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화 〉36. 즐기시게 놔두렴.(5)
멜레니아가 여기서 사라지면 다른 의미로 기반이 흔들리는 건 사실.
뭐… 그것도 금세 해결되겠지만 그 틈을 노려 엄한 것들이 날뛰게 되면 이건 이것대로 골치다.
‘아직 적응기니까.’
사람이라는 게 간사해서, 혜택을 누리다 보면, 그 기간이 길어질수록 어느 순간 그걸 당연하게 주어지는 권리 같은 걸로 착각하곤 한다.
심지어 그 혜택이 기간 한정 혜택이었음에도, 잘 누리다 그 혜택이 사라지면? 도리어 화를 낸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럴 이유가 없음에도.
그러니 여기서 멜레니아에게 반감, 부적절한 감정을 품는 건 어불성설.
외지인을 경계하는 현지민, 토착민, 그 외에 각 종족 및 부족들은 여전히 우리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는 실정.
거기다 이쪽 규모도 점점 커지고 늘다 보니 더더욱….
신수의 가호를 받는 입장 아니었음 진작 전투든 전쟁이든 뭐라도 났을 거다.
자, 현지인들과의 관계 및 갈등은 그렇다 쳐도.
이제 이주자 및 이민자, 개척 및 모험자, 한몫 잡아 돈 좀 많이 벌어 신분 상승 좀 꿰하겠다며 파견된 상인, 유력가, 노동자, 인부 및 일꾼들과 경우는?
규모를 늘리려면 공사를 해야 하고, 그러려면 결과적으로 돈하고 일꾼, 기술자가 필요한데… 요 기술자 놈들이 말썽이다.
그걸 커버해주고 있는 게 멜레니아였는데, 그녀가 자리를 뜬다? 이것들이 작당해서 이쪽 물 먹이려고 하면 손 쓰기가 여간 까다로워야지.
왜? 이쪽은 현지인들과의 마찰을 최대한 피하고자 가급적 소란을 포함해 개발의 규모를 조절하고 있었는데, 그들 입장에서 이게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작당 안 하더라도 다른 쪽에서 더한 거금이라던가 제안을 추진해 인력들을 빼간다? 건물이며 여타 시설 확충, 더 나은 편의 시설을 포함해 아무튼 이쪽 일이 전부 먹통이 되는데, 이러면 이곳까지 와서 무일푼으로 나앉게 되는 이들이 대폭 늘게 될 거다.
‘그렇다고 사람을 가려 받자니, 속도가 안 붙고.’
평생 여기서 살 거 아닌 이상, 빠르게 굴리고 체계를 잡으려면 속도가 필수인데, 그러려면 결국 인적 자원, 물적 자원을 적재적소로 쉼 없이, 눈덩이를 단순 언덕이 아니라 경사로 깎아진 언덕 면을 구르듯 거세게 굴려야만 했다.
마음 같아선 스탈린처럼 공포로 조지고 수틀리면 본보기로 고문 및 척살, 굴라그로 보내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인간 백정 소리 듣기 딱 좋아지지.
사실 현지민, 종족들과 야합해서 그렇게 하라는 릴리에나의 제안이 있긴 했지만….
‘미치지 않고서야.’
아, 물론 윗물에서 놀다 보니 그런 충동이랄까, 유혹에 휩싸일 때가 있다.
당장 실행은 안 한다지만….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과격한 발상들이 쭉쭉 뻗어 나가는데, 역시나 인간… 자리가 사람을 바꾼다고, 환경이며 시선이 틀려지니 생각하는 방식도 바뀌더라.
‘나중에 진짜 왕 되면 막 나가는 거 아냐?’
…그러니 제발, 왕이 될 일은 없기를.
딱 아르세이유에서 백화점 대표, 사장으로 나대는 정도가 좋다.
그러면서 마음껏 떡 치며 행복하게 살면 얼~마나 좋을지.
“후우!”
