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6화 〉40. 이것은 치트인가, 개꿀인가.(4)
--------
마을이 슬슬 시야에 포착될 때쯤, 일단의 무리들도 같이 목격됐다.
그들은 마을에서 비교적 떨어진 부근에서 기본적인 무장을 꾸린 채 대기하고 있었는데, 언제든 명령만 떨어지면 돌격이라도 한 요량인지 무기를 쥐고, 그들 나름의 대열을 유지한 채 대기를 타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1km도 안 되는 부근에서 대기를 타고 있었기에 마을 감시탑, 망루 쪽에서 본다면 그들의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을 터였다.
“흠!”
저들은….
트롤과 오우거들로 보이는 이들인 걸 보면….
“무리들 수를 헤아려보면 본격적인 건 아닌 거 같군요.”
긴장이 풀렸는지, 말투가 편해졌다.
다만 백 단위의 무리들이 사나운 기세를 뿜어대며 저러고 있는 걸 보니, 전의가 샘솟는지 평소의 느슨함과는 다른 분위기가 맴돌고 있었다.
“위협을 가한다는 거 자체가 중요할지도요.”
설마하니 본격적으로 들이닥치기 위해 사전 탐색 목적으로 선발대를 보낸 건 아닐 테고.
애초에 저들이 엄한 곳에서 튀어 나왔다고 하기엔, 유추되는 것들이 어디 한 둘이어야지.
“가죠.”
아마 마을 내에선 지금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을 거다.
릴리에나가 어련히 잘 알아서 하겠지만, 수틀리면 입장이고 처지고 뭐고 간에 판을 뒤엎어버리려 할 수 있는데, 그걸 명분 삼아 전쟁이라도 하겠답시고 난리치면 그건 그것대로 골치 아파지고….
게임으로 치면, 심시티하는데 적 병력이 대거 들이닥친다고 생각해봐라. 부랴부랴 뒤늦게 병력 뽑느다 한들 피해가 없을 수가 없는 법.
그래도 혹시나 싶어 마을 주위에 방책을 쌓고, 감시며, 방어 태세를 잘 꾸려놓긴 했지만 딱 거기까지. 병력조차 자경단 수준이고, 이조차도 이주민들보단 현지인, 종족들의 도움을 받고 있기에 다른 의미로 단순 분쟁이 전쟁으로 격화되는 수가 있었다.
무리엘에게 붙들려 나아가기를 한참.
“음.”
이대로 등장하면 뭔가 멋이 없을 것도 같은데….
“부에루?”
“왜에에?”
하피가 쏜살같이 우리 주변을 빙빙 돌다 이쪽 부근에 착지했다.
“날 붙들고 날아줄 수 있겠어? 조금 높아도 괜찮으니까.”
연습 꾸준히 한 다음에나 시도하려 했는데, 아무래도 신전 쪽에서 헤일린이 구태여 날 밀어대 공중 낙하? 고공 낙하를 연습시킨 게 괜한 짓은 아니었나 보다.
아무튼….
“오오….”
놓지 않을 거란 확신을 가지고 있음에도, 고도가 높아질수록 절로 심장이 벌렁벌렁….
그뿐인가, 중력 탓인지 심적 부담? 공포 탓인지 방광이 풀어진다고 할까, 긴축된다고 할까. 지릴 거 같은 두려움 덕에 고의로라도 시선을 위로 들어 올렸지만… 이조차도 그다지….
“핫하하핫!”
그나마 날 끌어안은 양 붙들고 있는 부에루의 상반신으로부터 느껴지는 부드러운, 물풍선과도 같은 감촉이 등을 꾸욱 눌러오는 게 조금은 위안을 안겨줬지만….
마을이 손바닥만 하게 보일 때까지 올라가서 그런지, 확실히 주변이 훨씬 더 싸늘해진 기분이다.
그만큼 태양의 강렬함이 몸소 밀접해진 터라 눈이 절로 부셔왔는데….
“여기면 돼?”
“어어. 이쯤.”
그러면서 차츰 고도를 낮추면서 아래를 살피기 시작.
품에 넣어둔 자그마한 접이식 일자형 망원경으로 아래를 꼼꼼이 살펴보는데, 주변 분위기 자체는 크게 어수선해 보이진 않았다.
다만 마을 회관 쪽에 가사 사람이며 무수한 종족들이 다수 몰려 뭔가 요란법석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는데….
“음, 어쩌면 좋담.”
