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 〉31. 일터에서, 사무실에서 선후배끼리 그렇고 그런 로망….
에드릭은 자신이 한 말을 지켰다.
손과 입, 예컨대 본 게임에 들어가지 않는 선에서 철저하게 그녀를 가게 만들어 어느덧 그녀 스스로가 잠들었다는 자각조차 못 할 정도로, 확실하게 나가떨어지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다만 의문은 생긴다.
…대체 본인 욕구는 그럼 어떻게 해결하려고?
물론 에드릭은….
그녀가 자신의 손길에 가는 거, 애원하는 듯한 표정, 몸짓, 말을 하는 거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지만, 릴리에나는 거기까진 알지 못했다. 남자 경험이 적은 탓이려나, 일방적인 편견이 새겨진 탓이려나.
그러기에 날이 밝고, 침대에서 에드릭보다 먼저 눈을 뜬 그녀는… 간밤에 사태를 완전히 자각하곤 대체 어떻게 얼굴을 들어야 할지, 미칠 것 같은 심정으로 침대에 누워 에드릭이 먼저 깨길 애써 기다렸다.
‘…무슨 염치로!’
괜히 몸 일으키다 거기서 에드릭이 깨고, 얼굴 마주치면…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수치심과 부끄러움 때문에라도 심장마비 걸려 그대로 숨질 것 같았기에.
거기다… 뭔가 부족했다.
그냥도 아니고 엄청, 엄청나게.
어젯밤 그의 손길에 그렇게 놀아났음에도… 뭔가 결정적인 끝맺음이 없었던 기분인 지라, 그녀는 여전히… 지금도 욕구 불만에 휩싸여 있었다.
‘아, 정말 찝찝하네!’
거기다 빨리 일어나고 싶다.
침대며 이불이 아주 흠뻑 젖어 든 상태라… 누워 있어도 느낌이 참 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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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아니, 그렇게 지옥 같진 않았지만.
뭔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은 기분에 취해 릴리에나는…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욕실까지 따라와 자신을 정성 들여 씻겨주는 에드릭을 보며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뭔가 음란한 행위가 이어질지 모른다는 묘한 기대감(?)은 지녔지만… 어림도 없지.
심지어 자기 물건을 그렇게 크게 팽창시킨 상태로 그는 태연하게 씻는데만 열중했다.
“어, 음….”
생각해보니 나만 서비스 받은 거잖아?
마치 애인이 있으면 이럴까 싶을 정도로 그는 편안하게 씻어댔다.
…이쪽은 의식하느라 지금 뭐 하고 있는 건지 제대로 분간도 안 갔는데!
그게 무척 분했다.
거기다가….
체구에 비해 그곳의 크기가… 무심코 군침을 넘어가게 만드는데, 이거 계속 눈에 보여줘서… 뭔가 그런 쪽으로 자극하려거나, 은근하게 어필하려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의도가 맞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영향을 안 받으면 그만인데! 참 사람 마음이라는 게 생각만큼 쉬운 게 아닌 모양인지, 아침 식사를 하는 와중에도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린다.
심지어 오늘 오전 메뉴에 굵직한 프랑크 소시지가 대령 됐을 땐… 이건 의도적인가 싶은 음모론까지 떠올릴 정도였지만, 생각해보니 에드릭은 오전 메뉴만큼은 저녁 못지않게 많이 먹는 케이스였다. 그 식습관에 어울리다 보니 3일 주기로 소시지가 나오긴 했는데, 그게 오늘이었나 보다.
‘이것마저 계산했다 치면….’
무서운 인간이다. 참으로!
물론 진실은 본인만 알겠지만.
걸어서 출근할까, 마차를 탈까 내심 고민하는 에드릭.
“소화 시킬 겸 걸어서 가죠. 조금 시간도 이른 편이니.”
사실 에드릭도 나름 고충을 느끼고 있는 게, 어제 그렇게 해놓고 그녀만 가게 하고 자신은 따로 빼내거나 하는 일도 없었기에 나름 욕구 불만이 휩싸인 상태였다.
그렇다고 무작정 그거 해소한답시고 누구 찾아가는 것도 아닌 거 같고 말이지.
애초에 욕실에서도 빳빳하게 주니어를 세우고 있었던 것도, 단순 생리 현상 때문에 그런 게 아니었다.
…뭐 여성하고 같이 목욕한다는 걸 강하게 의식했다면 절로 피가 쏠려 금세 부피를 늘렸겠지만.
아무튼 평소보다 빠른 걸음으로 운동 삼아 백화점에 출근한 둘은 오전 미팅 시간에도 어딘가 집중을 못 하는 듯한 기색을 보였다.
“에드릭? 뭐 고민 있냐?”
“아뇨. 어제 잠을 설쳐서 쪼오금~ 하하하.”
“그럼 낮잠이라도 빨리 자던가.”
알푸스 선배의 지나가는 듯한 조언에 에드릭은 감사한 마음을 담아 웃어보일 따름.
