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화 〉42. 고대하고 고대하던 뱀녀와의...
투자 및 인력이 쏟아질수록, 이를 보호한다는 명분은 더욱 확고해진다.
말인즉, 알그리타 대륙에서의 합법적 군대 파견 요청 명분을 살 수 있을 것이고, 자체적 군대를 포함한 치안 유지 병력의 창설과 제도 설립에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은 자명해 보였다.
아닌 말로, 반쯤 국가라 해도 과언이 아닌, 그런 대도시 성립이 목적인 만큼, 이런 점들을 철저하게 성립해 나가야 할 텐데, 에드릭은 여기서 이주민들이 주도권을 잡아 파라메라 대륙의 원주민들과 종족들을 핍박하고 착취하는 형태로 이어지지 않도록, 그들의 적극적 개입과 주도권 행사를 위해 의견을 모으는 역할을 역임하게 됐다.
…물론 본의 아니었지만.
덕분에 파라메라 원주민들의 친화파로서 에드릭은 서국 회사 임원 내에서도 손꼽히는 입장에 놓이게 됐다.
물론, 서국 회사 임원이었던 시점에 이미 핵심 인력이라 봐도 무방은 했겠지만.
이렇게 임시로 정의된 친화파와 나름 맥락을 같이 하는 이들, 온건주의를 표방하는 주화파도 물론 있었지만, 의외로 척화파, 화의할 필요 없이 몰아쳐 이득을 극대화하자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것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리고 이들도 원주민을 무조건 박해하고 무너뜨리자는 게 아니라, 아무쪼록 선별을 하자는 입장.
예컨대 자신들이 선택해 확고한 동맹 관계를 맺은 일부 부족 및 종족이, 전체를 통괄하게 힘을 실어 주자는 입장인데… 제국주의 열강의 만행을 부정하는 에드릭으로선 이건 좀….
문제는 여기에 신수의 가호를 받는 인원이 무려 둘이나 포진되어 있었다는 거였다.
그나마 나머지 하나가 주화파 쪽에 있는 게 유일한 위안이었지만, 그들이 언제 매수될지 모를 상황이었기에 에드릭으로선 여러모로 골치가 아팠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걸까.”
단지 평화롭게, 다들 잘 먹고 잘 살면 족하겠거니 싶었는데.
여기서 그냥 자기 권한, 위치를 포기하고 손 놓아버리면?
여태 자신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여러 원주민이며 종족들이 한순간에 노예 취급을 당할 위기에 놓인 마당이다 보니, 쉽게 손을 뗄 수도 없는 입장이 됐다.
이건 정치적, 처세적인 명목으로도 좋지 못한 게, 여기서 그런 식으로 대처했다간 알그리타 대륙에 가서도 안 좋은 의미로 낙인이 찍힐 건 자명했기에.
그럴 바엔 그냥 승자 세력과 적당히 타협하면 되지 않겠냐, 어차피 저들이 어찌 되든 네가 뭔 상관이냐… 하는 측도 있었지만, 에드릭은 단호히 고개를 흔들었다.
무엇보다… 줄을 잘못 탔단 이유로 이들 모두가 핍박의 대상이 될 텐데, 당연 그걸 순순히 받아들일 일은 없을 테니… 자연스레 전쟁이 터져날 거고, 이로 인한 피해는 아마도 천문학적일 테지.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무엇이든 간에.
“허이구. 지지 치고 물러나고 싶어도, 자리를 대신할 인간이 없으니….”
릴리에나가 자신과 노선을 같이 한다지만, 그녀는 구태여 말하자면 척화파 겸 주전파 입장이다.
아마… 자신이 아니라면 좋구나 하고 저쪽으로 금세 가버릴지도.
전쟁이 나면 그걸로 인해 벌어들일 비용이며 이익 요소도 천문학적이다.
무엇보다 더더욱 외부에서 군이며 용병들이 작정하고 이쪽으로 건너온 시점에, 상황은 더욱 복잡해질 거고.
‘수비가 아니라 침략군이 될 테니까.’
어느 정도 파라메라 대륙에 대한 정보 탐색, 정찰이 끝난 상황.
어쩌면 알그리타 대륙에선 새로운 돌파구 마련을 위해, 땅따먹기하겠답시고 지금이라도 무수히 많은 군대가 소집돼 배를 타고 대해를 건널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
근데 이런 걸 설명한다고 알아듣는 이가 많지도 않고….
그러기에 에드릭은 일단, 알헤디나에게 가서 이에 관한 조언을 구할 참이었다.
