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화 〉33. 데이엔 가의 미묘한 가정 사정.(5)
---------
“에드는 거꾸로야.”
“뭐가요?”
다프넬은 신기하다는 듯 이야기했다.
“멀리 다녀오면 선물이 필수인데, 에드는 그런 걸 사 온 적이 없으니까.”
“어… 그러네요?”
생각해보니….
“괜찮아. 너만 있으면 난 그걸로 족하니까.”
“하하하….”
의외로 핵심을 찌르는 다프넬.
휴일이라 그런지 이전처럼 옷이 전처럼 헤프진 않았지만, 인간 기준으로 복장이 가벼운 건 명확.
엘프들의 경우, 아무래도 인간보다 훨씬 자연의 혜택을 많이 받는 터라 온·냉기에 민감함에도 환경적 영향을 덜 받는 케이스다.
정령이라던가, 아무튼 자연 친화적인 뭔가가 있는지, 옷을 얇게 입어도 인간들이나 여타 종족들처럼 추위며 더위를 극심히 타진 않는다.
물론 옷을 두껍게 입으면 숨쉬기 힘들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터라 전체적으로 속옷과 겉옷을 겸한, 가벼우면서도 부드럽고, 질긴 옷감을 추구하는데… 그런 만능 소재가 요즘 같은 시대에 있을 거라 보긴 힘들었지만, 그들은 지니고 있었다.
…역시나 판타지 세계.
특수한 거미줄과 특정 나무의 줄기에서 빼낸 걸 조합해 만든 소재인데, 엘프들의 비전이라 인간이 이걸 구하려면 웃돈을 얹어줘도 힘든 바, 보통은 친우가 되어 선물 받는 수밖엔 없는데 이조차도 딱 자기 한 몸 걸칠 정도가 고작.
에드릭도 선물 받긴 했는데, 성년 때를 가정하고 만든 거라 키가 더 큰 다음에나 입을 수 있을 듯 싶어 현재는 얌전히 보관 중.
“그건 그렇고 요즘 재미 좀 본다면서?”
“뭘요?”
“데이엔 가문 쪽에서 며칠 지냈다면서?”
소문이 벌써 그렇게 퍼졌나?
“일이 있어서요.”
“흐응~ 어떤 일이려나?”
아는지 모르는지 은근히 입꼬리를 말아 올리는 다프넬.
“그래도 결국은 내게 돌아올 걸 알고 있으니까, 걱정은 안 하지만.”
“오호… 엄청난 자신감이네요.”
“인간을 늙어.”
문득 그리 말하는 게 아닌가.
“나는 안 늙지만.”
거기서 또 한 마디.
“30년, 40년 뒤에도 나보다 아름다울 수 있을 거라곤 생각 안 드는데?”
“…설마 그때까지 기다리실 참이세요?”
“그때까지도 기다릴 수 있다는 거지.”
……의외로 대단하시잖아? 상상조차 못 했다.
“그 정도 기간이면 저보다 나은 남성이 나타나지 않을까요?”
“그건 힘들걸.”
의외로 딱 부러지게 이야기하는 다프넬.
“엘프는 의외로 순정파랍니다?”
“…초원 출신이라면서요?”
“왜? 무투파로 무작정 깔아뭉개주길 바라는 거야? 그래 줄까?”
은근슬쩍 그리 말하는데, 기세가 장난 아니었다.
“하하하….”
“나는 사랑을 하자는 거지, 내 소유물이 되라는 게 아니야. 그게 우리들 방식이고. 손으로 취하느냐, 눈과 귀, 가슴으로 취하느냐.”
아무래도 나는 그녀를 단편적으로, 단순한 편견을 가지고 대한 게 아닐까, 그런 고민을 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
시스터 카멜린도 이왕 시간 난 겸 만나보려 했지만, 그녀는 관련 일정 때문에 다른 수도원 쪽을 방문하러 떠난 터라 만나볼 순 없었다.
“내일부터는 정상 업무인가요?”
저택에 돌아오니 릴리에나와 딱 마주쳤다.
“아무래도요? 그건 그렇고 잘 지내고 계셨어요?”
“흠. 항상 하던 일을 했지요.”
그게 뭔데요?
구태여 묻진 않았다.
“나가시려는 건가요?”
“예, 오늘도 데이엔 가에 들리려고요.”
“들린 김에 자고 오고 말이죠?”
“아무래도요?”
“흐응~ 그렇구나.”
“…왜요?”
“아무것도요.”
그러고는 등 돌려 매정하게 자리를 뜨는 릴리에나.
“흐음.”
설마하니 오자마자 관심을 안 줘서 서운했다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의외로 도도하고 다가서기 힘든 분위기를 풍기는 이들일수록… 묘하게 그런 거에 민감해서 말이지.
특히 그녀는 더욱 그런 면모가 두드러졌다.
‘그냥 솔직하게 표현하면 될 텐데.’
아마 저건… 프라이드가 높지 않기에 프라이드를 높이고자 하는 심리적인 방어기제겠지. 이해는 한다. 노력하고 이것저것 생각이 많은 이들일수록, 거절이나 실패에 대한 위험 리스크를 더욱 부풀려 사고하고 망상하곤 하니 말이다.
이를테면….
