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14. 이세계 수녀님은 서큐버스라는 게 학계 정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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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란 건 예나 지금이나 예상대로 안 이루어지는 법.
애초에 상단에 들어서기 무섭게 거기서 다시 외딴곳으로 파견될 줄 누가 예상했으랴.
명분은 그럴싸했다.
‘미리 친분을 다져둬서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걸세.’
그래서 순간이동, 텔레포트까지 쓰면서 당도한 곳이 이곳 교회.
이세계의 종교 계파는 여럿이지만 그 가운데 핵심이자 정통으로 분류되는 소브릴 정교회 소속이라 한다.
공부한 바로 이곳엔 아직 종교 개혁 전이라 개신교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지만, 가르침에 대한 해석 및 이해에 상반돼 계파가 갈렸고, 이런 가르침 등이 여러 나라에 흡수됐는데 문제는 각계의 왕족들이 여기에 심취해 엮이는 바람에 결국 종교 분쟁, 갈등을 통한 이념 전쟁으로 확대돼 국가 간의 전쟁으로까지 번졌다고 한다.
그러한 분쟁으로 무수한 이들이 도탄에 빠지자 한 사제가 여러 신자, 신도들을 불러 모아 교리에 대한 올바른 복권 및 이해의 다양화를 촉구… 어쩌고저쩌고해서 현재는 중앙 집권에 의거한, 권력에 의탁한 소브릴 교단과 달리 순수하게 종교적 의의에 목적을 두고자 하여 백성들이 주류가 되어 퍼져간 게 소브릴 정교회.
…예컨대 귀족이며 높으신 분들만을 위한 종교가 소브릴 교단이라면, 그 외에 소외된 계층, 힘없는 백성들이 믿는 종교는 대체로 정교회 측이라고 들었다.
‘이거 이해 안 하고 잘못 말하면 욕 엄청 먹는다고 했던가?’
정교회는 역사는 100년이 채 안 됐지만, 현재로선 주류로 여겨지고 있으며, 역사적으로도 소브릴 교단의 패착과 부정에 치를 떤 왕이며 귀족들이 정치적 박해를 통해 이들을 몰아냄으로써 그 입지는 지금 와서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해서 사실상 왕족에게 교리를 일깨워주는 조언자 역 정도로 전락했다고 한다.
자연스레 소브릴 정교회의 영향력이 커졌으며, 과거 소브릴 교단에서 사용했던 으리으리한 성당이며 교회 건물들은 현재 정교회 측에게로 양도돼 사용되고 있다고 배웠다.
인간 종교 하나만도 이러한데, 이후 인외 종족까지 들어가면 엄청 복잡해지는데… 모르는 것들 투성이다.
이 내용만도 책 몇 권 분량은 되는데, 소설 형태로 접해 학교 시험 형태로 문제를 풀었을 땐 정말 죽을 맛이었다. 나이 먹고 책상에 앉아 얼마나 샤프심을 갈아엎었는지….
“어서 오시지요, 형제님.”
젊어 보이는 사제 한 분이 미소 지으며 날 맞이해주었다.
검은 사제복을 입고 있는 그는 밝은 회색빛 머리칼을 지닌 준수한 청년이었다.
…알고 보니 신부님이었지만.
외딴 초원에 자리 잡고 있던 곳이다 보니 신자가 많을 수도, 그렇다고 종교적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로 뿌리 깊은 장소도 아니었기 왜 이런 곳에… 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뭘 알아야지.
다만 본사 직원의 말로는.
‘본사는 그 일대를 주시하고 있거든. 토지 조사부터 주변을 싹 다 살펴 가며 여길 써먹을지 말지, 그 여부를 검토 중이다.’
이유인 즉.
‘그곳에 도시를 건설하려는 것 같거든. 그를 위한 사전 조사에 접어든 거고, 구체적으로 구도가 잡히면 비용편익분석까지 진행돼 도시 건설 계획을 구체화 시키겠지. 이를 통해 투자 유치도 받고 일대에 영향권도 행사하고, 사업도 확장하고… 구체적인 건 몰라도 대강 이러지 않을까?’
물론 그런 쪽으론 아는 게 없으니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그나저나 비용편익분석이 뭐지 하고 쉬는 김에 스마트폰을 살펴 용어 사전을 살피니, 내용인즉 ‘어떤 안(案)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비용과 그로 인하여 얻어지는 편익을 평가, 대비함으로써 그 안의 채택 여부를 결정하는 방법.’ 이라 사전에 언급됐는데, 이걸 이해하기 쉽게 풀어 보면 고속도로를 만들려는데 눈앞에 산이 있다 치면 이걸 뚫는 게 이득일지 우회하는 게 이득일지를 셈쳐보는 거라 여기면 된다.
