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95)화 (95/454)



〈 95화 〉26. 그녀는 한 마리의 야생마.(2)

프리지아는 특유의 연푸른 머리를 만지작대며 말했다.




“예. 결정을 내려야 했으니까요.”
“음, 그 사정은 나중에 차분히….”
“뭔데뭔데?  나중에야? 고민이 있으면 지금 들어야지!”

알리샤가 잽싸게 끼어 들었다.

“무슨 일인데요?”
“어, 음…….”

프리지아는 당황했다.

“아, 그 전에 먼저… 서로 소개를 하는 게 우선 아닐까요?”
“그도 그렇네.”

알리샤는 이름 몰라도 얼굴만 알면 족하고 이름이야 살다 보면 어차피 알게 되는데 뭐! 하는 식으로 마구 들이댔던지라, 이런 것에 익숙하기 힘든 우리로선 차분히 마음의 준비를 할 필요가 있었다.


…아, 저도 물론 필요하죠. 그보다 진도가 너무 빠르잖습니까.

“저는 데이엔 남작 가의 프리지아 라 합니다.”
“와아! 귀족분이셨군요!”



알리샤가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놀랍다는  감탄사를 터트렸다.


“흠흠!”

그다지 떠받들 요소가 아님에도 오오! 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니 괜스레 어깨에 힘이 들어가나 보다. 이보세요, 당연한 사실에 어깨가 으쓱거리면 어쩌자는 겁니까.



“제 차례…인가요? 저는 카멜린이라 합니다. 현재 소브릴 정교회에 속해 신앙 생활에… 사정이 있어 전념은 못 하고 있지만 그러려고 노력 중인 수녀라 여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시스터시여, 어째서 부끄러워하시나이까. 당신은 누구보다도 떳떳하잖습니까?!  부분에 대해선 내가 적극 대변해줄 수도 있는데!




“…….”



뚱하게, 한편으로 멍하게 앉아 있는 에우리에는 알리샤가 옆구리를 툭 건드리고서야 반응했다.



“…에우리에.”
“……?”
“그렇게만 말하면  되지! 어디 보자… 브룸헨달 학파에 속했다고 했었지? 이곳 도시에선 브룸헨달 마탑의 수석연구원  그러고 있다고 했었나?”
“…….”


에우리에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했다.


“브룸헨달이라면… 학파 서열 6위에 해당하는 공신력 있는 마도 학파 아닌가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화들짝 놀란 프리지아가 에우리에를 다시 본다는 듯 살피고 있었다.


…겉만 보면 멍하니 잠들 거 같은 저 마법 소녀… 아니, 소녀 마법사가 실은 유명 학파의 전도유망한 마법사였다는 사실.


“난 알리샤 보먼. 얼마 뒤 이곳으로 이사 올 예정이라 잠시 들려 봤어! 약제가  이런저런 것들을 제조하고 만드는 일을 하고 있고, 겸사겸사 이곳저곳 탐방도 다니면서 모험도 즐기고….”



용병패를 봤을 때 알아봤지만, 의외로 알리샤는 능력자였다.
 뒤로 내 소개가 이어지고 대화가 적당히 무르익을 때쯤 음식이 나왔다.
의외로 술까지 튀어나왔지만 마시는데는 전혀 지장은 없었다.

…아, 나 빼고.


“그럼 내가 언니네?”
“언니라고 불러줘?”

어느새 프리지아하고 알리샤는 말까지 트고 있었다.


그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는 카멜린이었는데, 나와 눈을 마주치자 살짝 부끄러웠는지 어색한 웃음을 짓곤 얼굴에다 손으로 부채질하는데… 음, 저 인싸 기질이 퍽이나 부러웠나 보다.

“…….”

술 몇 모금 마시더니 벌써부터 졸고 있는 에우리에 누님. 자더라도 양치질하고 주무시죠.  썩어요!


…이런 걸 먼저 생각하는 나도 별종이긴 별종인가 보다.

길드를 나설 때쯤 해는 확실히 떨어져 있었는데, 알리샤와 프리지아는 아예 어깨동무까지 하며 활기차게 노래까지 불러대고 있었다.


“…….”

잠에서 간신히 깬 에우리에는 재들 뭐함? 하는 표정으로 내게 의혹을 표시했지만, 저라고  도리가 있겠나이까.

카멜린은 졸고 있는 에우리에는 집에 재우겠다며 데리고 갔고, 나는 알리샤와 프리지아를 따라 나섰다. 명분은 배웅인데… 어쩌다 보니 알리샤가 데이엔 가의 식객으로 얹히게 생긴 터라 실례가  되게끔 중재를 하기 위함이었다.




“엄마는 너라면 깜빡 죽어나니까, 네가 알아서 해!”



술주정 부리는 양 그리 시켜댄 그녀는.



“그보다 넌 왜 나한테 누나라 안 그래?! 알리샤 언니한테는 꼬박꼬박 누님누님하면서!”

…하고 평소와는 비교도 안 되게 풀어진 모습으로 날 추궁해댔는데.



“바라시는대로 누나라 불러드릴까요, 프리지아 영애?”
“……아니야. 그냥 평소처럼 해.”



방긋 웃으며 대답하니 뭔가를 느꼈나 보다. 흠칫하고 시선을 피하기 무섭게 평소처럼 대하라는 그녀.


“언니, 그보다….”



