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129)화 (129/454)



〈 129화 〉33. 데이엔 가의 미묘한 가정 사정.(3)

-----------




일주일 머문 뒤 곧장 출장이란 명목으로 다시금 우리 세계로 복귀.
처음으로 선배와 동행하지 않은 상태로 나 홀로 본사로 복귀하게 됐다.

복귀  이런저런 신체 검사 뒤, 노트북을 펼쳐 보고서를 작성하던 중, 윤 팀장이 방문했다.



“오늘 복귀하는 날이었나요?”
“예, 그렇게 일정 잡혔습니다.”
“지내는 건 어때요?”
“좋죠.”
“좋아요?”



입술을 살짝 여문 상태로 그녀는 품위가 넘쳐 흐르는 웃음소리를 냈다.




“적성에 맞는 듯하니 다행이에요.”
“…하하.”

적성에 맞는다기보다는… 그냥 사내된 입장에선  이상 천국에 가까운 일이 또 있을까 내심 고민해본다.



“그게 몸에 안 맞는 이들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정도가 지나치다거나, 본인의 역량을 착각한다던가, 태만해진다거나.”
“그런가요?”
“원래 태민 씨가 하고 있는 그 일, 그 자리는  계층의 유력 인사의 자녀들이 맡곤 했었어요. 문제는 그들은 그것을 단순 즐기는 명목으로, 유희 차원에서 자신이 특권을 누린다는 착각에 휩싸여 문제를 일으켰고, 그 문제가 누적돼 평가는 최저치를 기록, 전부 방출이라는 아무 적절한 쾌거를 이뤄냈죠.”
“하하하….”

비하인드 스토리인가.



“저는 아직도 정확하게… 제가 여기서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일전에 잠깐 언급했지만, 지금은 준비 단계인 만큼, 자신을 갖추는데 집중하세요.”
“흐음….”


어쩌면 아직도 나는 한창 평가받고 시험당하는 과정에 놓인 건지도 모르겠다.
선배는 자신이 낙방했다던가, 시험에서 떨어졌다고 체감하고 느끼는 순간이  텐데, 그때가 바로 자신의 기준치가 정해진 시점이라 간략하게 설명해줬었는데….


‘아직  모르겠는 건, 과정이라서 그런 건가?’

무엇을 기준으로 나라는 인간을 평가하고 있는 건지, 그 부분이 아직도 의문점이었다.

“그런데 팀장님께선 여러 아바타를 다루신다고 들었는데, 힘들지 않으세요?”
“저도 적성에 알맞아서 그런지, 오히려 이쪽이 더 편하답니다.”


그녀는 별거 아니라는 듯 이야기했다.



“그렇군요.”
“역할에 따라 여러 아바타를 다루게 될 때도 있지만, 태민 씨는 당분간 하나만 쓰게 될 거예요. 이미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힘에 부치지 않나요? 상대하는 이가 오죽 많아야죠?”
“하하하….”

팀장님은 이미 다 아시는지 슬쩍 짓궂은 눈길을 던져오신다.



“그러니 푹 쉬고, 재충전하고서 본사로 복귀하도록 하세요. 아마… 이번에 다녀오고 나면 아르세이유  일도 일단락 맺고… 다른 쪽으로 가야 될 테니까요.”
“다른 쪽이요?”


그녀는 기대해도 좋다는 듯 눈웃음 지으며 말했다.



“사내가 유명세를 타려면 모험담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예?”

모험담? 갑자기?



“본사는 사원에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답니다.”
“…….”



아뇨, 지금도 이미 지루하기는커녕 매 순간이 스펙타클합니다만?

“사실상 다음에 복귀한 이후 아르세이유의 모든 업무를 정리, 해결할 테니… 준비 단단히 하고 오세요.”
“…속이 갑자기 쓰리는  같은 기분이 드는데요.”
“좋은 징조로군요.”




태민의 떨떠름한 반응에 윤미라 팀장은 활짝! 만개한 보름달과도 같은 표정으로 실웃음을 흘리며 퇴장.


