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54)화 (54/454)



〈 54화 〉16. 나름의 일상.

그 뒤로도 하루를 더 그런 식으로 보낸 둘.
친근함을 넘어 이쯤 되면  이상의 감정을 느끼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서로를 대함에 있어 어색함, 생소함 등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황.
그저 낯부끄러움이란 장막이 드리운 상태였기에 그걸 해소하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물론 이 고민은 비단 시스터 카멜린 개인의 문제였으며, 고민거리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자칫 잘못하면 욕정에 의한 감정이 친애며 애정으로 발전할 것을 그녀는 경계하고자 거듭 마음을 바로잡아야만 했다.

그도 그럴게….


‘하아.’

무심코 식사하는 에드릭을 보며 혀로 입술을 훔쳤다.
입술이 바짝 말라 드는 기분이 들어 무심코 행한 거였는데….

“!!”



꿈과 달리 현실에서조차 이젠 그를 보는 눈길이 예전과 같지 않음을 깨달았다.
의외로 에드릭은 꿈과 현실의 경계선을  지키고 있는 반면, 그녀만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본능과 욕정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꿈속에서조차 자제심을 발휘한 에드릭인데, 현실은 오죽할까.

덕분에 카멜린만 죽을 맛이었다.
안 되는 줄 알면서, 아닌 줄 알면서도 자꾸만 시선이 가고, 가슴이 불안정하게 두근대는 건 물론… 괜스레 아랫배가 욱신거리는 느낌이 들질 않나, 남사스럽지만 그곳도 왠지….



‘정신 차리렴!’


고개를 세차게 도리질한 그녀는 이윽고 빨래에 전념했다.
에드릭의 이부자리가 그 지경이 되듯 그녀의 이부자리도 처참하긴 마찬가지였기에, 그녀는 에드릭 몰래 강가에 와서 이불을 빠는데 여념이 없었다.


 이곳을 뜰 생각에 우울할 법도 했음에도, 좀처럼 눈치를 보느라 그조차도 까맣게 잊어버린 자신이 그녀는 생각 이상으로 못마땅했다. 자괴감이 든다고 할까, 이상하게 우울감이 든다고 할까.

그나마 강가의 차가운 물과 이불을 적셔 손 빨래를 하는 와중에는 몸을 쓰는 작업에 열중한 덕에 그러한 잡념에 휘둘리는 일은 적었지만…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또 에드릭이  늠름함이 불쑥하고 떠오르는 통에 한숨을 달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하아.”



물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폴린 신부님이나 에드릭으로서는 의아할 따름이었지만….



“역시 꿈에서 했던 행위에 신앙적인 그… 뭐랄까,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걸까요?”
“자기 본분이 있다 보니 자괴감이 들 수는 있겠지. 그런 건 이해하게.  아이는 저래 보여도 무척 순수하고 세파에 찌들거나 물든 바가 없는 무구한 아이니 말일세.”



어느 정도 본질을 꿰뚫은 신부님이었지만, 그 자괴감의 출처가 에드릭을 향한 애정과 욕정이 뒤섞여 변질되는 걸 경계함에서 비롯된다는 것까진 헤아리지 못했다.
그러기에.


“내심 종교에 몸을 맡긴다곤 하나, 나로서는 순수하게 좋은 청년 만나서  됐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그건 차차 이뤄가면  것이니.”




하며 에드릭에게 무언의 압박인지 격려인지 알 수 없는 시선을 던지는 신부님.
그런 식으로 카멜린은 자꾸만 촉이 그쪽에 꽂히다 보니, 이젠 정말로 자신이 에드릭에게 애정을 품은 건지 아닌지조차 헷갈리기 시작했다.

아니, 당연히 그럴 리는 없는데… 어떻게 사람이 몸을 접하는 것만으로… 살을 접하는 것만으로 애정이 생긴단 말인가.

‘그건 너무….’




