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44)화 (44/454)



〈 44화 〉13. 모든 것은 N으로….(3)

본사가 이곳 세계에서 활용하는 업체명은 가지각색.  담그고 있는 영역들도 다양한 편에 속했다.

알리샤 누님을 상대하러 갔을 땐 구레아? 그땐 그곳 출신임을 피력했는데, 이번엔 다른 곳을 입에 담으란다.

물론 이 모든 게 시나리오, 즉 계획된 내용이라는 거였다.

예컨대 규모가 작은 상회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중형 상회, 조금 더 규모가 커진 상회로 스카웃 되는 식의 스토리.

혹여 시간이 흘러 누군가가 뒷조사를 시도하더라도 전혀 하자가 없도록 꾸며질 거며, 추후 간판 스토리 겸 성공 신화로 널리 퍼트리기 좋은 시나리오를 구성했다고 들었는데, 듣다 보니 참 가관이었다. 일종에 브랜드 마케팅? 브랜딩에 일환이라 보면 되려나?

그만큼 내 역할 비중이 막대한 게 아닌가 괜한 걱정이 앞섰지만….


“중요하다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부담 가지진 마세요.”



안심하라는 건지, 큰 기대를 말라는 건지 분간이 살짝  되는 말로 날 위로한 그녀는.



“우선 씻으시고, 그 다음엔 옷을 골라드릴게요. 마차며 인솔할 이들, 호위 인력이며 보조 인력 등도 다 선별해뒀으니… 나머지는 마음먹기 나름이랍니다. 여기까지 궁금하신 사항 있으세요?”
“음, 당장은 없네요.”
“좋아요.”



그녀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러면 계획대로, 차근차근 움직여보도록 해보죠.”




본사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런 식으로 진행하는지 아직 그 그림의 윤곽이 파악은  됐지만, 확실한 건 일반적인 개념으로 추측해선  될 거란 예감이 들었다.

…그러니 이쪽저쪽 넘나드는 걸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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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처리라는 건 항상 별 게 아닌  같아도 귀찮고 번거로운데 시간마저 많이 잡아먹기 일쑤.

그러기에 회사며 여타 기업 측에선 이에 대한 시간 감소를 위한  처리 방식 등을 매뉴얼 화하곤 한다. 나중에라도 담당자 및 숙련된 인원이 없어도 이를 처리할 수 있게끔 말이다.


반면 이런 시스템이 제대로 형성 안 돼 있는 곳, 그때그때 주먹구구식으로 상황을 모면하려는 업체는 담당자의 역할이 막중해지는데, 여건이 안 좋거나 인간을 갈아 넣는 곳일수록 이런 부조리가 극심해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단순  처리부터 전문적인 기술직까지도 이런 식의 막대한 인적 자원 갈아 넣는 방식은 인류가 노동에 종사한 이래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당연 이세계는 기계조차 없으니 결국  처리는 모조리 그들 몫.

맨몸으로 가면 된다 해서 그러려니 했는데, 막상 와보니 자그마한 규모의 상단 조직을 꾸리게 됐다.

짐 마차가 대략 4개. 이를 수행하는 작업 인원이 열넷.
그 외에 호위 목적인지 무장을  인원이 거기서 다시 열다섯.

“이쪽은 브리앙르, 이번 행선지까지 에드릭 님과 동행하며 에드릭 님을 보호해주실 호위 용병분이세요.”
“안녕하신가? 변변찮은 용병 나부랭이다.”

한쪽 눈에 안대를  여성이 손을 뻗어 온다.

가슴과 각 관절 부위에 쇠로  보호구로 무장한 여타 이들과는 달리, 그녀는 변변찮은 가죽조차 걸친 바 없이 그냥 움직이기 편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근데 너무 편해 보이는데?

발목 위까지 오는 묵직한 가죽 부츠만 별개로 치면 나머진 단출했다. 무릎이 드러난 갈색 반바지에 상의는 흰색 반 팔. 벨트며 조끼를 끼고 있다지만 그거 외엔 별다른 방어 장비라 해봤자 손과 손목을 한데 감싼 장갑이 고작.

다만 나이프가 여럿, 가슴과 허리춤에 매달린 각각의 벨트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그녀 등 뒤로 대각선으로 솟아난 대검, 면적은 좁으나 길이 자체로 위협적인 그게 제일 눈에 띄었다. 척 봐도 검신(劍身)만 1m는 족히 넘어 보였는데 손잡이, 자루조차도 50cm는 거뜬해 보였다. 덕분에 170정도로 짐작되는 그녀의 체구와 맞먹는 느낌?

인근에 무장한 이들이 방패며 검, 도끼, 철퇴 등으로 다양하게 무장된 걸로 봐도 용병이나 호위 인력이라는 점엔 이견이 따로 없다만….




“반갑습니다. 브리앙르 님.”
“님은 무슨. 그냥 이름 불러.”
“에이, 그래도 도움 주시는 분께 그런 실례를 범할 순 없지요. 그러면… 누님이라 불러드리면 될까요?”

브리앙르가 로메리스를 보며 허하고 웃어 보인다.