“…….”

보고서를 적던 태민은 왠지 멘탈이 승천인지 붕괴인지 모를 미묘한 상황 속에서, 어어어~! 소리를 내며 의자 등받이에 무게를 파악 실었다.

“아 참!”
“우억!”



갑자기 문 열고 다시 모습을 드러낸 윤 팀장 덕에 태민이 의자 째로 넘어질 뻔했다.


다행히 도중에 몸을 옆으로 틀어 참사는 면했지만….



“연장 근무도 있었겠다, 서무과에 선물 신청해뒀으니까 갈 때 받아가도록 해요?”
“……예, 알겠습니다.”
“그럼 진짜 갑니다?”

그러고는 다시 문을 닫고 나가는 윤미라 팀장.

“…….”



태민은 왠지 멋쩍어져 다시 의자에 앉아 다시 노트북 자판을 두들겨대며 보고서 작성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



선물이  거창했다.
한우? 뭐 기타 등등?
아니, 그딴(?) 게 아니었다.




“오오오오!!!”



보기 드물게 아버지께서 환희에 차서 고급  와인 병을 신줏단지 모시듯 살펴대고 있었다.

“이, 이걸 선물로 줬다고?!”




말하는 와중에도 절로 목소리가 떨려오는데….


“왜? 뭔데?”



어머니가 보리차를 따른 컵을 가져오시며 묻자.

“스크리밍 이글 2!0!10! 후우! 후우!”



저게 뭐지?
오는 길엔 뭔가 비싼 거다 싶었는데, 술은 사실 크게 관심이 없다 보니….


아버지가 갑자기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병 후면을 유심히 살피다 거기에 쓰인 영어와 번호를 기입하려는지 스마트폰을 떨리는 손길로 눌러대기 시작했다.



“저, 정품이 맞군.”
“아 뭔데 그리 호들갑이야!”



어머니가 어깨를 툭 치며 묻자 아버지가 화들짝 놀라며 와인병을 붙든다.

“이 사람아! 이거 떨어졌으면 어쩌려고?!”
“떨구면 제 탓이지  내 탓이래?”
“아니! 아 그! 방금 그 경솔한 행동이 수백 만원을 공중분해 시킬 뻔했는데 어딜!”
“수백?  헛소리래?”



그 말에 갑자기 궁금해졌는지 어머니가 아버지를 마구 쪼아대기 시작했다.



“어머! 세상에! 이런 걸 선물로 보내줬다고?”
“…그렇게 비싼 거예요?”
“나도 잘은 모르는데….”




모른다며 설명만 10분 가량을 하신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너희 회사는 정말 고단수다. 월급을 적게 주는 대신 이런 식으로 복지를 꾸리는 걸 보면, 아주 고단수야.”
“그런 가요?”
“돈을 많이 주면 사람이 고마움을 잘 못 느껴. 그런데 이런 걸 대뜸 줘버리면 고마움을 느끼지.”



…돈 많이 주면 고마운 게 당연한 거 아닌가?

“대부분 이렇게 생각할 거다. 선물 말고 월급이나 많이 주지… 하고.”
“그렇죠, 아무래도?”

태민은 끄덕여 긍정했지만, 사실 급여가 평균치만 되더라도 이미 차고 넘친다는 입장이었다.

…누리고 있는 혜택이 얼마인데.


“그게 고단수라는 거야. 선물이니 덤인데, 덤이 비싸. 대우 받는 거 같고, 자부심이 느껴지지. 월급이 많은 건 자부심보다는 프라이드 문제 아니냐?”
“…….”




 말이   아닌가?

“월급은 어쨌든 비교 대상이 지천에 깔려 있잖아, 이 놈아? 그런데 이런 선물 주는 회사 대한민국에 몇이나 있겠냐? 저번에 그 여행 패키지도 그렇고. 애초에 그건 너 가지라고 준  아니잖냐? 이것도 마찬가지일 거다.”
“예? 아… 그러니까….”
“그래 인석아. 이건… 우리한테 잘 보이려고 보내는 일종에 뇌물 같은 거라  말이다. 일은 네가 하는데 누리는 건 우리? 자랑도 하겠다, 뭐다. 그럼 넌 어쩌겠냐?”
“저야…….”

