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10. 엘프의 길쭉한 귀를 주제로 한 미묘한 고찰.
귀 청소라는 건 모름지기 본인이 하는 거다.
아주 어렸을 적엔 어머니가 해준 기억이 난다만, 그 뒤로는… 목욕한 다음 겸사겸사 손·발톱 깎으며 하는 정도.
귀 안 파도 건강에 크게 문제도 없다 하고, 오히려 자주 파면 귀 건강에 그리 좋은 편은 아니란 기사를 본 적도 있는 거 같은데.
그러니까 나는, 누군가가 귀를 파주는 거에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는 거다.
지금 이 순간까지는.
면봉으로 귀 인근을 훑는 건 별다른 자극이 되질 않았다. 거기는 그냥 하고 있구나 싶은 정도? 감이 둔한 건가 살짝 걱정되기도 했지만, 귀 안쪽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느낌이 완전 달라졌다.
그러나 이조차도 메인은 아니었으니.
귀이개가 내부 깊숙이 들어서선 귀 안쪽을 차분히, 다소곳하게 긁어대기 시작하자 몸이 절로 오싹… 아니, 뭔가 민감 부위를 건드릴 때 척수 반사적으로 나올 법한 떨림이 이어졌다.
목욕을 자주하고, 귀 안쪽까지 물을 자주 얹어두고 잘 씻어주면 그만큼 또 깨끗하다고는 하는데, 솔직히 태어나서 자기 귀를 작정하고 측정하고 살피는 예가 얼마나 될까. 카메라로 찍을 것도 아니고….
다만 귀이개로 귀를 후비는 내내 그 느낌은 참 말로는 형언하기 어려운 낯부끄러운 감각과 기분 좋은 감각이 한데 뒤섞인 듯한, 그런 뭔가가 있었다.
아무튼 무방비하게 자신의 약점, 급소? 그런 걸 그대로 상대에게 공개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냐만….
그녀의 복부에 두 눈을 놓아둔 채 오만가지 상념과 감각에 휘말려 나는 수차례 몸을 떨어야만 했다.
가끔씩 후~ 하고 입으로 불어주는 게 기이하게도 기분이 좋았지만, 그만큼 자극이 커서 흠칫하면 제이실라는 웃으며 괜찮다는 듯 머리마저 쓰다듬어주었다.
그녀는 별말 없이 조용히 행위에 집중했고, 덕분에 나도 귀 안을 서걱서걱, 소곡소곡 거리는 소리에 집중했는데….
“붙었네요.”
안쪽에 굵직한 게 붙었다며 후후하고 웃는 그녀는, 살짝 불편할 수 있다고 미리 경고하곤 귀이개를 움직였다.
작정하고 달라붙어 있으면 통증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다행히 요령이 좋은 건지 달라붙은 녀석이 허술한 건지 금세 귀 밖으로 흘러나왔는데, 다시금 면봉으로 귀를 훑는데 이번 면봉은 살짝 물기가 묻은 상태였다.
그것으로 귀 안쪽으로 샅샅이 훑은 제이실라.
여기서 끝인가 싶었는데, 뭔가 엄청 부드러운 게 귀 전체를 훑어가기 시작했다.
이건 마치 깃털? 솜털? 아무튼 그런 촉감이 느껴졌다.
“단순히 귀 청소를 끝나는 게 아니라 깃털 같은 도구로 귀 마사지를 겸해 기분도 케어 할 수 있거든요? 또 혈을 눌러주기도 해서 혈액 순환을 돕기도 하고요. 손에는 오장육부가 전부 연결되어 있듯 귀의 각 위치에도 전신의 혈이 연결되어 있다고 하니까요.”
“…음, 그 정보는 어디서 들으셨나요?”
“여러 곳에서요?”
혈이란 소리가 나올 줄이야. 마사지야 그러려니 해도… 크흠!
솜털로 겉, 안쪽을 부드럽게 훑고 지나간 덕에 이건 이것대로 느낌이 참…!
간지러움과 기분 좋은 촉감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 타듯 훑고 가는데 느낌이 참 색달랐다. 귀도 성감대라고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자극을 해서 기분을 풀어줄 수도 있구나 하는 걸 새로이 알게 된 점은 유용한 점이다만.
이어 도구가 아니라 손가락, 손톱까지 활용해 귀를 주물러 주는데, 이것도 느낌이 참 좋았다.
“자, 됐어요. 반대쪽.”
반대도 마찬가지로 진행.
별 게 아닌 거 같았음에도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니 절로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뭔가….’
귀가 훤해졌다고 할까, 가벼워진 듯 느껴지는데 분명 기분 탓이 확실함에도 느낌만큼은 신선했다.
고작 귀지 좀 판다고 가벼워져봤자 얼마나 가벼웠겠나.
“음, 이번엔 제가 해드릴게요. 이쪽으로.”
나는 자연스럽게 두 다리를 모아 허벅지 쪽을 손바닥으로 가리켰다.
“후후, 좋아요. 그래도 여기선 안 돼요.”
“??”
그녀는 소파가 아닌 침대로 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귀가 길잖아요. 옆으로 눕게 되면 제 귀가 어떻게 될까요?”
“아, 눌리겠네요. 내 정신 좀 봐라.”
“인간은 괜찮아도 앞으로 이처럼 종족이 다름으로 인한 신체적 차이, 문화적 차이 등이 생길 수 있으니 그런 걸 사전에 헤아려둬서 배려해준다면 참 좋겠지요?”
“예,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소파가 넓다곤 해도 편히 눕기엔 살짝 애로사항이 있었다고 느낀 걸까.