“지체 높은 출신은 아닌  같아 좋군.”
“아무렴요.”



첫인상은 잘 박아둔  같았다.
대략 준비가 끝나고 출발할 때까지도 그로부터 30분은  소요됐다.

그냥 출발할 줄 알았는데 로메리스는 그들을 한데 불어 모아 날 소개하곤 동시에 그들  인력을 인솔하는 이들, 나보다는 낮으나 실질적으로 이들을 이끌고 관리하는 책임자를 소개하기까지.

거기서 끝날까 싶었는데 책임자가 이번엔 주가 되어 자기 부하 직원들을 소개하기에 이르렀다.


…제법 지루한 일정일지도 몰랐지만, 이런 경험이 신선해서 그러려니 하고 그들과 인사를 나눴다.

겉만 보면 내 쪽이 어려 보였기에 너무 건방진 티를 안 내는 게 좋겠지. 동아시아 기준으로 나이 고하에 엄청 민감하지야 않겠지만, 어린 놈이 멋모르고 나대는 걸 좋아하는 어른은 없는 법.

슬쩍 봐도 대부분이 스물 이상, 많게는 서른 중반대도 눈에 종종 띄었다.
10대라 할  있는 이라 해봤자 경험 차원에서 동행시켜 잡일을 시키는 둘 정도가 고작.
그들조차 10대 중반을 눈앞에 둔 이들이었다.

이곳 세계로 열다섯이면 이미 성인.
내 아바타, 에드릭은 성년식을 치르기엔 한참 남았기에 어쨌든 꼬맹이, 애송이라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지금 구도는 중요 물품을 내가 주가 되어 이들을 부림으로써 목적지까지 이송하는…  이것도 따지고 보면 택배 일인가? 상행이란  원래 그런 거지. 싸게 사서 비싸게 사줄 곳으로 가서 판매한다. 행상이며 무역이라는 게 뭐 별 게 있나.  거기서 거기다. 다만 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

이곳 세계 기준으로 도시 및 영지, 특산품에 대한 소문이 퍼져 나간 곳의 물품을 독점적으로 취급하냐 마냐에 대한 뭐… 이런 가지각색의 요소들을 헤아리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가장 이문이 많이 남고 추후 막대한 이득을 꿰찰  있는 요소는 역시 무역 쪽 일 수밖에.


규모도 규모지만 스케일도 차원이 틀리니.
그러다 운이  풀려 외교 행사에 동행해 한몫 단단히 잡는 거라던가. 같은 행상이어도 저런 곳에 꼽사리 끼면 배는 더 이문을 남길 수 있게 되며, 특히 이럴 때는 평소에 취급  하는 상품을 취급할 수 있는 자격도 주어지니 더욱 그럴 거다.
그런 식으로 돈을 불리며 실적을 쌓고 관계를 쌓아간다면, 당연 국가사업에 끼어들 기회도 얻게 될 테고 말이다.


애초에 외교 행렬 자체가 상인들 입장에선 한몫 단단히 잡을 수 있는 거대 이벤트다. 오죽하면 일개 행상인조차 보따리를 아득바득 쌓아 동참하려 들겠는가.

특히 자국 영토 밖은 위험하고 도적이나 마적, 무법자들이 판을 치기에 그걸 감수하고 호위 병력 고용하는 비용만도 천문학적인데, 그게 공짜네? 이것만 해도 본전은 거저 가져가는데 우리 제품이 저쪽 나라에선 굉장히 비싸게 취급한다지?

조선 시대로 치면 홍삼 무역 같은 걸 예로 들 수 있을 거다. 막대한 빚까지 지어가며  기회를 얻고자 작정하고 로비를 해대는 이유가 괜한 거였겠나.


거상으로 이름 높은 임상옥도 결국 그로 인해 조선 제일 부자로 거듭난 예도 그럴 거다.


…일일이 따지면 무역권 얻어 청나라 갔더니 가격 담합으로 다른 곳들은 죄다 헐값에 홍삼 처분해 막대한 빚만 지고 돌아간 반면, 그 위기를 역으로 일생일대의 기회로 이끌어 만상을 조선 제일로 만든 일화도 들 수 있겠지만….


심지어 노비 신분에서 기회가 주어져 밀무역을 통해 실력을 입증받고 출세해서 그런 기회를 얻은 거니, 이렇게 보면 운빨을 넘어 비범한 인물이 아닌가 싶다.
필사적이었다 하더라도 안 될 놈은 뭘 해도 안 된다.

그런 식으로 이름 모르게 묻혀가고 비참하게 생을 연명한 이들이 오죽 많을까.


‘이런 건 잘 아는데.’

알면 뭐해! 도움이 안 되는데!
거기다 이곳 세계가 과연 내가 아는 방식대로 굴러간다고 누가 보장하랴?
그런 걸 다 헤아리고,  수 있는 것과 없는  선별하는 작업이 필요하리라 추측되지만, 어차피 여기서 내 할 일은 그런 일이 아니니 거기까지 머리를 굴릴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킨 일이나 열심히 하고, 그 이상 할  있으면 행하면서….