그보다 알리샤 누님, 당신 좀 전에 만난 귀족 영애한테 언니 소리까지 듣는 건가요?!

여자 둘이 어깨동무하고 기우뚱대며 걷는 모습은 참 각별한 장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현실에서 저런 모습을  본 건 아니지만,  시간 전까지만 해도 얼굴 한  본 적 없는 이들이 저런 식으로 어깨를 맞댄 경우를 태어나서 처음 본지라, 나로선 그저 신기하고 또 신기할 따름이었다.


‘부럽네.’

나도 저런 기질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다만.

“에드릭! 누나 힘들어! 옆에 와서 부축해줘!”


적당히 뒤를 따르던 내가 못마땅했는지… 혹은 안쓰러웠는지 알리샤가 손을 휘저어  불러들였다.



“예예, 갑니다.”




 때문에 전체적으로 체온이 올라간 터라 다가가기 무섭게 후끈한 느낌을 받았는데…  냄새 때문에 살짝 깨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그 덕에 상기되고 달아오른 그녀의 육신이 더욱 현실적으로 와닿았다.

아, 술에 취한 여자 사람 친구조차 제대로 부축해본 경험이 없다 보니, 이것만으로 묘한 걸 자꾸 상상하게 돼서, 괜스레… 음….

머리 뒤로 팔을 두른 알리샤.
그녀의 팔이 어깨를, 맨살이 노골적으로 덜미를 두른다.
기우뚱대며 예측 못  타이밍에 불규칙적으로 무게를 실어오는 그녀.


슬그머니 올려보니 뭔가 짓궂다 못해 장난기 서린 얼굴로 날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왜에?”
“…가던 길 가시죠.”



거리가  멀었다면 마차 잡고 보냈으면 됐을 텐데, 어중간하게 가까우니 그냥 걷기로 했는데, 아무래도 잘못된 판단이었던 거 같다.

그렇게 비틀대는 둘을 끼고 데이엔 가 문턱을 밟기까지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사투 아닌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흐음.”



야단났네 하는 표정으로 프리지아를 자기 방으로 들여보낸 시녀들.
어쩌다 보니 알리샤도 도매 급으로 같이 딸려갔는데… 이유가 가관.

“친해졌으면 같이 자야지!”

아니 저기요, 아무리 그래도….

그런데 신기한 건 시녀들이 거기에 미약하게나마 감동을 표했다는 점이다.
우리 아가씨가 드디어 외부에서 친구를 데리고 왔어! 하고 말이지.

……대체 어떻게 지내셨길래 시녀들이 저런 반응을 보이시는 겁니까, 프리지아 양?
이대로 돌아갈까 말까 살짝 고민하던 차에, 시녀장이 불쑥 접근해와서는.


“가주님께서 부르십니다.”



뭔가 예상했던대로 상황이 흘러갔다.



“…자기 관리가 못 미더운 애가 아니었는데, 의외구나.”
“간만에 신바람이 났던 모양입니다.”
“분풀이로 술을 입에 댄 건 아니고?”
“예, 그 점은 염려 놓으셔도 됩니다.”




테티아나, 데이엔 가의 가주님이며 프리지아가 성장하면 저렇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띄고 있는 여성.


…20대, 스물 중반이시면서 자신은 옛적에 늙었다고 푸념하는 게 코미디 아니면 뭐겠냐.

“다행이라면 다행인데… 소식을 들었을  만취 시켜 안심케 하고 바로 작업에 착수하려는 게 아닐까, 순간 귀를 의심했단다.”
“…제가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물론 그런 로망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것도 선이라는  있는 거지.


이를 테면 대학 생활에 선배 혹은 후배가 술에 취해 집에 가기 싫다며 모텔 가자고 엎힌 상태로 귀에 대고 속삭인다던가, 2차 혹은 3차  집에서 라면 먹고 갈래? 하고 끌어 들인다던가….


아님 차 다 끊켜서 어쩔 수 없이 모텔까지 데려가건 침대에 얌전히 눕혀두고… 답답해 보며 겉옷만 벗겨내려는데 훅하고 양손으로 얼굴을 끌어당긴다던가…, 애써 신사답게 침대에 모셔두고 바닥 소파에서 잠들려는 찰나에 불쑥 가슴팍으로 파고 드는 선배 혹은 후배의…… 으음!


……그딴 현실이 제겐 없었지요.
아예! 완전!

그래서 로망인 것이다. 그렇기에….
그런데 여긴 판타지잖아? 안 될 거야….



“뭐에 그리 실망하셨담?”
“아, 잠시 상상해보니 살짝 암울해져서요.”
“어떤 게?”
“누구들에겐 당연한 게 제겐 더 없이 멀게 느껴지는… 뭐 그런 거?”
“추상적인 표현이로군. 책을 좀 읽는다더니 시나 노랫말을 주어들은 거로구나?”
“…하하하.”



그저 웃지요.



“뭣하면 지금이라도 들어가보면?”
“예? 어딜요?”
“프리지아 방 안으로 말이야.”
“…….”


하하하, 농담도 참.

“농담이 아니란다. 나는 의외로 이런 부분에선 진지하다고 자부하는데?”
“크흠! 아니, 그래도 술도 취했겠다 잠결에 그러는 건….”
“뭐가 문제지?”




테티아나는 예상 이상으로 진지한 얼굴이었다.



“크흠!”



그래서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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