거절당했다. -> 이런저런 상상 -> 더 처참해졌다. -> 실망을 넘어 멘붕. -> 삶의 의지 상실. -> 죽을까?
라는 극단적 흐름이 복잡하게 전개되는데… 무덤덤한 이들인 거절->그렇구나. 하고 넘기곤 하는데… 이것도 익숙해짐이 필요했다.
‘나를 거절하는 게 아니라, 내가 제안한 상황을 거절한다는 걸 알아야 하는데 말이지.’
물론… 나를 거절하는 건데, 상황 파악 못 하고 그게 아닌 걸로 오해하는 경우도 적지 않을 테지만.
세간에서 이런 걸 잘 구분하고 분별하는 이를 일컬어 눈치가 빠르다 말하곤 하는데… 어떠려나.
방금 전 릴리에나가 자신에게 관심을 표해주길 바란다고 이야기했다면, 에드릭은 당황하면서도 순순히 그 청을 들어줬을 거다.
이를테면 다프넬처럼.
그러나… 그게 쉬운 일은 아니지.
그걸 잘 알고 있기에 에드릭은 구태여 아쉬운 기색을 물씬 풍겨대는 릴리에나를 그대로 보낼 수밖에.
거기다 방심 금물.
어쩌면 저런 것조차 연기일 수 있으니 말이다.
“음, 너무 생각이 많은 건가.”
에드릭은 자조했다.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이런저런 것들을 고려하고 사고하는 건, 에드릭도 별반 차이가 없었으니까.
‘숙성이란 것도 있으니.’
줄다리기란, 본디 매달리는 쪽이 지는 거다.
그러다 떠나가면 어쩌냐고?
…그건 자업자득이려나.
--------
“오랫동안 고민해봤어요.”
데이엔 가에 들리기 무섭게 루플레시안과 독대한 나는, 그녀가 내린 결론에 잠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저도 수컷이 되면 프리지아를, 리지를 누구보다도 즐겁고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요?”
“…….”
“아니면 제가 암컷의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리지 보고 수컷이 될 수 있도록 돕는다던가요?”
아, 거… 대단한 결론에 도달하셨네 그려?
기가 막혀 왔지만 차마 겉으로 표현하진 않았다.
물론 에드릭은 그녀가 왜 저런 극단적인(?) 소리를 하는지, 대충 감이 잡혔다.
“음,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굳이 안 그러셔도….”
“그래도 티아나하고 에드릭 님이 하는 걸 보면…….”
나와 테티아나의 표면적으로 보이는… 꿀 떨어지는 행위만 보고 저러는 게 아니다.
아마도 테티아나는, 우리의 관계를 둘이 볼 수 있도록 모종의 조치를….
일전에 나와 알리샤의 관계를 엿보고, 자기 딸아이가 그걸 관람하게 한 전례가 있다 보니… 아니라고 부인하며 머리를 싸매기도 좀 그랬다.
예컨대 루플레시안의 기세에 저도 모르게 휘말려 이상한 쪽으로 머리가 회전해버린 모양이다.
“크흠. 시안 님. 그거하고 이거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요?”
“무엇이 다른 거죠?”
“음…….”
세상에서 가장 답하기 힘든 질문들은 대체로 ‘당연한 걸 당연하지 않은 것’처럼 묻는 거다.
예컨대 지구는 왜 둥글어요? 하늘은 왜 파란가요? 중력은 왜 존재하나요? 태양은 왜 존재하는 거죠? 공기가 뭐죠? …같은 거다.
뭔가 당연한 건데 막상 그리 물어보면 다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그리고….
지금 내가 당면한 문제도 이와 비슷하다고 할까.
‘아니, 설명하자면 설명 못 할 건 아닌데….’
막상 설명하자니 뭔가 정리가 필요한 것 같기도 하고….
머리가 복잡해졌다.
“에드릭 님은 티아나를 좋아하지 않는 건가요? 혹은 사랑하지 않는 건가요?”
“…….”
좋아하지 않냐? 노우.
사랑하지 않은 건가? 이것도 노우…이긴 한데 여기서부터는 조금 복잡해진다.
“좋아도 하고 사랑도 하겠죠?”
그런데도 입으론 태연히 그런 거짓인지, 진심인지 모를 소리를 털어놓는다.
…정말로 사랑하느냐 하고 묻는다면, 그 사랑의 기준치가 어느 정도인지, 그 정도로 구체적으로 묻는다면, 나는 누군가를 사랑한다 차마 말할 수가 없을 거다.
애초에 그걸 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편하긴 한데요, 복잡하다면 이것만큼 복잡한 게 없거든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모르는 게 맞아요. 저도 잘 모르니까요.”
“??”
의아한 듯 눈을 깜빡이는 루플레시안.
“그러니까, 일단 부딪혀본다던가, 직접적으로 맞대고, 표현하고 그러는 거죠.”
“아! 알겠어요! 그게 몸의 대화라는 거군요!”“…….”
아, 이게 그렇게 연결되네?
물론 헛다리였지만, 생각해보니 헛다리가 아닌 거 같기도….
‘아, 머리 아파지네.’
철학적 논증을 해도 이 정도로 골치가 아플 거 같진 않은데.
역시나 연애란 것도 이렇게 놓고 보면 썩 만만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한 가지 방책을 떠올렸거든요.”
“…뭔데요?”
왠지 불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