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132)화 (132/454)



〈 132화 〉34. 이런 발상은 이세계에서만 가능해!

“마법을 이용해 감각을 이어서, 에드릭 님의 몸으로 리지하고 교미를 하면 어떨까 싶어서요.”
“…….”



침착한 어조로 한다는 소리가 저거다.
거! 정말 대단한 결론에 도달하셨습니다 그려?! 상상조차 못 했네, 아주!


인간이 아니라 용, 드래곤이라서 그런 건가? 터무니없는 발상을 마치 좋은 생각 떠올렸다는 듯 술술 말하는 루플레시안.

“크흠! 으―흠!”



…당혹스러워 헛웃음이 튀어나올 뻔한 걸 애써 헛기침으로 무마시켰다.
물론 그녀는 진지했다.

“저는 티아나와 에드릭 님과 같이 리지하고도 더욱 밀접해지고 싶어요. 그 누구보다도!”
“…….”


적극성은 이해됐다. 충분히 이해의 범주 내에 들었지만, 그걸 이루기 위한 방법론이 이해를 초월하려 드는데, 제가 어찌 받아들여야 할까요?

 정지까진 아니어도, 순간적으로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어 온전한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너무 방심했어.’




그래, 판타지 세계라면 슬슬 이런 터무니없는 것도 튀어 나와줘야지. 이러다 나중에 악마 소환해서 악마하고 떡 친다던가 하는, 개념을 초월한 전개가 펼쳐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음, 용족은 그래도 폴리모프 때 따로 암수 형태를 변형시킬 수 있다고 들었는데요.”
“형태만 바꾸는 거지 정확하게 뭐가 어떻게 되는지 몰라요.”
“……예?”


뭐가 어떻게 되는지 몰라? 뭘?
여기서 다시금 편견에 휩싸였음을 깨달았다.
이건 그러니까….




“저는 에드릭 님이 느낀  온전히 느끼고 싶다는 거예요.”
“…….”




아무리 그래도 내 감각을 공유하고 싶다니… 이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아니 빙의해서 떡 치는 소리도 아니고.

근데.
…생각해보니 이거 꽤 매력적인 제안 아닌가?

“흠….”



잠시 고민해본다.


“그런데 그걸 리지한테 시험해보겠다는 건가요?”
“시험요?”
“왜요? 감각을 잇는다 쳐도 결국 저하고 리지가 관계를 맺는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 아닌가요?”
“그, 그렇죠?”
“리지가 그걸 원할까요? 또 저는요? 제가 원할 거라 생각하시는지요?”
“그건….”



루플레시안이 말을 더듬는다.
흠, 그래도 개념은 잡혀 있어서 망정이지….




“거기다 이 경우엔 순서가 틀린  같은데요.”
“순서요? 어떤 게요?”
“만약 경험을 해보고자 하신다면, 단순히 저와 감각을 잇는다? 아무튼 그걸 하기만 하면 충분한  아닌가요? 그 외에는 제가 티아나 님과 관계를 맺으면 될 거고요.”
“으음… 그렇네요.”

…왜 실망하시는 걸까.




“혹시 시안 님은 남성이 돼서 리지를… 그 뭐냐, 어떻게 하고 싶다거나 그러신 건가요?”
“아, 아니에요! 무슨 그런…… 그럴 리가요.”



낯부끄럽다는  손을 휘저으며 부인해대는데, 저 반응… 심상치 않다.



“흠.”


왠지 이렇게 말하면 속 보이는 느낌이 들 거 같은데, 말을 해? 말아?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세요. 이 경우 시안 님이 먼저 리지의 입장이 되어 헤아려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어떻게요?”
“…….”

그걸  입으로 말하게 할 참인가.
생각해보니 내가 왜 이런 소리를 하고 있는 거지?


루플레시안이 너무 이상한 제안 겸 요청을 해댄 덕에, 졸지에 나도 이상해진 모양이다.


아님 원래부터 이런 기질이 숨어 있었다던가.
…부인할 수 없다는 게 내심 슬퍼지려는 참이었다.



“아! 저하고 교미를 하면 되겠네요? 그러면 리지가 느낄 걸 미리 체험할 수 있으니 리지를 더욱 배려하고 그럴 수도 있겠네요?”
“…….”

이걸 마치 상식을 깨우친 듯 오오! 하고 감탄하며 놀라워하는 게  놀랍다만.


시안은 인간 기준으로도 대단히 똑똑한 편이지만, 이건 IQ 기준으로 똑똑한 거지, 오히려 인간 기준으로 사회성, 교감 능력 등은… 아무래도 용이다 보니 문제가 안 될 수가 없었다.

거기다 그녀는 저리 보여도 어쨌든 헤츨링, 아직 성년기 드래곤이 아니었다.




‘이거 곤란하게 됐는데.’



여기서 흐름만  틀면 누워서 떡을 몇 차례나 여타로 먹을 상황이 펼쳐질 것 같았지만, 이게 크나큰 함정이 될지 모르기에 최대한 이성적으로, 객관적으로 상황을 타개해보고자 머리를 굴려야만 했다.

