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20. 마법, 그 까짓거…!
여권 덕분에 조금 늦게 출발하게 됐지만, 아쉽게도 여행길 배웅은 못 하고 앞서 내 쪽이 출근길 배웅을 받게 됐다.
한 번 떠나면 한 달은 족히 연락도 없이 사라져버리니 그럴 수밖에.
그래도 처음이 힘든 거지 두 번째는 아쉬울 게 없었다.
휴가받고 휴일이라 해도 대부분 집에서 퍼 자거나 농땡이를 피우는 터라 통장에 입금된 월급을 따로 쓸 일도 없으니 돈이 굳는 건 예삿일.
배달 음식 시켜 먹는 정도가 몇 안 되는 사치일 정도였으니까.
그 다음 하는 거라곤 인터넷 쇼핑몰을 스마트폰으로 살펴대는 정도?
‘그냥 든든하네.’
예비금이 있을 때조차도 제대로 취직이 안 된 상태일 때는 뭔가 초조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 불안감 하나는 확실하게 해소됐다.
덕분에 이전처럼 한참을 가는 출근길조차 큰 문제도 없었고.
인터네 쇼핑몰에서 구입한 사과 사에서 근래에 나왔다던 무선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데 정말 대박이었다. 왜 인터넷이나 쓰는 사람들이 감탄에 연신 추천을 해대는 거에 혹해서 써보니 이유를 알겠더라.
‘근데 여간 비싸야지.’
끔찍한(?) 가격이었지만 역시 좋은 거엔 다 이유가 있는 거다.
21층, 사원증 찍고 잠금장치 풀고 다시금 내부로.
묘하게 그리운 듯, 낯선 듯한 그곳에 다시 복귀했다.
[외적 지원 탐방 보조 및 해결 부서]
…여전히 저것만 보면 뭐 하는 곳인지 전혀 짐작이 안 된다.
내부로 들어가 탕비실에서 커피 2잔, 그리고 말차라떼? 아무튼 그걸 준비하고 있자니 소리와 함께 인기척이 들려왔다.
“오, 빠른데? 언제 왔어?”
“좀 전에요.”
세팅을 해두기 무섭게 팀장님이 도착했다.
이곳에서 목격할 땐 항상 그렇듯 정열을 담은 듯한 와인색 투피스 정장, 연분홍색 와이셔츠가 유독 눈길을 사로잡는다.
“좋아요, 간만에 미팅이네요? 뭐 건의 사항이나 질문할 거 있나요?”
명료한 목소리로 그리 운을 뗀 그녀는 이윽고 나와 선배를 둘러보며 느긋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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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 에드릭으로 복귀한 뒤로도 아르세이유로 돌아가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순간이동 서비스도 자주 맛볼 수 있는 건 아니고, 일단 가격대도 상당하기에 꼭 필요한 경우나 위급한 상황, 예외적 상황이 아닌 한은 혜택을 받기가 까다로운 편이란다.
…일전처럼 시스터 카멜린하고 신부님 보러 가게 된 건, 그런 맥락으로 보면 꽤 급한 문제였는지도?
돌아와서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여기가 우리가 새로 봐둔 땅이다.”
휴즈와 난 말을 타고 그가 봐둔 공터라는 곳을 방문했다.
아르세이유는 일단 서울 면적에 반…이라고는 해도 그보다 더 규모가 적은 편이지만 사실 3분에 1, 4분에 1만 되도 이건 상당한 규모라 봐야 될 거다.
아무튼 그런 곳 가운데 공터 하나 구하기가 힘들까.
문제는 주거지에서도 멀고, 시장이며 번화가에서도 버젓이 떨어진 통에 냉정하게 보자면 여긴… 서민이 들락날락하기엔 무리가 따를 법한 위치였다. 우리가 괜히 말을 타고 왔을까.
승마도 일전에 배워둔 덕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익숙지 않은 건 여전한 덕분인지 엉덩이며 허리가 상당히 불편했다.
마음껏 달려본 적이 이번처럼 많지 않았기에 10분 동안은 새삼 재밌었는데, 이게 20분이 지나고 30분을 넘어서니 고행길이 돼버렸다.
뜀박질로 형성된 체력과는 별개로 익숙하지 않은 통해 뭔가 부자연스러움을 느꼈는데, 그 덕에 더 빨리 지친 것 같기도 했다.
