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68)화 (68/454)



〈 68화 〉19. 이런 날이 있으면 그런 날도….

한 달이 조금 지났을 무렵, 선배가 찾아왔다.

알푸스라는 이름을 달고, 여전히 위압적인 체구의 금발 태닝 남성은, 뭐가 됐든 주위 시선을 끄는 듯 싶었다.

“집에도 들려봐야 할 거 아니냐. 한  내내 전화도 안 하면 정상적인 부모라면 걱정하고도 남지.”



그래서 5일 정도 휴가를 내어 자택으로 돌아가게 됐다.
이곳에는 중요한 업무로 잠시 외출한다, 파견 간다는 식으로 얼버무렸지만….


“……쳇.”

아쉽다며 혀를 차는 에우리에.


돌아오면 검사 결과를 알려준다는데, 기회가 됐으면  덮치고 싶었지만 바빠서 차마 못한  엄청 아쉬운 듯 보였다. 자기 딴에는 티를  낸다 싶었지만… 표정이 무덤덤하다 해서 그녀의 감정이 마찬가지로 무덤덤하고 무심하진 않기에, 그래도 몸을 섞어가며 겪은 바가 있어서인지 그녀의 감정이 고스란히 해석됐다.
 외에는 다들 그러려니 하는 듯 싶었고.




“가르친다는 사람이 대뜸 그리 가도 되요?”


하고 프리지아가 뭔가 불만족스러운  따져 댄 덕에, 몇 가지 당부 및 숙제를 내주는걸로 첫 수업을 마무리 지어야만 했다.

…그보다 내가 뭘 가르치게  줄이야. 이건 예상 밖인데.
지금도 한창 배우기 여념이 없는데, 참 사람 일이라는 게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람, 조금 예외적인 여성이 있었으니.




“…옆구리 많이 시리겠어.”
“옆구리만 시리겠습니까?”

브리앙르는 따라가지 못하는 게 한이 된 모양이다.


아무래도 그녀는 나하고 속궁합이  맞다 보니 정말 만날 때마다 그쪽으로 자꾸 삘이 꽂히는지, 이제는 나조차도 그녀를 마주하게 되면 자연스레 물건이 발기부터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만나기 무섭게 가볍게  발 빼는 건 인사로 취급할 정도로 서로가 너무 서로에게 익숙해져 버렸는데.

“이걸 한주 가까이 참으라고? 나 말려 죽이려는 거지? 그렇지?”
“…정 버티기 힘드시면 다른 분께 도움 요청하셔도 되시는데요.”



그러자 살짝,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 브리앙르.


“……그런 말하면 여자 된 입장에서 엄청 상처 입는다? 얘가 나한테 애정이 없나? 단순 몸뿐인 관계였나? 하고 생각하니 다른 여자들한텐 그런 소리하지 마라.”
“아뇨, 성욕을 참기 힘드실  있으니 그걸 해소하시라는 거죠. 제가 단순히 몸 때문에 리안느 누님을 좋아하고 이런 건 아니잖아요?”



그러자 뭔가 충격받은 듯 멈칫한 그녀가, 멍하니 날 바라보더니.


“……그건 좀, 음. 훅하고 왔다. 너는 가끔 보면 상상도 못 할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해서 사람  가게 만든다, 야?”
“최대한 존중 및 배려를 아끼지 않으려 노력하는 거죠. 말했듯 저는 어떤 관계든 그게 누가 됐든 저하고 좋은 관계를 이어가는 분이라면, 모두가 만족스럽고 좋고 좋게 흘러가길 기대하니까요.”
“…그렇게 말하니 나도 마음은 조금 편해지는데. 막 집착하고 엉기는  개인적으로 사절이라서. 아니, 그렇다고 너한테 그러지 말라고 경고하는 건 아니고. 너는 그래도 돼. 얼마 전까지는 고민했을 텐데, 지금은 괜찮아. 너라면.”

……이분도 사람 감동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으시네.



