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111)화 (111/454)



〈 111화 〉29. 경력 넘치는 신입.(5)

“그런데 정말로 할 거예요?”
“…그녀가 바란다면야, 약속은 했으니 지켜야겠죠.”
“대단하시네요. 대체 어떻게 꼬신 겁니까?”




이번엔 순수하게 감탄했다는 뉘앙스로 묻는다.
물론 표정은… 내내 썩어들어가고 있었지만.
근데 그 표정조차 예쁘다고, 에드릭은 생각했다.




‘그래도 저거 아바타잖아.’

릴리에나 못지않게 에드릭도  점을 새삼 의식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당장 눈에 비치는 외견의 매력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지만… 이곳 세계 사람들과 달리 우리  세계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덜 신경 쓰인다고 할까.

물론 후배이자 같은 직장 동료라는 개념으로 대우하며 선을 긋고 있기에 문제 될 거야 없겠지만… 그녀의 성격을 유추해보니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허물이 확 줄어들 것 같은 예감이….


저런 성격들은 보통 교우 관계가 그리 원활하기 힘든 반면, 친해진 이들하고의 관계는 대단히 끈끈해지는 케이스다. 그래서 친구가 있음에도 절친 아니면 그 성향이나 성미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으로 짐작됐다.


물론 본인은 솔직담백하다고 생각하지 본인이 까탈스럽다고 진지하게 생각하진 않을 거다.

거기다 세상에 솔직함이 악덕으로 작용되고 대두되는 경우가 어디 한 둘이어야지.
성격을 제외하고 단순히 유능 무능의 여부로 판단해보면 그녀는 분명 유능한 케이스.

예컨대 리더로서 앞서 솔선수범하는 게 그녀의 적성에도 맞을 것으로 추측됐다.
문제는 사회 물을 덜 먹은 만큼 세상 물정 모르고 날뛰다 완급 조절 못 해서 이리저리 엎치락뒤치락, 설혹 그런 문제가 없더라도 시기며 질투 당하고… 능력이 어중간하면 차라리 다행인데 유능해서 오히려 눈에 튈 여지가 다분하리라 생각됐다.

반면 성실함과 융통성이 조금 부족해도 아예 없는  아니었다는 점.
또 위아래 개념 없이 적극적으로 관계를 개선하고 꾸려가려는 자세만큼은 바람직하다 생각했다.

릴리에나가 에드릭을 판단하는 거 이상으로, 에드릭도 그녀를 나름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이조차도 공무. 명목상 부하 직원 상태를 체크하고 평가 보고를 하는 건 직속 상사인 자신의 역할이었기에.

…실질적인 직속 상사라 보긴 여전히 애매했지만.

‘참 이상한 시스템이야.’

비효율적으로 느껴졌지만, 그러기에 개개인이 할  있는 폭은 넓고 다양한 편.
직급으로 얽매일 요소가 확정적인 게 아니기에, 얼마든지 자율적 판단이 가능하다는 게 포인트.


덕분에 시키는 일만 잘하게끔 교육받고 지도받아온 한국인 기준으로선 극한의 체험이 따로 없을 거다.

간단히  일은 알려주지만 딱 거기까지. 방법이나 이런 건 알아서 개척해야 하는데, 매뉴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조언을 주고받는 것조차 의무가 아니기에 본인이 발품 팔아 팁을 얻거나, 교류 관계를 개선해서 호감을 사는 식으로 도움 되는 정보를 알아서 추려내야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성과를 내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다음 단계로 접어들고…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행동이 평가받고 공치사까지 받은 걸, 받은 다음에야 알게  줄이야. 얼마나 소름 끼치는 일인가?


“꼬시다니요. 누가 들으면 선수인 줄 알겠어요.”
“…여자들 기웃대는 거 보면 선수 맞는  같은데요.”
“저는 그냥, 열심히 하는 거죠. 최대한.”



…무슨 소리인지 짐작조차 안 간다. 겉치레인가? 아니면 기만?

물론 에드릭의 답변이 진실이라는 건 본인만 아는 일.
주변에서 보기엔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그런 오해를 오죽 많이 겪어 봤어야지.
어느덧 설득하려는 걸 포기하게  에드릭이었지만, 오해가 깊어지는  여러모로 골치 아픈 부분이었다.


