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175)화 (175/454)



〈 175화 〉43. 내가 왜 이런 것들까지 생각해야 한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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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깊이 생각하는 거 아닌가요?”



윤 팀장님은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태민의 상담에 임해줬다.



“그래도 제가 손 놓아버리면 힘의 균형 같은 게 기울어질 거 같아서….”
“태민 씨. 무수한 회사며 세상이 내가 빠지면 문제가 생긴다, 지장이 생긴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우리가 사라져도 누군가는 우리 일을 떠맡게 될 거예요. 그게 태민 씨가 조금 전 누군가의 의견을 설명한 것과 같은, 일종에 자연의 순리고요.”
“음….”



그 또한 맞는 말.
누구나 자신이 특별하고, 대단해지고픈 욕망을 지니고 있다.
그러다 보니, 막상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독선적인 생각, 그런 사고로 빠지는 우를 범하게 되는데, 역사적으로 그런 이들은 지나침이 과해서 항상 막판에 미끄러지거나 크게 널브러져 역사적 안쓰러움을 자아냈다.

물론 대부분은 위대함의 당연한 결말,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했던 그들의 오만, 그에 따른 대가… 아님 숭고한 도전이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라는 식으로 대강 포장하고 미화하며 넘기려 드는데, 그건 아니지.

그럼에도 그들의 영향력은 죽어서도 한참을 이어가고, 일부는 수백을 넘어 천년 단위로까지 이어지곤 하니….



“제가 예전에 말한 것처럼, 모험은 충분히 경험했나요?”
“…차고 넘쳤죠.”
“그렇지 않아도 그곳 문제에 대한 방향성을 잡고자 조사관이 감찰을 들어갈 거예요. 물론 예고도 없을 거고, 아는 이도 없겠죠. 태민 씨가 이를 안다 하더라도, 그게 누구고,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는 아마, 예상할 수 없을 테니  점에 대해선 안심하셔도 좋을 거예요.”


“그런가요.”
“그래도 적당한 긴장감은 필요해요. 그러기에 태민 씨와 같은 이들이 필요한 거죠. 대부분은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식으로든 수단과 방법들을 가리지 않는 게 보통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전쟁과 분쟁, 과도한 경쟁으로 판을 뒤흔드는 이들이 대다수인 세상에서, 태민 씨와 같은 식의 접근을 옹호하고, 반기는 이들이 적지 않았을 거라 보는데, 틀리나요?”


“…아뇨. 자화자찬하는  아니지만, 전사며 전투를 추구하더라도 그건 생존 및 일종에 명예를 위해서지, 난잡한 이득을 위해, 이익에 입각한 혈투를, 그들은 원치 않아 합니다. 그 점만큼은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결국, 언젠간 내륙  혹은 대륙 바깥에서 오는 침략자들과 사투를 벌일 테죠. 내 것을 넓히려 들고, 더 많이 쌓고 더 많이 손에 넣으려는 건, 인류뿐만 아니라 모두의 본능과도 같으니까요. 생존을 위해,  나은 결말을 위해 전쟁을 치르고자 하는 이들도 있을 겁니다. 그거 외엔 방법을 모르는 이들도 많을 거고요.”


“…대화가 통한다면 어떨까요.”
“내가 가진 걸 나눌 리가 없기에, 분쟁은 끊이질 않는 거랍니다. 그러기에 경제적 여건을 구축해 흔들리지 않게 형성하는 게, 오히려 전쟁을 막는 지름길이랍니다. 현대에 전쟁이 발발 안 하는 이유가 단순히 핵으로 인한 억제력 때문만은 아니랍니다. 룰을 정해놓고, 경제적 교류로 인해 얻을 걸 얻을 수 있단 확신을 주었기에, 그들은 싸우지 않아도 원하는 걸 얻을 수 있게 됐죠.
또 본능적인 야만성은 대리 만족 행위로 해결 가능하고요. 이성과 감정, 모든 걸 이런 식으로 통제 가능하다면, 남은 건 이제 자본과 비자본 간의 싸움뿐이고, 이는 총탄이 난무하지 않아도 충분히 무마가 가능한 수준이죠. 물론 이로 인해 더 큰 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 다시금 배출구를 만들어두는 것이고요.
또한 그런 야만성을 부각시킴으로써, 저리되면 안 된다며 반면교사 삼을 수도 있으니… 끊임없이 잊고 또 잊는 인간들에겐, 언제나 잊으면  된다는 교훈을, 교훈을 얻을 수 없다는 뼈아픈 체벌을 가해야 비로소 이해하고, 깨우친다면 가급적 무지에 의한 실책을 범할 확률도 줄어들게 될 거고요.”

“…즉 해결은 불가능하지만, 억제며 통제는 가능하다, 이겁니까?”
“불교에선 이런 말이 있죠. 제행무상(諸行無常). 무슨 뜻인지 아세요?”
“…들어만 봤습니다. 자세히는 모르고요.”
“세상 만물의 모든 것은, 멈추거나 영원한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은 곧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한다고 하지요. 이 말은 즉, 흐르는 강물을 비유할  있겠네요. 흐르는 물을 막아버리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넘치죠.”


“태민 씨가 하려는  그런 거랍니다. 둑을 세우지 말고, 길을 터주세요. 둑은 넘치면 결국 무너지고, 그러면 더 큰 환란이 생겨나게 될 겁니다. 물이 길을 트기까지도 무수히 같은 흐름을 이어갔기에, 비로소 안정을 이루는 거죠. 그러나 그조차도 언제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는 일이고요.
영원한 것은 없고, 완벽한 대처를 추구하다간 정작 사소한 걸 놓치고, 많은  잃을 수도 있답니다.”
“흠….”
“자, 이 또한 순리로군요? 아무튼 이렇다 쳤을 때, 태민 씨는 어떻게 하면 좋을 거라 생각해요?”
“저는….”



