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70)화 (70/454)



〈 70화 〉19. 이런 날이 있으면 그런 날도….(3)

얼굴 아래로 새하얀 모피가 압도적인 비주얼을 드리운다.

모피 코트인가 싶은데 짧은 아우터였다. 상의 위에 입는 재킷 코트인데 딱 허리까지만 오는 형태로 굉장히 세련되게 느껴졌다. 기성복하고는 차원이 다른 디자인이랄까.


목 아래, 가슴에서 잘록한 허리 직전까지 교차 되듯 자리한 부드러운 모피의 모습이 유독 눈에 띄는데, 새하얀 털보다도 밝은 그녀의 미모가 유독 돋보이는 건 무슨 연유인지.


정면 이외, 좌우 부근은 검은색 일색. 무광이기에 더욱 새하얀 모피 털이 상대적으로 부각 되는 시각적 느낌을 살려주는  보였다.

코트는  팔. 소매가 손목 인근까지 왔는데 치수를  맞췄는지 손이 감춰지거나 손목이 훤히 드러나는 식으로 뭔가 어중간한 느낌은 일절 느껴지지 않았다.

바지 또한 어두운 바탕색의 부츠컷 슬랙스. 발목이 드러날 듯   보이나 그조차도 검고 묵직한 구두에 시선이 빼앗겨 세련된 분위기에 묵직함과 안정감을 유독 돋보이게끔 해주었다.


여성미를 전부 꿰차면서도 어딘가 강렬함이 느껴지는 복장이랄까.

거기에 당당한 태도, 허리를 세우고 목을 꼿꼿하게 세운 채 걸어오는 그녀는 확실히, 일반적으로 어깨를 움츠리거나 요란하게 발걸음을 이어가는 이들에 비하면 그 자체로 무언가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근본이 됐든, 존재감이 됐든, 어쨌든 간에.




“이쪽 분들은?”

여유로운 어조로, 그러나 단호히 그리 묻는 그녀.

“아, 그러니까….”

뭐라 소개를 할까 순간 고민했다.
솔직히 소개고 자시고 아예 상종을 하고 싶지 않은 판이었는데.



“어, 저기… 태, 태민이하고는… 어떤 관계이신… 건지?”


녀석은 자기 통성명, 자기 이름을 밝히는 것조차 잊은 채 얼떨떨한 표정으로 맥빠진 소리를 내뱉고 있있다.
새끼야, 옆에 네 애인 도끼눈  것 좀 보지 그러냐?



“직속 상사입니다.”
“아, 그러시구나….”


여전히 넋 나간 얼굴로 얼떨떨하게 윤 팀장님을 바라보는 새끼 덕에 기분은 더욱 추락했다.
아, 이게 뭔 추태인가….




“태민 씨, 구하려던 거는 위층에 내가 봐뒀으니까 같이 가서 최종적으로 확인해보기로 하죠.”
“예? 아… 네. 알겠습니다.”
“음? 혹시 이분들하고 따로 약속이 있었다거나 그런 건?”
“아닙니다. 중도에 마주친 거라… 그렇지?”


녀석은 뒤늦게 ‘어? 어어! 그렇지!’ 하고 반응해왔다.



“그래요? 하면 저희 쪽이 먼저 선약이 되어 있었기에… 제가 태민 씨를 데려가도 괜찮겠는지요?”
“예에… 어, 얼마든지 데려가시죠.”



그녀가 내게로 시선을 돌려왔다.

“그럼 가죠. 우선 아버님께 드릴 시계하고, 어머님은 백이라 했던가요?”




그리 말하며 자연스레 내 팔짱을 껴오는 그녀.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귀신에 홀린  아니라 귀신한테 붙들려 번지점프를 하는 기분이었다.
아니, 이건 너무 과장됐나?

그런 식으로 걷는 건지 붕붕 떠다니는 건지 모를 심정으로 어찌어찌 에스컬레이터까지 이동한 우리는….

“곤란했나요?”



그녀의  마디 덕에 꿈에서 현실로 복귀하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 곤란하다니요?”
“번거로워 보였는데, 아니었나요?”
“아, 아닙니다! 맞습니다! 아주… 번거로웠죠.”
“좋아요. 민폐가 아니었다면 다행이네요.”


그보다.


“그런데… 팀장님께선 여긴 어쩐 일로?”
“저는 쇼핑 오면  되나요?”


