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고난도 던전에 떨어졌다-214화 (214/218)

26. 평범한 가족(9)

“코디 언니.”

“큰언니…?”

“응?”

“이거, 뭐 하는 거야?”

루디키아와 비니아는 코르디아의 손짓에 홀린 듯이 안쪽으로 들어왔지만, 막상 들어오고 나니 상황을 곧바로 따라갈 수 없었다. 코르디아가 실망 했을까 봐서, 그런 언니한테 제대로 혼나는 것만 상상했던 비니아는 물론이고 코르디아의 계획서를 같이 보고 직접 설명까지 들었던 루디키아조차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이 사건의 근원은 루디키아와 비니아가 직접적으로 싸운 것에 있으니, 해결책의 최우선순위도 둘의 화해에 있다며 세상 진지한 표정과 말투였는데….

지금, 코르디아와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피에타가 하고 있는 행동을 보면 상당히 괴리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야 코르디아는 색종이를 여러 모양으로 접는 중이었고 구석에 있던 피에타는 찰흙을 쪼물락거리며 뭔가를 빚고 있었으니까.

“뭐긴 뭐야. 아빠엄마께 보여드릴 우리 진심을 만드는 중이지.”

“우리, 진심…?”

“이거 접을 줄 알지?”

“으응.”

“응.”

“시간 별로 없으니까 같이 접으면서 듣자. 일루 와.”

그새 코르디아는 4살짜리 아이가 접었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고퀄리티의 하얀 종이꽃을 한 송이 더 완성해 테이블 구석에 모아놨다. 생기만 없을 뿐, 예쁜 백합이었다. 코르디아는 다른 흰 종이를 집어들며 동생들에게도 다른 색의 색종이를 나누어주었다. 루디키아는 흰색과 회색이 반반 섞인 색을, 비니아는 황금색 종이를 선택했다.

둘이 코르디아처럼 꽃을 접기 시작하자 코르디아가 입을 열었다.

“아빠엄마는 자상하시잖아. 그런데 너희들도 어제 밤 기억하지? 난… 너무 무서웠어.”

루디키아는 고개를 끄덕였고 비니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자기는 아빠랑 즐겁게 놀다가 맛있는 간식까지 먹었고, 마지막에서야 아빠가 묻는 말에 몇 개 대답한 게 전부였으니까.

“너희 둘이 서로 사과하고 화해하는 건 기본이야. 하지만 그걸로 끝날 문제가 아냐. 이미 아빠엄마는 심각하게 생각하고 계셔. 우리 사이가 많이 안 좋은 게 아닐까 걱정하고 계시고, 우리들 교육을 잘못한 걸까 자책감도 가지고 계실 거야. 그러니까 그냥 서로 사과하고 화해하는 것만으로는 안 돼. 그건 기본이야.”

“그래서….”

“아빠엄마가 더는 우릴 걱정할 필요가 없겠구나 생각하시게끔 해야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다 해서 보여드리는 거야. 눈치 봐서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진짜 반성하고 화해했다고. 진심과 정성으로.”

엄마가 좋아하시는 꽃.

아빠가 좋아하시는 편지.

그 외에도 온 가족이 행복한 모습으로 모여있는 걸 묘사한 찰흙인형이라든지, 아빠랑 엄마를 그린 그림이라든지, 서로에 대한 좋은 점을 잔뜩 적고 아쉬운 점이나 고쳤으면 하는 점을 뒤에 찔끔 적은 칭찬 종이라든지.

마지막으로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하겠다는 다짐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적은 반성문까지.

그제서야 방 안의 모습을 완전히 이해한 루디키아와 비니아는 묵묵히 종이꽃을 마저 접고는 이윽고 편지지를 골라 앙증맞은 글씨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언니! 이고 한번 봐줘!”

“응? 와. 잘 만들었네?”

“헷. 정말?”

“응. 아, 근데 여기 조금 뭉개진 거 같긴 한데.”

“앗. 아아….”

“아니, 아니야. 괜찮아 에티. 그렇게까지 완벽하게 만들지 않아도 괜찮아. 작품 점수 맞는 자리가 아니니까.”

“언니. 이 정도면 될까?”

“어어, 나한테 내용을 보여주면 안 되지! 나한테 검사 맡는 게 아니야.”

“그래도.”

“괜찮아. 루디 네가 얼마나 아빠엄마를 사랑하는지, 우릴 얼마나 사랑하는지만 잘 표현하면 돼.”

“그럼, 글씨는?”

“충분히 예뻐. 루디, 넌 세 살이야.”

“…알았어.”

“언니….”

“응, 비니. 왜?”

“이거….”

“응? 아아~ 괜찮아 괜찮아. 루디한테도 말했지만 비니 너도 세 살이야. 우리들 말고 다른 세 살 네 살 친구를 만나본 적은 없지만, 장담할 수 있어. 그 누구도 우리처럼 못 해.”

“으응….”

“비니 네가 주눅들어있는 건 알겠지만, 아빠엄마가 우리가 정성스레 만든 걸 보고 별로라고 혼낼 걱정은 안 해도 돼. 그럴 아빠엄마가 아니라는 건 잘 알잖아. 그치?”

“으응…!”

자기들의 작품이나 반성문 등이 잘못됐거나 형편없으면 어쩌나 불안해하는 동생들을 코르디아가 잘 달래주었다.

**

“….”

“…….”

