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112)화 (112/454)



〈 112화 〉30. 어쩌다 이런 일이…

세상을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이 발생하곤 한다.



“예전 같지 않아요.”


드래곤, 용족의 어린 친구가 연애 상담을 해온다던가.




“리지하고 저는 분명… 서로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리고 연애 상담이라는 게, 여자 대 여자의 그렇고 그런 사정에 관한 거라는 점도.

백화점 사장실에서 내가 내려준 차를 입가에 기울이는 그녀.


프리지아가 애인이랍시고 소개한 이가 여성인 것도 놀라운데 무려 드래곤이시란다.
비록 헤츨링, 아직 유년기에 해당하는 어린 드래곤이지만 그럼에도 벌써 400살은 되셨단다.


어메이징하군, 정말이지….


불그스름한 날개와 꼬리가 있는 걸 제외하면 말 그대로 인간 그 자체.
마법을 다루는  어설퍼 날개하고 꼬리를 없애면 나중에 본체로 돌아갔을  균형을 못 잡는다던가, 날갯짓하는 방법을 잊을 수 있어 유지하고 있다는데.

전신이 파충류와 유사한,  발로 걷는 용인족과 비교해봐도 그녀는 인간에 훨씬 가까운 외형을 하고 있었다.


붉은 머릿결에 타오르는 붉은 눈.
이건 그러니까… 레드 드래곤, 빨갱이(?) 용이라 보면 되겠지?


이름도 무척 긴데 여기선 루플레시안, 그걸  줄여서 애칭 삼아 시안이라 부르고 있는 실정.

그녀의 인생, 아니 용생은 당연 인간보다 아득하다 표현해도 무방할 거다.
그러기에  가운데 고작 한 세기, 100년 정도를 프리지아에게 바치고 헌신한다 해도, 그녀는 전혀 문제 될  없다고 생각했단다.


거기다 본인들은 자신들의 관계가 대단히 진지하다 생각하는 듯 싶었는데, 이건 아무리 봐도….



‘교우 관계를 사랑으로 착각한 거 같은데.’

절친 이상의 관계를 갈구하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건 둘이 지닌 환경적 특성에 기인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그나저나 드래곤하고 인간이란 말이지.
마음만 먹으면 폴리모프를 통해 남성으로 변경이 가능함에도 굳이 여성체임을 고수하는 이유는 뭘까, 조금 궁금해져서 살짝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러자.



“이쪽이 더 기분 좋지 않나요?”
“…….”




물론 그건 성적인 의미가 아니라, 스킨십을 포함해 다분 취향적 문제.
프리지아를 살피며 파악한 건 그녀는 아직 성적인 호기심이 왕성하거나 그러진 않은 듯 느껴졌었다.

…일전에 알리샤하고 보여준 덕분에 뭔가 눈을 뜬 뒤론, 은밀하게 스스로를 달래는 행위의 조짐들이 포착됐다는데, 이조차도   나게 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단다.

테티아나 님의 의도에선 살짝 벗어난 격이 됐지만, 결과적으론 좋은 성교육(?)이 됐다고 여기고 있는 걸 보면, 참 가주님도 어메이징한 분이시라니깐.



‘그렇게 행복하게 잘만 해댄 걸 봤는데, 거기에 공포를 느낄 리는 없지 않겠나?’



음, 그렇다면 좋으련만.


어느 의미로, 자신이 가정 교육에 익숙하지 않은 존재임을 자각하고 있는 듯해서, 조금은 짠하기도 했다. 테티아나 님에게도 고민이, 안쓰러운 부분이 있겠지만 그걸 내가 들쑤셔서 흉터를 해집을 필요는 없겠지.


…나중에 그래야 되는 상황이 온다면 모르겠지만.

루플레시안은 프리지아가 가문의 업무를 맡을  이를 보조  도와주고자 찾아왔단다. 실상은 보고 싶어서 온 거겠지. 그 와중에 아예 눌러앉기로 결정한 건지도. 별 미련 없이 프리지아를 따라 아카데미를 자퇴하고 여기까지 쫓아온  보면 그 나이 때의 그 뭐랄까… 불꽃 같은… 흐음!



“그러면 지금은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아, 아니에요! 저도! 리지도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 생각해요.”
“그럼 어떤 문제가 시안 님을 불안케 이끌고 있는지요?”



시안은 잠시 고민하는 듯 했다. 이걸 말해야 하나… 하는 얼굴이었는데, 말하려고 온 거면 빨리빨리 말씀하시죠?!




“그게….”
“그게?”
“어, 어머니를 대신해 자신이… 아이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그런 소리를 했거든요.”
“…….”




갑자기 편두통이 치미는데 뇌졸중 초기 증세인가? 아니아니, 고혈압? 저혈압? 뭐였지?

