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5)화 (5/454)



〈 5화 〉2. 누나 그러다 저 죽어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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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론 그녀의 직원  조수처럼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다녀야 했다.


카운터는요? 이리 묻자 다들 알아서들 사갈 거라 그러는데, 무인 판매였나요?! 하고 놀랄 수밖에.
이것이 시골 민심, 인심이라는 건가?


유럽? 외국에서 그런 식으로 방치 형태로 야채며 간단 도구 등을 가판대에 내놓고 판매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직접 그와 비슷한 경우를 보게 되니 좀 신기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 그녀와 침대에서 엎치락뒤치락 한 시간도 따지고 보면 가게 오픈하고 있던 시점인 걸 떠올린 에드릭.


실제로 이곳에서 마주친 이들 대부분은 느긋하면서도 속 편한 듯한 얼굴로 싫은 소리, 나쁜 소리, 부정적인 태도 하나 없이 모두가 친절하게 처음  에드릭에게 자기소개하며 먼저 인사말을 건네는 건 물론, 허례허식 없이 진심으로 반가움을 표현해 왔다.

사내들은 머리를 쓰다듬고 손을 마주 잡거나 어깨를 짚고, 등을 두들겨오는 등.
반면 여성들은 팔짱을 끼고 양손을 붙들고 포옹해오고 볼에 입을 맞추는 등….


문제가 하나 있다면, 마주치는 이들 모두가 일관된 반응들을 보였으니.
남녀노소  거 없이 자꾸 예쁘다, 귀엽다 하는 통에 에드릭은 기뻐해야할지 울적해야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

…나, 완전히 여자 취급받고 있잖아!


간신히 원피스 입고 나가자는 알리샤를 설득해 반 바지에 셔츠, 갈색 바탕의 조끼 정도로 타협을 봤는데도, 머리핀에다 노란 리본으로 매듭을 묶은 덕에 만나는 이들 태반이 에드릭을 소녀로 오해하곤 했다.

음, 그나저나….


일평생, 이런 식으로 순수하게 타인의 관심들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그랬을까. 그들의 미소와 친절, 순수히 와닿는 감정들이 무척이나 생소했다.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운 것도 없진 않았지만, 전혀 불쾌하거나 부담이 되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느긋하고 지루함…만 어떻게 해결하면 여기야말로 진짜 그거, 천국이네.’




어느새 싱글벙글.
마주치기 무섭게 웃는 얼굴로 ‘안녕!’ 하며, 자기도 모르게 처음 보는 사람임에도 웃으며 손을 크게 흔들게  에드릭.

처음엔 부끄러웠지만 애초에 알리샤도 그렇고 마주치는 인원들 모두가 그러고 있는데 나만 멀뚱히 무표정하게  있어 봤자… 아니, 그래도 상관은 없지만 어느덧 에드릭도 그들에게 동화되듯 그들과 똑같이 마주치는 이들로 하여금 반가움, 기쁨의 표현을 숨김없이 표현하고 있었다.


심지어 오고 가다 만나도 미소로 시선을 주고받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물론 처음 보는 이들 가운데 모두가 그에게 친절한 반응을 보여준 건 아니었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다 보니 당연 반응이 뜸하거나 무덤덤한 이가 있었다.


무뚝뚝하게  내려다보는 소녀는, 옷차림이 썩 요염했다.
검은색, 게다가 이거, 목과 쇄골 부위를 제외하곤 전신을 감싸는 용도인데, 왠지 모르게 속살이 비출까 말까 할 정도로 애매한 구석이 있었다.



“현재 우리 마을 유일한 마법사야. 얼마 전에 파견 겸 잠깐 관광 차원에서 마을로 왔거든?”



옷에 정신을 뺏긴 사이, 알리샤의 소개와 함께 소녀가 살짝 허리를 낮춘  분홍빛 입술을 달싹였다.




“안녕. 에우리에야.”

심플한 소개. 에드릭도 미소를 지은 채 응답했다.

“예, 반갑습니다. 저는 에드릭이라 해요.”
“반듯하네. 그보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누구?”
“아, 맞다. 이쪽은 구레아 상회의 에드릭. 혹시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에우리에한테는 이런저런 거 부탁해봐.”




그러면서 슬그머니 웃으며 입꼬리를 올리는 알리샤 누님.
……대체  부탁하라는 겁니까?
에드릭은 왠지 불안해졌지만, 한편으론  수 없는 기대감이 가슴이 두근거렸다.

에우리에의 첫인상은 이랬다.
무심한 표정에 가슴이 크다.
거의 알리샤 누님 급! 어메이징!


 머리인데 뭔가 신경 안 쓰는 듯한 덕에 며칠 방치해둔 건지 살짝 떡 진 감도 있었지만, 왜인지 그게 멋스럽고 세련된 것 같은, 음… 특유의 개성처럼 느껴졌다.
이세계 미녀 보정인 건가? 흠!

발견한 직후부터 계속 신경 쓰였는데, 옅은 은발이란 걸 실물로는 처음 봤기에 신기해서 계속보다 무심코 그녀와 시선을 마주쳤다.
눈동자가 마치 자수정처럼 보랏빛을 띄어 보다 보면 푹 빠져들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에우리에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정신을 차린 난 뻘쭘해서 다급히 시선을 피했다.
아, 뭔가 뻘쭘하네.


