매우 높은 확률로 저항 상태에 빠질  뻔했다. 설령 셰이의 멘탈리티가 운 좋게 –100의 문턱 앞에 멈춰선다 하더라도, 카야가 잠식에 빠지면 그것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내가 각성했다 해서 일루미나도 각성할 거라고 기대하는 건, 긍정적인  아니라 답이 없어서 생각을 포기하고 남은 게 기도밖에 없을 때가 아닐까.’

언제나 그랬듯 선택해야 했다.

현재를 위해 미래를 파는 도박에 배팅하느냐.
미래를 위해 현재를 크나큰 리스크에 맞닥뜨리는 도박에 배팅하느냐.

‘씨발, 답은 정해져 있지. 뒤를 생각할 여유가 어딨어.’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전투였고, 가뜩이나 생명을 불태우고 있었다. 어차피 잠식의 위험이 크다면 멘탈리티를 회복하는 버프를 유지하는 것보다는, 무조건 치명타가 뜬다는 보장이 없으니 공포새끼의 방어력을 깎고 저놈새끼의 다음 턴이 돌아오기 전에 데미지를 조금이라도 쑤셔넣는  좋다고 생각했다.

빨리 끝내야 좋고, 빨리 끝내야만 하고, 빨리끝날것이다.

어느 쪽으로든.


“일루미나.”

“…응, 헨드릭.”

겉모습만 따지면 여유 넘치는 누님 스타일의 일루미나는 어디에도 없었다. 겉으로 드러난 털은 윤기 다 죽었고 로브를 입었음에도 우월함이 채 가려지지 않던 그녀의 몸매는 놀랍도록 수척했다. 베이파를 들고 있는 원래 미려했던 손등은 비쩍 말라 핏줄이 도드라져 보였다.

그녀가 공포 속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들어보지 않아도 얼마나 많이 고생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마  꼴도 비슷하지 않을까.

거지 알파가 거지 델타에게, 아마도 그녀에게 있어서 최후의 전투 명령이 될지도 모르는 지시를 내렸다.

“끊자.”

“….”

“마지막이야.”

“…그렇겠지?”

“어.”

“못 끊는 게 아니라, 마지막으로 끊는 것이길 바라야겠지.”

덤덤하게 말하는 일루미나의 손등에 힘줄이 튀어나왔다. 현을 뜯는 것조차 힘겨워보였지만, ‘마지막’을 각오한 그녀의 손길은 거침없었다.

뜨드득-

[절현]
[음유시인이 절현을 각오합니다.]
[선율의 효과가 사라집니다.]
[직전 선율 : 활력의 선율]
[절현에 적중당한 괴물의 방어력이감소합니다.]


“엄마의 품처럼 아늑하고.”


드드득-


[치명적인 일격!]
[일루미나가 가장 기나긴 공포에게 26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23/300]
[절현-활력의 선율의 부과 효과로 인해 가장 기나긴 공포의 방어력이 3 감소합니다.]
[‘공포의 갑주’의 효과로 인해 일루미나의 체력이 4 감소합니다.]
[남은 체력 9/24]


일루미나의 절현을  건  번 안 되지만, 볼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런  있었다.

베이파의 현이 하나씩 끊어지며 내는 소리와 일루미나의 목소리가 교차하는 게 서글프면서도 아름다웠는데, 이번엔 유달리 그 낙차가 컸다.


“봄바람처럼 싱그럽고.”


[압도적 일격!]
[일루미나가 가장 기나긴 공포에게 23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00/300]
[절현-활력의 선율의 부과 효과로 인해 가장 기나긴 공포의 방어력이 3 감소합니다.]
[‘공포의 갑주’의 효과로 인해 일루미나의 체력이 4 감소합니다.]
[남은 체력 5/24]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활기찼던.”

[강력한 일격!]
[일루미나가 가장 기나긴 공포에게 28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공포의 갑주’의 효과로 인해 50을 초과하는 데미지를 입힐  없습니다.]
[일루미나가 가장 기나긴 공포에게 1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99/300]
[절현-활력의 선율의 부과 효과로 인해 가장 기나긴공포의 방어력이 3 감소합니다.]
[‘공포의 갑주’의 효과로 인해 일루미나의 체력이 4 감소합니다.]
[남은 체력 1/24]

“우리를 위해.”

[날카로운 일격!]
[일루미나가 가장 기나긴 공포에게 25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공포의 갑주’의 효과로 인해 50을 초과하는 데미지를 입힐 수 없습니다.]
[일루미나가 가장 기나긴 공포에게 0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99/300]
[절현-활력의 선율의 부과 효과로 인해 가장 기나긴 공포의 방어력이 3 감소합니다.]

[음유시인의 절현의 각오가 용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립니다.]
[셰이 멘탈리티 +15]
[카야 멘탈리티 +14]
[유진 멘탈리티 +0]
[일루미나 멘탈리티 +16]

[공포의 시간 8/12]
[모든 용사 멘탈리티–5]


“아….”

“일루미나!”

마침내 마지막 절현을 끝낸 일루미나가 풀썩 쓰러졌다. 피투성이였다. 기겁했다. 공격한 건 일루미나인데… 현을 직접 끊은 손가락뿐만이 아니라 온몸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로브를 황급히 젖혀보니 전신 곳곳에 베인 상처가 한가득이었다. 졸렬한 반사 데미지의 영향이었다.

‘씨발 그 와중에 마지막 타격은 데미지 안 박혔다고 반사도  받은 거야?  번째 타격은 1만 박혔는데도 박혔으니 그대로 반사뎀 다 받은 거고?’