“그, 그래서요?”
“그래서라니요! 아이는 사랑하는 사람끼리 가지는 거잖아요! 그런데 어머니를 대신해서… 이, 이 무슨 파렴치한!”
“…….”



대단히 옳은 말씀, 맞는 말씀인데 왜 나는 저 말에 혼란을 느끼는 걸까. 아무래도 데이엔 가문 사람들하고 너무 엮여서 뇌 구조에 이상이 생겼나 보다.



“그럼 시안하고 프리지아 영애가 합심해서 아이를 가지면 되겠네요?”
“저,  여자라고요! 남성체가  수 있다 해서 아, 아이를 가지게 할  있는 건 아니라고요!”
“그, 그랬나요?”



이건  몰랐네. 남성체니 틀림없이 될  알았는데.

그러고 보니 용은 임신이랄까, 어쨌든 애를 가질 확률이 천문학적인데, 성욕마저 거의 없다고 했던가? 혹시나 싶어 용, 드래곤의 생태에 대해 책으로 살폈는데, 이들이 인간과 관계를 맺어 생명을 잉태할 확률도 대단히 낮은 축에 속한단다.


그래서… 한때 인간으로 변신한 수컷이 남성체인 상태로 인간 여성과 사랑을 맺어 아이를 낳은 신화들은, 어지간한 천운이 없는 한 불가능에 가까운 수치고, 그 확률을 높이기 위해 그냥 하는 소리가 하니아 거의 한달, 많게는 100일 가까이 하루도 쉬지 않고 떡을 쳐야 한다는 내용을 봤을 때, 뭐랄까… 드래곤과의 로맨스 판타지에 대한 환상이… 와장창 무너졌던 기억이 난다.


반대로 남성, 수컷이 암컷 드래곤과 관계를 맺어 생명을 잉태할 확률은 비교적 높은 편이란다. 근데 그게 드래곤 기준에서 높다는 거지 이조차도 절망적이라나?

거기다 설혹 오랜 기간을 거쳐 귀하디귀한 알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쳐도, 그 알이 부화하는 데만 장장 10년 이상 걸린다 하니… 흐음, 역시 현실이란 녹록지 않다는 걸 재차 실감하고야 만다.


그래서 수컷 쪽이 타 종족 여성과 관계를 맺어 아이를 가지는 쪽이 그들 기준에서도 적합한 케이스라 했던가? 이런 걸 적합, 합리라 표현한 것도 황당했지만 당시 그 기록을 작성한 저자는 그렇게 논하고 있었다.



“그럼 시안 님은 어떻게 하셨으면 좋으시겠어요?”
“…데이엔 가문에는 특이한 규율이 있다고 들었어요. 법도라고 하던가요?”
“흐음.”
“아이를 낳되 남자아이면 외부로 보내고, 여자아이면 가문에 들여 키운다. 그래서… 정말 제가 많이 양보한다 쳐서 그녀가 아이를 낳는다 치면, 남자아이면 제가 데려다가 키우고, 여자아이면 같이 가문 내에서 알콩달콩하며 키우자고….”




거기까지 벌써 이야기를 했다 이겁니까?! 우와아아아! 어메이징 하시네! 놀랄 노 자가 아니라 놀 자다!

발칙함을 떠나 이쯤 되면 까마득해진다. 뭔 김칫국부터 마시는 것도 아니고, 시작도  했는데 벌써 그런 걱정이람?

아니, 거기까지 갔으면 이미 끝난 거 아닌가? 거기서 왜 애정이 식었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실까?

이쯤 되니 궁금해져서 안 물어볼 수가 없어졌다.

“거기까지 결정했으면  풀린 거 아닌가요?”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다음날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다잖아요?”
“…바뀌어서 뭐라 그랬는데요?”
“애를 낳는 게 무섭데요.”
“…….”

그거야 타당한 소리 아닙니까? 그거하고 애정이 식은 거하고 뭔….

“저하고 같이 키우거나, 나중에 홀로 제가 남자아이를 떠맡는 게 불안해진 걸까요?”




아니아니아니아니! 그런 게 아니지! 뭘 어떻게 해석해야 그런 터무니없는! 비관적인 결론이 나오는데?!


“그게 아니죠! 여자라면 누구나 아이를 품고, 낳는데 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거랍니다. 그게 쉽게 이렇게 저렇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마음이 바뀔 수도 있는 거죠.”
“…인간은 그런 변심이 너무 심한 거 같아요. 그래서 때때로 두려워져요. 절 사랑한다고 말했던 그 속삭임들이 실은… 단순 감정과 욕구에 이끌린 충동이 아니었나 싶어서요.”


…여기서 갑자기 종족 차이로 넘어가는 건가. 아니, 그뿐만은 아닌  같은데.