거기다 조금 시일이 한창 미루어졌다지만, 헤일린과의 약속도 있고 하니 말이다.
바빠서 자리를 한 시라도 비울 수가 없어서 그렇지만, 잠깐 틈이 나면 후딱 다녀와야지 어쩌겠나.
“한 수 거들어 줄까?”
코넬의 제안은 이럴 때 무척 감사한 제안이지만… 그녀가 진정으로 호의를 가지고 이런 제안을 하는 건지도 솔직히 의구심이 생겨날 수밖에.
“사서 고생하시네요.”
릴리에나는 어찌 됐든 에드릭의 행보에 답답함을 호소했지만, 딱히 그것 가지고 노선을 틀 생각은 아니었는지, 기왕 이렇게 된 거 확실히 주도권을 쥐어 자리를 굳히자는 뉘앙스로, 다시 말해 주 권력층이 되자는 표현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기까지 했다.
딱히 평화적인 게 마음에 안 드는 것도 아니라나.
그녀도 의외지만 전쟁으로까지 번지는 건 원치 않았나 보다.
무엇보다 소브릴 정교회 소속의 카넬린이 평화보단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움직임에 훨씬 민감한 태도를 보이며 화평과 화합의 뜻을 밝혀대고 있던 터라, 이주민이며 이주 노동자들 가운데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단순히 공사하고 작업에만 열중할 때가… 몸은 좀 힘들었어도 훨씬 나았던 것도 같고.
알헤디나를 보러 간다는 명목으로 자리를 비우기로 한 에드릭은 그 사이 원주민과 이주민들 사이에서 자신을 보조하고 대변할 이들을 추려,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부탁했다.
그리고 광산 마을에서 릴리에나가 다시금 에드릭의 빈 자리를 메우고자 한창 완성되어 가는 개발 도시로 입성해 바통을 넘겨받고, 광산 마을은 임시로 코넬이, 아마 근시일 내에 원주민 내에서 새로운 마을 대표 겸 촌장이 뽑혀 에드릭을 대신해 광산 마을을 운영할 방침을 세우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잠시간, 자유를 되찾았다.
“끄아~! 얼마 만이냐.”
따르겠다, 수행하겠다며 쫓으려는 이들을 만류시키고, 몇몇만 대동하는 선으로 그쳤다.
“날 수 있어서 좋다! 좋아!”
하피 족 소녀인 부에루를 대동하고, 날짐승을 타고 이동하고 있는데… 녀석이 조금 특별했다.
‘날개 달린 뱀이라니.’
탑승하기 좋게 등자까지 채워진 상태라, 날고 있는데도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돼서 좋긴 한데….
연푸른 피부에 비늘이 옅은, 마치 갈기 털 비슷한 걸 달고 있는, 길쭉한 날개를 지닌 미려한 뱀이었다.
…아니, 이 정도 크기면 비룡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거 같은데?
그럼에도 손발이 없기에 뱀이라도 할 수밖에.
눈이 큼지막해서 살짝 무서웠지만, 익숙해지니 그냥 순둥이처럼 여겨졌다.
‘금방 도착하겠네.’
길을 선도하는 건 부에루의 몫.
날씨도 그럭저럭 화창한 편이라 그게 필요한가 싶었지만, 본인이 그러고 싶다니 그러라 했다.
지상에서 이동할 때와는 확실히 속도 자체가 차원을 달리했다.
순풍까지 불어대니 속도가 붙는 건 덤.
고소 공포증도 익숙해지다 보면 즐길 수 있게 된 탓인지, 순수하게 지상을 굽어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다 와 간다?”
바르마흐 산은 워낙 존재감이 확고하다 보니 멀리서도 그 자태가 그대로 눈에 띄었는데….
놀라운 점은 그 산 위에 둥실둥실 떠 있는, 아주 거대한 뱀… 사실상 용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존재의 거대한 형체가 신비롭게 자리하고 있었다는 점.
심지어 고개를 살짝 들어 눈을 반짝이는 듯 느껴졌는데, 거기에 시선을 느끼게 된 건 단순한 기분 탓은 아니리라.
“보셨는데?”
부에루도 그걸 느꼈는지, 아니면 시력이 좋아 알헤디나가 우릴 지켜보고 있는 걸 발견한 건지, 호들갑을 떨어대고 있었다.
…넌 안 무섭냐? 하늘을 빼곡이 매운 저 거체를 보고도?
친근한 존재라는 걸 알면서도, 새삼 압도되고야 만다.
거기다 날아갈수록 산이 더욱 확대되어감에 따라, 알헤디나의 거대한 육신도 더욱 거대해져 갔다.