이때, 우회 도로를 구성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소요 되는 시간, 그로 인한 손해 수치서부터, 산을 밀거나 뚫어버려 생기는 이득과 자연적 손실, 동식물의 피해마저 숫자와 돈으로 셈 쳐 버리는 건데, 장기적으로 이득이면 산을 밀어버리고, 손해면 우회 도로를 설치한다는 걸 의미한단다.
여기에는 당연 공사 기간도 포함, 공사 난이도와 그에 따르는 인력 고용 및 장비 활용을 포함한 비용마저 포함돼 있다.
…이쪽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대강 이해하자면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지금이야 외딴 곳의 교회지만, 나중에 가면 입지가 완전히 틀려질 수 있거든. 이때를 대비해 여러 물밑 작업을 펼치고 있는 거다. 우리 뿐만 아니라 본사와 연결된 곳들도 은밀하게 이 상황을 주도하고 있지. 순차적으로. 이런 소문이 종교 윗줄에게 전달되면, 돈 냄새 맡은 것들이 들러붙을 거고, 소문이 형성돼면 없던 투자자도 생겨날 거고, 그런 정보들이 퍼져나가기 시작하면 구체적인 투자 정책을 밀어 붙….’
……그렇게 설명하면 저 잘 몰라요! 사회 초년생한테 너무 복잡한 이야기하시는 거 아니신지?!
물론 이해를 못 할 건 아니지만 그런 걸 진짜로 실행하고 그게 말대로 이루어질지 아닐지에 대해선 전혀 전망이 안 서는 걸 식견이 딸려서 일까, 단순히 멍청해서 그런 걸까. 들으면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그걸 진짜로 실행시킨다는 건 사실, 엄두도 못 낼 문제였기에 그저 감탄 아닌 감탄 밖에는….
‘…나는 그냥 적당적당 샤바샤바만 하고 오면 되는 건가?’
가서 며칠 지내다 오며 선물만 안겨주라 명 받았기에 그냥 거기에 충실하련다.
…사실 에라힘에서 아르세이유로 오는 여정도 편한 길은 아니었지. 그런 쪽으로 생각해보니 휴양 차원에서 왔다고 생각하면 전혀 문제 될 게 없게 느껴졌다.
게다가 여기 경치가 참 좋다. 날씨도 적당해서 앉아 펼쳐진 푸른 초원을 눈으로 살피는 건 제법 쏠쏠한 여흥이었다.
참 자연경관이 좋단 말이야. 우리 세계도 좋은 곳은 많겠지만… 생각해보니 집에 틀어박힌 이래 어딜 잘 안 갔었네. 바닷가조차도 고등학교 졸업 직전에 친구들하고 잠깐 가서 텐트 속에서 모기한테 신나게 물어뜯긴 경험이 고작이었고.
참다 참다 결국 빠져나와 바닷물에 적당히 몸 담그며 오징어 배가 환하게 야밤에 불 밝히는 것만 구경하다 텐트 돌아와서 잠들고, 대낮엔 땡볕 때문에 숨 막혀 그늘에서 멍하니 앉아 있다 무기력하게 돌아온 거 밖에는….
…그 뒤로 여행이나 어딜 가본 적이 없었네?!
대학 다닐 때도 공부에다 돈 번다 뭐다 해서 알바 뛴답시고 행사며 뭐며 다 빠진 채 수업만 나대다 결국 친한 애들 하나도 없이 내내 그러고 살았고.
“뭔 자아 성찰이냐.”
힐링하러 왔다가 부정적인 의미로 템플 스테이 온 기분을 느끼는 건 또 뭐람.
“안녕하세요?”
천사가 있었다.
…크흠!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진짜 천사다.
시스터 카멜린.
검은 수녀복, 다소곳한 체구의 그녀는 검은 머리 수건 사이로 풍성히 자라난 금발을 한데 묶어 굵직한 댕기로 내려놓은 상태였다.
끝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푸른 리본으로 잘 동여맨 게 유독 눈에 띈다.
그 외에도 머리 수건 사이로 비치는 금발이 참으로 인상적이라면 인상적인데, 본래는 머리칼이 아예 안 비치도록 바짝 감싼다? 쓴다? 그런 걸로 알고 있었는데… 여긴 좀 다른 건가?
나중에 듣기로 일하다 보면 그런 부분이 거슬릴 수 있기에 완화했다고 들었다.
노동하는 자는 그에 맞은 복장을 갖춰 입는 게 맞으나 수도자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는 선에서 복장은 유지하되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게 어쨌다 저쨌다?
그것만 제외하면 노출 부위라고 할 건 손을 제외하곤 사실상 전무했다.
다만 검은 수녀복 사이로 은연중 비추는 흰색 천들이 그것. 목과 쇄골 부위 외엔 양 손목 인근을 접어 덧댄 듯 커프스가 검은색과 확연히 대조적인 면을 보이고 있었다는 건데… 실제로 수녀복을 코앞에서 보는 건 이번이 처음. 애초에 성당이든 교회든 어디도 안 가는 입장인 내가 저런 걸 어찌 봤겠나? 버스나 지하철 탈 때나 잠깐 봤었는데, 그땐 관심이 없어서 별로 눈이 가지도 않았었던 걸로 기억한다만….
