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화 〉27. 우린 변태가 아니랍니다. 이게 정상인 거라고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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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이상이었지.”
테티아나 님께옵서 흡족해하는 모습에 괜스레 낯짝이 뜨거워졌다.
“역시 보셨군요.”
“못 볼 꼴을 본 건 아니지 않나? 그보다….”
테티아나가 은근슬쩍 자신의 바지, 그 안에 숨겨져 있을 무언가에 시선을 주는 듯 했기에 무심코 다리를 오므렸다.
“이건 이것대로 기대 이상이라 내심 기쁘기까지 하구나.”
“그, 그렇습니까?”
“우리 에드릭은 뭐가 됐든 훌륭하답니다!”
나를 힘껏 끌어안은 알리샤가 마치 친동생이 칭찬받은 것처럼 기뻐해 댄다.
“그래서… 어떻게 된 겁니까? 대략 유추는 가능한데, 이건 아무래도….”
“프리지아에겐 상냥하지 않은 것 같아 불만족스럽다?”
“크흠!”
“나는 오히려 그 아이를 위해서 그래 해준 거였는데.”
‘그럴 리가요!’
그렇다고 내 쪽에서 역정을 내거나 과민 반응을 보이는 건 또 이상하니 조금 표정을 떨떠름하게 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 아이를 배려해주려는 건 고마우나, 그 아이도 알건 알아야지. 다 컸으면 이제 둥지를 나설 줄도 알아야 할 테니.”
“음, 제가 가정사에 이것저것 말씀드리는 것도 주제 넘는 거 같으니… 자제하겠습니다.”
이에 테티아나를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만큼 우리 아이를 생각해주고 있다는 거니. 나는 그 아이가 내 명령에만 따르는 인형으로 만들 생각은 없네. 그런 걸 바라는 어미며 아비들도 있겠지만, 그래서야 이 복잡하고 어려운 세상에서 남들보다 앞서기란 힘들지. 나는 되도록 그 아이가 에드릭, 너처럼 생각이 깊어지길 바랄 뿐이야. 나이를 먹다 보면 달라지긴 할 테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거니 되도록 빠르게 준비됐으면 하는 거고. 그게 유일한 욕심이지.”
“그래도 어느 정도 여유 기간을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본래 예정과 달리 자기 학업마저 내려놓고 온 거니 그렇지 않아도 울적하고 뭔가 불편한 상황일 텐데….”
“그런 불합리함을 자기 입맛대로 끌고 가는 게 능력이란 거지. 끌려다니기 싫으면 스스로 돌파구를 마련하던가, 아니면 시키는 대로 행해 내 신의를 되찾고, 얻어내던가. 내 아이로서 혜택을 누린 만큼, 지금부터는 그 받은 혜택에 걸맞은 가치를 증명하는 게 그 아이의 책임이자 의무라 나는 생각하거든. 나도 그렇게 자라왔고… 아마 그 아이의 자식도 그런 식으로 자라야 할 것이고. 데이엔 가에 뿌리를 내리고자 한다면, 그럴 각오 정도는 해줘야지.”
“흐음.”
복잡하다. 그놈의 가문이 뭐길래….
“저는 그냥 행복하게 잘 살면 좋다고 생각하는 입장인 지라.”
“그러면 지금 이 상태로도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나? 구태여 일을 하고 이것저것 돌아다니며 바쁘게 움직일 필요는 없을 거라 보는데?”
“그거야….”
제가 일을 해야 이곳에 온전히 남을 수 있으니까요.
그게 솔직한 심경이었다.
그래야 지금과 같은 과도한, 차고 넘치는 혜택을 누릴 수 있을 테니.
하라는 걸 열심히만 하면 된다. 거기다 그 대가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라면? 충성하지 않는 게 이상한 거지.
“딱딱한 이야기는 그쯤 하시고요!”
알리샤가 대화에 끼어들어 분위기를 환기 시켰다.
“중요한 건 리지를 바르게 이끄는 거라 했잖아요? 데이엔 아주머니는 빨리 리지가 아이를 낳아 가문에 확고히 자리매김하길 바라는 거고, 리지는 그것에 대한 부담과 여러 가지 문제로 혼란을 느끼고 있는 거고요.”
