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21. 그녀가 귀여울 수밖에 없는 이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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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떠 먹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어느 순간부터 테티아나는 날 친근하게 불러대고 대하기 시작했다.
느낌이 마치 딸아이의 예비 신랑을 대하는 듯해서 이게 상상 이상으로 낯간지러웠다.
“떠먹여 주셨다면 그만큼 바라는 게 계시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바라는 거라니, 나야 순수한 호의며 호감을 표현하는 거뿐인데. 서로 잘되자는 거기도 하고.”
“물론이지요. 저야 데이엔 가와 끈을 이어둘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영광 아니겠습니까.”
“우리야 가문 특성상 사내를 들이진 않지만, 프리지아가 아이를 낳으면 자네도 그 아이에게 매정하게 대하진 않을 테고 말이야.”
“음, 그런 거 원래 솔직하게 밝히시면 안 되시는 거 아닌지요?”
어느 의미론 대단히 계산적이고, 좀 그렇게 들릴 수 있으니 말이다.
“허례허식을 보일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뿐이야.”
“높이 사주신 점은 감사할 따름입니다만, 너무 큰 기대를 하셔서 실망감을 드릴까 염려 됩니다.”
“아니야, 그대는 잘 할 거야. 지금까지 본 것만으로도 기대 이상이니까. 장래가 유망하다는 건 그런 거지.”
“그러다 망가지고 꼬꾸라지는 이들이 얼마나 또 많습니까?”
“그걸 이해하고 있다면 코앞을 못 헤아려 넘어지는 일은 없지 않을까?”
기이한 이야기지만 테티아나는 이상하게 날 높이 사는 경향이 있었다.
어쩌면 내 뒷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만약 그런 게 없었다면 그녀가 지금처럼 적극적인 어프로치를 취했을까, 그게 조금 걱정이었다.
“그보다 일전에 한 이야기 말이야. 저 아이를 아카데미를 내려놓게 하고 가업을 잊게 하는 게 어떨까, 지금 고민 중인데, 에드릭 그대 생각은?”
“그녀가 바라는 게 어떤 건지를 앞서 헤아리는 게 옳지 않을까요? 너무 강압적으로 나가시면 시간이 흘러 그게 한으로 남을 거고, 나중에 테티아나 님께 부메랑으로 돌아올 겁니다. 노파심 삼아 말씀드리는 겁니다만….”
“알지. 그래도 철이 들면 다 이해할 거야. 나도 그랬으니까.”
“…저번에도 슬쩍 언급 드렸지만, 모두가 나 같을 거라는 게 대단히 위험한 생각입니다. 그걸로 낭패를 본 이들이 적지 않으니까요.”
“나라고 모르겠나? 그래도 저런 식으로 소꿉놀이를 하게 두자니 영 아쉬워서….”
“그 시기를 추억 삼아 또 힘든 나날을 버틸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무엇보다 친애하는 애인 분이 계시다고 말했는데, 여기서 거길 가지 말라고 그러시면 그 관계를 강제로 끊어 놓으려는 걸로 의심을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이야.”
마치 전부 헤아리고 있다는 양, 그녀가 짓궂은 미소를 띄운 채 말했다.
“그 애인이란 녀석을 이리로 오라 하면 어떨까?”
“음, 저로선 섣불리 판단할 자격이 없으니 그런가보다 싶겠습니다만, 분명 깊은 연유가 있으시겠지요?”
“소문을 듣자 하니 저 녀석, 사내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같은 동성의 친우를 좋아하는 거 같더라고.”
“…예?”
음, 그러니까… 커밍아웃?
“애인 분이 여성 분이시다?”
“어디까지 소문이지만. 지금 확실한지를 파악 중인데, 아마 틀림이 없을 거야.”
“흐음. 제가 그런 걸로 크게 편견을 가질 생각은 없습니다만, 세간엔 여러모로 안 좋은 소리가 퍼져갈 수 있겠군요. 체면 문제가 아닐까 걱정됩니다만.”
