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15. 낮에는 성녀, 밤에도….
사람은 누구나 바뀔 수 있다.
소심했던 이가 그놈의 술만 마셨다 하면 겁 대가리를 상실하듯 말이다.
잠들기 전의 그녀는 순수한 의미로 신심이 투철한 수도녀.
물론 그 신심의 기반은 진정한 의미로 신께 모든 걸 다 받친다는 각오며 다짐, 맹세에서 비롯된 건 아니지만, 유년기 시절부터 그 능력 때문에 시달리던 도중, 인연이 닿아 그녀를 이해해주는 이를 만났으니, 그분들이 하필 신부님과 수녀님이었다는 것.
어린 그녀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또한 동경하는 마음, 그들과 같이 남들을 돕고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에 그녀는 지금 베일을 쓰고 검은 수녀복을 걸친 채 십자가를 움켜쥐게 됐다는 거였다.
과정들은 순탄치 않았다. 규율이며 규제에… 평범한 사람들로서는 아무렇지 않게 여길 것들을 새삼 경계해야 하고 멀리해야 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해내리라 다짐했기에 능히 그 모든 과정을 버텨낼 수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꿈속에서의 그녀는 그녀인 동시에 그녀가 아니었다.
술에 잔뜩 취했을 때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의미로 바뀐다.
꿈결이라 그러한 것들을 조절하지 못한 채 매 순간 본능에 몸을 내맡기곤 했었다.
그러곤 깨어나서 자괴감에 몸부림쳤지만 꿈인 걸 어찌하겠나.
세월이 흘러 점차 꿈속에서도 자신을 제어할 수 있게 됐지만, 그만큼 꿈속의 그녀와 자신에 대한 괴리감, 이질감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꿈속에서의 그녀는 항상 자신감이 넘쳤다.
어여쁜 외모를 이용해 의도대로 상황을 이끄는 걸 너무도 당연시 여겼으며,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고 매일 같이 스스로를 타이르고 다독이곤 했다.
꿈에서 그녀와 마주한 이들 대부분 그녀의 격정적인 유혹에 못 이겨 순순히 몸을 맡겼다.
정말로 서큐버스, 몽마라도 된 것처럼 그녀는 그들의 의식 저변에서부터 신체에 즉각적으로 영향이 미칠 정도로 격렬하게, 누구보다도 격렬하고 열정적으로 그들을 쥐어짜고 또 짜냈다.
물론 혹사당한 이들 모두가 꿈에서 깬 뒤로는 자신을 보며 민망한 표정을 짓는다던가, 이유도 모른 채 감동인지 고마움인지 모를 태도를 보이기까지.
그녀로선 이런 사실을 모르는 체하는 것조차 상당히 낯부끄러운 일이었다.
외딴 곳에 와서 인간 아닌 인간다운 신부님의 힘으로 발작을 간신히 억제하곤 하나, 지금처럼 외부인이 당도하면 여지없이 꿈속의 그녀는 자신만만하게 입술을 훔치며 수녀복으로도 전부 감출 수 없는 그 매력적인 몸매를 한껏 과시하듯 적극적인 몸짓으로, 예의 유혹적인 포즈로 그들의 눈길을 사로잡곤 해왔다.
언제나 두 눈을 번뜩이며 상대로 하여금 자신을 덮치지 않으면 배기지 못하게끔 그들의 옅은 의식과 팽창해가는 무의식에 불을 지피기까지.
그조차도 안 돼? 그럼 내가 덮치고 말지! 그래 봤자 꿈속인데 자기들이 어쩔 건데?
현실이라면 이성이 온전하게 발동하기에 어떻게든 거부할 수도 있겠지만 꿈속에서, 무의식의 늪에 빠져든 그들은 결단코 그녀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꿈속의 자신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음란하고, 모두가 난색을 표할 정도로 그런 쪽으로 능수능란했다.
그런데 이 소년은 그런 자신을 무려 3번이나 거절… 본인은 거절이 아니라 말하지만 거부했던 거였다.
거기다 3일째 되는 날은 작정하고 덮치려 했는데도 밀려났기에, 꿈속의 카멜린은 자존심이 잔뜩 상해 있다고 신부님은 덧붙였다.
“그러면 시스터 카멜린은… 수녀가 아니어도 괜찮다 이건가요?”
신앙 속 가르침만 봐도 그런 쪽을 생각하고 음심을 품는 것만으로 사실 배척 당하고 내몰리기 충분하다는 내용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났지만… 생각해보니 이건 우리 세계 이야기잖아?