뭐 본사가 그렇게 내버려 둘지는 의문이지만.
이게 다 인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여기 올 때만 해도 잘난 놈들 팍팍 영입해서 잘 굴려서 편하게 놀고먹고 할 생각이었는데….
‘아직 다들 적응기라 눈에 띄는 이들도 적고.’
인재라는 건 삼국지 마냥 팍팍 튀어나오는 게 아니다.
반대로 삼국지조차도 뛰어난 인재는 손에 꼽지 않나?
그 당시 후한 인구가 얼마나 막대했는데! 근데도 그 정도라는 거다.
뭐… 뛰어나도 상황과 여건, 환경 때문에 조지고 있는 이들을 무시할 순 없으니 눈에 불을 켜고 찾고는 있지만….
“끙. 이것도 함정이라면 함정이네.”
“세상 쉬운 일 없죠.”
릴리에나가 아는지 모르는지 그런 소리로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던졌다.
“그러게! 쉬운 거 하나 없네!”
“그러니 멜레니아 님하고 가서 빨리 떡 치자고 하세요.”
“야.”
아니, 이게 진담 같은 농지거리를….
“스트레스받을 땐 섹스가 답이라니까요? 술 하고.”
“…….”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게 무서웠다.
그걸 부인하기에 이미… 내 쪽도 너무, 그쪽에 물이 들어버렸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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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없는 말이라 그런가, 잘도 날아다니는군.”
멜레니아는 이곳 세계에서도 비슷한 의미의 속담을 대강 읊조려대고 있었다.
“페가수스니까요.”
소문이란 말은 발이 없음에도 날개가 달려 어디로든 날아간다.
“그래서, 의도한대로 풀리셔서 좋습니까?”
“흐음, 의도라. 금시초문이로구나.”
“아이고, 왜 그러십니까. 우리 사이에.”
에드릭은 어느 쪽으로든 빨리 해결이 됐으면 했다.
소문의 진위 때문에 지금 내부도 시끌벅적.
외부에 시간을 할애해서 안정시켜야 하는 판에 이런 의혹만 남기고 사라졌다가 무슨 사태가 발생할지는….
차라리 빨리 곪아서 터져주는 쪽이 낫지.
그럼 당장 해결이라도 할 테니.
“우리 사이라 이야기한다만, 자네의 뒷배는 어느 쪽인가?”
“아이고, 뭔 영문 모를 소리를….”“그런가? 그러면 이쪽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만?”
괴상한 걸 걸고 넘어지시네 아주!
“뒷배라 뭐라 할 거 없이 전 상회 쪽 지원받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겁니다만?”
“그걸 진지하게 믿으라?”
“아니, 진실인데 믿고 자시고를 생각하는 것도 웃기죠. 나이 어려 능력이 부족하지만, 뒷배가 있어 잘 됐다! 이거야말로 저 같은 근본 없는 밑바닥 인생들에겐 최고의 모욕이라는 거 알고는 계신지요?”
“허나….”
“아, 물론 윗분들께서야 납득이 안 갈 수야 있는데, 저도 그런 오해를 적절히 이용했다는 점, 부정은 않겠습니다. 저야 진실을 말할 필요도, 거짓을 논할 거 없이 알아서들 오해해주시니 얼마나 고맙습니까?”
“말은 그렇게 하지만….”
여전히 미심쩍나 보다.
왜 진실을 말하는데 믿어주질 않으신담!
…예리하게시리.
“저를 외교적 동지, 전우로 여겨주신다면 그건 더할 나위 없지만, 혹여 곁으로 끌어들이시려 하신다면, 그 점에 대해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주시기를. 저는 그냥 자유롭게 적당히 배부르게 잘 살아가는 게 인생 목표라… 그 이상 크게 뭔가를 추구하고 그런 건 없습니다.”
“왕이나 왕의 배우자라던가. 아님 그에 밀접한 세력을 구축하려 한다던가?”
