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33. 데이엔 가의 미묘한 가정 사정.(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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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와인이라 한 번 맛이나 좀 보자는 어머니.
아버지는 둘 중 하나 고르라 했는데, 남은 하나는 아주 고이 모셔둘 모양이다.
나는 술에 대한 욕심이 따로 없었기에, 시음해볼까 하다 귀찮아서 알아서들 드시라 이야기했는데.
“너 이런 거 자주 마시나 보다?”
어처구니없는 녀석을 보듯 헛웃음을 터트리시는 아버지.
거… 좋은 거니까 최대한 많이 잡수시라는 이 아들내미의 속 깊은 뜻을 어찌 몰라주시나이까!
…사실 좋은 걸 먹고는 있지.
다른 세계 쪽 이야기지만.
일주일이 길다면 참 긴데, 아예 작정하고 쉬고자 하니 언제나 그렇듯 휴일은 쏜살같이 흘러가는 법.
요즘은 눈 한 번 깜빡이면 신작 게임에 영화에 드라마에….
보다 보면 일주일은 금세 지나간다.
“쉰다는 녀석이 방에 종일 틀어박혀 컴퓨터나 하고! 너 컴퓨터 중독이야 인마!”
“영화 몰아본 거뿐입니다만?!”
그래도 의례적으로 하는 이야기뿐, 막상 터치하진 않으신다.
“그건 그렇고… 일도 번듯하게 생겼는데 슬슬 결혼 생각은 해보고 있고?”
“…한 달에 한 번씩 오는 남편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바람 낼 일 있어요?”
“그도 그렇구나.”
의외로 순순히 수긍하는 어머니.
“…뭐라 할 줄 아셨는데, 그냥 넘어가시네요?”
“사실이잖냐? 뭐 틀린 말 했어?”
“…그렇네요.”
좋게좋게 생각하자.
아버지는 직장에 가선 은근슬쩍 과시 좀 했단다.
“사나이는 말이야, 어깨에 힘 좀 들어가고 말이야. 그래야지!”
말수가 썩 많지 않으신 분이 반쯤 흥분해서 저러시는데, 기분이 퍽 좋으신가 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취직해서…… 해도 지금 직장 같은 선물을 못 가져드렸을 테니, 후회할 필요도 없겠네.
…그렇다고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 취직하는 건 말도 안 되고.
혹시나 싶어 지인 추천으로 삼별 고시라 불리는 GSAT 같은 걸 공부해본 적도 있는데, 할만한데? 하고 시작한 게 3일. 그러나 일주일 째 되는 날, 아니다 싶어 내려놨다.
‘내 주제에 뭔….’
뭔 회사 하나가 취직한답시고 문제를 이리저리 꼬아두는지.
정확하겐 수리 쪽보다가 멘탈이 나간 거지만.
언어, 추리는 그래도 재미 삼아 흥미롭게 푼 반면, 시각적 사고는 진짜….
그래도 수리만 받쳐줬더라면 아마 시도는 해보지 않았을까?
…물론 됐더라도 그 이후론 답이 없었겠지.
실제로 자신의 가장 큰 문제는 대인 관계를 포함한… 대면 면접 쪽이었으니까.
사람 많은 곳에서 말 제대로 못 하고, 눈 제대로 못 마주치고….
현 직장에서도 인턴 때 이를 극복했기에 망정이지, 이거 이대로 갔으면 정말 반쯤은 알바 나 적당적당 뛰는 방구석 얼간이가 됐을지도 모를 일.
나름 푹 쉬고는 다시 본사로 복귀하는 와중에, 여러모로 생각이 들었다.
사과 사의 이어폰을 귀에 꽂고, 새로 나온 신곡을 들어가는 출근길.
당연한 듯 가야 할 곳, 출근할 곳이 있다는 건… 생각 이상으로 위안이 됐다.
그리고 그곳, 일터가 불합리하지도… 오히려 가고픈 그런 일터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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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에 복귀해 다시금 안태민에서 에드릭으로 바뀌어 아르세이유로 향하는 길.
가면서 이세계 전용 스마트폰을 살펴본다.
딱 이번 기회에 업그레이드가 돼서, 이전보다 가벼우면서도 반응이 훨씬 빨라졌는데, 실제로 그러했다.
2시간 가량 마차로 이동, 그 뒤 텔레포트 서비스를 받아 아르세이유에 도착한 뒤 다시 마차를 타고 30여 분 이상을 이동해 백화점에 도착했다.
“아, 여기가 아니라 집엘 먼저 들릴 걸 그랬나?”
아무렴 어때.
늑돌이 마부 푸드럭에게 짐만 저택에 가져다 두고 오라 말하곤 곧장 백화점 내부로 들어가 사장실로 직행.
“어서 오세요.”
그 전에 내근 비서 코넬 양이 사장실 앞이자 측근에 자리한 자기 자리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이 포착됐다.
“오늘 출근 안 해도 됐을 텐데요?”
“겸사겸사 온 거예요.”
겸사겸사?
직장에?
의뭉스러운 눈길을 던지는 에드릭이었다.
“무슨 일인데요?”
“…….”
하아! 하고 한숨을 푸욱 내쉰 코넬은.
“그 어마 무시하신 밀리엄 대공의 따님께서 자꾸 절 찾아대서 말이죠.”
“왜요?”
“그런 게 있어요. 아무튼 그 때문에 여기로 피신 온 거예요.”
“…피신이 되긴 해요?”
“여태 발견 안 됐으면 피신 목적은 달성한 거겠죠?”
“그럴 거면 차라리 사장실 안에 계시는 게 나으셨을 텐데.”
“…들어갔다가 뭔 의심을 사게요?”
