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화 〉36. 즐기시게 놔두렴.(6)
본사가 멜레니아를 버리라 명하면 나는 일언반구 없이 그걸 실행하리라.
본심은 어떻고 심적으론 어떨지 모르더라도,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해야지.
그녀가 내게 있어 소중한 무언가가 될 여지가 없도록, 그렇기에 더더욱 선을 그어둬야만 했다.
“나는 자네가 그저께만 해도 충분히 이 몸을 건드릴 거란 전망이 있었다. 그걸 빌미로 이것저것 빼먹을 속셈이었는데… 확실히 소문이란 건 믿을 게 못 돼. 끝까지 절조를 지키더구나. 방만한 소문과는 어울리지 않게.”
“저야 계속 말씀드리지만, 원치 않는 여성을 억지로 건드린 적은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원한다 하더라도, 그조차도 이치에 맞아 떨어져야… 서로에게 부담도 안 가고 만족감은 더욱 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유별나가는 거다. 세상은 그렇게 이성과 논리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야.”
“예, 그러니 저는 그러려고 절치부심, 노력 중인 거고요.”
내가 뭐 호구라서 이쁜 여자, 예쁜 여자, 섹시한 여자 보고 눈먼 장님 행세를 취하는 게 아니다.
나도 어쨌든 남자다. 거기다 지금은 나름 영향력도 지니고 있는 입장이고.
당연 길거리 돌아다니다 눈 돌아갈 정도로 예쁜 여자, 뭔가… 아랫도리가 본능적으로 외쳐오는 그 강렬한 유혹에 휩싸일 때도 있지만…
‘전부 욕심이지.’
좋은 여자들 많은데 거기서 또 손을 늘린다? 수를? 아, 그거야 물론 남자의 로망이긴 한데….
“몸을 맞대든 심신을 교류하는 것만큼은, 진지하게 마주하고 플 뿐입니다. 단순 육체적 쾌락을 위해? 욕구 해소? 뭐… 그건 저 말고도 열심히 하시는 분 많잖아요? 저도 그들하고 같은 부류로 취급 안 받으려면 더 열심히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여성의 존경과 경외, 혹은 애정을 사고 싶은 거지… 제가 말에 굴종, 굴복하는 여성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그걸 여성 자신이 원한다면, 물론 저도 거기에 맞춰줄 의향은 있습니다만….”
“그게 특별하다 말하는 거다. 지금 그런 이야길 자네 아니면 누구한테 들어보겠나?”
뭐 특별한 게 아니라 특별해지려 노력을 하는 거지.
솔직히 여성 하나를 사랑하는 일을 잘할 자신도 없고… 아니, 예전엔 괜찮았지만 지금처럼 수십 단위와 절찬리 부대끼다 보니, 한 사람하고만 살래? 이러면 지금은 영….
그게 싫고 나쁘고 힘들다는 개념이 아니라… 뭔가 적응을 못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정리하고 결혼하면 어떠려나.’
물론 본사가 허락한다는 전제가 붙어야겠지만.
“그러기에 이 몸도, 그 애정이며 관심, 배려라는 게 뭔지… 조금은 관심이 생겨서 말이야.”
“…그래서 본래는 단순 소문 문제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그걸 맛보고자 술김에… 절 방으로까지 데리고 오셨다는 건지요?”
“이왕 하는 거면 확실히 해야지. 기정사실이란 말도 있지 않나? 하나의 행동으로 여러 득실이 오고 가게끔 해야, 시간은 금처럼 쓴다 자부할 수 있는 거 아니겠냐만?”
“…그도 그렇군요.”
“그래도 이 몸도 억지로 그댈 취할 생각은 없노라. 그러니 그날 밤은 그 상태로 내버려 둔 거지만….”
아, 그러니까 마음만 먹었다면 정말로 소문 선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정말로 기정사실을….
…묘하게 달아오르는데? 오싹오싹해 아주? 다른 의미로 기대감이 막….
“육체적 관계가 멜레니아 님에게 안 좋은 구설수로 이어질 게 염려됩니다만.”
“이 몸이 그딴 걸 신경 쓸 거라 생각하나? 주변에서 헛소리를 지껄이면 입을 꿰메면 되는 문제 아닌가?”
어이쿠… 소름 돋네.
저게 그냥 하는 허풍이 아니라 정말 저럴 수 있다는 게 그녀의 무서운 점.
의외로 그녀 스스로 죄인이며 적이라 규정된 이의 목을 치고, 심장을 산 채로 도려낸 부류가 무려 열 손가락을 거뜬히 넘어선다는 걸,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말씀만 하시지요. 제가 도울 수 있는 것에 한에서는, 최대한의 지원과 성심성의를 아끼지 않겠습니다.”
“입에 기름칠하고는!”
뭐….