“…….”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릴리에나도 상태가 미묘하긴 매한가지.
“너도 근데 집중이 조금 안 되냐? 아까부터 조금씩 멍해지던데.”
“…저도 어제 술 먹고 바닥에서 잠들어서 잠을 깊숙이 못 잤습니다.”
실상은 그게 아닌데 물 흐르듯 거짓말이 튀어나왔다. 자기가 하고서도 놀랐는지 릴리에나가 오만상을 찌푸렸지만, 알푸스는 그걸 다른 의미로 해석했나 보다.
“…너 어제 술 먹고 에드릭한테 꼬장 뿌렸냐?”
“아니거든요?!”
“아니긴 뭘 아니야. 이거이거…….”
그러면서 묘하게 둘을 훑어보는 알푸스.
“사내 스캔들 이상하게 내지 마라. 그냥 사귀려면 곱게 사귀던가.”
“그런 거 아니라니깐요!”
“하하하….”
에드릭은 그저 웃었고, 릴리에나는 격렬한 반응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진짜로 억울해서 그런 건진 의문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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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제 불찰이었습니다.”
릴리에나는 솔직히 인정했다.
“설마 그렇게까지 될 줄은….”
속으론 ‘내가 미쳤지! 미쳤어!’ 를 연발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도 선은 안 넘었잖아요. 어때요? 기분은 좋았죠?”
“…….”
릴리에나는 시뻘게진 얼굴로, 미약하게… 자세히 안 보면 티도 안 날 정도로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댔다.
‘자아가 강한 건 이런 게 문제야.’
뭔가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표현하는 게 힘들단 말이지.
아마 유년기에 그러다가 큰코다쳤거나… 마음에 상처가 될 일이 생겼을지도.
그 정도면 그나마 다행인데 트라우마 급 사태로 번졌다면, 저런 것도 이해는 된다.
‘…단순히 사람 사귀는 게 익숙하지 못할 수도 있고.’
천성 문제도 무시할 순 없지.
그런 식으로 묘하게 분석을 실행할 때쯤.
“…….”
릴리에나가 집요하게 사장실 내부를 이곳저곳 살펴대는 모습이 포착됐다.
“왜요?”
“아, 아닙니다. 도청기가 있나, 해서요.”
“…….”
도청기가 여기서 왜 나옵니까?
그리 말하려다 에드릭은 그러려니 했다.
그럴 수도 있지. 거기다 비슷한 마도구가 없는 것도 아니니.
이럴 땐 직업 정신이 투철하다고 칭찬을 해주는 편이 나으려나?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
왠지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이었기에, 서류 쪽에 집중이 안 돼서 살짝 물어봤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세요?”
“…….”
차마 말하기 그렇다는 듯 고개를 가로젓지만….
“말해봐요. 뭔가 불편한 게 있으면 바로 풀어내야죠.”
“풀어내… 풀어낸다… 라.”
대체 왜 저래?
평소의 차가운 도시 아가씨를 연상하게 하는 특유의 분위기가, 왠지 방정맞게 뒤바뀐 듯 느껴지는 건 무슨 연유인지.
물론 그 궁금증은.
“솔직히 말씀드리죠.”
그녀가 속내를 토로함으로써 바로 해결됐다.
“…저, 어제 제대로 만족이 안 됐던 거 같습니다.”
“???”
그래서요? 어쩌라고요?
무심코 그리 말할 뻔했다. 아니, 이게 지금 말할 소리인가?
“…….”
거기다 묘하게 상기된 표정을 보아하니….
이건… 그건가?
‘아, 정말!’
괜히 나까지 영향받잖아!
기껏 욕구를 내려 앉혔는데, 그녀 때문에 수포로 돌아가게 생겼다.
저, 저 발칙한 얼굴을 보라! 당장에라도 뭘 하고 싶다는 저 눈빛을!
거기다 가랑이 사이를 바짝 움츠린 채 마치 뭐를 억지로, 마구 참는 듯한 몸짓을 자꾸 내비치는데….
‘돌겠네.’
덕분에 의식 안 하려던 에드릭 자신조차 졸지에 그렇고 그런 쪽으로 사고가 팽창하기 시작했다.
거기다 그녀는 복장도 본사에서 제공해줬다는 저 세련된 흰색 원피스, 기능성 옷인 게 분명한 저거 아래는… 들어만 올리면 바로… 아니지! 아니야!
에드릭은 급작스레 밀려드는 번뇌에 난감해졌다.
그런데.
“설마… 아침 식단에 이상한 조치를 취해놓으신 건… 아니시겠죠?”
“……?”
이상한 조치? 그게 뭔데?
‘뭔 소리를 하니?’ 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보는 에드릭.
이에 릴리에나 쪽이 되려 화들짝 놀라 얼굴을 감싸 쥔다.
“죄송합니다. 말이… 심했죠?”
“이상한 조치가 뭔데요?”
“…….”
그걸 끝까지 추궁해야 속이 시원했―냐?!