드래곤하고 사적으로 엮여서 좋은 게 없다.


이곳 세계의 속담, 불문율, 격언들 모두가 그리 이야기하고 있는 걸 떠올려 보면, 저들 입장에선 가볍고 하찮은 일이더라도, 이게 피조물 기준으론 생사, 흥망성쇠를 결정짓는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됐다.

예컨대 사람끼리 장난삼아 어깨를 손으로 툭 치는 것과, 어지간한 산등성이 크기의 용이 장난이랍시고 손으로 툭 건드리는 게 같을 순 없으니 말이다.

이곳 세계에서 드래곤은 한때 신적인 존재로 군림했던 적도 있단다.


훗날 대전쟁으로 그들의 권한, 권리, 영향력이 많이 축소됐다지만, 그래도 드래곤은 드래곤. 지금도 작정하고 날뛰기 시작하면 대륙이 잿더미가 되는 건 순식간이라던데.



“왜요? 이상한가요?”



잠시 딴 생각을 하던 에드릭은 그녀의 의구심 어린 물음에 번뜩 정신을 차렸다.



“음, 이상하다면 이상하고, 정상이라면 정상이죠.”
“……?”



에드릭은 인간이 중요하게 여기는 정조 관념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했다.

“저는 용인데요?”



…물론 단번에 초전박살 났지만.


“그런다고 제 마음이 변하거나 바뀌는 건 아니잖아요?”
“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죠?”
“??”



미궁에 빠져드는  같다. 대체 뭘 잘못해서 이런 미궁에 사로잡힌 거지?

벌컥!



“아! 정말 답답하구나!”

그러다 문이 열리며 티아나가 난입(?)해왔다.



“다 차려주는데 왜 먹질 못하느냐!”
“??”



 얼굴을 보고서야 납득.
이건 그러니까….

“티아나, 난 약속을 지켰는데?”
“알아.”




티아나가 이런 제안을 했다는 걸 발설하지 않기로 하고 이런 제안을 했던 모양이다.

“시안도 있는데 왜 프리지아를 못 잡아먹어서 난리입니까?”
“불안해서 그렇다 내 누누이 말하지 않았더냐?”




간만에 봤다고 말투가 썩 고풍스러워졌지만, 표정만큼은 그녀 특유의 든든함보다는 재기발랄한 측면이 부각 되는 걸 보면, 그녀도 반쯤은 장난 삼아 이러는 게 아닐까, 슬쩍 짐작해 본다.

“이렇게 하면 은근슬쩍 납득  거라 생각했는데, 그걸 또 교묘하게 빠져나가는구나! 그리고 시안은 된다 하는데 왜 리지는 안 된다고 그러느냐?!”
“그거하고 이건 다르니까요.”



이쯤 되면 에드릭의 이 철벽 기질에 기가 질려 포기할 법도 했지만.



“이건 그 아이와 시안, 그리고  위한 길이니 거절하지 말 거라! 너도 남자이지 않느냐?! 리지하고 한 번쯤은 관계를 맺어보고픈 충동이 들었을 거 아니더냐?”
“…그런 쪽으로 생각 안 하려 노력 중이죠.”
“해도 된다니까!”

옆에서 시안이 기세에 떠밀려 동조한다.


“맞아요!”
“시안 님은 왜 또….”

머리가, 두통이 치민다.
아, 왜 자꾸 사람 떡  친다고 난리인지 원.


결국.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인데?”



프리지아와 이렇게 마주하는 상황을 초래했다.

“오해 말고 들으라 이거죠.”
“어머니한테도 말 놓고 있는데, 저한테도 말 놓으시죠?”



어지간히 배알이 꼬였나 보다.




“그럴까?”
“…….”
“농담이에요. 선은 지키니 그 점은 염려 마시길.”



사실 말을 놔도 문제는 없게 된지 오래지만, 확실하게 허가를 내려줄 때까지는 드문드문 말을 놓더라도 평소엔 이런 태도를 이어갈 참이다.
그래야, 마찬가지로 선을 안 넘을 테니.

말 놓고, 터치하고, 만지고, 그러다 하룻밤 보내고.
이런 시나리오를 원천 차단하는 방법은, 아예 앞에서 방심한 요소 자체를 배제해버리는 거다.

“신기하네. 사내라면 여자 앞에선 사죽을 못 쓰는데, 넌 오히려 어머니께서 밀어줘도 적극 부인해대고. 이유가 뭐야?”
“여러 가지가 있지요, 가장 우선은 계속 말씀드렸지만, 프리지아 영애를 위해서예요.”
“…말은 잘해. 항상 그래.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을….”
“거짓말인 거 같아요? 이건 섭섭한데요?”
“…….”



의례적으로 비꼬다 된통 혼이 난 프리지아.


“둘째는 티아나에게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적극 어필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고요.”
“아, 네. 그러시겠죠.”
“셋째는, 그녀가 아이를 가진다 쳤을 때, 영애께서도 같은 입장이 되면, 여기 가문은 누가 지탱합니까?”
“……음?”

그녀는 전혀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는  아미를 구겼다.