언제쯤 등장해줘야 잘 등장했다고 소문이 나려나?
이야기 잘 풀리고 있는데 무심코 이상하게 등장해버리면 분위기가 미묘해질 거고, 극적인 상황을 노리고 등장해줘서 문제를 타다닥! 해결하는 뭐… 그 정도까지 바라는 건 아니지만, 이미 신수의 가호까지 받는 신비스러운 존재를 어필하는 쪽이 영향력을 넓히기도, 사업을 진행하는데 있어서도 유리하기에 그쪽 노선을 계속 고수할 방침이긴 했지만….
‘타이밍이 중요한데.’
목소리는 들리지 않아도 망원경을 통해 상황이 조금씩 고조되다 못해 격화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거기다 당장 개입한다 쳐도 상황이 어찌 굴러가는지 모르면, 그건 그것대로 멍청해 보일 거고.’
그러니 적당히 아는 체 하며 릴리에나의 의견에 힘을 보태주면 좋긴 하겠지만….
‘이 경우, 릴리에나가 억지를 부리고 있다거나 트롤 짓하고 있는데, 상황 파악 못해서 거기에 등을 밀어주는 모습을 보이면?’
이쪽도 도매 급으로 머저리가 되겠지.
당장 급한 문제는 넘어간다 쳐도.
살짝 후회됐다.
‘그냥 몰래 들어가서 상황 살피다가 훌쩍 등장해줄 걸 그랬나?’
아무래도 영화나 만화를 너무 많이 봤나 보다.
…하지만.
‘그래도 남자의 로망이란 게 있는데.’
그러다 망원경을 통해 서로가 한판 붙으려는 양, 릴리에나가 몇 걸음 앞서 나가며 손에서 마법을 화악 피어 올려 대고 있는 건 둘째치고, 맞은편에 있는 큼지막한 체구의 오우거와 인간 나부랭이도 한판 붙어보려는 양 기세등등하게 앞으로 나대고 있던 상황이라, 더 이상 지켜보고 기다릴 여유는 없어 보였다.
‘나머진 임기응변으로….’
아무튼 중요한 건 기선 제압 및 주도권 제어.
그런 의미에서….
“부에루, 놔주면 돼.”
“정말? 에드릭 날개 없잖아?”
“…응, 괜찮으니…까아악!”
아니, 2번 정도는 확인하고 놓는 게 국룰 아니었어?!
괜찮다니까 바로 놔버리네?!
당황하는 것도 잠시.
분명 쏜살같이 떨어지고 있음에도 어째 세상은 아직도 아득하기만 했다.
그러나 자세를 조금 안정적으로 잡는 느낌을 받자, 마을의 모습이 순식간에 가까워져 갔다.
‘이야, 떨어지면 아주 곤죽이 되겠네.’
그나마 초회 차, 헤일린에게 등 떠밀려 준비하기도 전에 낙하하는 와중에 억지로 몸을 가누며 정령술을 통해 무사 착지한 것과… 이번처럼 대놓고 마음의 준비라도 하고 공중 낙하하는 건, 완전히 상황이 다른 경우였다.
덕분에.
‘재미 들리겠네!’
끝도 없는 해방감과, 한순간의 실수가 인생을 나락으로… 아니, 실제로 추락하고 있었기에 그 실감은 더욱 컸지만.
이윽고 몸속에 흐르는 또 다른 혈관과도 같은, 그러한 감각을 통해 공간으로 하여금 무수한 물줄기들이 피어나기 시작.
물론 이런 걸로 추락하는 속도며 기세를 막아설 순 없지만….
이건 일종에 연출의 일환.
떨어지는 와중에도 주변의 물줄기들은 점차 기세를 넓혀갔고, 무엇보다 이 몸 인근의 물줄기들이 몸 전체를 감싸 원형 구를 형성하더니.
몸이 지변에 처박힐 때쯤엔, 마치 물로 된 공 속에 틀어박힌 모양새가 돼버렸다.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착지를 시도하는 거였는데, 충분히 가능하리라 느꼈다.
‘요령이 조금 생기면 이보다 더 멋졌을 텐데!’
아쉽다면 아쉽지만!
이윽고 지면이 코앞까지 쇄도했다고 느끼기 무섭게, 지면과 닿은 물이 폭탄처럼 바닥을 촤악! 하고 적시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동시에 떨어질 때부터 이 몸을 따라 같이 낙하한 자그마한 물줄기들은, 마치 여우비처럼 주변을 후드득 때리며 머리에 열이 몰린 그들의 안면이며 몸, 전신에다 자그마한 빗줄기 세례를 퍼붓기에 이른다.
