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23. 엘프들과의 기묘한… 관계.
엘프뿐 아니라 도시 내에선 이런 식으로 자체적인 무리 및 마을 느낌으로 주변을 형성한 예가 적지 않다고 들었다.
거기에 엘프들조차도 여러 영역에 분포된 상태이며 엘프들조차도 같은 종족임에도 인간이 인종을 따지듯 엘프들도 본류를 따진단다.
이걸 처음에 배웠을 때는 역시 판타지여도 현실은 현실이구나 싶었다. 막연히 다크 엘프, 우드 엘프, 무슨 엘프 이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혈통에 따른 맥과 출신지며 이런 걸 일일이 다 따진다는데, 막상 들어보면 무척 복잡하게 느껴졌다.
타 종족들의 기본적인 문화 및 여건 등도 헷갈리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나마 이곳 아르세이유에 주거하는 이들은 그런 점에서는 개방적이고 자유분방한 편이라고는 하는데….
“음, 제대로 이해한 거면, 엘프들의 성욕을 증진 시키되 몸에 해는 안 가는 약술? 이걸 만들고자 하신다는 거죠?”
“제대로 이해하셨네요.”
그녀는 나름대로 나긋한 미소를 선보인 듯 싶었지만, 이조차도 인간적인 기준으론 옅은 감정 표현으로 느껴졌다.
엘프들의 표정을 인간적으로 이해하려면 조금 과장되게 이해할 것. 미리 숙지해둔 덕에 그녀의 반응을 조금 더 원활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에 대한 거라면 아마….”
나는 알리샤에 대한 이야기와 그녀가 다루는 약품에 대해 언급했고, 그것의 효과에 대해서도 겪은 걸 적절하게 포장해 설명해줬다.
“흐음. 그러니까 이건 발정하고는 조금 다르다 이건 가요?”
“아무래도요? 자세한 건 본인에게 직접 물어봐야 알겠지만….”
알리샤가 우리 도시에 합류하려면 아직도 한세월 남았다.
앞서 백화점 건물이 완성을 목적에 둔 직후의 이야기일 테니.
“저런.”
뮬리아, 그녀가 아쉬운 듯 혀를 찼다.
“그래도 제가 받은 게 있으니 그걸 우선 활용해보시면 어떠신지요?”
“정말인가요?”
그녀가 반색하며 묻자 고개를 끄덕여뒀다.
“당장은 없고 거처 창고에 있으니 다음에 올 때 가지고 오겠습니다.”
“그러면 정말로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좋아, 이 정도면 무사히 할 일을 끝마쳤다고 치면 되려나?
그러나 고작 이에 대한 해결책 제시를 위해 파견됐다고 하기엔 좀 그런데. 휴즈 씨 말로는 아무래도 한동안 여기에 출·퇴근 해야 될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큰 걱정거리 하나는 덜었군요. 그러면 이번엔 이곳에 오게 된 일에 대해 한 번 이야기를 나눠보죠. 업무 이야기입니다.”
역시나.
“제가 무슨 일을 하면 될까요?”
“하이엘프께 허용의 문양을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예… 일단은요.”
음, 이 또한 예상 범위.
“보통 인간 측이 그런 걸 접하면 가장 먼저 우리들에게로 달려와 관계를 요청해 오는데, 여지껏 엘프들과 관계를 한 차례도 맺지 않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알 수 있을까요? 아, 혹시 민감한 이야기라면….”
“아닙니다. 그런 건 전혀요. 그냥… 시간이 안 났거든요.”
“……시간이요? 교미에 목숨 건 인간 남성이 그런 걸 변명으로 삼기엔 설득력이 너무 부족하게 여겨지는데요?”
아니, 이 사람아… 아니, 엘프야. 뭐 우리가 떡 못 치면 죽기라도 하는 병 걸린 줄 아십니까?
“크흠!”
속내가 어쨌든 자중하고자 심호흡을 했다.
아, 화가 날 게 아닌데 묘하게 울컥하네. 왜죠?