“전혀요. 저는 정치도 권력도 싫거든요?”
“그게 돈이 되는데도?”
“그것들이 돈을 좌지우지하는 게 못마땅하니 힘을 키우는 거죠. 생각해보세요. 멀쩡히 장사 잘 하는데 그게 아니꼽다고 누가 와서 깽판 치고도 하소연 못 하는 상황이… 제일 짜증 나지 않겠습니까? 그런 건 미연에 방지해야죠. 그러려면? 힘이며 세력이며 영향력을 키워야하는 거고요.”
“그런 거 치고는 너무 이곳저곳 찔러보고 있단 생각 안 하나?”
아, 그거야 제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것도 아닌데….
본사가 까라면 까야지 어쩌겠나이까.
이렇게 보면 뒷배가 본사이긴 한데, 이걸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일단 확실한 건… 멜레니아 님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명확하게 일러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제가 도지로서, 전우로서 어찌 도울지를 명확하게 할 테니까요.”
“그거야말로 지나친 참견이란 생각은 안 드나?”
“아이고, 아닌 말로 저쪽 대륙에서 아니다 싶으면 이쪽 오셔서 자리매김하셔도 나쁘진 않을 거 아닙니까? 그러려고 여기서 지금 간 보고 계시는 거잖아요?”
음, 너무 막 나갔나?
그냥 완곡하게… 대충 돌려 말할 걸 그랬나?
“흐음, 전혀 영문 모를 소리를 하는군. 그보다 이 몸이 밀리엄 대공 위를 이어받지 못할 거란, 망발을 지금 지껄여대는 건가?”
“이어받으면 좋지만 못 받으면요? 세상에 반드시 된다 단언하는 거야말로 어리석은 거죠.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다. 상인들의 철칙 중 하나인데, 이 때문에 여기까지 귀한 걸음 하신 거 아닙니까?”
“글쎄. 겸사겸사 온 김에 일도 하고, 주변 상황도 살펴보고….”
“시간 귀하신 분이 쓸데없이 시간 낭비해서야 쓰겠습니까? 어쨌든 도움받은 것도 있으니, 저도 돌아가실 때 귀하게 선물 좀 드리고, 그보다 더한 것도 추가로 얹어드리고자 하는 건데… 그게 저하고의 관계가 진척을 넘어 긴밀해졌다는 과장된 소문을 필요로 하신다면… 뭐 거기까진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함부로 누군가와 혼인을 하거나 혼약을 맺을 수 없다는 점만 살펴주시기를.”
“멋대로 속단하지 말도록. 그건 잘못 해석하면 이 몸을 모욕하는 일이 될 수 있거늘.”
아닌 게 아니라 멜레니아는 입으론 웃고 있음에도 눈빛만큼은 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말이 그렇다는 거죠. 저는 숨기는 바 없이 진솔하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오해가 있었다면 그에 대해선 면목이 없기에 고개 숙여 사과드리겠습니다.”
“흐음… 이렇게 보면 참으로 능구렁이가 따로 없군.”
아니, 제가요?
“저도 언제 저쪽 대륙으로 돌아갈지도 모르고, 사실 멜레니아 님이 이상한 소문을 품고 가셔서 제가 돌아갔을 때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만! 저는 그조차 감당하여 멜레니아 님께 도움이 되고자 하는 바를 솔직하게 밝힌 것입니다만….”
“그게 건방지다고 말하고 있지 않더냐? 예컨대 줄 테니 먹고 떨어져라 이 말 아니더냐?”
“아이고… 그렇게 이야기한 적 단 한 차례도 없습니다! 제가 뭐 잘났다고… 저야 아직도 이곳저곳 빈둥거리는 일개 노동자에 불과하거늘….”
