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91)화 (91/454)



〈 91화 〉25. 내가 좀 더 분발해야 하는 이유.

이럴 때가 종종 있지 않나.
뭔가 엄청 기대한 덕에 잠도 못 자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던가.

이를테면 내일 상영되는 영화 때문에 온종일 pv며 소식, 예고편 등을 보면서 날을 샌다던가, 기대되던 작품이며 특정 기계, 상품, 제품 나온다 하니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대기 탄다던가.

유명한 맛집 간다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친구하고 간만에 줄 서서 그럭저럭 이야기나누며 기다리다 순번이 와서 들어가 배를 채우기 직전의  기대감도 그렇고.

지금 내 심경이  그랬다.


별  아닌 걸로 취급하고 담담하게, 의연하게 넘길 수도 있었음에도 이상할 정도로 뮬리아와의 관계에 대한 기대감 덕분에 좀처럼 집중을 하질  했다.


그러나 그 기대감이 무참히 깨어지는 사태가 발생하게 되는데….



“끄응!”

몸살이 난 탓이었다.
평소엔 멀쩡했는데 자고 일어나니 열이 났는데, 적당히 진찰받으며 알게 된 건… 피로가 겹친 탓이란다.
덕분에 엘프들에게 잔뜩 위로의 말을 전해 듣고는 조금 지내기 편한 장소에 며칠 요양 차원에서 옮겨지게 됐는데….




“괜찮으세요?”



시스터 카멜린이 그런  돌보고자 손수 찾아왔다는 거였다.



“예, 큰 문제는 없습니다.”
“아닌 거 같은데요?”

아무래도 겉보기에도 티가 나는지 그녀의 표정이 좀처럼 펴질 줄을 몰랐다.
괜히 미안해졌지만, 그녀는 걱정 말라듯  물수건을 갈아 이마에 올려주며 쉬라는 듯 인근에 앉아 그런  지켜봐 주었다.


“고마워요. 이렇게 또 먼 곳까지….”
“멀긴요. 이 정도는 끄떡없답니다.”




그녀의 맑은 미소를 보며 나는 마음 편히 쉬기로 했다. 어차피 이 상태로는 뭘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기도 했으니.

다만 잠드는 와중에 문득 불안한 뭔가가 떠오르긴 했다.
설마 이러고 잠들다가… 이상한 문제가 생기는  아니겠지?

카멜린, 그녀가 원치 않더라도 그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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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니 주위는 한산해져 있었다.
어차피 카멜린하고 나밖에 없었기에 조용했던 거야 당연한 거였지만….


“으응.”




왜 몸이 찌뿌둥한가 싶었는데, 어느새 내 옆에 에우리에가  껴안고 기분 좋게 잠들어 있었다는 게  잠시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저기, 누님? 에우리에?”
“…….”



새액새액하고 잘만 자고 있어 괜히 깨우기가 그랬다.
다만 하루 내내 잠에 파묻혀서 그런지 몸이 노곤노곤하고 머리에 열이 차서 뭔가 축 늘어지는 감이 있었음에도 잠이 올 기미는 당장 보이질 않았다.


무엇보다… 화장실.
엉겨 붙은 에우리에를 살짝 떼어내고 이불을 걷어 올려 몸을 일으키려니 슬그머니 현기증이 임박한다.

“흐음.”

앉아 있는 것조차도 상당히 불편했는데, 어느새 몸을 일으켰는지 데구르르 굴러  엉덩이와 허리 쪽에 찰싹 달라붙은 에우리에가 부쩍  옆으로 달라 붙어왔다.


“몸은 좀 어때?”
“…심각한  아닌데 살짝 불편한 정도요?”
“그럼 불편한 거네.”

그녀는 무덤덤하게 그리 결론지었다.



“식사? 화장실? 단 게 당기거나 그러진 않고?”
“…듣고 보니 좀 그러네요.”
“특제 꿀물을 타뒀으니까 가져다줄게. 화장실은?”
“…막 가려던 참입니다.”