아예 넉넉하다 못해 넘치는 침대로 옮기고자 한 모양이다.
침대에 누운 그녀는 약간 옆쪽으로 무릎 꿇은 내 양 허벅지에 그대로 머리맡을 기댔다.
졸지에 고개를 살짝 수그리는 것만으로 그녀와 시선을 마주하는 형태가 됐는데, 그녀는 편안한 미소로 괜찮다는 듯 귀 청소 도구가 든 박스와 마치 안경닦이를 연상하게 하는 천 등을 상황에 맞게 잘 사용하라 일러주었다.
내게 사용한 건 따로 보관해뒀기에, 지금 내 손에 들린 자그마한 상자에 담긴 것들은 전부 새것처럼 깨끗하게 정돈돼 있었다.
‘종류가 꽤 많네.’
집게 같은 것도 있고, 단순 귀이개 포함해서 길이며 굵기도 다양하고… 뭐 이리 많지 싶었다.
희한한 것들도 있었는데 깃털, 솜털, 작은 스펀지 등에 막대를 연결해둔 것들까지 아주 다양했는데… 이걸 어찌 쓰나 살짝 고민했다가 그녀가 내게 해준 걸 파악하곤… 일단 시도해보기로 했다.
가장 무난한 건 역시 면봉인가 싶어서, 1회용으로 쓰는 솜 면봉으로…… 뭘 해야 하지?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음, 생각 중입니다.”
자신감이 없더라도 태도만큼은 여유를 가장할 것!
아무쪼록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러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어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제가 방법을 잘 모르는데, 어떤 식으로 해야 좋을까요? 제이실라 님?”
“후후, 언제 묻나 했어요.”
무심코 그 이야기가 떠올랐다.
기사 가웨인이 아서왕을 위해 늙고 추한 마녀와 결혼하게 된 이야기가 말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지만….
연관이 크게 없을 수도 있음에도 그냥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불쑥, 모르는 걸 굳이 알려고 무작정 고민하는 자신이 멍청한 게 아닐까 싶었다.
왜냐면 그녀가 내게 배려를 해왔듯, 나 또한 그녀를 배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하지 않을까 싶었기에.
그녀를 위해 진행하는 행위인데, 이에 대해 자세히 모른다?
당연히 올바른 방법을 그녀에게 묻는 게 정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건 부끄러운 것도, 자존심 상하는 일도 아니었기에.
“조언을 잘 새겨들으셨네요.”
“조언요?”
그녀의 반응, 대답이 의외라 살짝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런 내 의뭉스러운 반응에 이번엔 그녀의 아미가 미세하게 찌푸려지더니.
“아, 그렇네요. 이건 천성이군요. 더 좋은 결과라고 봐요.”
왠지 기쁜 오산을 마주한 듯한 반응을 보인 덕에, 그녀의 말을 이해하고자 잠시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나중에 가서 알게 됐지만, 그녀는 이미 자신에게 종족의 차이로 인한 신체적, 문화적 차이에 대해 잠깐 언급했었다.
즉, 그것 자체가 이미 힌트라면 힌트였던 건데.
“다른 의미로 예상을 벗어나 주시네요.”
그럼에도 결과는 만족스러웠는지 새하얗게 미소 짓는 그녀.
“보다시피 저희는 귀가 인간보다는 긴 편이잖아요?”
“예, 그렇죠?”
그녀의 경우 엄청 뾰족하다거나 엄청 길거나 하진 않았지만 종족 특유의 길쭉한 귀를 지니고 있었다. 나름 동족 가운데서는 조금 작고 얇은 편이라는데, 비교 대상이 없었기에 그러려니 했다.
“특별한 방법이나 규칙이 있는 건 아니에요. 다만 바깥으로 노출된 귀는 보다시피 인간처럼 구부러졌거나 굴곡이 많거나 하진 않지요?”
실제로 그녀의 귀는, 머리맡을 내 양 무릎과 허벅지에 올려놓은 상태, 천장을 올려다보게 누운 상태임에도 선명하게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으며, 살짝 기울어지긴 했지만 이건 정면에서 내려다봐도 겉을 살피는데 크게 지장이 없는 모양새였다.
“귀 뒤는 수건으로, 겉 일부도 수건으로 닦아주시면 되세요. 그리고 안쪽서부터는 이제 인간에게 하듯 자유롭게 해주시면 좋고요.”
“옙, 그대로 시행하겠습니다.”
그녀가 알려준 대로 우선 자그마한 수건… 촉감이 극세사보다 훨씬 부드러운 듯한 무언가인데 재질이 뭔지를 모르겠다.
아무튼 그걸로 우선 귀 뒤를 차분하게….
“아, 물기를 조금 묻혀야… 적셔야 될까요?”
“그건 마무리에.”
내려다보는 내 자그마한 얼굴을 뚫어져라 주시하는 그녀.
그 맑고 투명한 시선이 조금… 아니, 상당히 부담스러웠지만 나는 애써 마음을 가다듬고 내게서도 오른쪽, 그녀에게서도 오른쪽에 해당하는 귀의 뒤쪽으로 가벼이, 부드러운 수건으로 귀 뒤를 닦아내듯, 만지작대듯 옆으로 훑어갔다.
“흐음….”
그러나 그 느낌을 조금 더 음미하려는 듯 그녀가 차분히 두 눈꺼풀을 닫자, 부담이 조금 덜해진 나 또한 집중해서 그녀의 귀를 만지작… 이렇게 말하면 조금 야하게 들리지만 아무튼 서비스? 뭐시기를 하는데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