아무튼 끝내 주게 예쁜 미인.
나이 대도 알리샤 누님과 비슷해 보였는데, 그녀도 극단적인 동안 외모인 걸까?
겉으로 보면 10대 중반 나이의 소녀처럼 보였는데, 분위기는 서른쯤 되는 누님처럼도 느껴졌다.

아리송하면서도 어딘가 세상과 동떨어진 듯 무심하면서도 꿈에 빠진 듯한 표정은… 크흠!

근데 여전히 옷이 문제였다.
검은색 일색. 투명도 덕에 속이 비출 듯 말 듯.
아니, 왜 그리 옷을 야하게 입고 다니세요?

속살은 거의 안 비추지만, 새하얀 속살이 옷 사이로 보이려는데, 이게 상상력을 배가시킨 덕에 엄청, 엄청 자극적이면서도 야릇한 기운을 풍겼다.
그럼에도 잠시간 동행하는 동안, 주위에 오고 가며 만나는 이들 중 누구도 그런 점을 지적하거나 음흉한 시선, 표정 등을 보이는  없었으니.


…이곳 인간들은 전부 성인군자들이거나, 아님 성욕 감퇴제를 먹은 건가 싶을 정도로 반응들이 뜸했다.


거기다 서 있을 때와 걸어 다닐 때의 느낌이 또 달랐다.
몸의 볼륨을 그대로 살려주는 식이라 착 달라붙은 검은 옷감들이 움직임에 따라 변화를… 으윽! 여기서 반응하면 안 되는데.



“음?”

에우리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알리샤 누님(실은 내가 연상이지만)보다 키가  큰 편이구나.
알리샤는 그 뒤로도 심심풀이  에우리에에 대한 소개를 이어갔다.
모험가 겸 마법사. 유명한 분의 제자인데 잘은 모르겠다는 식으로, 뭔가 짜짠하고 대강 소개  자랑하는 느낌이었다.

꾸밈이 없다. 순수하고 진솔하게 에우리에의 좋은 점을 손꼽는 알리샤.
마치 절친을 소개받는 느낌이라 나는 좋았다고 생각한다.

반면 고민도 했다.


순간적으로 직업 정신을 표출할까도 싶었는데, 그냥 자제하기로 했다.
그 뒤로 둘은 돌아가는 내내 별 계획 없이 걸어가며 십여 분간 에드릭을 끼고 잡담을 이어갔다.


뭔가 소박하면서도 단순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음에도 에드릭은 시간 가는  모르게 그녀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급할 거 없이, 차분히 둘을 따랐다.
그도 그럴게….



“와이번을 탔는데 말이야.”
“와아아!”
“마물을 만나서 어쩌구 저쩌구.”
“그거 재료 구해둔 거 있어? 어쩌구 저쩌구.”


……듣는 내용 모두가 신선하기 그지없는 내용들이었기에.
제법 듣는 재미가 있었다.
내가 이세계에 있으며, 그들과 함께 숨 쉬며 어울리고, 활보하고 있다는 게 실감 됐다.
누구나 환상의 세계, 소설 속, 게임 속… 아무튼 이세계에 가 보는 걸 궁금해하고 신경 썼던 이들이 있었을 거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금 이곳에 있다.
정말이지,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없었다.
아, 물론 가슴만 벅찬 게 아니라… 아래쪽도 벅찼지만.

이런저런 일 끝내고  온 도시락으로 점심 식사.
또 이런저런  오가며 마치 관광 온 듯 알리샤를 따라 살짝 땀도 흘리고 폐부에 신선한 공기도 좀 채워 넣는 등.


날이 저물기 전에 복귀한 다음으론 식사로 배를 든든히 채우곤 마지막으로 목욕까지.
당연 목욕한 뒤에 어떤 시간이 기다릴지 알고 있었기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지만….
문제는 이때 발생했다.

“물 온도 어때?”



나무통에 서서 누울 수도, 앉기도 애매한 자세로 반쯤 기댄  뜨거운 물에 몸을 녹아내고 있던 찰나.

알리샤 누님이 불쑥 난입했습니다.
……그것도 알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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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나무통을 공유하게 돼버렸다.

아무래도 내 키가 작다 보니 물이 넘치면 좀 그랬는데, 부력을 이용해 끄트머리를 잡고 있자니 그것도 큰 문제는  됐다.

그렇게 같은 나무통 안에서, 뜨거운 물을 통해 서로 몸을 붉히고 있던 둘은.

“여기도 제법 살만한 곳이지?”
“예, 좋은 거 같아요.”



에드릭은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어렸을 적부터 학교며 학원에 시달렸던 걸 떠올린 그는, 이곳 아이들이 이곳저곳을 뛰노는 모습을 보곤 부러움인지 아쉬움인지 모를 감정을 느꼈다.

물론 그러다 엄마 아빠한테 붙들려 한 소리 듣는 모습이라던가, 부모님과 함께 농사짓고 가축을 돌보는 모습을 봤을 땐 기이하게도 부러움마저 느꼈다.


당연 농사일이 쉽지 않다는 것도 머리론 안다. 가축을 키운다는 것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긴 했지만 감정은  반대. 역시 도시 사람이 귀농을 로망으로 여기듯,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무언가를 갈망하는 그런 게 그의 내면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나 보다.

…물론 귀농한다고 내려갔다가 역으로 빚만 지고 올라오는 이들을 겸사겸사 들었던 그는, 솔직히 취직하기 전까지만 해도 끔찍할 정도로 회의주의에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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