낭만이 없다고 할까, 야만적이라고 할까,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


물론 이런 쪽의 경험이 전무하고, 과거에 벌어졌던 꿈속에서의 일들은 대부분이 그녀의 의도와는 어긋난 방향으로 이루어졌기에 현실상에선 철저히 배척하며 꺼려하는 태도로 일관할  있었지만… 에드릭의 경우는 일정 부분 마음을 허락한 정보 밖에 안 되는데, 그러기 무섭게 홍수처럼 쏟아지는 돌발적인 감정은 자못 당혹스러움을 넘어 혼란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때문에 그녀는 이 혼란이 무언지 제대로 정의 내릴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의외인 점은, 에드릭은 이 어색한 흐름 속에서도 크게 개의치 않는 면모를 보이며 그녀를 나름 배려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는 점.


‘당혹스러울 만도 하시겠지.’



…방향성이 살짝 어긋나긴 했지만.


이걸 지켜보던 신부님은, 그냥 솔직하게 이야기하며 조금만 밀어붙이면 뻔히 시스터 카멜린이 항복하고 함락 당할 게 눈에 보였음에도, 둘의 순수한 맺어짐에 초를 치지 않고자 애써 지켜볼 따름.

그렇게 눈치를 줬는데도 반응이 저런 거 보면 에드릭 저 녀석도 카멜린 못지 않게… 크음!

에드릭은 철저히 그녀 입장에서 이해해주려 노력했다.
어쨌든 서로가 윈윈해야 한다는 게 그의 철칙이었으니까.
어쩌다 이런 쪽으로 마음을 굳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그쪽이 마음이 편했다.

연애를 만화나 영화 같은 걸로 배울 생각도 없었고, 솔직히  나이 먹도록 모태 솔로였지만 연애에 대해 크게 신경 안 썼다고 할까. 관심을 안 뒀다고나 할까.

‘먹고 살기도 힘든데 연애는 무슨.’


나름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 경제적 여건이 갖춰지면 고려해보겠다고 생각해둔 게 지금에 이르렀지만, 어차피 자신만 유별난 게 아니었기에 신경 쓰지도 않았다.
인싸니 뭐니 해서 클럽 간다 어디 간다 하는데, 그런 식의 만남은 애당초 바라지도 않았고 기이할 정도로 관심도 눈길도 가지 않았다.

아, 게임하랴 책 읽으랴 영화며 드라마 보랴, 그런 식으로 쉴 새 없이 시간을 죽여서 그런가?
세상엔 별의별 인간들이 있으니 새삼스러울 건 없다만.

그런 식으로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당연  전날도 진탕 꿈속에서 날뛰었던 터라 둘은 깨어나기 무섭게 참담함을 느껴야 했다.


약속된 전개이긴 했지만, 이부자리가 아주 개판 난 건 어째 겪을 때마다 충격이랄까, 익숙해질 때도 될 줄 알았는데 좀처럼 익숙해지질 않았다.

“이럴 거면 그냥 한 침대 쓰는 게 나을  같은데.”



카멜린이 이불을 바구니에 담아 몰래 빨래를 하는 걸 알기에  수 있는 말이었다.
…당연 면전에 대고 이런 소리를  정도로 자신의 낯짝이 두껍지는 않았지만.


알면서도 부끄러운 게 있는 거고, 머리로는 뻔히 이해하면서도 직접적으론 말 못 하고 표현 못 하는 사정이란 게 있는 법.
에드릭은 그런 사생활에 대해선 철저히 개인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주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부끄럽고 뻘쭘한 거면 남도 그렇게 생각할 테니 말이다.
특히 그녀는 신앙 생활이 몸에 밴 시스터. 더 심하면 심했지 부족하진 않을 터다.
아무튼 정리가 끝난 뒤엔 셋이 모여 조찬(朝餐)으로 마지막 날을 기념했다.
식사를 이어가며 신부님은 덕담을 이어갔으니.

“카멜린, 가서도 몸조심하거라. 내가 준 팬턴트는 항상 품에서 떼어놓지 말고.”
“예, 신부님.”
“자네도 우리 카멜린을 잘 부탁하네.”
“예, 걱정…마시라고 단호하게 말씀드리지 못하는 점이 못 미더우실 수도 있겠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자네는  할 것이네. 허허허!”


어떤 근거로 그리 말씀하시는지요? 하고 묻고 싶었지만 에드릭은 애써 쓴웃음으로 대신 속내를 표현했다.

그나저나 진짜 괜찮을까 모르겠네. 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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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회로 돌아왔을 때, 이전에도 가장 먼저 달려와 날 맞아 준 분이 앞서 날 맞이해주었다.