“그래도 기왕이면 나보다는 다른 좋은 여자하고 사귀고 그래라.”
“왜요?”
“나는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잖아?”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신다.

“검을 붙들고 피를 보는 직업인데 언제나 건강할 거라 기대하면 곤란하지. 여기 이거 봐라?”

그녀는 자신의 안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애먼 화살에 맞은 거거든? 이거 때문에 내가 2개월간 앓아누웠다. 아파 죽을  같은데, 감염이다 뭐다 해서 사경을 헤맸는데, 그때 느낀 거지. 아, 이거 정말 언제 갈지 모르겠구나, 하고.”
“감히 말씀드리자면, 직업을 달리하실 생각은 없으신 겁니까?”
“이게 맞아. 그리고  이래 보여도 이쪽에 재능이 넘치거든? 반대로 이거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 해봤자 거기서 거기지. 그리고 말이야. 이쪽이 아니면 뭔가 살아가는 느낌이 안 들거든. 정말로 무서웠다면, 눈을 하나 잃은 시점에 엄두도  내고 도망쳤어야지. 그런데도 다시 돌아왔잖아? 결국 내 죽을 자리가 이쪽이란 거야. 이건 말로 설명하기가 좀 힘드네. 네가 칼밥  먹고 살아간다면 이해를 할지는 모르겠는데 말이야.”
“아닙니다. 충분히 그럴 수도 있죠.”


살아가는 방식은 각각 다를 수밖에.
그걸 내 쪽에서 일방적으로 뭐라 할  없으니.

그녀가 몸조심했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그렇다고 온실 속 화초처럼 그녀를 정원 속에 처박아둘 순 없는 노릇 아닌가. 무슨 자격으로….


“너무 그런 표정 짓지 마라. 내가 죽고 싶어 안달 난 것도 아니고. 나도 삶에 애착이 있어 인마! 그래도 아무튼 간에! 무력하게 살고 싶지 않은 거뿐이야. 하루하루 혼신을 다해 살아가려는 거지. 몸을 움직이는 건 좋아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몸을 사용할  있는 것도 내심 기쁘기도 하고.”
“지금처럼 남들 가르치고 도와주면서 해도 되지 않나요?”
“이런 것도 나쁘진 않은데, 좀이 쑤셔서 오래는  버티겠더라. 너 아니었으면 진작 다른 곳 갔을 걸? 아, 그래. 시기가 좋긴 하네. 네가 다녀온 다음 날 나도 떠날 예정이니까, 오면 날 잡아둬라. 아주 서로 죽기 직전까지  번 해보자. 날 새도록.”
“…그러다 임신하시면 어쩌려고요?”
“책임질 필요 없다니까?  애니까 내가 책임지고 키울 거니깐. 이렇게 보여도 우리 집안이 돈이  많아. 나 하나 부양 못 할 정도로 빈약한  아니거든?”
아니, 엄한  딸려온 딸아이를 기쁘게 맞이하는 집안이 있을  같진 않습니다만?!
“크흠. 저한테 오셔도 되시는데요.”
“네 혼사 길 막을 일 있냐?”
“정말 신경 안 쓰셔도 되는데요.”
“아무리 여자 여럿 두르고, 남자 여럿 끼고 다니는 시대라지만, 그건  아닌  같다. 내가 싫어.”


이상한 면에서 완고한 브리앙르였다.



“…….”



어쩌면 그쪽에 대한 트라우마 나 상처가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다.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고, 안타까움이라면 안타까움이지만, 그걸 겉으로 내색 않으려 노력했다.




“애는 키워보고 싶어. 그런데… 결혼은 개인적으로 불편하거든. 내가 누군가를 책임질 수 있을 거라 생각은 안 들고, 누군가에게 너무 빠져 버려 나 자신을 잃게 될까 두렵기도 하고.”
“…음, 어느 정도 공감은 가네요. 그래서 저는 그냥 매사 모든 분께 최선을 다하려 노력하는 겁니다만.”
“그래 노력은 하지. 그러니 자기 여자한테 다른 남자랑 굴러도 된다는 소리를 하고 말이야. 그건  중 하나야. 타인과 몸을 굴러도 어쨌든 내 것임은 변함이 없다는 자신감, 그게 아니면…….”