그래도 빗줄기가 워낙 얇고 수분의 양도 미묘했기에, 적신다기보다는 살짝 두들기는 듯한 느낌만 받았을 거다.
“후우!”
젖은 몸이 단번에 수증기를 피워 올리며 뽀송뽀송하게 드라이 되듯 몸을 깨끗하게 세탁해준다.
사실 물의 정령술을 연구할 때 가장 공 들인 것도 이쪽이다.
또한 피부에 수분을 한가득 포함 시켜뒀기에 지금 누가 보면 내 피부엔 아주 광채가 자르르 흐르는 것처럼 보일 거다.
당연 머릿결도 그렇고.
단순히 수분뿐 아니라 유분도 적당히 배합시킨 상태라 보기에도 거북하지도 않으며, 위생 상태로도 크게 하자가 없는… 말 그대로 보기에만 좋은 상태지만, 현대인이 보더라도 기겁할 만한 모습인데 이곳 이들이 보면 가히 무슨 인상을 받겠는가.
말 그대로 신의 재림…까진 아니어도 신의 사도가 도래한 듯한, 어차피 신수의 가호까지 받는 입장이다 보니, 그런 식으로 속여 넘길 밑바탕도 잘~ 깔려있겠다, 아무튼 그럴싸하지 않겠나?
그런데 반응이 생각보다 열정적이진 않았지만, 다들 신기한 걸 떠나 뭔가 대단한 걸 보는 듯한 시선들이 느껴져, 적당히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하는데 열중해줬다.
“오오….”
“초, 촌장님?”
“대표님 아니십니까?”
저 경외하듯 바라보는 시선들을 보라. 오싹오싹해지는군!
이 맛에 관심종자가 되려고 노력하고, 명예를 얻고자 노력하는 건가?
새삼 기꺼웠다.
나는 소요가 일어나지 않도록 앞서 손을 들어 진정하라는 듯, 고개까지 끄덕여가며 그들의 호응에 일일이 화답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래요, 뭔 사태입니까? 이야기나 한번 들어봅시다.”
릴리에나와 코넬 쪽에 슬쩍 시선을 주다, 이윽고 오우거와 인간 사내 측에서 시선을 던졌다.
“그….”
“…….”
음, 임펙트가 조금 강했나? 당혹스러워하는 걸 떠나 뭔가 엄청 껄끄러워하는 모양새인데?
“편하게 말해보세요. 타당하다면 귀를 기울일 테고, 억지여도 엉덩이를 걷어차 내쫓진 않을 테니까요. 아, 물론 혼란을 조성해 소란을 피우려는 목적이라면, 당연 그에 합당한 대가가 돌아갈 테지만요. 거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 같은 형제자매들인 마당에요. 안 그렇습니까? 다들 저 잘 아시잖아요? 좋게 좋게 다들 양보하고 배려하며 잘 넘어가려는 거 말입니다.”
호의며 대인스러운 면모를 겉에 내세웠지만, 어차피 이 지경이 된 마당에 좋은 이야기로, 선심 써서 이 상황을 조성한 건 아닐 테니, 저들로선 뭔가 뒤가 구릴 수밖에 없을 거다.
아니, 정말로 정당한 명분으로 따지고 왔더라도, 이 상황에선 조금 꺼림칙하긴 하겠지.
그래도 정말 정당하다면, 귀를 기울일 의도가 있었기에, 나는 재차 그 점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그…….”
“제가 설명드릴까요?”
당혹스러워하며 말을 새삼 가려대는 통에, 이야기 진전이 안 되는 게 영 답답했던 걸까.
릴리에나가 사나운 눈빛으로 그들을 삶아 먹으려는 양 쏘아보다가, 양손에 한가득 맺어둔 마력을 거두곤 에드릭을 향해 접근해 오며 그리 운을 뗐다.
“아, 그보다, 잘 돌아오셨습니다. 상상도 못 할 방법으로 나타나셔서 얼마나 놀랐는지요.”
“그래?”
의례적인 태도로 어깨를 으쓱인 에드릭은.
“때로는 이런 식의 재미도 있어야, 사는 맛도 나고, 그런 거 아니겠어?”
피식하고 웃는 릴리에나를 보며, 에드릭을 이 상황이 뭔 사태인지, 전말을 말해보라는 듯 가벼이 턱짓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