아니, 원래부터 거대했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유독 더….
거기다 하늘로 승천 안 하고 대기하고 있는 점도 조금 의아했다.
그뿐인가.
그녀가 그 일대에 자리 잡고 있던 탓에 절로 기상 이변 사태가 발생하고 있었다.
안개가 생기고, 구름이 생기더니, 단비가 주적주적 내려대기 시작한 거였다.
바람은 옅은데 눈으로 봐도 보일 듯 말 듯 얇은 줄기가 툭툭 떨어지는 게 눈에 보이다가, 어느덧 우리의 머리와 몸을 적셔가기 시작하니 이건 이것대로 신기했다.
[왔구나.]
“예, 다시 찾아왔습니다.”
머릿속에서 울리는 듯한 선명한 음성.
아직도 산꼭대기에 도착하기까진 몇 분이 더 걸릴 거리였지만, 이젠 확실하게, 우리의 존재감 따위는 좁쌀 같이 느껴질 정도로, 산과 그 산 위에 자리한 알헤디나의 거대한 육신은… 기가 막힐 정도로 엄청난 자태로 위엄 있게, 신비스럽게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유도 없이 가슴이 벅차오른다.
저런 경이를 코앞에서 목격할 수 있단 것에 감동마저 느끼고야 만다.
일전에 보았을 때와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그럼에도, 고양된 감정은 좀처럼 가라앉을 겨를이 없었다.
“대단! 대단!”
부에루도 뭔가 엄청 신기한지, 기쁜지 연신 날갯짓을 하며 기쁨인지 흥분인지 모를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이곳저곳 날며 난리를 떨어댔다.
[고민이 많은가 보구나.]
“용케 아셨네요.”
날개 달린 뱀이 이윽고… 위에서 보자 더욱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큼지막한 못이 자리한 꼭대기에 안착하자, 등자에서 몸을 내려 미끄러지듯 뱀으로부터 미끄러져 내려온 에드릭.
그게 간질간질했는지 뱀이 몸을 파르르 떨어댄다.
“…허허.”
이렇게 보면 뱀이라기보다는 강아지… 정말로 날개 달린 파충류라기보다는 정말 날짐승처럼 보이는데 말이지.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 편히 쉬어 다음 비행에 대비하거라.]
에드릭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알헤디나의 목소리에 반응해 몸을 한차례 떤 날개 뱀이 그대로 꼭대기에서 몸을 내던지곤, 지상 쪽으로 활공하듯 빙글빙글 돌며 시야로부터 멀어지는 게 아닌가.
‘저건 저것대로 신기하네.’
위에 탑승한 이가 없다고 몸을 회전하는 걸 보면, 지능도 상당한가 보다.
동시에 못으로부터 스르륵하고, 빠져나오듯 새하얀 뱀이… 아니, 라미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많이 늦었군요.”
“하하하… 그, 그러게요?”
이러니저러니 해서 벌써 한 달이 넘게 지났으니 말이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늦춰질 거라고는….
“준비는 단단히 하고 오셨는지요?”
하반신이 뱀이어도… 아니, 그 점만 제외하면 그녀는 누가 보더라도 넋을 놓을 정도로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거기다… 이상 성욕자라면 아주 환장 할 법한 무언가일지도?
새로이 합류한 뱀족과는 확연히 다른, 더욱 신성하고 더욱 신비스러운 외양, 친숙함, 세련됨을 지닌 존재가 바로 헤일린.
어쨌든 그녀는, 추후 알헤디나를 대신할 존재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걸 위해선 먼저….
“나는? 나는?”
부에루가 파닥대며 나와 헤일린 주위를 오고 가자.
“…후후. 귀여운 아이로군요.”
의외로 하피에 대해 별 편견이 없는지, 동네 꼬마를 대하듯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헤일린이었다.
“아무쪼록, 이제부턴 기회가 흔치 않게 된 만큼,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거사를 치르도록 할 방침입니다. 여기에 이의 있습니까?”
강렬한 시선, 찌를 듯하면서도, 어딘가 고혹적인 인상을 한가득 안겨주는, 그런 눈빛이었다.
덕분에 에드릭도 어떤 거리낌도 없이,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흔쾌히 응답할 수 있었다.
“전혀요. 오히려 바라던 바입니다.”
최초에도 말했지만, 헤일린은 보는 것만으로 만족감을 안겨다 주는 존재였지만, 그녀를 품을 수 있다는 건 더한 만족감을 불러 오게 할 건 너무나도 자명했기에… 에드릭도 내심 기대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렇게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