“…….”
“저도 최대한 도울게요. 두 분이 가장 긍정적으로 여길 법한 방식으로요.”
“…스스로의 기준으로 말이지?”
“저도 에드릭과 마찬가지로, 기왕이면 둘 모두 만족했으면 하거든요.”
알리샤는 활기찬 어조로 그리 단언했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원하는 방식은, 누군가에겐 만족스러울지라도, 누군가에겐 비극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후훗. 거래며 협상이란 언제나 그런 거 아니겠나. 이익을 나누느냐, 독점하느냐. 딸아이라 하여 이는 예외가 없지. 어미인 나조차도 제대로 협상을 진행도, 타결도 못 하는데 판국에… 쯧쯧.”
“하하하….”
딸아이를 구렁텅이로 밀어 넣으려는 건지, 잘 성장 시켜 키우려는 건지 그 기준이 참 미묘했다.
어느 의미로는 그 아이를 믿기에 더더욱 밀어붙여, 더 나은 결과물을 선보이길 기대하는 것이 아닐까, 문득 고민해본다.
“그보다 저한테 좋은 생각이 있거든요?”
“응?”
“……?”
알리샤 누님이 불쑥 그런 이야기를 꺼내자, 흥미로운 듯 눈을 반짝이는 테티아나 님.
…불안한데.
생각지도 못한 뭔가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예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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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
여긴 어디냐? 나는 어쩌다가 이런 곳에….
“크하하하하!!”
“갸르르르르!”
“크롸롸롸롸!!”
“냐하하하하!!”
이곳은 어쨌든 자유 무역 도시, 여러 종족들이 머무르는 곳이지만… 그럼에도 인간 쪽 비율이 아무래도 높은 게 일반적. 구역도 제법 넓다 보니 마음만 먹으면 인간 외에 종족과 마주치지 못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이를테면 켄타우로스 족 2인이 마차를 끌고 다니는 모습이 그리 위화감이 넘치지 않는다던가, 특정 시장판에 가면 고기 좀 많이 씹어 보셨을 악어 대가리를 지닌 인외 종족이 사과, 오렌지, 복숭아 등을 제철이 아님에도 태연히 팔고 있다던가.
이곳 도시 내에서도 길드 지부 건물만 동서남북으로 무려 넷. 거기서 다시 세분화해 그 4곳조차 가기 껄끄러운 외곽 인근 지역은 길드 식당, 길드 주점, 여관을 겸하는 몇몇 건물들을 통해 의뢰, 보고 등을 길드 본관에 가지 않아도 처리 가능한 대행 업무를 공식적으로 일임하고 있기까지 하는데,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지 않나?
일전에 알리샤를 따라가게 된 길드 식당도 그런 곳 중 하나.
의외로 이곳엔 치안유지를 위한 경비대, 수비대 등이 상주하고 있지만, 이들이 현대의 경찰들처럼 다방면을 커버 치고 있는 건 또 아니었다.
거기다 사설 탐정, 문제 해결사, 불법 흥신소 마냥 그런 걸 맡겨달라며 건수 물어 이를 처리하는 걸로 먹고사는 이들이 적지 않았는데, 무역 도시이기에 용병 도시, 모험 도시와는 달리 그런 쪽 의뢰는 덜하지만 그만큼 그와 연관된 일거리가 넘쳐난다고 한다.
애초에 일자리가 없다는 건 우리 같은 인구수가 넘쳐나는 현대인들 기준으로나 겪는 문제지, 이곳에선 마음만 먹으면 못 하는 일은 없다.
다만 최소 임금이니, 노동자 보호법 등이 미진해서 문제지.
그렇다고 또 착취가 남발하는 건 또 아니었다.
무역이 메인인 만큼 그런 쪽으로 잘못 낙인 찍히면 여러모로 골치 아파진다고 하던데, 거기까진 잘 모르겠고.
…아무튼,
나는 지금 늑대 머리를 한 수인과 뿔 달린 붉은 피부의 거구의 사내, 마지막으로 용의 머리를 달아둔 듯한 검은 비늘이 위압적으로 번뜩이는 용인족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물론 혼자는 아니다. 알리샤 누님 추가. 이렇게 다섯이 앉아 술잔을 나눠대고 있었는데… 전 대체 여기에 왜 온 걸까요?