“무능력하고 덜떨어진 것보다야 낫지만. 낭만조차 유능과 실리가 보장돼야 갖춰지는 거지. 계집들이 읽는 그런 유명 소설들을 보니 왕자님, 유력 귀족 가문의 장남 등이 자주 언급돼 배우자로 지목되는 것만 봐도 그렇겠지.”
“하하하….”
“사내들은 여성은 외모만 있으면 된다 지껄이지만, 아닌 말로 사내 된 자신이 무능하고 외모가 덜떨어지면, 우리들 입장에서도 역겹기 한량없거든. 그렇다면 인성이 됐든 능력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걸로 좋고 나쁨을 가르는 게… 저는 안타깝다고 생각합니다.”
“귀하게 타고난 자네가 무책임하게 그런 소리를 하면 범인들을 기만한다는 생각, 들지 않나?”
…아바타가 잘난 거지, 저 본인이 잘난 게 아닙니다만?!
“그런 거 상관없이 오지에 파묻혀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가끔 생각한단 말이야.”
“…주제넘은 질문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렇게 속 편히 사는 것도 방법 아니신지요?”
“할 거 다 해서 처참히 패하고도… 살아남는다면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보마.”
…권력자들은 기이한 것들이다. 왜 그리 거기에 얽매이는지.
‘바보와 연기는 공통점이 있지. 그냥 무작정 높이 올라가려는 버릇, 습성이 있으니까.’
권력과 권력자의 관계도 그런 게 아니려나 싶다.
…개인적으론 영 아니지만, 거기에 말리고 영향을 받으면 빡대가리 마냥 거기에 꽂혀 버리니.
그러나 결국, 세계며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건 그들이다.
그러니 예로부터 권력자, 유력자, 독재자를… 근본 없이 찬양해대는 거고.
“그래서, 어쩔 생각이더냐?”
“예? 뭘요?”
“그대 눈으로 보건데, 이 몸은 매력적으로 보이는가? 여성적으로, 인물적으로.”
“그야 더할 나위 없으시죠?”
뭘 당연한 소리를 해대는지.
배우자로서도 최상급, 단순 외모만 봐도 최상급.
…성격이나 성향이 문제지만, 난 솔직히 저런 진취적이고 과격한 여성, 대단히 좋아하는 편이다.
‘정말 배우자가 되면 나 대신 할 거 다 해줄 거 같고.’
문제는 남편을 강제로 좌지우지하고 강압적으로 깔아뭉개려 한다면… 갈등이 발생하겠지만.
그녀는 근데 그러고도 남지.
기둥서방 차원에서 내버려 두고 자기 할 일에 종사만 한다면야 나는 내실을 다지고 내조하는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호응해줄 의무는 있다고 본다. 혼약을 맺어 부부가 된다면야. 의외로 그쪽으로는 이골이 나 있으니, 얼굴마담 겸 안주인 역을 해도 좋다고 본다.
…놀고먹고 꿀 빨며 돌아온 마눌님 심신 케어해주며 보내는 인생 라이프. 그러면서 대접도 받고 대우도 받는다? 명예욕이나 권력욕만 배제하면 이보다 더한 삶이 어디 있다고?
‘어?’
생각해보니 이것도 꽤 매력적이네?
셔터맨이 남성의 로망이란 게 괜한 이야기가 아닐 수밖에.
“어려운 제안은 아닐 터인데?”
“어휴, 멜레니아 님을 대하는 건데 어찌 경솔하게….”
“말은 바로 하거라. 사심보다는 실리를. 이성을 우선할 정도로 이 몸의 매력이 덜 떨어진다, 그리 말이다.”
“아이고… 그럴 리야 있겠습니까.”
“그러면 앞뒤 생각할 게 없어야 정상이건만. 지금 자네는 어떠한가?”
“그야…… 제가 좀 모자란 편이고, 겁쟁이라 그런 걸로 여겨주시면 안 되겠는지요?”
“안 된다.”
…퇴짜 맞았다.
“입과 머리로 화합을 맺고, 동맹을 맺는다는 것만큼 구질구질한 게 없지. 단순 이용 관계라면 모르겠지만, 그 이상으로 관계를 이어간다면, 그에 준하는 무언가 연결 고리가 필요하다 생각하는데….”
“끙….”
아무래도 작정을 한 모양이네.
“그러다 나중에 혼약 맺으실 때 문제가 생기실 수도….”
“그건 이쪽 사정이지, 자네 사정은 아니지 않나? 오히려 문제가 됐으면 이쪽이 문제지, 자넨 이 몸하고 친밀하고 긴밀한 관계라는 걸 피력할 수 있으니 더욱 좋지 않겠나?”
“…그만큼 다른 쪽에는 경계를 사겠지요.”
“하 참! 어지간히도 따지는구나.”
평생 여기며 아르세이유에서 산다면야 나로선 나쁠 게 없지만, 상황이 꼭 그런 게 굴러간다 자신할 수가 없으니 말이지.
“자네 착각을 정정해주지. 나는, 자네에게 정식적인 관계임을 공표하고 피력하라 청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음, 그 말씀은…?”