부축하듯 날 일으켜 세워주는 에우리에.
상상도 못 한 그녀의 배려심에 내심 놀라고야 말았다.



“…카멜린은요?”
“돌아갔어. 자고 가라는데 그건  된다고 그러네.”
“흐음.”

역시나 잊지 않으셨군요, 시스터.

안도인지 아쉬움인지 모를 무언가가 허전하게 가슴을 때려오는 가운데, 나는 그녀의 부축을 받아 비교적 편하게 화장실로 들어섰다.



“…….”

큼지막한 항아리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모습을 보자니 일순 자괴감이  치밀었지만, 현대식 화장실을 꿈꾸기엔 여기가 워낙 깊어야지. 마을 내에서도 조금 안쪽으로 부지가  좋고 양기가 활성화돼서 몸이 허한 이가 요양하기 좋은 곳이라나?


내가 구태여 카멜린과 같이 지내는 집으로 퇴근하는  추구한 이유도 다 현대식 화장실 때문이다. 판타지 세계에서 의외로 가장 불편한 점을 들자면 화장실 문제가 정말….

“저기, 근데 에우리에 누님? 어째서 안 나가시는지요?”
“받쳐줘야지.”




아니 서는 거 자체는 문제 없는데요?

“혼자 할  있는데요?”
“아니야. 그러다 쓰러지면 큰일 나잖아?”
“…저 그 정도로 중환자 아닌데요?”
“내가 걱정이 돼서 그래.”




그러면서 왜 눈을 그리 빛내실까. 기분 탓일까? 흑심이 만연한 거 같으신데…?
새삼 보여줄 거  보여줬음에도 사적으로 볼일 보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나 순간 진지하게 생각한 내가 어이가 없어졌다.



“…알았으니 그러면  밖에서 기다려주세요.”
“큰일이야?”
“아뇨, 작은 일이요.”
“그럼 마저 봐.”
“…볼 테니까 문밖에서 기다려주시라고요.”


왜 남에 소변 보는 모습을 보려고 하는 걸까.  누님 정말 이러다 변태 되는  아닌가 몰라.


…아니, 이미 변태인가?
애초에 소변 보는 모습에서 뭔 즐길 거리가 있다고.


축 늘어져 실망이 한가득, 더불어 미련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녀를 애써 냉담히 쫓아냈다.

“아, 머리 아프네.”

벌컥!




“정말?!”
“…누님 때문에요.”

애써 내보냈더만 다시  열고 들어오시면 어쩌라고요?
정말이지 코메디가 따로 없었다. 겪는 입장에선 이게 뭔가 싶었지만.

그런 식으로 뜻하지 않은 이벤트를 끝마친 나는 곧장 침대로 돌아와 몸을 뉘였고, 십 분 정도 그렇게 멍하니 상체만 살짝 들어올린 채 누워 있자 에우리에가 꿀물을 가져왔다.

“내가 먹여줄게.”
“…괜찮으시겠어요?”
“??”

이런 경험이 좀처럼 없었기에 괜히 남한테 먹는 걸 맡기는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특히 꿀물 같은  조금만 흘려도 끈적끈적한 게… 으으! 생각만으로도 몸이 움츠러든다.


 마시기 전부터 흘릴 생각을 하는 걸까. 기이한 일이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그녀는 중간이 살짝 패인 나무 수저로 그것을 떠서는, 그릇을 입 인근까지 가져가 흘릴 여지 자체가 없도록 신중을 기하며 내 입안으로 꿀물을 흘려 넣어줬다.


…오늘 에우리에 누님에 대한 여러 가지 편견이 깨어질 것만 같았다.
평소 보아온 게 있어 생활력이 파탄 났다고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세심하잖아?


“어때?”
“맛있네요.”

그릇이 빌 때까지 계속 퍼줬는데, 한참 걸렸다.