‘진짠데.’




난 그저 열심히 한 거뿐인데.

그 ‘열심히’  남들의 기준보다 과하다는 걸, 제대로 자각 못 하고 있던 건 문제였지만.


 외에도 일정은 심각하리만치 바빴는데, 한창 바쁜 철이라 그렇단다. 평소엔 이 정도까지는 아니라 했던가. 진실일지 거짓일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

해골바가지  괴상망측한 괴물들을 퇴치할 때하곤 전혀 다른 의미로 피곤했다.




‘…그래도 마차만 안 타면 한결 나을  같은데.’




웃기는 건 타고 다니는 마차가 그래도 이곳 세계 기준으론 대단히 좋은 축에 속한다는 거였다.

아무튼 오전 오후 일과가 끝나 해가 떨어지기 전에 일과가 마무리돼서 퇴근할 수 있다는 점은 좋았다.


거기다 그녀는 이곳에 온 이후 새로운 취미가 생겼는데….


“사장님은 말이에요! 평범한 바람둥이가 아니라고요!”

처음엔 단순 교제 차원에서 권했던  어쩌다 보니 본격화가 됐다.
내근 비서이자 일단은 선배이기도 한 엘프 코넬은 저래 보여도  거 다 아는 여성이었다.

위험수당도 받고 따로 장비를 사려고 애를  필요도 없어진 터라, 비축금이 고스란히 유지된 릴리에나는 선입견을 좋게 박아둘 겸 해서 그녀에게 비싸면서 분위기 좋은 곳, 물 좋은 곳으로 가고자는 의견을 은연중 드러냈는데, 이게 묘한 오해를  모양인지 엄한 곳에 발을 디디게 됐다.


문제는… 이곳이  마음에 든 덕에 본의 아니게 단골이 됐다는 사실.

“평범하지 않으면요?”



차분한 미소년 둘이 옆에 앉아 도도한 얼굴로 은으로 된 잔에다 와인을 또르르 따라주는 걸 받아 마셔가며 코넬과 릴리에나는 한창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엄청난 바람둥이죠! 이거 아세요? 한때 엘프 거주 구역에 가서는 말이죠! 무려! 엘프들을 수십 명 둘러놓고 그렇고 그런 짓을 했다나 봐요!”
“……??”


무슨 소리일까? 그렇고 그런 짓?



“그러니까, 제대로 설명해주시죠?”
“배꼽 맞췄다고요! 마구마구! 엘프 부부들이, 남녀가 보고 있는 앞에서요! 시연을 했다는 거예요. 시연을!”
“…….”

내가 제대로 들은 건가? 상식적으로 뭔가 있을 수 없는 소리를 들은 거 같은데.

“그뿐이면 다행이겠어요?! 나중에는 말이에요, 독신인 엘프들하고도 막 짝짝꿍하고, 부부 엘프들하고도 그렇고 그런….”
“그거 확실해요? 오해라거나… 잘못된 소문이라거나….”

그때, 릴리에나 옆에서 술을 따르는 미소년이 자그맣게 설명해줬다.

“마레아 백화점의 에드릭 코넬 경에 대한 일화는 이곳에서도 유명합니다. 하이 엘프가 인정한 엘프들의 파트너. 어둠의 종족을 비롯해 귀신족들은 엘프들의 씨받이라 비꼬지만, 인간들 입장에선 선망의 대상인 건 분명하죠. 거주 구역 내의 엘프들은 성관계가 부진해서 인구수를 늘리고자 하는 엘프들 정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에 그런 외부적 수단을 사용한 터인데, 보통은 여럿과 관계를 가지는 걸로 끝나지 않고, 자체적으로 서로가 애정을 품고 관계를 이끌어갈  있도록 도운  때문에 엘프들 사이에서도 이미지가 좋은 편입니다. 단순히 성욕의 화신으로 씨를 털어내는 게 아니기도 했었으니까요.”
“…그래?”
“부부는 손대지 않고 독신들을 위로해주는 차원에서는 손을 댔으니까요. 그 점은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그 덕에 더욱 신뢰가 깊어졌다는 평을 받고 있지요. 앞 꼬리에 정신이 팔린 게 아니라 확실하게 가슴과 머리로 타인을 배려하고, 아끼고, 애정 표현을 한다는 걸로 말입니다.”