무기 업그레이드 및 긍정적 특징인 ‘각오한 자’의 버프에 낙인 증폭까지 적용된 일루미나의 절현 데미지는 일품이었다. 102데미지에 12방깎이라는 미친 퍼포먼스를 뽐냈다. 비록 데미지는  제한 때문에 50데미지로 깎였지만, 놈의 체력도 두 자릿수로 떨어졌다.

‘셰이 50뎀, 카야 50뎀. 이론상 킬각.’

공포새끼의 다음 차례가 오기 전에 조질  있는 것도 이론상은 가능해진 것이다.

‘이론상 가능하면, 못할 것도 없지.’

운빨좆망겜을 하면서, 99%도 못 믿지만 1%를 믿을 때도 있는 법.

 일을 마치고 우리들의 손에 운명을 맡긴  가쁜 숨을 내뱉는 일루미나도, 그런 그녀를 부축하고 있는 나도, 제자리로 돌아가 철퇴를 굳게 쥐던 카야도.

우리의 시선은 셰이의 등을 향했다.

“…대장님.”

“어.”

셰이는 앞을 본 자세에서 입을 열었다. 꼿꼿이 클레이모어를 전방에 겨누고 서려는 듯 했지만 어깨와 등이 살짝 굽어있었고, 머리카락은 더욱 더 얇아졌으며 목소리는 상당히 쉬어있었다. 내가 지금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라면, 셰이는 꺼지기 직전의 모닥불 같았다. 불태웠던 생명력이 공포새끼의 수작 때문에 엉뚱한 곳에 소모된 것이다. 좆같은 공포 씨발새끼.

“저도, 이게 마지막으로 휘두르는거였으면 좋겠어요.”

“셰이.”

“클레이모어가 조금… 아니, 꽤 많이 무거워졌거든요. 은퇴할 때가 되었나봐요.”

“….”

아까 전보다 훨씬 숨막히는 기세로 우릴 압박하는 공포새끼 앞에서 셰이의 말은 너무나 여상해서, 장소와 상황만 아니었다면 정말로 한가롭게 은퇴 플랜을 짜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아니  그래 또. 플래그  꼽지 말라고.’

그간 여러  꺾어오긴 했지만, 지금은 진짜아닌데. 정말로 모든  불태우고 미련없이 떠나버릴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면서 말하면, 정말로 재가 되어 흩어질 것만 같아서.

“셰이 네 나이에 은퇴하긴 10년, 아니 30년은 이르지. 네 스승님이라는 분도 아직 정정하게 활동하고 계시는데, 어딜 벌써부터 내빼려고 하냐고 혼내시지 않을까.”

“그럴까요.”

목이 콱 막혔다.

너무나 위태로워 보여서. 정말로 마지막인 것처럼 보여서.

그럼에도 나는 그녀를 절대로 잃고 싶지 않았기에, 당초 목표가 모두 함께 살아서 귀환하는 것이었기에.

나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싶은 욕심쟁이니까… 그러니까 셰이가 이번 공격에 모든 걸 쏟아붓더라도, 동시에 삶의 끈을 놓지 않았으면 했다.

“그럼. 당연한 얘기지.”

“…그러네요.”

셰이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무겁다는 건 빈말이 아니었는지 조금씩 밑으로 처지던 클레이모어가 다시 바짝 올라붙었다.

“30년까지는 몰라도… 힘내볼게요.”


일루미나의 마지막 절현에 이어, 셰이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돌격이 공포놈에게 짓쳐들었다.


[정의의 심판]
[파멸적인 일격!]
[셰이가 가장 기나긴 공포에게 69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공포의 갑주’의 효과로 인해 50을 초과하는 데미지를입힐 없습니다.]
[셰이가 가장 기나긴 공포에게 50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49/300]
[용사들의 의지가 꺼지지 않습니다.]
[모든 용사 멘탈리티 +4]
[가장 기나긴 공포가 심판에 저항합니다.]
[가장 기나긴 공포가 상태이상 ‘기절’에 저항합니다.]
[가장 기나긴 공포에게 심판의 낙인이 새겨집니다.]
[낙인은 3턴간 유지됩니다.]

[‘공포의 갑주’의 효과로 인해 셰이의 체력이 6 감소합니다.]
[남은 체력 17/41]
[깊은 후유증으로 인해 셰이의 체력이 4 감소합니다.]
[남은 체력 13/41]

[공포의 시간 9/12]
[모든 용사 멘탈리티 –5]

---------------------!!!

셰이는 제몸을 생각하지 않고 온몸을 던지듯 클레이모어를 내밀었고, 공격 직후 바닥에 내던져지듯 튕겨버렸다. 그 모습을 목격한 순간 뒷목이 찌르르 울렸다. 그녀의 남은 체력이 13이고, 현재 멘탈리티가 –67인  보이지 않았다. 눈 깜짝할 사이, 그녀를 받아내려던 카야까지 함께 나뒹굴고 있었다.

“셰이! 셰이!!!”

“큭….”

“카야! 셰이, 셰이는!”

“….”

“왜, 대답이 없어! 어? 왜! 왜!!!”

가뜩이나 야윈 상태에서 모든 힘을 쏟아내서 그런지 셰이는 바닥에 심하게 부딪쳤음에도 불구하고… 신음 한번 없이, 일어나지 못했다.

셰이의 돌격은, 메시지의 글자 그대로 파멸적이었다.

공포새끼에게도,그녀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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