이미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마당에 주변에서도 극찬하고 띄워주고 좋은 곳이라고 해주면….

“네 월급보다 비싼 걸 선물로 주는데, 솔직한 심정으론… 너 사기 당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러지 않고서야… 네가  일을 하길래 이런 걸 퍼주겠냐?”
“아니! 우리 태민이가 어때서요?”
“어때서? 솔직히 까고 말해서 스펙이 잘난 놈들 투성인 세상에 녀석이 잘나 봤자 얼마나 잘났다고?”


아버지, 그렇다고 팩트로 두들겨 패시는 건 조금 너무하지 않으신가요?

“그런데도 이런 취급, 아니 대접해준다는 건… 너 인마. 거기가  뒤가 구리다거나 사기? 다단계? 아무튼 범죄에 연류 됐거나, 그런 거 아니면 정말 제대로 말뚝 박아야 한다.”
“…그러지 않아도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거기다 사원에서 주임까지 달고 월급도 올랐다. 초고속 승진이다 보니 아버지는 이런 대접이 그래도 이유가 있겠거니 하는 눈치였다.


‘…근거 없이 마구 때려 박는 게 아니었네.’

생각해보니 한 달 혹은  이상 집에  들어가는 일이다. 나야 이미 익숙해졌고 선물(?)로 입막음시켜둔다 쳐서 다 해결된 줄 알았지만, 부모님 입장에선 그게 또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본사는, 그조차도 헤아려 다시금 ‘당신네 아들 우리가 귀하게 쓰고 있으니,  선물 보고서 결코 허투루 대하지 않는다는  이해 바랍니다!’ 라는 명목으로 애프터 케어까지….



‘고단수는 고단수야.’



역시 배울  참 많은 곳이라니깐.



“아, 근데  병 더 있는데요?”
“같은 거냐?”
“아뇨, 달라요. 이건… 뭐라고 읽는 거죠? 샤토?”
“줘 봐.”


전혀 다른 직사각형의 네모난 박스를 건네자, 그걸 받아든 아버지의 눈이, 튀어 나올 것처럼 부릅떠진다.




“이, 이건…?”
“아 또 뭔데 호들갑이야?!”



어머니가 궁금하다는 듯 재촉해오자, 아버지의 입에서 단말마처럼 그 와인의 명칭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샤또 르 팽?  년… 헉! 0, 05?!”
“아 뭔데 그래!”




궁금하긴 태민도 마찬가지.



“……너희 회사는 정말 선물 클라스가 다르구나.”



이건 앞에 언급했던 이글 어쩌구 이상, 그보다 더 고가의 와인이라 하신다.
…이거 설마, 일부러 천만  맞추려고 저런  준  아니겠지?



“시음에 보관에 과시용까지….”

아버지는 뜻 모를 이야기를 입에 담았지만….




“하아! 이거 출근날이…….”



자식 온다고 연차 내셨다는데, 지금 표정만 보면 내가 왜 연차를 냈을까 하고, 탄식하기 일보 직전인 상황.


그러면서 와인 병이며 박스 등을 여러 구도로 사진을 연신 찍더니, 그중 가장 좋은 사진을 골라 사내 단톡방 같은 곳에 그런 걸 올렸나 보다.

몇 분도 안 돼 전화가 걸려오자, 아버지는 한참을 뜸 들이더니….


“어? 응? 사진? 아! 뭐 아들놈이 선물이라고 가져온 거지. 별거 아냐. 응? 이름이… 어디 보자. 나는 와인 잘 모르잖아?”



……능구렁이도 아니시고 뭘 저리 능청을 떨어대시는지.
통화하는 아버지의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가질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