이번엔 코넬 옆에 앉아있던 미소년이 그리 첨언했다.




“우선 그는 종족 구분 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친절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일방적으로 여자한테만 그랬다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여기에도 구분은 없지요. 모두에게 친절합니다. 그러려고 노력한다는 평을 받습니다. 그래서인지 귀족이며 기존에 텃세 부리던 이들도 지금은 그를 어느 정도 인정해드리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렇다고 마냥 호구처럼 이것저것 뜯기는 사람 좋은 소년 취급을 받는 것도 아니고요.”
“의외로 챙길 건 다 챙기고 있다  말인가?”
“그렇게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나랏님 없는 곳에선 나랏님도 욕한다 하는데, 이 정도가 대수겠나.
애초에 여긴 코넬이 안내한 곳이기에 크게 문제  것도 없었다.



“그보다 오늘은 어떠신지요?”


미소년이 은근슬쩍 여쭤왔다.

“…….”



릴리에나는 살짝 고민했다.


“요즘 들어 이곳저곳 오가는 곳이 많으셔서 피로가 누적되신 걸로 여겨집니다만.”
“…그걸 용케 다 알고 있구나?”
“그걸 위해 저흴 부른 건 아니신지요? 똑똑하고, 머리에 든  많아 도움  만한 이야기를 해줄….”
“그야 그렇지.”
“돈을 지불해 주시는 만큼, 저희는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이런 저희에게 정나미가 떨어지셨다거나 그러시면….”
“아니야, 그게 맞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간 인간이 돈에 불결함,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면 그 인간은 부자 되기는 그른 셈이다.

돈은 도구고 오히려 선한 것. 그걸 사용하는 인간이 그릇돼서 문제가 되는 거지,  자체는 좋은 거다.

“마사지 정도라면 나쁘지 않으니….”
“하다 보면 몸이 달아오르게 되고, 그러다 보면… 다른 것도 필요하게 되실 테니, 그때는 말씀만 주시기를.”
“그건 그때 가서. 코넬 님은요?”
“…난 졸려. 잘래.”

그러면서 ‘자러 가자!’ 하고 자기 옆에 앉아있던 미소년을 데리고 가는 코넬을 보며, 릴리에나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아주 자연스러워.’


엘프들은 성욕이 왕성한 편.

애초에 성관계에 대한 부정적 인상, 금기시하고 터부시 여기는 게 아예 없다 보니, 고삐가 풀리면 인간보다 훨씬 강렬한 성욕의 마신으로 자리매김한다.

…초원의 엘프들은 더욱이 애를 낳는 거에 무척 민감해서 일정 나이가 되면 의무적으로 강한 씨를 품고자 기웃거리는데, 종족을 불문하고 날뛰는 통에 엄청 피곤했었다.

‘여성 쪽이 더 많다 보니 결국 모계 부족 마냥 그쪽 권리가 훨씬 막강했으니까.’



애초에 자격 없는 놈은 섹스할 자격조차 없다며 전사로서의 기질과 솜씨를 갈고 닦지 않으면 부족을 떠나지 않는 한 일평생 규율적 고자 확정이니 오죽하겠나.  강한 씨를 품겠다고 외갓 남자,  종족 거시기를 먹어 치우는 걸 술 퍼먹으며 자랑질해대는  고스란히 앉아 듣고 있어야 하는 그쪽 남자들은… 솔직히 동정심이 절로 생겼다.


근데 이쪽 남성들은 엘프인 주제 미소년이고, 뭔가 유약하고 연약한 면이 강해 타 종족 여성들, 가뜩이나 전투며 험지를 날뛰던 터라 그런 보호 본능이 치미는 남성들이 의외로 인기였는데, 악마 같은 당시 초원 엘프의 우두머리는 돈 받고 남성 엘프를 품어도 된다는 식으로 상업화를 이룩하기까지 한다.

‘대단했지.’

…근데 오죽 예쁘장했어야지.