왠지 감질 맛나서 그냥 손으로 들어 마시려 했지만, 뭔가를 위해주는 행위 자체만으로 상당히 만족스러워하는 에우리에를 보고 있자니 차마 그 기대를  수 없어 있는 그대로 받아먹었다.


그런 식으로 뜨뜻하고 달짝지근한  입안을 메우니 미묘하게나마 포만감이 느껴졌다.

“몸을 소중히 해야지. 이게 뭐야.”



그녀는 덤덤하게, 그러나 걱정스런 어조로 힐난해왔다. 악의는 없고 다분 걱정돼서 그러는 거지만 꽤 집요하게  이렇게 됐니? 어쩌다가? 언제부터? 조짐은? 하는 식으로 묻다가… 어느새 옆에 안겨 귓가에 대고 그러고 있으니 열기가 치솟은 와중에 없던 성욕이 치밀 정도였다.


…이게 오죽 귀여워야지. 아이고…!

그러다 제풀에 지쳐 잠든 그녀.
원체 바쁜 사람이다 보니 여기까지 와서 날 돌봐 주려 했다는  자체로 나는 새삼 감동한 상태였다.




“그나저나.”


시스터 카멜린도 그렇고, 에우리에도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찾아온 걸까?

그런 궁금증을 안은  나는 옆에 안겨 기분 좋은 냄새를 풍기며, 무방비하게 잠든 그녀의 모습을 반찬 삼아… 편히 잠들 수 있었다.


…근데 이러다 감기? 몸살 기운 옮기면 어쩌지?
그런 불안조차도 잠드는 와중에 모조리 옅어지고, 희미해져만 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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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다음날에도 상태가 호전되기는커녕 조금 더 악화됐다.
 쉬는  힘들고, 눈 뜨고 있는 것도 버거울 정도로.



‘아, 이건 제대로 왔네.’

몸살 기운 팍 오면 정말  뜨고 버티기 힘들 정도로 괴롭고 그런데… 지금이  그랬다.



“괜찮은 거야? 정말?”
“…예. 지나가는 과정이에요. 오늘만 넘기면 많이 좋아질 거예요.”
“정말이지? 그렇지?”
“예, 약도 먹었으니 곧 차도를 보일 거예요.  쉴  있도록 지켜만 보죠.”

어렴풋이 들리는 목소리는 카멜린과 에우리에.
그리고….


“죄송스럽네요. 제가 조금 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아닙니다. 병이라는 건 항상 조짐은 있더라도 방심하면 다가서는 거니까요. 뮬리아 님께서 죄송스러워하지 않으셔도 되요.”
“…….”
“자기 몸은 자기가 관리해야 하는 건데….”

카멜린의 목소리엔 미약한 노기와, 안쓰러움이 섞여 있었다. 괜히 걱정되게  건가 싶어서 조금… 미안한 감정이 치밀었지만, 한편으로는 기쁘면서도 뭔지 모를 만족감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자취할 때 몸살 심하게 난 적이 있었는데 이틀 내내 혼자서 억지로 버티고 버티는 것만 해도 곤욕이었다. 당시엔 파트 타임 일정까지 정해진 상태였기에 연락해서 사죄할 땐 그게 또 얼마나 죄스러웠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따로 미안해할 것도 없지만, 당시엔 좀 그랬다.

몸이 아픈 것조차 죄라고 생각했던 시절이었으니까. 아픈 것도 서러운데 현실마저 걱정해야 했으니.

그렇다고 부모님한테 전화해서 아픈 핑계 댈 수도 없었고, 먹는 것도 부실하고 이러다 보니 혼자서 얼마나 서럽고 고독했는지.

그러나 그때와는 전혀 상황이 달랐다.

몸이 아프고 죽겠음에도 묘하게 만족스러웠다.
나를 걱정해주고 지켜봐주는 이들이 있다.

……그거 하나가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이번 기회를 통해 절실히 깨달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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