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58)화 (58/454)



〈 58화 〉17. 졸지에 이게 이렇게 되네?(2)

“그런 말씀을 들으니 마음속 근심이 전부 씻겨 내려가는 것 같군요. 정말 잘된 일입니다.”

그리고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또 다른 귀족을 소개받는다는 사실에 살짝 고무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오셨군요.”

막상 그녀와 마주하여 그녀의 집안, 예컨대 데이엔 가문 쪽 사정을 듣게 되자 상황이 이상하게 굴러가게 됐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환영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데이엔 가의 가주, 테티아나라 해요. 소개가 복잡한 것보단 이런 식으로 가벼운 쪽이 편하시겠지요, 에드릭 님?”
“예, 배려 감사드립니다.”

헤다가 젊은 안주인, 귀부인 느낌을 준다면 그녀는… 뭐랄까.

“후훗!”


안주인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가주된 자, 한 가문의 주인 된 자라는 선입견이 틀어박힐 정도로 매우 강렬한 아우라를 뽐내고 있었다.

 치 어긋남 없는 예법을 보이면서도 어딘가 자유분방하면서도 거침이 없는 듯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솜사탕과 같은 몽환적인 머리색이었다.
연푸른 색감의 머리칼과 그와는 대조적인 짙은 적갈색을 연상하게 하는 두 눈이 사뭇 인상적이다.

옅은 와인색을 띄는 원피스, 일체형이지만 아래가 짧다. 무릎 위는커녕 거의 허벅지에 닿을  말 듯한 높이니.
대신 그 아래로는 승마용 바지를 연상하게 하는 새하얀 바지와 굽이 살짝 높은, 두께가 완고해 보이는 구두는 마치 군화를 떠올리게 만든다.

몸의 각선미며 전체적인 선이 무척이나 곱지만 다부진 느낌이다.
허리춤에 매달린 두 자루의 길고 짧은 칼은 레이피어와 망고슈가 아닐까 싶었다. 와, 용케 알아봤네?


그건 그렇고….


“소문으로는  전도유망한 사내가 될 거라 해서 이렇게 직접 찾아뵙고 싶었습니다.”
“…하하, 과찬이십니다.”


아니, 나이도 한참 어린데다  귀족도 왕후장상도 아닌데 도대체 왜들 그러세요?! 사람 불안하게…!

“그리고 결례가 안 된다면 혹여 지금 약혼 내지 장래를 약속한 여성이 있는지, 물어볼 수 있겠습니까?”
“장래… 말입니까?”



없지? 있을 리가….

“그렇군요.”

따로 대답을  했음에도 반응만으로 충분히 유추가 가능했던 것일까.
그녀가 활짝 웃으며….

“그럼 쉽지 않은 부탁을 하나 드려도 되겠는지요?”
“예… 말씀하시지요.”
“혼약을 맺어 달라는 건 아닙니다.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제 딸아이와 합방을 해줄  있겠습니까?”
“……??”

뭐임? 뭐가 어떻게 된 거임?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는 거냐?


“티나, 사정을 너무 생략하셨어요.”
“음? 그런가? 어차피 본론은 그게 아닌가?”


미약한 한숨으로 그녀를 제지한 헤다 부인.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세요. 전혀 기반 사정 설명 없이 귀족 영애와 합방을 해달라 요청하는  어느 나라 법도입니까?”
“우린 딱히 상관없는데?”
“…그건 당신 가문 한정된 이야기 아닙니까?”
“아니, 그래도 다들 말만    축제라던가, 뭐 여러 가지 감정적 교류를 겹치다 보면 이렇게도 하고 저렇게도 하는 거 아닌가? 그러니 귀족 가문에 사생아가 끊이질 않는 거고… 너야 워낙 남편을 잘 붙잡고 사니 예외라 치지만….”
“그런 상스러운 이야기는 손님 앞에서 꺼낼  아니지요.”
“상스러울  뭐 있다고. 사랑을 나누고 감정적 교류를 이어가는  결코 부끄러운 게 아닐세나? 나는  이걸 상스럽게 여기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가네만.”
“…후우.”



어지간하면 곤혹스런 모습을 보이질 않는 헤다 부인이지만, 그녀의 노골적이고 진솔한 표현엔 제법 고생하는 듯 싶었다.


“하여간 주위 눈치 보는 건 여전~하군.”
“티나 당신이 이상한 겁니다.”
“억울하면 가주되시던가요.”
“억울할 것도 없습니다. 저는 제 삶에 만족하니까요.”
“으엑…  남편 자랑하려고. 미혼녀 서러워서 어디 살 수나 있나 모르겠네.”

미혼녀?

“제 입으로 당신 가문 사정을 설명해드리오리까?”
“음, 그래도 상관없는데? 이미 알만큼 다들 아는 이야기 아닌가? 지금 와서 유난 떨 것도 없고 말이지.”
“좋습니다. 그러면 제가 짧게 설명하겠습니다.”