그저 자매들끼리 한번 싸운 것뿐이었다. 험악하고 눈살 찌푸려지는, 그런 추한 싸움이 아니라 딸들이 아빠에 대한 사랑을 갈구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지 않은가.

가벼운 말다툼이나 투닥거림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물리적 충돌이긴 하지만, 살면서 한 번도 안 싸우는 관계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을까? 그게 친구든, 형제자매든, 연인이든, 부부든, 부부자식 사이든 간에 말이다.

아무리 유진이 제대로 된 부모 없이 자랐어도, 형제가 없이 자랐어도, 친구랄 게 없었어도….

‘내 인생도 참… 그러네.’

크흠, 아무튼 그리 없이 자란 그라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물론, 루디키아와 비니아가 싸웠을 때 그와 그의 아내들이 세상 무너질 듯 걱정했던 걸 잊진 않았지만… 막상 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보니, 이건 좀… 그랬다.

처음엔 걱정됐고, 보다 보니 귀여웠고 더 보다 보니 어떻게 행동할지 궁금했다. 그래서 비활성화해놨던 관찰 아티팩트의 음성 수집 기능도 원상복구했던 거 아닌가.

딸들이 3살, 4살답지 않은 조숙한 천재들이라는 건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차라리 그냥 그때 바로 혼낼 걸 그랬나? 괜히 지켜보겠답시고 불필요한 뜸을 들인 건가?”

“우리가 아이들의 싸움을 너무 걱정하는 것처럼, 아이들도 우리에게 혼나는 것과 우리가 실망할 가능성 그 자체를 매우 두려워하고 있어요.”

“싸우면 당연히 혼낼 수는 있지만, 실망이라니….”

“아이들 눈에는, 그런 부모로 보였나본데….”

“…….”

알아서 반성문을 쓰는 것까지는 그것 자체로도 이미 일반의 영역을 벗어났다. 하지만 형제랑 싸웠다고, 그걸 두고 부모님이 뭐라고 화를 안 내서 오히려 두려움을 가지고 반성문 이외에도 편지와 그림과 종이꽃과 찰흙인형까지 준비하는 딸들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그래야만 한다는 ‘강박감’을 심어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안 가질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서 한 행동이었겠지만, 그걸 본 부모의 마음은 더 착잡해졌다.

‘차라리 몰랐다면.’

몰래 지켜봐놓고 할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이라고….

“완벽.”

“네?”

“똑바로 된 개념을 교육시키고, 그 외에는 웬만한 건 다 허용해가면서 길렀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은연중에 우리 딸들에게 완벽함을 바라고 투영시키고 있던 건 아닐까.”

“하지만.”

“그냥 자식들이었다면 힘들어하고 버거워하고 반항하고 찡찡대고 응석을 부렸겠지. 그럼 우리는 그걸 달래고 꾸짖으며 다시 교육하며 같이 성장해나갔을 테고. 하지만… 아까 본 걸 떠올려봐.”

우리 딸들은 육체 연령만 아기지, 이미 정신 연령은 최소 10대 이상이 아닐까.

과연 여신의 축복, 어마무시했다.

“그럼,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이미 이세계판 CCTV는 끈 지 오래였다. 아이들의 진심이 기특하면서도 착잡한 마음이 더 컸던 엄마들은 세스티아의 질문에 일제히 지아비를 바라봤다.

“지금 아이들한테 가서 자, 너희들이 하는 건 나이답지 않게 과한 행동이야 이렇게 말하면서 말릴까.”

“말도 안 되요.”

“말도 안 되지. 그냥… 이미 벌어진 일이야. 어쩔 수 없어. 아이들은 진심인데, 저걸 우리한테 보여주기 전에 우리가 먼저 나서서 과하다느니 아빠엄마는 정말 괜찮다느니 하면 오히려 아이들은 자기들 진심이 부족했다고 생각할 거야.”

“아이들이 너무 생각이 깊어도 문제네….”

“여신님께 조언을 구하고 싶지만, 아직 응답이 없으시지?”

“예. 매일 기도하고 있습니다만….”

뭐, 설령 여신님들께서 응답 가능하다고 해도 별 수 없지 않을까. 그분들도 직접 육아를 해본 경험은 없을 텐데.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탔어. 여기까지 지켜봤으니, 계속 지켜봐야지.”

“….”

“다만 중요한 건, 우리 아이들의 지능과 정신 수준을 지금보다 더 높게 잡아야 한다는 거야. 그러니까 너무 티 나게 봐주고, 티 나게 감싸 안으면 전부는 아니더라도 한둘은 무조건 눈치챌 거야.”

“그 한둘 중 코르디아는 무조건 포함이겠죠?”

“영향력이 가장 큰 코르디아가 눈치채면, 또 무슨 계획을 짜낼지 모르겠네?”

“지금부터라도 자연스럽게 행동하자. 지금까지 우리가 본 건 잊어. 안 본 척, 안 들은 척 하자. 우리 기억은 저번에 아이들이랑 개인적으로 대화했을 때가 마지막인 거야. 알았지?”

“알았습니다.”

“후우… 육아란 참.”

그들은 ‘자연스럽게’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그래도 지금 바로 딸들을 찾으면 딸들이 곤란해할 테니, 조금 시간을 들였다가 찾을 생각이었다.

“…………….”

아니.

아니이이이.

그냥 계속 관찰하거나, 어색해지는 한이 있더라도 딸들을 그때 바로 찾아갔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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