문득 말을 이어 가다 뭔가에 생각이 미쳤는지, 멈칫한 그녀가 쓴웃음을 지은 채 잠시간 아무 말 않고 날 바라보기만 할 따름이었다.

“너한테도 사정이 있겠지. 내가 너무 집중했나 보다.”
“응? 괜찮은데요?”
“아니야, 이러면 내가 집착하는 거 같잖아. 적당히 선을 그어둬야지. 너무 깊게 파고들면 서로가 불편해진다.”
“에이, 그 정도로 집착은. 정말 집착이면 냄새만 맡고도 어느 여자랑 붙어 다녔니? 어제 어디 가서 언제까지 있었는데 그동안 다른 여자와 몇 번 말을 나누고 몇  시선을 교차했고  번….”
“야! 그건 스토커잖아! 소름 끼치는 소리 그만해라.”

그런 식으로 뭔가 그럴싸한, 한편으론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마주 나누며, 격렬하진 않으나 차분하고 느리게, 그러나 훨씬 더 진득하게 서로의 몸을 교류하고 섞어가며 한동안 헤어짐의 아쉬움을 달래고자 떨어지기 전까지 계속, 계속해서 관계를 이어갔다.

그리곤 집에 돌아오니 시스터 카멜린과 선배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발견됐다.


“…….”



음, 동인지 이런 걸 봐서 그런지, 저게 분명 나쁜 구도가 아님에도 괜스레 오해를 하게 된다.

키 크고 잘 생긴 금발 태닝 남과 절세 미녀 수녀님이 ㅗㅜㅑ…



‘상상 예찬.’




상상만 하자. 상상만.
정말 최소한의 짐만 챙기고, 미리 대기해둔 마차에다 짐을 실어 올렸다.

“그럼 잘 다녀오세요.”
“예, 시스터 카멜린도 몸조심하시고요.”



이런 식으로 배웅받으니 괜히 신혼 느낌이 나는  왜일까.



“새색시 예쁘네.”
“…색시였다면 말이죠.”

나만이 그리 느낀 게 아니었나 보다.

“수녀님이라고 포기할 거냐? 듣고 보니 완전히 작정하고 시스터가  건 아닌 거 같은데? 네가 의지만 있다면….”
“에이, 제가 뭔 배짱으로 그녀한테….”
“못  건 뭔데?”
“…맞는 말씀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너무 헤프게 손을 안 벌리려고요.”
“감당하기 힘들까 봐?”
“그것도 있고, 한 사람에게 책임을 쏟기도 힘든 판에 여럿한테 너무 그러면….”
“인마,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냐? 세상 참 피곤하게 사네. 너 여기 문화 같은 것들 다 배우고 있다며? 여행자하고 하룻밤 자서 애 생기고, 결혼도 않은  유부녀 되는  의외로 흔한 세상이다? 그게 판타지 세계의 흔한 일상이고.”
“…뭔가 낭만이 없네요.”
“그러니까 모두가 낭만을 꿈꾸는 거지. 이야기에 사람들이 미치고 현혹되고 꿈을 꾸고… 다 이유가 있는 거야. 우리라고 다르냐? 네 머릿속으로 세상을 판단하지 말고, 보고 듣고 느껴. 세상은 넓어. 진지하게 살아가는 거야 좋지만, 너무 그러다가 숨 막혀서 죽는다. 가뜩이나 우리 일이…… 아니다. 이건 너도 어느 정도 느끼고 있으니까 선을 그어두는 거겠지. 그래, 잘하고 있어. 지금처럼만 해라.”




라떼는 말이야… 하는 식으로 한창  말을 이어갈 거라 예상한 것과 달리, 선배는 그 이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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