“맹세한 바가 있어서 눈을 뜨고 있을 때만큼은 제 자신을 충실하게 다독이며 가르침에 따르며 타인을 위해 헌신하고자 해요. 그 마음은 아직도 변함이 없어요. 그래도 언젠가는… 꿈속에서라도 저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 믿고 있어요. 그게 제게 도움을 주신 분들, 제게 기대해주신 분들께 작게나마 보일 수 있는 유일한 보은이 아닐까 하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시스터 카멜린은 침착한 어조로 그런 속내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말이 참 곱다. 말하는 내용 하나하나가 주옥같다고 할까.
성실함, 친절함, 상냥함의 기운 같은 게 느껴질 정도였다.
꿈속에서 보았을 때의 그 붉게 물든 눈과는 달리, 지금의 그녀는 지혜와 혜안을 담은 것 같은 눈, 마치 맑은 하늘의 한 풍경 혹은 투명한 호수의 정경을 담은 것처럼 아련한 빛을 내고 있었다.
에드릭은 고개를 끄덕여 그녀의 태도에 공감을 표했다.
본인이 희망하는데 외부인인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지. 거기다 더 나은 대안을 내놓지 못할 거라면, 그녀의 믿음에 힘을 보태주는 정도가 족하다고 에드릭은 생각했다.
거기다 살다 보면, 시간이 지나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를 일이고.
자신만 하더라도 이 나이 먹기 전까진 적당히 취직해서 적당히 살 거라고만 생각했지, 이런 세계에 전혀 다른 몸으로 파견될 거라 어찌 예상했겠는가. 세상일이란 이렇듯 예상을 초월한 일이 빈번하게 이루어지곤 한다. 대학생이 전공 학과 나왔다고 항상 그쪽 일만 종사하는 게 아닌 것처럼.
“그렇게 됐으니 아무튼 잘 부탁하네.”
“저기, 그런데 제가 어떤 식으로 도움을 드려야 할지….”
“그냥 머물 곳만 마련해주고 그러면 되네. 오히려 그녀가 자네를 도왔으면 도왔지, 어디 내다 놓은 아이 걱정하듯 그녀를 돌보고 책임질 필요는 없네. 안 그런가, 시스터 카멜린?”
“예. 에드릭 님을 따르면 많은 이들을 도울 수 있을 거란 예감이 들어요. 다만… 아무래도 꿈을 꾸게 될 때는 이것저것 문제가 될 수 있으니 그때는 잘 부탁드려요.”
…아니, 저야 물론 마다할 이유가 없지만, 이거 너무 노골적인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만? 거기다 매번 붙어 다닐 수도 없는데….
“자네 걱정을 모르는 건 아닐세. 적어도 꿈속에서의 카멜린 만큼은 진실 되게… 제대로 대해주라 이거야. 녀석은 저리 음란해 보여도 실상은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꼬마에 불과하니까. 몸만 컸다 뿐이지, 제대로 이성적인 대화나 교감, 관계를 형성해본 적이 없네. 적어도 몇 차례 유혹을 물리친 자네라면, 그녀를 진실 되게 대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드네.”
“제가 그다지 특별한 건 아닌데, 그녀를 도울 수 있을까요?”
“특별해서 특별한 일을 하는 게 아닐세. 특별한 일을 했기에 특별해지는 거지.”
“으음….”
부인할 수가 없었다.
따지고 보면 여기 있는 거 자체가 이미 특별하다면 특별한 일이니.
비록 본사 기준으로는 말단 사원에 찌끄레기에 불과할 테지만, 그걸 제외하고 보면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 할 수도 없을 테니.
“거, 까짓거 함 해보죠.”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밈(meme)을 본받아 그리 답하고야 말았다.
“좋은 대답일세.”
신부님은 몹시 흡족한 듯 보였다.
…샷건 들고 다가와선 ‘내 딸아이를 슬프게 하면 이거 보이나? 이 총구가 네 녀석 입속에 처박힐 거다! 항상 감사하며 살아라, 이 씹어 죽일 날도둑놈아!’ 같은 실질적이며 담백한(?) 협박은 아니었지만, 저런 식으로 ‘나는 널 믿고 있단다!’ 하는 자상한 시선도… 뼈 아프기는 매한가지.
기대를 충족 못 시킬까 봐 괜스레 불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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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만났네?”
언제쯤 잠드나 생각하며 누워 있던 게 함정이었다.