등자며 보조 기구가 있음에도 이 정도인데, 과거에 그런 거 없이 다릿심과 균형 감각만으로 말을 탄 인간들은 대체 뭐 하는 인간들이었을까.
아무튼 도착한 직후, 사전 준비 겸 인부들이 땅을 고르게 만들며 터를 닦는 일에 전념하고 있었는데 숫자가 무시무시했다.
“여기에 대략 11층 건물을 짓는 거지. 이곳 건축 기술에 우리 현대식 공법을 동원해 일단은 너무 튀지 않게 백화점을 짓는 거지. 다른 국가에선 대형 마트 비슷한 컨셉으로 건물을 시공 중인데, 그쪽에서 나올 데이터도 그렇지만 이쪽에 짓는 백화점도 우리 모두가 기대하고 있는 바니, 자네가 잘 관리해야 할 거야.”
아는 이야기였지만 막상 상황이 착착 진행되고 착수되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괜스레 불안해졌다.
“저기 그런데… 제 주제에 이런 걸 관리, 운영을 해도 되는 겁니까?”
“자네가 하는 일은 어차피 얼굴 마담이야. 사람 상대하고, 케어해주고. 실세는 따로 있지만, 표면적으로는 자네가 대표, 어쨌든 오너가 되는 거고, 그게 자네 역할이야. 이곳의 오너라는 직함으로 나중에 할 일이 있으니 아마 본사도 그런 자리를 내어주는 게 아닐까 싶네만. 뭐 짐작 가는 거라도 있나?”
“아뇨, 전혀.”
이에 휴즈는 단호하진 않지만, 은근하게 조언을 던져주었다.
“도저히 모르겠으면 알려 하지 마. 때때로 모르는 게 약이 될 수 있어. 과분한 뭔가를 받을 때는 특히 더. 회사라는 건 말이야. 철저히 이익 구조, 사리사욕으로 굴러가는 집단이고 단체야. 뭔가를 쥐어줬다면 다 이유가 있는 걸 테지. 자네가 그걸 알든 모르든, 그건 중요하지 않을 거고. 물론 자네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파악할 수 있다면 파악해도 좋겠지만, 본사가 그걸 좋아할지 싫어할지 정도는 자네도 짐작할 수 있겠지?”
“시키는 대로 충실히 따르는 인형을 좋아할까요, 아님 알아서 척척 자기 할 일 해가며 건수며 공을 물어오는 개가 좋겠습니까?”
“둘 다지. 괜한 소리를. 그러다가도 너무 튀진 말고. 부리는 이 입장에서야 뛰어난 인재를 좋아하겠지만, 그 인재란 놈이 자기 밥그릇이며 자리를 강탈할 거란 위협을 느끼면 짓밟기 마련이지. 그래서 우리 본사는 보통 승진하거나 윗선에 오르면 이전 직원이며 동료들하고 동떨어지거나 엮이지 않게 만들거든? 친하든 사이가 소원하든, 좋지 않든 간에. 어차피 대체할 인재는 많은데 굳이 합심하고 서로 담함할 여지를 줄 필요는 없을 테니까.”
“그건 뭔가 좀… 무섭네요. 어느 의미로 이전 동료들과의 화합을 통해 시너지를 내는 쪽이 더 좋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새로운 곳에서도 그 이상은 하라는 거지. 그것조차 못 한다? 적응 못 했으면 윗선이 사람을 잘못 본 걸 테고. 특정 누군가와 함께해야만 포텐셜을 터트린다? 그게 온실 속 화초와 뭐가 다르겠나?”
“끄응… 맞는 말씀이십니다.”
“세상일이란 모르는 거야.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적이 될 수 있고, 원수가 반려며 배우자가 될지 누가 알겠나?”
…거기까지 가면 정말 막장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이런저런 이야기, 조언을 들어가며 동시에 공터 땅을 다지고, 땅을 파는 이들을 살피며 나는 묘한 기대감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껴야만 했다.
엄한 신입을 이 정도로 챙겨주고 그뿐 아니라 윗줄로까지 앉히려 들다니… 대체 뭘 시키려고 여기까지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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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돌아와서 기대하던 게 있었는데, 그 예상은 실망으로 마무리되었다.
“예? 떠났다고요?”
브리앙르는 의뢰를 받고 떠났단다.