“그렇지. 그걸 크게 신경 쓸 생각은 없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 가문은 오히려 그런 게 훨씬 위안이 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야. 들키지만 않는다면. 그도 아님 그런 게 들통나더라도 별문제가 안 되게 규모를, 가세를 성장시켜 감히 따지거나 논하지 못하게 입을 막아버리면 그만이고.”
의외로 이런 쪽은 관대하구나. 귀족 가문이랍시고 엄청 반대하거나 거부 반응을 보일 줄 알았는데….
“문제는 우리가 이해해준다 하더라도, 상대 가문이 납득을, 용납할지가 의문이지.”
“아, 그러네요.”
상대 가문이 유서 깊은 가문이라면야 더더욱 이런 전개는….
“참 흥미진진하게 흘러가고 있단 말이야. 이 상황을 어떻게 굴려야 좋은 전개로 이어질지 요즘 고민 중이거든.”
테티아나는 어딘가 짓궂은, 그러나 한편으로는 냉혹한 미소로 앞으로의 전개에 대해 여러모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듯 싶었다.
“그러나 그대가 열심히 분발해주면 이런 고민들은 전부 해결될 문제니까, 지금처럼 힘써봐. 아, 반 합의 하에 합방하는 거, 관계 맺는 정도는 이해해줄 테니 언제든 시도해보도록 하고. 사내지 않나? 힘 좀 써봐. 내심은 강제로 해도 상관은 없지만… 그대는 안 그러겠지. 믿음직한데 못 미더운 점이라니깐.”
“음, 일전에도 말했지만 저는 무조건 프리지아 영애의 의중을 먼저….”
“여성은 때때로 힘으로 밀어붙임 당해보고도 싶은 법이야. 부끄럽고 어색한 상황에서 자길 안아달라 말할 정도면, 여자 된 입장에서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지 아나? 그땐 말보단 행동을….”
“테티아나 님은 어떠세요?”
“나? 내가 왜?”
“제가 힘으로 밀어붙이면 납득해 주실 참이신지요?”
내가 은연중 진지한 표정으로 반문하자, 그녀는 잠시 침묵했지만.
“해봐. 얼마든지.”
오히려 자신만만하게, 맹수의 그것과 같은 눈빛으로 그런 내 도전을 환영한다는 듯 사나운 미소로 그런 날 가소롭다는 것처럼 주시해오고 있었다.
“하하하.”
그래서 나는, 할 말이 궁해져 그냥 웃었다.
역시나 웃는 얼굴에 침 못 뱉으니까.
옆에서 보면 이것도 꽤 콩트일지도.
소년과 아가씨가 의미심장한 소리를 일삼으며 분위기를 붙잡고 있는 거니 말이다.
…당사자 된 입장에선 이런 구도, 썩 나쁘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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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연구실에 있던 에우리에가 내 방문에 겉으론 고양이처럼 도도하게, 그러나 강아지처럼 들떠 꼬리가 달렸다면 꼬리가 마구 진자 운동을 하며 날뛰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그녀의 목소리엔 반가운 기색이 역력하게 묻어나 있었다.
“잘 쉬었어요?”
“응, 덕분에.”
그러다 문득 에우리에가 안경을 쓰고 있음을 파악했다.
“왠 안경이세요?”
“……안 어울려?”
“아뇨, 전혀.”
오히려 갭이 느껴져서 쩐다! 하고 속으로 외치고 있었던 참입니다!
미묘하게 안 어울리거나 외모를 너프 시키는 용도로 안경이 자주 대두되는데, 특색에 따라선 플러스 알파가 될 수 있다는 점은 뭐… 살다 보면 자주 겪게 되는 문제가 아니겠나.
특히 그녀의 두 눈은 아름답기 그지없기에, 원형의 안경은 그녀의 두 눈을 보다 부각시키는 듯 느껴져 훨씬 잘 어울린다고 할까, 아무튼 그랬다.