“지금의 소문 정도의 흐름이면 좋다. 그러나 이조차도 시일이 흐르면 유야무야 될 테니… 더욱 오래 남을 수 있을 만한 심증을 굳히자 이 말이지. 오해해도 무방하며, 오해하지 않더라도 둘 모두에게 하자가 없는, 그런 거 말이다.”
“…흐음.”
……솔직히 뭔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거라면 야밤에 술판 벌이며 같이 즐기며 날만 새도 충분하지 않으려나?
“아, 됐으니 가까운 시일 내로 답을 주거라. 결과를 내보이든.”
“예, 바라시는 대로.”
뭔가 묘하게 합이 안 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아무튼 멜레니아의 곁을 떠나 다시 마을 회관, 예컨대 근무처로 돌아오니….
“와아, 이런 곳에선 또 눈치가 이렇게 없으실까.”
릴리에나가 드물게 감탄사를 터트려대며 그런 날 지탄해온다.
“체면이란 게 있잖아요. 당연히 대놓고 그러긴 힘드니 선… 사장님이 못 이기는 척, 부탁하는 청 접근해달라고 지금 꼬리 치는 거잖아요.”
“응?”
뭐시라?
“릴리에나, 아직 우리 사장님에 대해 잘 모르나 보구나.”
“응? 잘 모른다?”
코넬이 혀를 차며 그런 릴리에나의 노골적인 태도에 안쓰럽다는 태도를 비췄다.
“저거 즐기는 거잖아.”
응?
“그걸 다 알고서 저러는 건데 그러려니 해줘야지, 거기서 눈치 없게….”
“…아, 하긴!”
감탄사를 터트린 릴리에나가 불쑥 이쪽을 쏘아보더니.
“그러시겠네~ 여자 애간장 태워 괴롭히는 취미가 있긴 하셨으니~!”
WHAT?!
무슨 말도 안 되는 누명을…?
“내가 언제? 금시초문인데…?”
“저 보라니까. 저게 여유라는 거지. 아니, 짓궂음인가?”
코넬은 한심하다는 듯 고개마저 가로저어가며 안타까움을 온몸으로 표현해대고 있었는데….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알아야지… 취미를 위해 상대를 시험하고 재단하려 드는 그거, 조금 고쳐야 하지 않겠어요?”
“……?”
충심 어린 조언을 건네는 양 표정마저 진지하게 굳히는 릴리에나.
‘아, 억울하네.’
아니, 난 오히려 공과 사를 구분해서 이러고 있는 건데!
내가 아랫도리의 화신이었으면 술 퍼마신 당일 이미 멜레니아하고 떡을 쳐도 진작 쳤지!
“저 보라니까. 능청 떠는 모습을. 태연히 난 아무 죄도 없다, 억울한데. 왜 나한테 이러는 거지? 하는 저 가증스러운 얼굴!”
“…하아! 빌어먹을 색마, 호색한, 변태 성욕자 같으니.”
“아니, 그거하고 이게 뭔 상관인데?!”
어처구니가 없어서 원!
“즐기시네 놔둡시다.”
“그러합시다, 동지.”
……못 본 사이 아주 죽이 잘 맞아?
아니 원래부터 잘 맞긴 했지만….
“따먹으려고 그리 간을 보고 설계까지 해두면서 공을 들여놨건만, 이제 와서 아닌 척은.”
“그거 뭐냐, 술도 적당히 숙성시키셔야죠. 그러다 천사의 몫으로 다 사라지면 나중에 바닥 치고 후회할 텐데.”
“아니, 난 그런 적 없다니깐?!”
근데 이것들이 재미 들렸나?
릴리에나가 마치 꼰대들 특유의 에흠! 하는 어투를 구사해대기 시작했다.
“저, 저 능글맞음하고는! 라떼는 말이야… 에잉! 하여간 귀여운 얼굴로… 인간이 참 영악하다니깐.”
“저러니! 뱀의 신수한테 마음을 샀겠지! 어휴, 뱀 냄새!”
아니, 이거 하고 그게 뭔 상관인데….
“아, 예. 아주 마음대로 씹고 뜯고 맛보시기 바랍니다.”
재미나게들 즐기시고 계시네.
그러고 보니 묘하게 죽이 잘 맞아서 날 까대는데… 왜들 저러신담?
그나저나.
‘내가 멜레니아를 대하는 게 진짜 저런 느낌으로 보였던 걸까?’
그런 맥락이면 멜레니아가 저런 자세로 드루와! 하는 것도 이해 못 할 건 아니다만.
‘놀리려는 건지 진짜인 건지… 아! 헷갈리잖아!’
하여간 보좌진, 참모진들이 말썽이야. 어휴.
화가 나니 릴리에나는 밤에 마구 혼내줘야겠다.
코넬은… 무서우니 피 좀 뽑아 헌상하며 겸사겸사 물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