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19. 이런 날이 있으면 그런 날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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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지만, 아바타에서 다시 원래 몸으로 바뀌면 좀처럼 적응이 되질 않는다.
만약이란 게 있어 변화 뒤 2시간 정도 대기 시간을 가지며 기본적인 신체 검사를 받은 뒤엔….
“일정이 어쩌다 바뀌었다고는 대강 들었는데, 뭘 한 건데?”
“어떤 거요?”
“자기가 모르면 어쩌라고.”
선배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긴 우리야 큰 줄기 따라가는 거지 세부적인 거야 알 필요가 있겠냐만.”
“비도덕적인 뭔가를 시키지 않는다면 저는… 큰 문제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런 점이 불안한 거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우리 직속 상사분께서는 의외로 빠워가 있으셔서 그런 쪽으로는 안 간다고 하니 걱정은 붙들어 두고.”
“…그런 일을 하는 부서나 인원이 있는 건가요?”
“왜 없겠어? 너는 세상 올바르게만 살아서 이 정도 규모로 회사가 성장 가능하다고 생각하냐? 말도 안 되지.”
선배는 냉정한 건지 이성적인 건지 모를 넋두리를 늘어놨다.
“자연계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여유로웠던 적이 없단다. 언제나 치열했고, 또 치열했지. 우리라고 뭐 달랐냐? 너도 여기 오기 전까진 변변찮은 직업도 없었다며?”
“그야… 그렇죠.”
팩트가 뼈아팠다.
“그게 세간에 말하기로 도태되고, 퇴락한 거야. 그들 시각으로는. 근데 맞는 말이긴 해. 그들 세계에서는. 그게 옳고 그르고는 중요한 게 아니지. 안 그러냐?”
“…….”
입안이 쓰다. 따로 블랙커피를 마신 것도 아닌데.
“큰 회사에 옷 잘 차려입고 나가서 남들 굽신거리는 걸 당연 시 여기며 일한다 치고 어디 처박혀서 휴대폰 게임을 하든 말든 회사는 잘 굴러가. 윗선이 낙하산이면 아래가 아득바득 굴려지고, 윗선이 유능해도 굴려진다는 건 차이가 없어. 전자는 기분이 쓰레기 같아지는 거고, 후자는 조급해지지. 그런 늪에 빠지지 않게 관리하는 게 경영자의 몫이고. 뭔가 희망이나 목적 의식을 부여해줘야 우리도 열심히 일하지 않겠냐? 아님 제대로 떡고물을 안겨주던가. 대가라던가.”
“음, 그렇죠.”
“월급은 좀 짜더라도 여긴 남들이 경험해보지 못할 것들을 경험할 수 있지. 그뿐이냐? 하기 나름이지만 엄청나잖아? 안 그러냐?”
“…백 번 동감합니다.”
“대우도 나쁘지 않고. 그러니 우리가 여기에 말뚝을 아주 그냥~ 콱! 박아야 하는 거야. 이러다가도 멘탈 나가서 어떻게 될지 또 모르는 일이지만… 그거야 그때 가서 생각할 문제고. 당장도 고민인 판에 말이야. 미래까지 어떻게 생각하겠냐?”
“그도 그렇죠.”
“너무 꼰대 같이 이야기한 거 같은데, 그러려니 해. 이것도 좀 꼰대 같은 소리지만, 다 동생 같아서 하는 소리야.”
“예, 알죠.”
세상에 불합리한 윗선이 얼마나 많은데. 이 정도면 양반 중에서도 상 양반이지.
“덕담은 이쯤하고, 슬슬 나갈 준비해라.”
“…팀장님은요?”
“전출 나가셨단다. 다음에 왔을 때나 보고 갈 거야. 아, 일정표 확인하고 보고서 제출하는 거 잊지 말고. 또 선물도 받아가라. 늦게 얼굴 비추는 만큼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 불안 안 느끼도록 확실하게 케어하고. 나중에 이걸로 이상하게 엮이는 일 없게 말이야. 본사가 골치라기보다는 네 입장만 번거로워질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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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받은 선물은 저번의 한우와는 달랐지만, 한편으로는 그 이상.
“관광 패키지?”
놀랍게도 천만 원 이상을 호가하는 여행 풀 패키지란다.
타히티 보라보라? 어쩌구인데 검색해보니 상위에 뜨는 패키지 가격만 기본 수백만원 돈이었다.
“…이걸?!”
심지어 6박 7일.
아니, 제 월급보다 비싼 걸 주시면 어찌하나이까?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는데 입이 딱 벌어졌다.
확인 차 직접 전화까지 해보니 한 달 내로 등록하면 언제든 일정까지 조율 가능하다는데, 이게 참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딱 정해둔 것도 아니고 한 달 기한이라고는 해도 마음대로? 말이 되나?
내가 여행 패키지? 아무튼 이런 걸 잘 몰라서 그런데 이게 정상은 아닌 거 같은데? 아닌가? 그냥 내가 시대에 뒤처진 건가? 요즘은 예약이나 이런 거 안 해도 되던가?
얼떨떨한 심경으로 일단 집에 오기 무섭게 두 분에게 여권부터 만들라 하니 의아해하셔서 이런 사정을 알려드렸다.
“정말이니?!”
어머니는 기겁하셨지만 내심 기뻐하는 모양이다.
나는 대충, 내가 운 좋게 성과를 내서 그렇다고 말은 했는데, 생각해보니 정말 그런가 싶기도 했고….