“혹시 실례가 됐나요? 인간 남성은 자고 깨는 내내 그런 것만 생각한다고 누누이 들어왔거든요. 제 아버지도 오죽하면 저한테 욕정을 느낀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실 정도였는 걸요.”
“…….”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엘프들은 근친에 대해 의외로 관대합니다.”
“크흠!”
왠지 속내를 읽힌 듯 해서 괜스레 민망해졌다.
“오히려 그렇게라도 해서 관계가 개선되어 씨를 잉태할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하거든요.”
“그, 그렇군요.”
배우긴 했지만 엘프 본인 입으로 들으니 살짝 쇼크였다.
“그런데 아버지는 이상하게 그런 쪽으로는 에드릭 님과 같은 반응을 보이더군요. 어찌 딸에게 손을 대느냐, 너희가 그걸 가능하다 뭐다 해도 나는 아니다. 이런 식으로 말하던데, 인간은 그런 쪽으로 민감한가 보죠?”
“으음, 민감하다기보다는….”
뭔가 부도덕하다고 느끼는 게 일반적이기도 하고, 법에 따라선 어떨지 모르겠지만, 의외로 역사적으로 근친혼으로 왕가를 꾸린 혈통들도 있었고 서양 쪽 귀족들도 찾아보면 많고 동양권도 찾아보면 의외로 많은데다….
그러나 유전자적 측면에서 이것이 문제가 됨은 물론, 법적으로 금지되고 인식 문제도 있겠다… 아, 복잡해지네.
자세히 아는 바는 없는데 너무도 당연하게 ‘그게 왜 문제죠?’ 이리 물어보니 순간적으로 할 말이 궁해졌다.
마치 꼬맹이가 ‘우린 왜 태어났어요?’, ‘우린 왜 죽는 거죠?’ 하고 당연한 소리를 물은 덕에… 말문이 턱 막힌 기분?
의외로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질문들을 아이들은 태연자약하게 묻곤 하지.
하늘이 왜 생겼어요? 물은 어디서 났어요? 우주는 왜 있어요? 우린 왜 나이를 먹어요?
아니, 근데 진짜 뭐라고 변명을… 아니, 올바른 해답을 해줘야 하나 순간 고민됐다. 능청은 잘만 떨더니 오히려 순수성에 가로막혀 단번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줄이야. 역시 사람은 자만해선 안 되나 보다.
“그러면 뮬리아 님께서는 아버님을 사모한다던가 친애 이상의 감정을 지녔다던가…?”
답하기 어려우니 답할 문제를 바꿔버리자. 꼼수긴 했지만, 당장엔 해결책이 안 보이기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아니요.”
그런데 또 툭 하고 폭탄 발언이 날아온다.
“부모로서 존경심, 존중의 자세를 취하려는 겁니다. 이건 당연한 도리가 아닌지요?”
“그, 그야 그렇죠?”
“그것이 저와 아버지가 성교를 하는 것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요?”
“…….”
GG.
뭔가 어중간하게 말재간으로 상황을 모면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게 느껴졌다.
“마, 맞는 말씀이십니다.”
아니아니! 맞는 말씀이 아니지!
그녀의 시퍼런 눈을 보자니 괜스레 머리가 복잡해졌다.
종족이 다르다는 게 이리도 견해 차이가 심각한 거구나 싶었는데….
“엘프들 중 진지하게 이런 이야기하는 아이들이 있으니까, 그때도 지금처럼 당황하시면 안 되요?”
“…….”
이리 말해서 연기였나 싶었는데.
“성을 대함에 있어 인간은 이상하게 이에 대해 부끄러워하면서도 금기시 여기고, 그러면서도 집착하고 몰두하죠. 반면 우리는 그렇게 생각을 안 해요. 다만 사랑하는 이와 맺어져 관계를 맺는다는 것에 한에서는 인간이고 엘프고 차이가 없으니, 그 점은 염려 놓으셔도 되고요. 대부분 상대를 사랑하게 되면 순진무구한, 인간의 표현상 냉담하고 이성적인 엘프들도 누구보다도 적극적이고 정열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걸 잘 이해해두시고요.”