…설명이 어수선했지만 이지적인 느낌에 학구적인 분위기까지 더해져 엄청… 음, 뭐랄까. 섹시하다고 할까? 이게 섹시한 게 좀 이상한데… 그렇게 느껴버리는 걸 어쩌겠나.
“마력으로 시각을 보충하긴 하는데, 마력 감응이 떨어지는 날엔 이거 없으면 앞이 잘 안 보여.”
“오늘이 그런 날인가요?”
“응.”
의외로 판타지 세계라곤 해도 마력이란 게 날씨며 기후, 그 외에도 마력 특유의 영향력이 일상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모양이다.
마력 폭풍이란 게 인근에 불면 마력 운용이 불안정해져서 마력 활용을 자제해야 한다던가, 오히려 마력 순풍이 불면 평소보다 더한 출력으로 마력을 활용할 수 있다던가. 듣다 보면 과학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체계적이고 논리적인데, 당연 들어도 교양쯤으로 이해하는 거지 원리는 전혀. 어차피 마법 배울 것도 아니니 딱 교양 정도면 족했다고 봤다.
그리고 그런 교양 상식을 겸한 마법 이론, 지식 등을 에우리에에게 배우고 있는 건데… 그녀는 생각 이상으로 가르치는데 소질이 있었는지, 내용들 자체는 대단히 이해하기 쉬운 편이었다.
“마법적 재능, 마력을 다루지 못해도 이론하고 원리를 이해해서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게 마도구들인데, 나날이 발전해서 지금은 원리만 이해하면 바로 다룰 수 있게 양산화돼서 생산되는 것들이 꽤 많아.”
그리고 마도구라는 건 우리가 사는 세계의 전자기기, 편의 시설, 용품 등으로 활용되고 있는 모양인데, 전쟁 당시엔 전쟁 병기로 개발, 활용되어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처럼 평화로운 시기엔 전쟁 및 전투를 열망하는 마법 학파들이 소외되고 천시받고 있는데, 그들을 모셔 가서 군사 강국을 꿈꾸고자 하는 나라들도 많으니까, 방심할 수만은 없지. 언제고 상황을 발생할 수 있으니까, 마법 통제위원회 당국은 그런 전쟁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항시 각 학파에 감독관을 파견하고 그러거든. 얘들은 좀 문제가 있으니까 주의해. 종교계의 이단 심문관 비슷한 얘들이니까.”
“…막 의심 사면 고문하고 그러나요?”
“마법사 한정이지만, 그렇다고 들었어.”
“…저보단 에우리에 누님이 조심하셔야죠.”
“난 밖으로 돌지 않으니까 괜찮아. 그들도 연구에만 몰두하는 구석탱이 마법사들에겐 흥미 없으니까. 정치적이고 사교성 원활하고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음모 꾸미는 애들을 감시하는 거지, 우리들은 연구가 괴악하거나 악독한 목적으로 벌어지는 그런 연구만 아니라면, 별문제 없어.”
“의심을 사고 막 누명을 쓴다거나….”
“…그거 너무 걱정하면 아무것도 못 해.”
“끄응, 그도 그렇네요.”
이거 클리셰 같은데. 이런 불안감 느끼면 괜스레 엮일 것 같은 기분이….
“피곤해. 졸려.”
그러다 수업 막바지에 이르러 에우리에가 그런 속내를 털어놨다.
“배도 고파.”
“설마 해서 묻습니다만, 아침이나 점심은 드신 거죠?”
“…….”
죄지은 양 눈길을 피한다.
그 모습이 물건 어지럽힌 강아지를 연상하게 해서, 귀여우면서도 내심 걱정이 됐다.
“에휴. 갑시다.”
“…어디로?”
“어디일 거 같습니까?”
“…카멜린?”
“아시면 됐네요.”
가서 카멜린한테 혼내주라 해야지. 자꾸 끼니 안 챙긴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