죄악감이 생기는 거 이상으로 뭔가 오싹오싹한 기분이 든달까.
현실에선 결코 경험하고 체험할 수 없는 그런 종류였기에… 당시에 몇 차례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

코넬과 친해질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였을지도.
어쨌든 엘프들 뿐 아니라 무수한 인외 종족, 아인족들하곤 비교적 친한 편이었다.

…오히려 인간들하고 관계가 험악했고.


릴리에나가 이곳, 아르세이유에 파견된 것도 그런 영향이 적지 않았을 거라 그녀 본인은 추측했다.
실제로도, 여긴 대단히 좋은 곳이었다.
그녀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술은 이쯤에서 줄이시는 걸로. 너무 취하시면 순수하게 즐기실 수 없으실 겁니다.”
“…마사지 말하는 거야, 그 다음까지 말하는 거야?”
“좋은 방향으로 생각해주시기를.”

무덤덤한 얼굴이었음에도 역시 잘 생기다 보니 눈길이 자꾸만 가게 된다. 목소리도 나긋나긋하니 절로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데, 듣는 것만으로 힐링이 되는 거 같았다.

“그래, 알았어. 알았다고.”


룸에서 빠져나와 방으로 향한 릴리에나.
아무튼 이곳 생활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물론 비축금이 마구 거덜 나고는 있었지만, 어차피 현실상으로 월급하고 보너스는 두둑하게 챙기고 있고,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서라도 재충전, 힐링은 필수 요소이기도 하니….


현실상에선 돈 때문에 결국 클럽을 가끔 기웃거리는 걸로 족했지만 그조차도 크게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그러나 여기는… 그냥  순간이….

현실은 인내하고 해소하는 삶의 연속이라면, 이곳은 기대하고 꿈을 부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이, 그녀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마음만 먹는다면, 어쩌면 왕이 될 수도, 그 이상의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발칙한 상상을 해보며 그녀는 오늘도 편안하면서도 그윽하고, 아찔하면서도 짜릿함을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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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응이 빠르네요.”



에드릭이 코넬이 하는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술 마셔도 크게 실수  하고, 속내를 막 내비치진 않아요. 사생활도 어느 정도 조절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누가 의도적으로 접근해서 긁어대거나 하지 않으면 큰 실수는 없을지도요?”
“술 마시고 옆에 예쁘장한 누군가가 기웃거린 시점에 안심하긴 힘들죠. 남녀 모두 베갯머리 송사 앞에선 한없이 약해질 테니까요.”
“사장님은 어떠세요?”
“저요? 저도 마찬가지죠.”
“…그런 거 치고는 철벽이라고 소문이 자자하시던데요.”
“누가요? 용케도 그런 소문을 들으시네요?”
“저야…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소문들이 있다 보니….”
“퍽이나 그러시겠어요.”


실소를 머금은 에드릭.



“아무튼 그녀의 역할과 코넬의 역할이 있으니, 서로가 잘 풀어나갔으면 해요. 코넬 씨가 원하시는 대로, 밖에 안 싸돌아다닐  있는 대안책을 마련해 드렸으니,  이상 불만 사항은 없으시죠?”
“충분해요. 거기다 밤 친구로 삼기도 좋아 보이고. 나중엔 피냄새가 어떨지, 맛이 어떨지도 조금 궁금하니 살짝 맛봐도 될까요?”
“…본인에게 허락 맡고 해주세요. 저한테 그러지 말고요.”




에드릭은 떨떠름한 얼굴로 그리 당부했다.


“절대, 억지로 그러시면  됩니다.”
“저도 사장님하고 같다고요? 억지로 그러는  영 안 좋아해요.”
“그럼 다행이고요.”
“기왕이면 매달려오는 쪽이 더 짜릿하지 않나요?”
“…최면이나 이상한 거 걸지 마시고요.”



에드릭은 왠지 불안해졌지만, 그래도 믿기로 마음 먹었다.

…안 믿으면 어쩔 건데?

조금 전까지 평범한 금발의 엘프처럼 보이던 코넬이 뭔가 다르게, 마치 사이한 무언가처럼  눈을 붉게 번뜩이는 걸 보며, 에드릭은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본다 치고.’



이미  손을 떠난 문제에까지 이러쿵저러쿵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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