결론은 사전 영업.
예컨대 물약 홍보 차원에서 기존에 알던 이들에게 체험 차원에서 그녀 특유의 정력제(…)를 건네 효과를 보고 홍보 많이 해달라는 이유에서였다.
어째 저번에 올 때 꽤 많이 들고 오시더니… 누님은 다 계획이 있으시구나 싶었다.
“느어도 자아알~ 알겠쥐만! 인맥! 주교하드안다, 에두!”
취기가 돋았는지 벌게진 얼굴로 혀 꼬이는 말을 해대는데, 음… 이런 모습조차 귀여운 걸 보면 나도 콩깍지가 제대로 씌였나 보다.
“알겠으니 이만 가죠.”
“어뒬?”
“…어디긴요.”
이 상태로 데이엔 가로 데리고 가긴 그러니 자택으로 옮겨야 할까 싶었다.
“여관 조아! 가서 기분 좋게 마구 떡 치고! 흠뻑 취해보쨔!”
“…됐습니다. 기왕 할 거면 맨 정신으로….”
“취해서 치는 것도 기분 조아?”
왜 의문문입니까? 끄응!
술주정을 받는 것조차 묘하게 신선했다. 대놓고 섹스하자! 기분 좋아! 빨랑 하자! 이러고 취한 채 매달리는 여성이 살아생전 있으리라 생각해 본적이 없어서 그런 걸까.
문득 대학 다닐 시절 후배며 선배 할 거 없이 내 앞에선 언제나 술에 취한 척 안 하고 얼굴 벌게진 상태였음에도 정신 멀쩡한 척하던 게 문득 떠올랐다.
‘네 얼굴만 보면 인마, 취기가 확 풀려서 그래 인마!’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잘난 친구한테는 막 당장 쓰러질 듯 안겨대며 조는 척까지 하더니….
……갑자기 눈물 나려 하는데?
그런데 지금 보라!
누가 봐도 객관적으로 어여쁜 알리샤, 몸매 죽이고 한창 물 오른 소녀, 알리샤가 내게 안겨 여관 가자! 섹스하자! 빨리빨리! 이러고 날 적극적으로 대시 하며 유혹하고! 재촉하고 있는 이 현실을 보라! 여기에 감동 안 하면 그게 사내 새끼인가?!
여태 교회며 절도 어렸을 때 제외하고 간 적 없었는데, 왠지 한 번씩 들려야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 제가 확실히 성공한 모양입니다! 저 지금, 너무 행복해요! 옆에서 술 냄새 팍팍 풍기며 여자가 안겨드는데! 그게 기분 좋아 죽겠다고요!
인생, 진짜 별거 없다.
후우… 너흰 이런 걸로 감동하지 마라. 없어 보이니까.
“가즈아! 가자! 흠뻑 취하는 섹스! 기분 좋운 섹수!”
“…….”
근데 바깥에서 대놓고 그러며 고성방가 지르는 건 좀 아니지 않은지요? 저, 저 수인이며 이종족들이 우릴 보는 저 눈초리들을 보세요!
‘떡 치겠네.’
‘밤새 잘 타오르겠네.’
‘종일 발정하는 게 오크 못지않구먼.’
“에이, 더러운 것들! 퉷!”
아니, 저기 마지막 분은 속으로 그럴 것이지 왜 겉으로….
또 다른 술주정뱅이 하나가 술병을 치켜세우며 이리 외쳐대고 있었다.
“야이 돼지 새끼들아! 누군 옆구리 시려 죽겠는데! 교미하려면 방구석에 처박혀서 헐떡대며 하던가! 누구 염장 지를 일 있어?!”
“아, 하하… 죄송합니다!”
부끄러움은 왜 내 몫이냐!
민망해진 나머지 나는 빠르게 그녀를 잡아끌었다.
마차를 잡을까, 정말 여관으로 직행을 해야 할까.
행복하고도 복잡한, 그러면서도 난감한 고민이 시작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