“…음, 명심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여태 본론 아니었습니까?!
당혹스러움이 치밀다 보니 자연스레 입안이 바짝 타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내게 주어진 일이란….
“어서 오세요!”
엘프들의 유흥 시설에서 그녀들의 고뇌와 고민을 들어주고, 어쨌든 멘탈을 케어해주는 일이었다.
……맙소사.
물론 인간들 특유의 유흥 시설, 퇴폐 업소하고는 느낌이 완전 틀렸다.
이게 어떤 느낌이냐 하면… 심리 상담소 느낌?
거기에 약간의 술이 첨가되고 그러는데, 엘프들은 확실히 살아가는 세월이 달라서 그런지 어린 내 외모를 보고도 특별히 편견이나 차별을 두는 기색이 일절 느껴지지 않았다.
거기다 엘프에 대한 편견이 이상하게 박힐 뻔도 했는데, 의외로 인간과 별 차이가 없이 활발하고 사교적인, 공감대가 그럭저럭 맞아 떨어지는 엘프들도 있어서 그나마 한결 마음이 놓였다.
“그래서 말인데….”
거기다 상대가 무조건 여엘프라는 법은 없는지, 지금 눈앞에 예쁘장한 미소녀를 연상하게 하는 이 엘프는 어쨌든 남성이고, 외모만 보면 취향을 넘어 반하고도 남을 뻔했지만, 남성이란 말에 멘탈 케어를 해줘야하는 내 쪽이 오히려 멘탈이 나가버렸다.
아아아니! 이런 외모를 지니고 남자라니! 남성이라니! 이게 무슨 개떡 같은 소리입니까?! 하늘도 무심하시지! 어찌 이런! 말도 안 되는!
“듣고 있나, 인간?”
“…응. 잘 듣고 있습니다.”
“말투가 딱딱해. 그러면 못 써!”
술이 좀 들어가니 확실히 말이 좀 많아졌다.
참고로 나도 술을 조금씩 맛보고 있었는데, 맛이 기가 막혔다. 주스 같은 느낌이고 애초에 인간의 술하고는 방식이 다르기에 정말로 과즙 느낌인데 이게 문제는 취한다는 거다. 잘못 마시다간 한순간에 훅 갈 거 같아 거의 혀를 축이는 정도로만 넘기고 있는데… 문제는 눈앞의 그녀… 아니, 그 새끼… 끄응! 이 남자가 날 환장하게 만들고 있었다는 거다.
“인간들은 말이야, 우리에게 관대해야 된다고. 내가 100년 전에는 말이야….”
거기다 미소녀가 ‘라떼는 말이지!’를 시전하고 있는 이 부조리가 묘한 갭을 불러오는 터라… 아니, 미소녀가 아니라 미소년! 나도 취했나? 이러다 잘못하면 정체성 혼란이 올 거 같았다.
아무튼 첫날, 네 명의 여 엘프와 한 명의 남 엘프(…)와 그럭저럭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나는 이 일이 생각보다 인내심을 자극할 거란 기분이 들었다.
아, 참고로 이 일을 할 수 있는 건 무조건 문양을 받고 허가를 받은 이들 한정이란다. 이러다 관계가 좋게 흘러가면 같이 침대도 쓰는 거고… 그러고도 엘프들은 크게 집착 안 한다고 했는데, 그렇다고 또 모성애나 부성애가 없는 건 아니고. 뭔가 인간하고는 좀 많이 달라 가지고 내심 헷갈렸는데, 엘프들마다 또 다르단다. 그 부분을 조금 더 확고하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아직 멀었지만.’
마차를 타고 퇴근하는 길, 뭔가 착잡해져서 전용 스마트폰을 꺼내 엘프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며, 나는 시스터 카멜린이 포근한 미소로 맡아줄 우리 집을 꿈꾸며 그 속에서 술김에 살짝 잠들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