마치 소식을 따로 듣기라도 한 듯 타이밍을 맞춰 등장한 통에 당혹스러운 감이 있었지만….

“여기 이 분은…?”
“아, 이쪽은 시스터 카멜린…입니다. 그러니까….”
“아, 그렇군. 자네가 해낸 건가?”

해내? 뭘요?


“거 대단하군! 하하하! 이럴  아니라 안으로 들지.”


중년 사내는 이곳에선 휴즈 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봐도 적당히 배가 나온 중년 사내였지만, 당연 저 모습도  꾸며진 아바타.
예컨대 그는 본사 사람이었다.
어느 부서인지까진 모르겠지만.



“사정은 우리도 잘 알고 있네. 그에 대한 도움을 주기로 한  우리인데 모를 리가.”
“으음….”
“내가 그런다는 건 아니지만, 자네가 그녀를 이끌었으니 그에 대한 일도 자네에게로 일임되지 않을까 싶군?”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우선은 그녀가 제어하지 못하는  능력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데 도움을 줘야겠지, 아마도?”
“…방도가 있는 겁니까?”
“상상 이상으로 우리가 몸담은 곳은 역사와 뿌리가 깊어. 그 이상으로 아는 것도 많고.”
“흐음….”
“겪어보면 알게 될 테니  점은 크게 개의치 않아도 될 걸세.”



 뒤로는 이곳 도시에서 머물 거처에 대해 전달받았다.



“적당한 크기의  하나를 구해놨으니 당분간은 그곳에 머물도록 하게. 일 열심히 해서 성과를 늘리면 사는 곳이 더욱 풍족해질 걸세.”


그러고서 안내된 곳은, 도시 내에 있는 아담한 크기의 집이었다.

대략 사람 셋 정도가 살 수 있겠다 느껴지는 집이었는데, 1층을 거실 겸 아무튼 다목적으로 활용할 법한 공간이 있다면 2층은 딱 잠들기 적당한 크기의  3개가 있었고, 그 위는 사실상 창고 대용으로 쓸 법한 천장에 해당했다.

1층 아래로도 창고 비슷한 공간이 있는 걸 보면, 위아래 골고루 비품이며 물품 등을 담아두면 되겠다 싶었는데….

‘설마하니.’


여기서 현대식 화장실을 만나게 될 줄이야.
가장 보람차고 감동적인  이 부분이었다.


솔직히 처음 와서 가장 당황한  볼일 보는 문제였으니까.
휴지도 없겠다, 천으로 일일이 다 닦아내고 그걸 물로 빨고 이러면 진짜… 어우….
그나마 목욕 문화가 발달한 덕에 망정이지, 정말로 우리 세계 중세며 근대 오기 직전 마냥 똥을 통에다 싸지르고 그냥 밖에다 뿌려대고  씻지도 않고 이래서 온몸에 냄새가 진동하고 이런 추세였다면… 판타지 세계고 나발이고 진작 정나미가 떨어졌을 거다.

그래, 정말 다행인 점이지. 과장 하나 안 보태고.

애초에 마음이 맞는 여성과 관계를 맺으려는데 온몸에서 그런 악취가 진동한다 가정해보라. 이곳에 살아가는 이들이야 익숙하니 그러려니 할 테지만 우리 같은 청결한(?) 세상에서 살아온 이들로선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 됐을 터였다.




‘목욕 만세다!’



1층엔 볼일을 처리하는 화장실과 적당히 몸을 씻을 세면 겸 욕실이 따로 구분돼 있었다.

아무래도 현대식 변기가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볼일 보는 곳은 더럽다는 개념이 충만한 이곳에서 목욕을 거기서 겸한다? 초기에 공간 절약한다는 마인드로 그런 식으로 건물 지었다가 현지인들에게 왕창 욕먹었다는 소식을 본사 윅스타그램에 개재된 칼럼으로  기억이 난다.


…나중에야 익숙해져서 그러려니 했다지만, 아무튼 그렇다는 모양이다.




“이거는…?”

그리고 그런 걸 접한 예가 없었던 시스터 카멜린에게 이 점에 대해 설명해주느라, 괜스레 진땀을 흘려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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