“먼 곳에서 오셨다고, 아폴린 신부님께 전해 들었습니다.”
“하하하… 거리가 먼 것이 대수일 지요. 그분으로부터 마음의 거리가 멀어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과장되지는 않지만 겸손하면서도 뭔가 있어 보이게.
타인과의 첫인상도 중요하듯, 타인과의 첫술, 한 마디도 퍽 중요하다 배워왔지 않나. 잊지 않았으면 실행한다. 그 뒤로는 상대와 눈을 마주하며, 동시에 상대의 반응을 관찰한다. 티 나지 않게, 자연스럽게.
웃는 얼굴에 생겨나는 자그마한 동요. 불안? 불쾌감? 아니… 이건 예상이 빗나갔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감탄?
“마음의 거리가… 그렇군요. 맞아요. 이렇게 또 뜻하지 않은 곳에서 또 다른 배움을… 감사드립니다.”
“아이고… 저야말로 감사하지요.”
의례적인 말대답. 뭐가 감사한지 내가 어찌 알리. 그러나 상대의 목례, 양손을 모으는 제스처를 따라하며 그대로 실행에 옮긴다. 음, 미러링, 백트래킹.
말재주 부족한 이를 위한 가장 적절한 스킬은 역시 이게 아닐까 싶었다.
이걸 머리가 아니라 몸이 알아서, 숨 쉬듯 반응하게 만들 것.
…마리 님, 오늘도 당신의 가르침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신부님께서 오늘 귀하신 분이 오셨다고 말씀하신 그대로였습니다. 이 또한 그 분의 은총….”
그러면서 또 목례 하며 기도… 나도 똑같이 따라 한다.
…아무래도 이곳에 있는 동안은 절실한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와 유사한 흉내를, 성의 차원에서 내야 될 것만 같았다.
처세가 위선, 가식적이니 진실된 자는 그럴 필요 없다, 하지 말라고 일축하는 이들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상대가 불쾌하지 않도록, 또 호감을 느끼도록 행하는 노력은 결단코 나쁘지 않다.
거짓됨이 역겨우니 화장도 안 되고 씻는 것도 안 된다? 그 맥락이면 이런 식으로도 적용된다.
여성이 주변 사람을 고려해 몸치장을 하고 단장하고 화장을 하는 걸 거짓됐다고 누가 매도할 텐가?
반대로 남자 또한 여성이며 주변에게 잘 보이도록 몸을 치장하고 화장을 하고 옷을 잘 꾸며 입는 걸 어찌 매도하려 드는가? 역으로 그런 노력조차 행하지 않는 이들이 불성실한 거 아닌가?!
…라고 인턴 때 ‘눈썹 안 다듬은 너희들은 성의 자체가 부족한 새끼들이다! 평생 솔로로 살아! 모태 솔로인 이유가 얼굴 못 생겼다고 핑계 대지 말고!’ 하고 일갈했던 건 아직도 상당히 인상에 잘 남아 있었다. 코털이며 면도는 그렇다 쳐도 눈썹까지 다듬으라니?! 심지어 검은 연필? 그거 화장 도구 같은 걸로 칠까지 하란다.
남자는 왜 안 하는데?! 여자가 네 얼빠진 눈썹 보고! 비듬 눌러앉은 눈썹 보고 네 성향을 꿰뚫어 본다 이 망할 것아! 하면서… 득달같이 내게 군대 조교처럼 쏘아붙인 것도 어제 일처럼 기억날 정도니 말이다.
…아니, 근데 못생긴 건 진짜 답 없는 거 맞거든요?! 누가 그러자 그분은 말하셨지.
‘그럼 돈 벌어서 성형해 새끼야! 성형 최강 국가에서 왜 성형을 안 하는데?!’
오히려 너무 뻔뻔하게, 당당하게 그리 쏘아붙여 하소연하신 분, 바로 꿀 먹은 벙어리 되셨다.
마지막으로 그분은 당당하게 이리 말하며 당시 교육을 종료했는데.
‘예뻐지는데, 아름다워지는데, 멋져지는데, 쿨해지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라. 잘 생김도 이젠 스펙이고 기술이고 능력이다. 뼈를 진짜로 갈아! 뼈를 가는 노력만 했다 입으로만 떠들지 말고! 다 갈아엎어!’
나는 좀 황당해서 그대로 있었는데, 이에 격렬히 공감한 이들은 기립해선 열렬히 박수를 쳐댔다.
‘그리고 지금 박수 안 친 새끼들이 면상 금수저 은수저 새끼들이니 너희들 잘들 기억해둬라. 못 생김의 서러움을 안 겪어 봤으니 저러는 거다.’
라고 뒤끝도 엄청 심했다는 것도.
…아니, 저도 모태 솔로에 못 생김이 패시브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