음, 그녀의 말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데이엔 가문은 어느 나라의 왕족 출신이었지만 반역에 연류돼 국외 추방, 그 뒤로 절대 남성이 주가 되어 가문을 형성하는 걸 용납 않으며, 이를 맹세하지 않을 시엔 죽음을 면치 못하기에 결국 이를 수락한 당대 왕자 중 하나가 국외 추방되어 귀족도 아닌 흔한 상인 집안의 여성과 결혼, 이후 낳은 딸 아이가 가주가 되었는데, 여기서  사정이 이상하게 엮여 아예 배우자를 맞이하지 않으며, 심지어 사내를 낳을 시 사내를 내쫓는 게 집안 관례가 되었단다.

전쟁이 남발하는 시기엔 따로 가주 위를 계승할 사내가 없어 불가항력으로 여식이며 영애가 가주 위를 계승하는 경우가 드문 건 아니지만, 데이엔 가는 완전히  반대 뿐 아니라 확연하게 기이한 노선을 타고 있던 셈인데, 그런  벌써 3세기 이상 이어지다 보니 당연한  굳혀졌단다.

“그래서 저한테 말씀을 주신 거군요. 그런데 그게 제가 데이엔 가의 영애 분하고 합방을 하게 되는 이유가….”
“스스로를 너무 과소평가하시는 건지, 아님 겸손을 표하는 건지 궁금해지는군요. 정말 몰라서 그러시는 겁니까?”




데이엔 가의 가주님께선 뭔가 답답한  표정을 찌푸리고 있었다.
아니, 정말 모르니까 이러는 거 아닙니까?!


“그레고릭 에드선, 마르뎅 칼빈, 에우랑 아르가쉬.”
“음?”
“전부 아시는 인물 아닙니까?”


아는 인물이라기보다는….


그레고릭 에드선은 구레아 상회의 주인이고, 다르뎅 칼빈? 아,  칼빈이었어? 지금 속한 마르뎅 상회의 주인이고… 에우랑 아르가쉬는… 그거 뭐냐, 예전에 암기할 때 본 거 같은데 누구였더라?


“아.”


에우랑 아르가쉬.
현 브란들린 왕국의 재상직을 겸하고 있는… 아무튼 본사 직원  한 사람.



“브란들린의 재상 분의 후원을 받아 구레아 상회에서 여러모로 활약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후 또 다른 목적을 위해 이곳까지 오셨다고 들었지만 자세한 내막에 대해선… 음, 이거 뒷조사했다고 너무 서운해하고 그러진 마세요? 우리들 세계에선 흔한 일입니다. 실례를 안 하고, 무례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말이죠. 또 관계며 교류를 위해서라면 언제나 상대의 신상 정보 파악은 필수불가결한 거니까요.”
“예, 충분히 이해합니다.”


감정적으로 껄끄러운 건 별개의 문제지만, 겉으로 티 내지 않도록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해야만 했다.

예컨대 이런 거다.

저들은  아무래도 귀인, 귀족, 어쩌면 그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인간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품고 있는 모양인데… 음, 그딴 거 아니거든요? 그런데 이걸 구태여 말할 필요가 있겠나 싶다.

그나저나 그 칼빈이라는 양반하고는 아직 일면식도 없는데… 흐음. 아니, 그 맥락이면 그레고릭 에드선이란 인간하고 얼굴 마주친 적 없다만?!

“그래서 제가 숨은 내막이 있는 그런 사람이라 여기신 겁니까?”
“그 외에도 어린 나이에 많은 거래를 성사시켰다는 그 수완을 믿는 거지요. 물론 세상 일이라는  과장되기 마련이지만, 사람 일이란 알 수 없는 거니까요.”
“크흠.”
“이건  개인적인 견해이니 헤다하고는 관계없습니다. 그 점은 헤아려주시기를. 그녀하고 연관이 있다 해서 제가 개인적으로 조사를 했고, 흥미를 느껴 접선을 요청한 거니까요.”
“…티나.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시면 둘을 중개한 제 입장이 어떻게 비출 거라 짐작되십니까?”
“사실인  뭐. 너도 마르뎅 상회에서 요청해서 그를 받아 들인 거잖아?”
“그뿐만은 아닙니다.”


헤다 부인은 단언했다.

“그럼 더 좋은  아냐? 괜히 구물구물 속내를 감추고 이러는 거 난 질색이거든.”
“겉치레가 때때로 관계를 이어감에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을….”
“그건 귀족 사정이지. 우리가 귀족이라고 그도 귀족처럼 대우할 생각은 버리시지? 때때로 그 편견이 크나큰 착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거, 잊지 말고.”
“후우.  가르치려 드시는 겁니까?”
“충고야. 친우이자 악우로서.”

말만 들어보면 싸우는 거 같은데도 둘의 표정은 덤덤하기 그지없었다.



“이걸로 이유는 충분히 됐을까 모르겠네.”
“…약간은 됐습니다. 그래서 제가 귀하신 몸이고 능력이 있어 보여선 끈을 이어두는 명목으로…?”
“아니지. 그거… 수인족들 기준으로 능력 있고 뛰어난 씨앗이 우월한 자손을 낳는다? 그런 목적인데?”
“…….”