“그런 거 치고는 영향력이 대단하구나. 이곳 마을도 어느덧 수천 명을 수용하게 된 마을이 됐고 말이야. 광산 마을이 이렇게 빠르게 규모를 늘린다? 힘들지. 현지인들과의 갈등이며 분쟁도 중재하고. 다른 쪽에선 분쟁들이 끊이질 않는다고 난리인데 자네는 벌써 금광이며 철광에… 지금 은광도 하나 확보했다던데….”
“그건 너무 멀어서 다른 이에게 건넸죠.”
“바로 그거야. 욕심에는 한도가 없는데 그조차도 줘버렸지. 그걸로 이권을 따로 챙겼다지만….”
사실 은광에 한에서는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지만, 그냥 다른 임원한테 양보함으로써 상대의 도움을 받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물론 먹고 떨어지기만 할 걸 대비해 이쪽도 제2, 제3의 조치를 사전에 계획해두긴 했다만… 아직까진 큰 문제는 없이 잘만 우려 먹고 있는 추세고.
금은 핵심이고 철광은… 무기며 도구, 여타 설비 등을 갖추는데 좋았다.
구리 광산이 발견되면 어떨까 싶지만, 아직 그럴 조짐은 안 보이고 있었는데, 이 와중에 다른 장소에서 석탄 광산이 발견된 건 또 의외.
…대체 여기 어떻게 되먹은 영역이냐? 뭐 이리 근본도 없이 마구 튀어나와?
거기다 근래에 질산염 광물 대거 발견됐다는 이야기도 도는 거 보면… 이러다 이쪽에서 먼저 머스킷을 포함해 대포 체계가 먼저 갖춰지고 튀어나올 수도 있는 마당이고.
단순 황무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주….
‘거기다 여기서 먼저 조총이며 머스킷 체계가 완성되면….’
전쟁의 판도가 뒤바뀔 거다.
신대륙에서 먼저 그런 게 완성돼 체계를 갖추게 된다? 잘못했다간 파라메라 대륙이 알그리타로 진군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겠지.
그럴 리가 없다?
유럽권이 세계와 기술력 격차가 벌어진 건 사실 1세기도 채 안 된다.
그만큼 기술 격변은 빠르고 가파른 법.
‘문제는 이걸 우리만 알고 있다는 거지.’
모두는 금·은·동 같은 광산만 생각하겠지만, 우리는 그거뿐 아니라 미래 소재로 쓰일 법한 광물들까지 고려해서 일대를 살피고 있는 거였다.
당연 머리가 아플 수밖에.
“아시겠지만 저는 주고받는데 한에선 담백한 편입니다. 거기다 도움을 받은 이를 단순 이해득실 차원에서 매정하게 선을 긋는 그런 모자란 상인도 아니고요.”
“호오, 스스로의 입으로 모자란 이가 아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밑도 끝도 없이 어설프다 자찬하지 않았더냐?”
“어설픈 건 사실이죠. 모자란 건 아닙니다만.”
“말장난이로구나. 허나, 수긍토록 하마.”
여전히 고풍스러운 분이시라니깐.
“필요한 것이 제가 아르세이유에서 구축한 유대, 그 외에 외부적 지원이라면… 멜레니아 님께서 선택을 그르치지 않는 한 저는 당연히 아르세이유 출신이란 자부심이 있기에, 의원님을 적극 지지할 겁니다.”
“선택을 그르치지 않는다라.”
“저희야 뭐 가진 게 일천하고 지닌 바 능력이 미약하다 보니, 앞서 계신 분이 엄한 곳으로 저희를 이끌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땅에 박고 수그리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으니까요.”“예컨대 이 몸이 승리하면 자연스레 신명을 받치고, 아니면 물러서시겠다?”
“에이, 그렇게 너무 노골적으로 말씀해주시면….”“자네가 여기 온 연유가 무엇인가? 판돈을 걸어야 배당금이 커지는 법 아니겠나?”
“아이고, 저는 깃털이라… 새가 훌쩍 날아가면 그저 딸려갈 수밖에 없나이다.”
“능구렁이 같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