“후우. 그런 건요, 여기서 이렇게 이야기할 게 아니라, 아예 터놓고 이야기하는 게 중요해요. 여기서 이렇게 혼자서 고민하고 이래 봤자 아무~ 소용없답니다. 시안 님이 정말로 프리지아 영애를 그… 사…랑한다면, 그런 그녀의 변덕조차도 받아주실 수 있으셔야죠. 시안 님은 그녀의 좋은 면만 사랑하고 영애의 변덕스러운 면은 껄끄럽고 그러신 건가요?”
“아, 아니에요! 저는 그녀의 모든 걸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요!”
“그럼 결론 났네요. 솔직하게 묻고, 솔직하게 들어주고, 받아 들여주세요. 가장 좋은 건 서로가 가장 만족할 만한 형태로, 관계를 이어가는 거랍니다. 애초에 그게 좋고, 행복하다고 느껴서 서로 붙어 있고, 함께하고 싶고 그런 거 아니었는지요?”

첫눈에 반한다는 건 일종에 뇌의 착각, 감정의 족쇄라 누군가는 말했다. 그조차도 시간이, 유통 기한이 지나면 이전처럼 볼 때마다 두근대고 가슴이 콩닥대는 일이 사라지니, 이때까지 결혼  하면 그때부턴 말 그대로 정으로, 의리로 붙어 다닌다는  연애책에서 본 적이 있는데… 거기까진 경험해본 예가 없다보니 잘 모르겠다.



다만….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을, 어떻게 하면 가질  있느냐 하는 건데.’


내가 생각해도 참 막막한 부분이다.
문득 알리샤, 에우리에, 카멜린, 브리앙르가 불쑥 떠올랐지만….

‘가장 그걸 희망하는 건 사실 다프넬이었나.’

그게 진심인지 아닌지는 살짝 헷갈렸지만.
…반쯤 장난인 것도 같고.


조만간 공무가 있어 데이엔 가에 들릴 테니 그때 보자는 식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 나는….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장실 구석에 자그마한 책을 들추고 있는 릴리에나를 향해 물었다.

“소인은 태어날 적부터 귀가 없어서 아무것도 듣질 못했사옵니다.”

그녀는 품격이 흘러넘치는 몸짓으로, 과장되게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예예, 어련하시겠어요.”

얌전히 짱 박혀서 바지사장처럼 살았으면 했는데,  이리 엮이는  많담.

“오늘 일정 따로 없다 했죠? 그러면 백화점 내부나 돌죠.”
“또 사원들 기죽일 짓하시려고….”
“신경 쓰는 척이라도 해야 이상한 짓들  하죠.”
“그거야 어련히들 알아서 잘하지 않을까요?”
“그런 생각을 가졌다가 문제 생기면 책임은 제가 져야하는 걸요?”
“책임은 그들이 져야죠, 왜 사장님이 져요?”
“…원래 이쪽 세계가 그렇답니다.”



물론 저쪽 세계, 우리가 살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겠지만.
폭탄 돌리기, 형식적 사고, 보여주기식 체벌,  가리고 아웅 하기.


그러나 여기선  번 감정 상하거나 수틀리면, 힘 있고 자본 넘치는 갑질러들이 난리를 쳐댈 게 눈에 훤했기에, 애초에 문제가 발생 안 되도록 철저하게 선을 그어둬야 했다.

…그래야 나중에 일 크게 번졌을 때 명분 싸움에서도  밀릴 거고, 그런 식으로 한 번 수틀리면 브랜드 가치는 금세 바닥을 칠 거다.


왕이 왕 대접해줄 때 기분이 좋은 거지, 거지가 왕 대접해주는 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이미 거지보다 잘난 이들이 자기를 떠받들어주는 게 익숙한 부류들에게 그런 저급한 아부, 입에 발린 칭찬은 대놓고는 아니지만 뒤에서 음습하게 욕 얻어먹기 딱 좋은 명분이었다.

대놓고 해주는 게 차라리 낫지, 뒤에서 돌려 깎아대면 이건 캐치하기도 애매해 상황을 파악한 시점엔 이미 유언비어가 발 없는 말, 천 리 길 가듯 잔뜩 퍼진 이후의 문제라 수습하기도 껄끄러워진다.

괜히 내가 19금 업소를 포함해 온갖 곳에 귀 밝은 이들을 파견해둔  아니다.

“고만고만하게 흘러갔으면 싶은데, 어째 매일 같이 어메이징하니….”
“그 어메이징이란 표현 입에 달라붙었어요, 사장님.”
“…끙.”




그럼 다이내믹이라고 해댈까?

영양가 없는 생각을 품은 채 어쨌든 행동하고자 사장실을 나선 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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