따로 메시지나 편지를 남긴 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의외로 생각 이상의 허전함과 씁쓸함을 느끼게 됐다. 스스로가 유별나다 느낄 정도로 의외인 게, 굉장히 허전하면서도 뭔가… 기분이 침체된다고 할까. 답답하기도 하고….
“오셨네요?”
시스터 카멜린과 재회한 직후 조금은 나아졌지만, 여전히 씁쓸함을 사라지지 않았다.
다음날, 내 마법에 대한 적성에 대해 듣고자, 동시에 인사 차원에서 마법사의 탑, 에우리에의 연구실이 자리한 마탑으로 향하게 됐다.
“좋은 소식 하나, 나쁜 소식 둘. 어느 거 먼저?”
나는 고민하다 나쁜 소식부터 듣기로 했다.
“마법에 대한 적성은 없음. 못 배워.”
“…….”
사람 마음이 간사한 게, 아닌 줄 알아면서도 내심 기대하게 된다고 할까.
로또 사면 당첨 안 될 줄 알면서도 내심 기대하지 않나? 지금 내 심정이 딱 그거다. 당연히 안 될 줄은 알았지만 막상 토요일에 번호 확인할 때 당첨 안 됐단 사실을 접하곤 실망감에 사로잡히는 거. 지금 내가 느낀 감정은 그에 10배 이상은 처참했다.
“그, 그렇군요.”
“둘째, 신체 구조상 마력이 별로 어울리지 않아. 드문 체질이지만 그 때문에라도 새로이 마법을 배워 익히려는 시도는 무의미할 수 있어. 남들보다 배는 노력해도 효과가 거의 없을 거거든. 흔히 마력에게 따돌림 당했다고 우리들은 이야기하는 적성인데, 드문 건 아니야. 이런 적성임에도 마법을 배운 이가 없는 건 아니지만 백에 아흔아홉은 허송세월 보내기에 우린 마도의 길에 들어서길 권장하지 않아. 절대로. 그런 체질들이 몇 개 있어. 천만다행인 건 신체 활동, 건강 상엔 문제가 없다는 거야.”
“…끄응.”
얼마 안 남은 희망의 파편조차 모조리 부서졌다. 그뿐인가. 하나하나 작디작은 파편마저 망치로 일일이, 잘게 잘게 가루가 돼버렸다.
“그, 좋은 소식이 있긴 한 건가요?”
“응. 마법에 소질이 아예 없는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다른 쪽 적성을 개척할 수 있게 됐으니까.”
“다른 쪽요?”
“엘프하고 친하다 했지? 그들한테 뭔가 배울 수 있을 거야.”
“정령술 같은 거요?”
“그건 모르지. 세상에 얼마나 많은 기술들이며 비전들이 있는데. 어쩌면 오지에 있는 토착 주술사에게 괴상한 저주문을 배울 수 있을지도?”
…진담인가 싶을 정도로 그녀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런 소리를 해댔다.
“편견을 가지지 마. 그들이 지닌 지식, 기술, 비전은 다 제각각의 고유의 맥이 있으니까. 쓸데없고 구질구질한 것들도 많지만, 세상천지엔 온갖 종류의 잡초들이 있잖아? 나무도 있고, 꽃도 있고. 이조차도 다 고유의 특성과 기질들을 지녔지. 그러나 그것들은 태생을 개화시키는 거 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어. 있다 해봤자 시들고, 죽고, 저무는 거지.
그러나 우린 변할 수 있어. 인간, 이외 종족, 유사 종족들은 대부분 태생적 한계를 못 벗어나지만, 적어도 짐승이며 벌레, 식물에 비하면 한없이 많은 선택지를 지녔으니까. 그러니 실망하지 말고, 좌절하지도 마. 알았지?”
에우리에, 그녀가 이런 식으로 말을 많이 할 줄은 예상치 못 했다.
“어, 음… 저 위로해주신 건가요?”
“……위로 안 됐어?”
“아뇨아뇨! 많이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활짝 웃은 나는 솔직히 감사를 표현했다.
…역시 표정이 무덤덤할 뿐 마음은 참 따스한 마법사시라니까.
“그건 그런데.”
문득 그녀가 말했다.
“오늘 밤은 시간 돼?”
…왠지 노골적으로 예상이 가능할 법한 제안을 그녀가 하려는 게 아닐까, 그런 의구심과 기대감에 왠지 모르게 아랫도리 쪽에 피가 쏠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