그녀가 고개를 살짝 틀며 묻자, 무심코 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아, 안 되는 건 아니죠. 얼마든지 오셔도 됩니다.”
“백화점이 태민 씨 거라도 되요? 오셔도 된다니요?”
“아,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입니다?”
“군대예요? 긴장 풀어요.”



그녀가 품위 있게 웃으며 그리 말했다.


“마주친 것도 인연이니 따라오세요.”
“따, 따라요?”
“선물 고르시려고 온 거 아니에요?”
“어, 그거야….”
“월급이 풍족하진 않은데, 사치를 하려고 온 건 아닐 테고. 남성들보다 여성들이 아무래도 백화점에 신세를 자주 지는 편일 텐데, 자기  사려는 게 아니라면 누구에게 선물을 드리려 온 걸 테죠? 그러면 과연 그분들은? 여자 친구나 애인이 따로 없는  가능성은 축소되지요.”
“…지당하십니다.”
“그러고 보니  쪽에서 선물을 따로 준비를  했네요. 말 나온 김에 한 번 골라봐요. 아까 시계하고 제가 백 이야기했죠? 둘 다 살펴보죠. 제가 추천하는 거는….”



그리고는 터무니없는 가격의 물건들을 선물로 주겠다고 밀어 붙이는 통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아니, 이건  연봉에 해당하는 제품인데 이걸 어찌 제가…?!”
“뭘  정도 가지고 그러세요? 아, 혹시 백화점에서 물건 잘 사주는 누나는 싫으세요?”
“…….”

싫을 리가요! 대박이죠! 아니, 근데 이건 정말 상상도 못 한… 신데렐라도 아니고….

“원래 선물을 받는 것도 예의랍니다. 받은 만큼 노력해서 일 잘하면 되겠죠?”
“아니, 그래도 이건 좀 너무 부담스러운데….”
“왜요? 이 정도 물건에 벌벌 떨 정도로 태민 씨, 능력 없어요?”

……남자의 자존심을 자극하시는 말씀을 하신다 해서 제가 울컥해서 받아들일 거라 생각하면 오예랍… 아니, 무슨?!



“우리 회사 초봉이 짜잖아요? 그런데 공을 세우고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상식을 벗어날 정도로 임금을 받거든요. 성과금도 있고요. 아, 여행 상품을 잘 받으셨어요? 그것도 다 성과금에 일환인데.”
“…엄청났죠.”

부모님 두 분은 아주 입꼬리가 귀에까지 걸리는  아닐까 걱정이  정도였다.


하긴… 개떡 같은 자식 덕에 마음고생하며 주위에선 자식이 여행도 보내준다, 집도 사준다 이러고 있는 판에 기껏 들어갔다는 회사에선 한  넘게 전화 한 통 없이 험하게 구르는 건지 얘가 팔려나간 건 아닌지 하고 걱정하는 판국에 처음에 돌아오니 한우? 그래, 이건 뭐 그럴 수 있다지만… 여행 패키지라니? 근데 그 내용물들이 막상 확인하니 1000만원을 호가한다고?


처음엔 두 분이 이거 네가 빚내서  한 거 아니냐? 어디 바가지 쓴 거 아니냐 꼬치꼬치 묻고 그랬지만, 결국 어찌어찌 넘어간 뒤부턴 자랑하기 바쁜 모습들이었다.
당분간 아버지는 술자리에 술값 쏘면서 아들 자랑 엄청 하지 않을까 싶었다.

어머니는 뭐…… 워낙 이곳저곳 잘 기웃거리시니 벌써부터 상상하기가 두려워졌다. 이젠 지나가다 마주치는 아주머님들이 나도 여행 좀! 하고 우스갯소리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리고 지인을 잘 사귀세요. 사람의 됨됨이는 그 사람 곁에 있는 이를 보고 판단하기 마련이니까요.”
“…크흠. 말이 지인이지 그냥 악연이죠.”

녀석은 실제로도 엄마 친구 아들이었고, 학창 시절 때도 공부도 잘했는데 얼굴도 샤프한데다 인간관계도 좋은 진성 인싸 새끼여서 아주 그냥… 에휴. 생각만 하면 갑갑해진다.

그러고 보니….




‘내가 그 새끼  먹인 건 이번이 처음인가?’

……비록 내가 의도해서 그런 건 아니었지만, 음. 다시 생각해보니 이거 좀… 괜찮은 기분인데?
팀장님 덕에 녀석이  먹은 상황이란 걸 지금에서야 깨달을  있었다.