“크흠!”
아버지는 뭔가 미심쩍어하는 기색이었지만, 막상 여행 패키지 내용을 보곤 표정이 급변하시더니….
“응? 아, 난데. 내가 요번에 아들 덕에 여행을 가게 돼서 말이야. 어, 거기 알지? 타히티라고 세계에서 거 뭐냐? 유엔에서도 청정지구? 그게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곳이래. 잘은 모르지 나도! 이번에 처음 가보는데! 그래! 한 번 가면 뭐 몇백은 거저 깨진다는 거기 말이야! 내가 거기 중에서도 또 뭐냐? 가장 비싸다는 보라보라? 맞나? 너 거기 어딘 줄 알아?”
……전화로 친구인지 지인에게 자랑을 해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휴대폰을 투닥투닥 누르고 계셨는데, 이제보니 문자 톡으로 지인들인지 누구들에게 이런저런 자랑을 해대는 모양이었다.
……음, 이런 거 나쁘지 않네.
30 가까이 아무것도 못 하고 부담만 드렸는데, 이제야 뭔가 좀… 해드리는 거 같아 마음이 놓였다.
그래, 이러니 본사에 충성을 안 할 수가 없지.
본사가 설혹 마왕성이라 하더라도, 본사의 회장님께옵서 대마왕이시라 하여도 전 단호히 충성하겠나이다! 충성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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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외출을 했다가 동창을 만났다.
동네에서도 자주 어울리던 녀석이었는데, 자취한 이후로 간혹 마주치는 선에 그쳤는데 취직 후 집에 들어선 뒤로는 이번이 처음.
본의 아니지만, 아는 분들을 위해 이런저런 선물 고를 겸 백화점에 들렀다 마주친 거라 상황이 좀 미묘했다.
“태민아, 너 얼마 만이냐? 취직했다고 들었는데 잘 지내냐?”
녀석은 보란 듯이 옆에 애인인지 여자를 옆구리에 낀 채 그리 주절대고 있었다.
“응, 대강.”
“뭔 회사길래 한 달 내내 소식이 없냐? 너희 부모님이 연락도 안 돼서 걱정하시는 거 같던데?”
“출장이니 어쩌겠냐.”
“출장 맞아? 외국 나가는 건 맞고?”
근데 이 새끼는 왜 이리 깐죽대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어머니께서 톡으로 구구절절 이야기한 덕에 그 여행 패키지가 대략 천만원 이상의 가치를 호가하는 빅 패키지라는 걸 파악한 이들이 질시와 질투로 자기 아들들의 등짝을 후려 팼다는 이야기를 접했지만, 그건 나중 이야기.
엄마 친구 아들에게 비교당하는 아들내미의 기분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거기다 옆에 있는 여자는 딱 봐도 ‘이 새끼는 뭐지?’ 하는 표정으로 보며 인사말을 건네기에 대강 응대해줬다.
“예쁘지? 내 애인이야.”
정말 애인인지 아닌지는 내 알 바 아니다만, 싸가지부터 챙기시지? 대놓고 품평하더니 코웃음 쳐대는 건 대체 어디서 처 배워먹은 버릇이냐?
“근데 네가 백화점은 뭔 일이냐?”
“선물 좀 사게.”
“아, 그래.”
그래도 대놓고 그러진 말아야지. 코웃음을 쳐? 이 새끼가 진짜 돌았나?
‘아, 기분 잡치네.’
그냥 반갑다! 잘 지내냐? 밥 한번 먹자! 이러고 가면 되지 이 새끼는 뭘 이리 끈덕지게….
심지어 내부를 거니는데 같이 다니자며 달라붙기까지 한다.
“야, 그건 아니지.”
“요즘은 말이야….”
“저게 좋지 않겠어?”
……그렇게 좋으면 네 갈 길 가세요. 왜 남에 선물 고르는데 참견인데요?
그런데도, 에드릭 때와 달리 나는 의연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게 제대로 대처가 안 됐다.
태연하게 대응하고, 미소로 여유를 가장하고… 에드릭 때는 능청 맞게 타인을 대하던 게 안태민, 진실 된 내 모습으로 돌아오니 마치 과거의 무력한 한때로 돌아간 것처럼 괜스레 어깨가 위축되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덕분에 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대단히 꼴사나운 대처가 줄줄이 이어졌고, 친구라 부르고 웬수라 불러대는 새끼는 그 꼴을 보며 자기 애인과 함께 낄낄대며 은연중 비웃어댔는데….
‘일진 참 더럽네.’
그렇게 생각하며 속으로 한숨을 팍팍 내쉬고 있던 차였다.
“안태민 씨?”
거기서, 여신과 재회했다.
어…?
왜 당신이 여기에?
“윤 팀장님?”
그녀는 평상복이긴 하나, 대단히 세련된 옷을 입은 상태로 우리 쪽으로 접근해왔다.
“예, 맞아요.”
그리고는 내 막연한 감탄사인지, 혼잣말인지 모를 말조차도 제대로 캐치 했는지, 고개를 끄덕여 자신이 맞다는 걸 다시금 상기시켜주려는 듯 자그맣게 미소 지었다.
백화점 내부는 대체로 화려하고 밝은 편이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미소는 그 모든 걸 무색하게 할 정도로, 찬란했다.
적어도 내 눈으로 보기엔 그 어떠한 것보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