“뭐야? 그러니까… 나하고 해서 애 가졌는데 어머니도 가져버리면… 가문에 문제가 생길지 모르니 지금 자제하고 있다는 거야? 절제하고 있다는 거야 뭐야?”
“자제도 절제도 아니고, 경우를 지키는 거죠.”



모녀 모두와 관계를 맺어 둘 모두… 크흠! 야한 동인지에서 볼 법한 시나리오 아닌가. 생각으로 품으면 족하지만 진짜로 하게 되면… 범죄도 죄악도 아니라 한들….




‘태어난 애들 족보만 조지는 거지.’



 족보의 시작.


뭐 몇 년 차이 따위야 뭔 의미가 있겠냐만.
단순히 욕구 해소를 위해 아이들에게 그런 스펙타클(?)한 경험을 선사할  없는 노릇 아닌가.

심지어 이건 평생 가는 건데….



“그래서 시안하고는 어쩔 건데요?”
“예?”
“그거 허락 받으려고 온 거 아니에요?”
“???”
“???”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었다.

“아, 그래서 엄청 못마땅해하셨구나….”


전혀 그럴 생각 없던 에드릭 입장에선 황당한 물음이었지만, 그녀 입장에선 충분히 떠올릴 수 있을 법한 발상이었을 거라, 그때서야 깨우쳤다.



“모, 못마땅해한 거 아니거든요? 당연하잖아요? 시, 시안이 뭣 모르는 남자한테… 그….”
“그  모르는 남자가 어머니하고 침대에서 뒹굴고 있는데요? 행복하게 말이죠?”
“…….”



한 마디를 안 져요!
마치 속으로 그와 유사한 악담을 퍼붓는  도끼눈을 뜨는 프리지아.

“아, 그러면 왜  건데요?!”
“알아두라고요. 전 영애 자신이 원하지 않는 한 절대 선 안 넘을 테니, 영애도  점 숙지해서 휘말리지 마시라고요.”

프리지아는 기가 막혔는지 입을 벌린  헛웃음을 삼킨다.




“…그거 때문에 저한테 왔다고요? 예전에도 비슷한 이야기 했잖아요? 굳이 또 하는 이유가 뭔데요?”
“지나고 나면 잊히고 옅어지기 마련이죠. 그러니 기회가  때마다 이렇게 다시금 말씀드려야 제 각오가 명확하게 전달될 거 아닙니까?”
“정말 이렇게 보면 고집불통인데… 용케 어머니 마음에 드셨네요. 아니, 그런 점이 마음에 든 건가.”
“…영애의 그 말씀도 일전에 비슷하게 언급했던 칭찬인 걸로 기억합니다만.”
“칭찬 아니거든요?!”
“그것도요.”




우린 서로를 마주 보다 실소인지 고소인지 모를 웃음을 입가에 내비쳤다.


“나이가 조금만 많았으면 좋았을 텐데.”
“저요?”
“…….”


흠칫하고 놀라는 게 조금 귀여웠다.
뭐야뭐야? 설마 연상이 취향이었어?

하고 슬쩍 쑤셔대고 싶었지만, 참았다.
한창 민감한 소녀가 아닌가. 존중해줘야지.



“하세요.”
“예?”
“시안이 절 위해서 그러고 싶다는 거잖아요? 그건 괜찮으니까… 이야기는 해보라고요.”
“아뇨, 제 쪽에서 그건 아니다 싶은데요?”
“…….”




다시 도끼 눈을 뜨는 그녀.


“아, 그럼 대체 왜 온 건데요?!”



에드릭은 살짝 심술이 났다.
아니, 생각해보니 이거 좀 억울한데?



“앞에 설명 드렸잖아요? 제가 명목상 시안 님하고  치는 거 허락받으려고 영애 보러 왔겠어요? 사람이 말하면 조금 솔직하게 수용하는 자세를 보여줬으면 하는데요? 이렇게 본인이 영애 존중하려고 노력을 내보이는데, 왜 일말의 신뢰조차 내비치질 않으십니까? 아! 다 모르겠고 그냥 티아나 제안대로 저도 막 나가 봐요? 선 넘어 볼까요?”
“그, 그게…….”
“대답하시죠?”
“…믿을게요. 아, 그런데 왜 성질을 내세요!”
“성질 내면 안 되요?”



프리지아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어처구니가 없는지 말문마저 막힌 듯 어버버 하는  대강 흘겨보곤.

“아무튼 허락하셨으니 이야기는 진행해보죠. 아, 생각지도 못한 허락을 받아 이거  황당하네요. 물론 주신 거 감사히 받겠나이다.”

그러고는 그녀의 방문 앞에 서서  마디 추가.



“영애.”
“왜요?!”
“하고 나서 제가 달려와서 이렇게 말씀드릴게요. 영애 애인 완전 죽여줍니다! 하고!”
“…….”



프리지아의 표정이 볼만하게 바뀌었다.

“이런 사태 방지하시려면 할 때 참관하세요.”
“예? 뭐, 뭐요? 참관?! 그거 진심으로 하는 소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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