코넬이 ‘생각을 좀! 하고 말하세요.’ 하는 표정으로 혀를 찼다.
생각해보니, 사장이 자리 비웠는데 내근 비서가 쉬는 날 출근해서 무턱대고 사장실로 직행, 거기까진 그렇다 쳐도 나오질 않네? 흐음? 자기 자리가 따로 있는데도 말이지?
불순한 목적이 있는 게 아닐까, 목격한 이가 의심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긴 했다.
…우리 쪽 사정을 모른다면.
“힘내세요.”
“…….”
그걸 말이라고 하냐는 듯한 시선을 피해 에드릭은 사장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흐음.”
분위기야 뭐… 떠날 때와 별 차이가 없었다.
혹시 해서 꼼꼼하게 인근을 둘러봐도 별다른 이상은 안 보이고.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
일이야 만들면 얼마든지 생기지만, 굳이 그렇게까지는….
기본적인 것들만 확인하곤 곧장 사장실을 나섰다.
그럼에도 1시간은 훌쩍 지나버렸지만.
코넬은 그 사이 자리를 떴나 보다.
내려가서 마차에 탑승해 우선은….
“어?”
알리샤의 가게로 이동했다.
“멀리 갔다고 들었는데, 돌아왔어?”
“예. 돌아와서 가장 먼저 들린 참이에요.”
“어머어머, 이 누나가 그리 보고 싶었어?”
알리샤가 그런 날 향해 함박웃음을 선사한다.
“그러니까 왔겠죠?”
“얘는! 이제는 완전히 익숙해졌잖니?”
알리샤는 퍽이나 좋아 보인다.
“손님은 별로 없나 봐요?”
“너무 많아도 곤란하잖아. 어차피 백화점 납품으로 충분하고, 여기는 상황에 맞는 약품 제조에 의의를 두는 제조소 겸 연구소 개념이니까.”
그러다 보니 여긴 따로 홍보나 광고도 안 된 장소기도 했다.
“사람 좀 많이 부리면서 조수 겸 직원도 구해보는 건요?”
“너무 번거로워. 그건 나중 일이라 치고.”
어차피 유통 및 판매 자체는 전부 우리 쪽이 전담하고 있기에, 그녀 입장에선 질 좋은 물약, 약품을 주기적으로, 안정적으로만 공급해주는 것만으로도 사실 힘겹기는 할 거다. 기계도 아니고 일일이 사람 손으로 만드는 판인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다음을 기약하며 이번엔….
“…….”
여전히 마탑의 자기 방에 틀어박혀 두꺼운 책자를 들춰보는 에우리에.
노크 뒤 문을 열고 들어서기 무섭게 그녀의 침체 된 눈이 누가 봐도 티가 확 날 정도로 반짝여댔다.
“잘 지내셨어요?”
“…….”
에우리에는 슬쩍 시선을 피하곤, 그걸론 어필이 부족했다고 판단했는지 고개마저 돌린다.
음, 저건 그러니까… 투정? 삐짐?
서운함의 표시인 건 분명했기에,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선물을 건냈다.
“……그건?”
“머리를 쓰면 달달한 게 먹고 싶지 않으세요?”
그렇게 해서 테이블 위에 케이크를 놓아둔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회포를 풀었다.
그 뒤 하는 일에 집중하라 말하곤 자리를 뜨려 하자….
덥썩!
“…….”
손목을 붙든 채 아쉬운 듯 바라보는 그녀의 신비한 자주색 눈을 지긋이 응시하며 나는, 살포시 웃어 보이곤 그녀의 머리를 차분히 쓰다듬어줬다.
“일에 집중하셔야죠. 한창 논문 정리하시는데 집중해야한다면서요?”
“답답한데….”
……답답하다고 절 붙든 이유가 정당화되는 건 아닌데요?
설마 답답하니 풀어야한다는 명목으로… 떡을 치자는 의미는 아닐 테고.
“제가 뭘 도와드리면 좋겠어요?”
“…….”
그녀가 이리저리 눈을 돌리더니 침대 쪽으로 시선을 줬다.
“음….”
역시 이런 전개인가?
할 때는 알리샤 쪽이 훨씬 적극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는 덮칠 때(?)와 내버려둘 때를 의외로 잘 구분 짓곤 했다.
내심 오늘은 그녀하고 이러쿵저러쿵 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기대가 무색하게 말이다.
반면….
“…….”
아닌 것처럼 보이나 에우리에는 밝힌다. 그냥도 아니고 많이.
하지만… 예상이 또 빗나갔다.
“…이걸로 괜찮겠어요?”
어쩐 영문인지 무릎베개를 한 상태로 귀 청소를 해주는 상황에 놓였다.
‘어쩌다가?’
물론 자주 해주긴 했지만 이 타이밍에?
아니, 그게 딱히 이상한 건 아니지만….
한쪽을 다 파고, 반대쪽을 다 청소해준 다음, 다 했다고 했으나 그녀는 그 상태로 꼼짝도 않았다.
“음….”
이건 그러니까….
잠든 건가?
“하여간.”
실웃음을 흘리며 나는 무릎에 내려앉은, 기분 좋은 무게감을 느끼며 그녀의 윤기가 철철 흘러넘치는… 은발을 차분히 쓰다듬으며 그녀가 꿀잠을 자도록 잠시간 시간을 할애하기로 마음먹었다.
성적인 욕구 이상으로, 이렇게 편하게 자신을 대하는 절세 미녀, 미인의 존재란… 정말이지 남다르지 않을까, 그리 보람을 곱씹으며 말이다.
애초에 편하게 이런 미녀의 머리를 쓰다듬을 수 있다는 것도… 다시 생각해보면 복이 아닐까 새삼 생각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