로메리스와 작별하곤 전용 마차에 탑승한 뒤로는 지루함의 연속,


그저 내부에서 흘러가는 바깥 풍경을 넌지시 살피며, 그런 식으로 지루한 시간을 수일 반복해가며 자신을 되돌아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생각에 잠기다 때마침 생각나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선배가 말도 없이 사라져 궁금하던 찰나였는데, 전원을 켜니 당연한 듯이 메시지가 와있었다.



min:  일이 있으니 먼저 간다. 일주일 넘게 머물거란 이야긴 못 들었다! 아무튼 나도  놀다 가니 너도 수고하고. 동선이 겹치니 조만간 보긴  거다.
➥an: 예, 그때 뵙겠습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대댓글을 달 듯 답을 달아둔다.
그리고도 한참 그걸 살폈지만, 속도가 답답해서 결국 메모지 목적으로 생각을 정리하는데 사용하기 시작했다.

식사 때하고 잠들 때를 제외하면 언제고 움직였다. 부지런히 움직여야 목적한 날에 당도한다 했던가? 그래야 일자를 맞춰 추가 요금이 들지 않을 테니 말이다.

물론 여기서 추가 요금이란 용병들이 우리에게 지불하게 될 돈을 의미한다. 인솔과  안내도 그들 의뢰에 포함된 내용이니.


추가 요금 내더라도 사실 하루 이틀 치는 아쉬울  없지만,  이상이면 뼈가 아파지고, 오 일째를 넘기면 그때부턴 완전 적자로 굳어진다.


그래서 일주일째에 도착하면 이땐 여관에 몸을 의탁할 자금조차 없어 규모가 빈약한 이들은 길거리에 내앉기까지 한단다.


‘참 세부적이야.’


소설로 볼 때는 이런 것들이 거의 언급이 안 돼서  몰랐는데, 이곳 세계에 와서 계속 놀라게 되는 건, 단순 상상했던 것들이 대단히 디테일하게 펼쳐진다는 점들이다.

물론 대부분은 신기하다기보다는 지루하고, 건조하게 흘러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지만.


열흘간의 일정이지만, 가는 도중 도시 한 곳을 들러 그곳에서도 가져온 물품 일부를 기존 상인들과 거래한다 어쩐다 했지만… 거래의 주체가 될 내가 그걸 모르는데 어쩐담?


그러나 걱정한 것도 잠시.
사흘째 되는 날, 인근 도시에 도착한 직후 짐을 풀고 여독을 푸는 이들을 뒤로 한  나는 대기하고 있던 타 상회의 심부름꾼과 동행해 그곳 상회로 안내됐다.




“차  때하고는 또 다른 곤욕이죠?”


그리고 도착한 곳에서 다시금 본사 직원과 마주했다.
…어느  부서며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필요한 정보만 전달받는다.
필요하지 않는   필요도 없고.
알고 싶다면야 물으면 그만이지만, 구태여 그러지도 않는다.
마치 암묵적인 룰 마냥.


강제적이진 않지만 굳이 물으려면 여기서 묻는  아니라… 윅스타그램으로 물으라나? 거기 메신저 기능 쓰라는데,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말이나 언어로 남겼다가 정보가 누출되는 경우를 적극 금하려다 보니, 그런 관행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됐다.


“지내다 보면 익숙해지실 겁니다.”

적당히 환담을 나누고, 식사까지 겸하면서 여러 이야기를 듣고 돌아가자.


“엄청 깐깐한 양반인데 마음에 들었나 봐? 데이트도 그렇게 진득하겐  할 텐데.”

브리앙르도 그렇고, 일꾼이며 인솔 책임자들도 왠지 신기한 듯 날 주시해오고 있었다.

…기분이 조금 묘했다.
마치 진짜로, 잘난 놈이 된  같은 기분이 들었기에.
그게 그저 감투에서 비롯된 것임에도,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금수저는 아닌데… 이걸 뭐라 표현해야 될까?’



버스 탄다? 비행기 탄다? 흐음….
그냥 용 탄다고 해두자.
음, 이 비유 나쁘지 않은데?
자신의 발상에 살짝 흐뭇해서 무심코 대화 중 그 용어를 쓰자, 그들은 표정을 굳혔다.



“제가 뭐 누구 죽일 소리 했답니까?”



참고로  탄다는 비유는, 우리들 식으로 ‘비행기를 태우지 말라’ 하고 겸손의 표현, 아부성 표현에 대한 적절 대응 표현이 아니라, 우리 식으로는 호랑이 등에 태우는 것과 비슷한 의미로 쓰인단다.


본래는 ‘용에 매달아 버린다.’ 라는 표현을 본인이 자학적인 의미로 쓸 때, 용 탔다 혹은 용 날갯죽지에 매달렸다는 식으로 표현한단다.

즉, 잘못 말하다간 너희가  어쩌구 저쩌구 하려 했어! 하고 뭐라 말하는 식으로 들을 수 있었다는 거였다. 말투를 조금 완화해서 다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기에 망정이지.

…아직 배울   많은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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