아, 아니 저기요? 표현이 너무 노골적이잖습니까?




“그리고 선을 잇는다? 그것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요. 아무래도 살을 접하고 배를 맞대다 보면 친근감을 안 가질 래야 안 가질 수가 없으니까요? 듣기로 엘프들하고 관계를 맺어도 된다는 확증까지 받았다는데, 엘프들의 사내, 여자 보는 눈은 인간보다 훨씬 섬세하거든요? 그거 하나로 이미 결론은 나온 셈입니다.”
“…….”




이게 또 이렇게 연결이 되네?



“그런 거니까 날 한 번 잡고 방문해주세요. 제 딸아이도 아카데미에서 막 방학이라며 잠시 들린 참이니….”
“크흠!”




헤다가 눈치를 줬지만 헛기침이랄까, 난색을 감추기가 여간 까다로웠다.




“제 자랑은 아니지만 제 딸아이는 무척 다부진 아이랍니다. 외모도 절 닮아 멋드러진 면이 있지요.”
“…….”


그거 여자들한테는 오히려 모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 아닌가?


물론 그녀의 외양은 어찌 보면 중성적인 느낌을 불러오지만, 아무리 봐도 여성이라는  확 티가 날 정도로 기품이 느껴진다고 할까.

…입을 열면  환상이 단박에 깨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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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엔 가의 프리지아. 유명하지.”




휴즈는 그리 말했다.




“이곳 무역 도시는 알다시피 각 국가에서 파견할 일종에 대사 역할도 겸하거든. 정식까진 아니지만 그걸 모르는 이는 없으니. 데이엔 가는  가운데서도 조금 이질적이야. 브로헤닌 왕가의 왕태자 중 하나가 그곳 출신이니까.”
“사내를 낳으면 추방한다는 명목으로 왕가에 바치는… 뭐 그런 건가요?”
“의외로 눈치가 빠르네? 정확하게는 왕가의 후예가 없을 시에만 해당하고  외엔 왕의 그림자 내지 수족으로 평생을 부려 먹히게 되어 있지. 그래도 대우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하는데 본인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본인들만 알겠지.”


“흠, 그러면 여기서 전 어떻게 대처를 하면 좋겠습니까?”
“본사에는 따로 언급 없으니 하고 싶은대로? 말했듯 끈을 이어둬서 나쁠  없으니까. 그것도 따지고 보면  권력이야. 인맥 카르텔이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단 걸 생각해봐라. 누가 말했잖냐. 아는  힘이라고.”
“……하하.”
“말이 그렇다는 거지! 조크 몰라? 지식 정보를 알든 사람을 알든 어차피  똑같은 거야.”
“갈수록 헷갈리는군요.”

“알아서 잘 처신해. 평생 말단 사원으로 썩고 싶진 않잖아? 본사는 자원봉사자들이 아니야. 너한테 이런저런 걸 투자한 만큼 그 이상을 뽑아 먹으려  테니까. 복지며 대우는 참 좋은데 사람 안 부려 먹는 곳은 아니니… 아마 안정기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꽤 난감한 일들 투성일 거다.”
“안정기요?”
“그런  있으니 열심히 하시라고요. 아시겠습니까?”

휴즈는 익살맞은 말투로 일러주곤.



“배우는 건 어때?”
“죽을 맛이지만 학교 공부보단 열 배는 나은 거 같습니다.”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거니까. 또 좋은 성적이며 태도를 보여야 그들하고도 관계가 좋아지니 태도 바르게 하고. 공부만 하는 거뿐 아니라 그들하고도 끈 잘 이어 둬. 그러면 이번 데이엔 가처럼 뭔가 그럴싸한 게 엮일지 누가 알리?”
“…하하하.”

정말이지, 다사다난한 나날이다.
…나쁘다거나 불만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나날이 발전하고 나날이 존중 받는 삶이란… 뭐가 됐든 보람찬 게 아닐까 싶었다.
헬조선이라 불리는 나라의 경쟁판에서 구르다 보니 이곳에서 굴려지는  사실, 엄청 고단하거나 난감한 정도는 아니었다.
특히 공부하는 것들은.



“이해가 빠르군요!”
“어, 그걸 벌써 다 외우셨단 말입니까?”
“영특하시군요. 어린 나이에 이런저런 일들을 해낸 이유가….”



이런 식으로 기대 받는 것도 꽤 재미났고 말이지.
거기다 퇴근  때마다….

“다녀오셨나요?”



새색시처럼 날 맞아주는 카멜린도 있었고 말이지.
……떡은 못 치지만.
아무튼 수녀님 아닌가?
일부러라도 나는 그녀에게 흑심이나 의혹을 살 법한 내색을 안 비치도록 거듭 주의했다.


덕분에 욕실을  때도 깜찍한 실수를 저질러 눈을 즐겁게(…) 할 법한 에피소드는 일절 일어나지 않았다.

…이렇게 보면 쑥맥 그 자체인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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