확실한 건 그녀가 인근에 있으면 불면증이니 뭐니 해서 잠 못 드는 일은 없을 거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런 예가 없었는데 눕기 무섭게 언제 꿈속에 들어섰는지 자각조차 못 할 뻔했으니 말이다.
“그러네요.”
“이젠 문제없지?”
“크흠!”
물론이죠! 하고 흔쾌히 답해야 마땅했지만, 수치심이랄까 뭔가 뻘쭘한 느낌이 들어 애써 헛기침으로 일관했다.
“솔직하지 못하기는.”
예의 붉은 눈, 색이 옅어 분홍빛에 가깝게 물든 그녀의 두 눈이 이쪽을 차근차근 관찰해온다.
초조한 듯, 그럼에도 침착함을 최대한 유지한 채 온몸을 훑어보는 그녀의 눈초리는 가히… 다 잡은 먹잇감을 눈앞에 둔 맹수의 그것.
자, 구도를 한 번 살펴보자.
야밤에, 달빛이 그윽한 이 와중에 수녀복을 입은 미녀분께서 그렇고 그런 관계를 맺고자 방문하셨다? 리얼 땡큐지! 나라고 뭐 다를쏘냐?!
거기다 본인이 좋다는데,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취미는 없는지라 이쯤에서 나도 적절히 순응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음, 어떤 식으로 시작하셨으면 싶으세요?”
“그걸 나한테 묻는 거야?”
살며시 고개를 기울이며 그리 물어오는 카멜린.
현실에서의 상냥한 얼굴, 침착하면서도 어딘가 안정적인 그 표정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고혹적인 미소를 짓는 그녀. 깨어 있을 때와 꿈속의 그녀는 분명 동일한 외모, 얼굴, 몸을 지니고 있음이 분명했음에도 마치 전혀 다른 타인을 대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미인을 보면 사내 된 자로서 본능적으로나마 그런 쪽으로 생각이 안 휘둘릴 수가 없는 바.
그럼에도 조용한 예배당에서 화사하게 내려앉은 볕 사이로 고결하게 양손을 마주 모아 기도를 올리는 그녀의 그 성스러운 모습이 불쑥 떠올랐다.
동시에 두 눈에 비치는 카멜린의 모습이, 지금처럼 음란한 시선으로 자신을 끌어안고 입을 훔치러 접근할 것 같은 그녀의 개방적인 반응,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모순감, 갭이 너무 막강했기에 그것만으로 이미 기대감과 묘한 배덕감에 취해 심장이 폭발할 것처럼 두근대기에 이르렀다.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그녀의 가슴을 매만진다. 움켜쥐기 전 살짝, 닿자 마치 호응해오듯 그녀가 무게를 실어오기까지. 적당한 볼륨의 가슴, 딱 좋은 크기의 가슴이 손아귀를 한가득 채워오자 내 물건도 그쯤 되자 못 참겠다는 듯 가랑이 사이로, 바지를 꿰뚫기라도 할 듯 존재감을 피력해오기 시작했다.
“하아~ 작은 짐승 어루만지듯 조심스러운 그거, 무척 마음에 드는구나. 흥분한 상태임에도 내가 민감하게 반응할까 봐, 불편해할까 봐 차마 본능에 몸을 내맡기지 못하는 그 태도… 무척 먹음직스러운데?”
“…그, 그런가요?”
“후우! 아무래도 꿈이잖아? 다들 의욕적이고 욕망에 충실하다 보니 전부 짐승들처럼 거침이 없었거든. 그게 싫다는 건 아니지만…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라.”
카멜린이 적극적으로 몸을 밀착해오자 다른 의미로 향긋한 향이 정신은 아득하게 이끌었다.
왜 이리 좋은 냄새가 날까. 분명 똑같은 비누에 똑같은 강물로 몸을 씻을 텐데고,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달콤한 우유와도 같은 향기는 절로 이쪽의 호흡을 거칠게 재촉하며 다독여왔다.
자연스레 내 몸을 무너뜨려 침대 쪽으로 이끈 카멜린.
본격적으로 맛을 보겠다는 듯 두 눈을 요사스럽게 번뜩이며 입술을 요염하게 훑는 그녀의 안색은 붉게 달아올랐음은 물론, 호흡조차 좀 전보다 훨씬 거칠어져 있었다.
마치 집요한 애무로 몸이 달아올랐을 때 보일 법한 반응들. 거기에 전염되듯 나 또한 검은 옷 한 겹 사이로 감춰진 그녀의 몸의 감촉을 맛보고자 적극적으로 손을 내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