근데 정말 몰라서 묻는 듯한 에드릭의 모습에 릴리에나는 더더욱 부끄러워졌다.
“그… 미약이라던가, 발정제라던가…. 많잖아요.”
“…엥?? 많아요? 그런 게?”
그보다 그걸 왜 쓰는데?
에드릭의 그런 의혹 어린 시선은 릴리에나를 완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마치 안 그래도 되는데 왜 그걸? 굳이?
“거기다 그건 범죄잖아요?”
“…….”
너무 상식적이라 할 말을 잃었습니다!
잽이라도 한 대 맞았다간 그대로 다운될 것만 같았다. 지금도 이미 빈사 상태인데….
“탁 까놓고 말합시다. 못 참으시겠어요?”
“―!!!”
소리 없는 아우성이 이러할까.
에드릭은 웃어야 할지, 폭소해야 할지 고민했다.
아, 다시 생각하니 이거, 엄청 웃긴 상황 아니냐?
그래도 릴리에나를 수치심으로 돌연사(?) 시킬 계획은 없었기에 거기까지 하기로 했다.
“좋아요, 그러면… 이거 하나는 확실하게 하고 가죠.”
“…뭡니까?”
“하려면 확실하게, 행위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서로를 원한다는 마음으로 했으면 해서요. 그게 아니라 단순 욕구 해소 목적이면… 시간 드릴 테니 엄한 곳(?) 다녀오셔도 되고요.”
“…….”
대준다고 해도 저딴 식이라니! 이 새끼는 정말 사내 새끼가 맞긴 한 건가?!
그러기에 릴리에나는, 그가 상상 이상으로 이런 쪽에 보수적? 아무튼 완고하다는 걸 재확인할 수 있었다. 까다로워도 정도껏 까다로워야지!
“다 릴리 씨 위해서 그런 거예요.”
“어떤 점이요?”
“몸을 섞다 보면 실수든 아니든 결국 서로를 의식하게 되는데, 그런 걸로 마음고생 하거나 미련 가지거나 상처 입는다거나… 그런 일이 없었으면 싶어서요. 그건 저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저야 참는 건 익숙한데, 릴리 씨는 어떨지 몰라서요.”
“…….”
이건 또 무슨 소리람?
“저번에 말했잖아요. 내 여자가 타인에게 안기는 게 용납 안 된다고 했던가요? 남자의 독점욕? 집착? 그거 비유했을 때 말이에요.”
“그게 무슨 연관이 있는 거죠?”
“여자도 마찬가지잖아요. 내 남자가 다른 여자하고 부대끼거나 뒹구는 거 생각하면 속에서 천불 솟지 않을까요?”
“…….”
그걸 아는 인간이… 자기는 괜찮다고 지금 말하고 있는 건가?
이 시점에 릴리에나는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무언가를 느꼈지만, 그게 뭔지 좀처럼 파악할 수가 없었다.
다만.
에드릭이 자신을 여러모로 생각해주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전해졌다.
…죄다 쓸모없는 오지랖일 뿐이지만.
애초에 그냥 욕구 해소든 즐기는 차원에서 한 차례 두 차례 살 맞대고, 배를 접하고 부대낄 수 있는 거지, 뭘 그런 거 가지고 그리 의미를 깊게 두고, 고민하고, 신경 쓰는지 원.
‘이쪽 세계 인간들이 그런 면에선 훨씬 개방적이네.’
에드릭이 작정만 했다면, 어제 솜씨를 미루어볼 때 릴리에나는 며칠도 채 안 가서 그와 살을 맞대는 지경에 이르렀을지도 모르겠다. 그녀 자신도 나름 개방적이라 자부하는 입장이다 보니, 이런 쪽으로 그리 몸을 사리거나 움츠리거나 하진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에드릭이 워낙 이상하다 보니 이상하게… 다른 의미로 의식하고 대처하게 된단 말이지.
그게 뭐 때문인지는 아직도 헷갈리지만…, 한 가지는 확신을 얻었다.
‘여자들 막 울려대진 않겠네.’
관계에 대해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는 게 한편으로는 흠이지만, 다른 의미로 그의 그런 마음가짐이 이곳 세계의 여성들에겐 잘 먹혀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그러기에 더욱 이해가 안 갔지만.
‘그럼 결혼을 한다는 제스처나 신호를 보내던가. 마구 들이밀어서 함락을 시키면 될 문제잖아? 왜 그냥 내버려 두는 거지?’
이것도 미스터리다.
아무튼 서로 의견을 맞추니 그 뒤는 일사천리.
“그러고 보니 저 이런 로망이 있었거든요.”
“…뭡니까?”
“사무실이나 일터에서 여직원하고 그렇고 그런 거 해보는 거요.”
“…….”
릴리에나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본인도 그런 로망이 은연중 있었다는 걸 말하기가, 퍽 불편했기에.
물론 드라마와 달리 현실의 직장은 지옥과도 같은 곳이었기에… 적장 직장 생활을 하며 그런 걸 꿈꿔본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