보다 나은, 보다 월등한, 뛰어난 계책을, 방도를, 방안을….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의 한도는 명확하기에 결국,   있는  최선을 다할 수밖에.

“그들의 입장에 태민 씨가, 에드릭이  뿌리가 되어, 같이 여생을 함께 보내는 거야말로 그들이 원하는 방향이겠지요. 그러기에 그에 입각한 방책을 일러주었던  테고요. 그래도 그들은 강제하지 않았죠? 선택은 태민 씨 몫이란 겁니다. 후회하지 않을, 최선을 다할  있는  선택해 믿고 나아가는 것.
인생이란, 미래란 결국 과거의 내가 얼마나 견고하게, 굳건하게 계단을 쌓아 올렸느냐에 따라, 도달하는 위치가 정해지는, 그런 게임이니까요.”
“게임 말이죠.”
“초기에 바짝 열심히 레벨  해두면 나중이 편해지잖아요?”
“그도 그렇네요.”




태민은 실웃음을 지었다.


“그렇다고 그들과의 관계를 형식적으로, 소홀히 대하라는  아니에요. 오히려 근데 너무 몰입하니 그런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 건데, 저는 그런 점도 좋다고 봐요. 그만큼 진지하게 마주한다는 걸 테니까요. 대부분은 그냥 거쳐 가는 과정, 어떻게든 성과는 내고 공을 세우려 혈안이 되어 정작 그들 세계의 주인들을 배려치 않는 눈치들인데, 그런 거에 비하면 아주 양반 아닌가요?”
“…저야 뭐,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자 주의인지라.”
“진심이 항상 통하는 건 아니죠. 그러나 해가 차면 기울어 달이 오르듯, 달도 차면 기울어 해를 다시금 띄운답니다. 그럴 때 드러날 테지요. 그 진면목이.”
“불교 이야기 나와서 그런데, 괜스레 스님들이 하실 법한 이야기를 해주셔서 조금 놀랐어요.”
“놀랄 거까지는.”

그녀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극히 일부에요. 우리가 빛으로, 뇌와 안구로 세상을 보고, 사물을 구분하며 색을 인지하고 받아들이지만, 사실 물질에는, 세상엔 색이 없다고 하더군요.”
“잉?”




그건 또 처음 듣는 이야기다.



“저도 어디서 주워들은 건데, 정확한 건 잘 모르겠네요. 나중에 확인해봐야겠어요. 아무튼… 눈에 보이는 거, 또한 느끼는 게 전부는 아니랍니다. 조금 더 귀를 열고,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시각을 길러두면서, 여유를 되찾을 필요가 있어요.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내가 쫓는 그곳에 나는 있는가. 불교 이야기 나오니 거기서 나올 법한 이야기를 좀 해봤네요. 어때요? 깨달음이 오셨나요?”
“하하… 아직 거기까지는….”“흥미로운 시간이었네요. 그러고 보니 이런 식으로 독대하는 예가  얼마 없었는데 말이죠.”
“그러게 말입니다.”




그녀의 앞에 서면 항상 설레고야 만다.
마치 첫사랑을 만난 거 같은… 그러면서도 동경하던 누군가를 마주한 것처럼,  순간이 새롭고, 긴장되곤 했다.

그런데도 그 기분이, 썩 나쁘지가 않았다는 점.
아니, 오히려 좋았지.


맑게 웃는 얼굴이 아름다운 그녀.
자신감 넘치면서도, 어딘가 아련한 그늘을  듯한 두 눈.
묵직하면서도 편안하고, 단호하면서도 부드러운 듯한….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아, 아뇨. 그게 아니라….”
“왜요? 반하기라도 하셨어요?”
“하하하… 저는 처음 뵈었을 때부터 이미 마음을 빼앗긴지 오래였습니다만.”
“빈말은.”


빈말 아닌데….

에드릭으로서의 자신은 항상 당당하고 여유가 흘러 넘쳤지만, 어째 현실에서의 자신, 태민은 매번 이 모양이다.

다르다는 걸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걸 받아 들이고 있는 자신도.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자신과는 살아가는 세계가 다른 것처럼 느껴진다.
뭔가 본능적으로? 아님 감각적으로?
대하기 어렵진 않지만, 어느 선 이상 접근할 수 없는, 그런 아우라 같은 게 느껴졌다.


…이거 참 설명이 구질구질한데.

“그래도 시간 난 김에… 조금 더 사적인 이야기도 할 겸, 어때요? 가는 길에 식사 정도는 괜찮죠?”
“예, 충분합니다.”

오히려 초대해주셔서 감사한 나머지 절이라도 하고픈 심경이지만! 그 속내를 차마 드러내지 못한 채, 적당히 포커페이스로 감정의 동요를 감춘 태민.

물론 팀장님 정도면 능히 그런 겉치레며 가면을 간파해내겠지만, 그녀는 굳이 그 점을 지적해 태민을 곤혹스럽게 하진 않을 터였다.

이는 태민도 알고, 그녀도 알고 있는, 암묵적인 룰이랄까.

단둘이 식사하기에 긴장했지만, 이내 그녀의 말솜씨에 휘둘려 태민은 에드릭으로서 겪은 것들 가운데 인상 깊었던 것들, 웃겼던 것들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다.


나중에 본사를 나서서 섬을 빠져나가는 배편에 오르고서야, 평소 자신이 해왔던 걸 고스란히 당했… 어감이 좀 이상하지만 아무튼 그런 경험을 한 것에 태민은 살짝 반성했다.



“…그만큼 편했다는 건지도.”




혹은 긴장했다는 거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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