백화점 와서 사실상 산 것도 없는 주제 쇼핑백만은 묵직했다.
무게가 묵직하다기보다는 쇼핑백 내용물들이… 워낙 어마어마했어야지.
…내 연봉보다 비싼 시계가 안에 있습니다.

백화점  명품 백이라는 게 그나마 덜 부담스럽게 느껴진 건 살아생전 처음이었다.



“본사를 포함해 저도 태민 씨한테 걸고 있는 기대가 커요. 지금처럼 잘 분발해주시라는 차원에서,  제 아래로 오셨으니 제 나름의 공치사를 하고자 하는 거니까 부담은 가지고 열심히 하세요.”
“…….”


보통 이럴 때 부담 가지지 말라고 의례적이나마 그러지 않나? 부담 가지시라고요?! 엄청 부담스러운데?!



“이런 말 하면  기준에선 마이너스일 수 있지만, 철영 씨한테도 비슷하게 공치사했으니까, 한편으로는 부담을 덜어도 될 거예요.”
“…음, 그 말을 들으니 조금 위안이 되네요.”
“물론 받을 만큼 뜯어 먹는 게 비즈니스맨인 건 아시죠? 저한테 충성하셔야 해요?”


맑게 웃은 그녀가 그리 말하자, 나는 경례까지 해보였다.




“당연하지 말입니다? 충성충성!”
“하하하! 좋네요! 그런 자세 좋아요.”




짧게 박수까지 쳐가던 그녀.
이윽고 우린 주차장까지 도달했다.
 선물 받은 김에 그녀의 짐꾼도 겸해서 그녀의 차에 짐을 실었는데… 차가 뭐랄까, 시중에서 흔히 보기 힘든 뭔가 같았는데, 뭔지는 잘 모르겠다.

“식사는 했나요?”
“아, 나온 김에 어디 들를까 생각은 했었죠.”
“타세요. 같이 가죠.”

…아주 오늘은 정말  날인가 보다.
세련된 레스토랑에서 생전 처음 고기도 썰어보고, 일단 시승감이  쩌는 차도 타보고….


그렇게 차 타고 집 인근에 와서 내렸는데….



“어? 너….”



백화점에서 만났던 그 망할 놈과 다시 마주쳤다.



“아니, 그 차는….”
“또 보네요.”


창문 도어를 내려 운전석에서 얼굴만 내비친 팀장님이 녀석을 보며 그리 말했다.



“아, 예. 반갑… 아니, 안녕하십니까?”

 새끼 약 먹었나? 왜 저래?

평소의 그 잘난 척하는 기질은 어디다 내던졌는지, 마치 쥐 앞에 고양이? 아니 뭔가 내숭을 떤다는 느낌으로 한껏 움츠러들어 있었다.

“들어가시는 길이신가요?”
“예, 어쩌다 보니.”



……어쩌다 보니는 뭔데?



“태민 씨, 그러면 휴가  보내고 다음 주에 봐요.”
“예, 태워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팀장님.”
“뭘요. 그쪽 분도 잘 들어가시기를. 우리 태민 씨도 잘 부탁드려요.”
“아,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차창을 올린 그녀가 이윽고 차를 몰아 우리로부터 멀어 지기까지.
그로부터   뒤.


“부가티잖아… 시발 미친!”



녀석의 감탄인지 경악인지 소리 죽인 비명과 함께, 녀석이 내게로 달려들었다.

“야, 이 새끼야? 대체 누구야? 상사? 직속 상사? 요즘 직속 상사는 쇼핑 겸 데이트에다 차까지 태워주냐? 대체 너 뭐 하는 새끼야? 어디 들어갔길래 이딴 대우를 받는데?  신입 사원 아니었어?!”
“……맞는데?”
“아니, 시발 그런데 이게 뭐냐고?! 너 혼자 드라마 찍냐? 드라마에서도 이딴 막장 전개는….”




그 뒤로 한참 하소연인지 불평인지 뭔지 난리를 떨어댔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새끼, 부러워 죽으려는 구만?


이럴 때 인터넷상에서 치는 의성어가 있지.


ㅋㅋㅋㅋㅋㅋ

시작을 꿀꿀했는데 그 기분, 단번에 날아갔다.
역시 사람은, 뒷배가 좋아야 한다니깐?


앞으로도 충성하겠습니다!
충성충성! 베리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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