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178)화 (178/454)



〈 178화 〉44. 방법은 제각각.(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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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터 카멜린도 파라메라 대륙에 머문 지 어느덧 꽤 오랜 시간이 흘러버렸다.

단순 순례길에서 시작됐지만, 결과적으로 어려운 이들을 돕겠다는 명목으로 이곳저곳을 맴돌다 보니, 어느덧 그녀가 찾아가는 것보다 찾는 이들이 많아져 교회마저 지어져 그곳에 자리 잡길 또 수개월.


그러다 보니 알그리타 대륙에서도 그러한 정황을 뒤늦게 파악해 대대적인 지원을 하고자 했는데, 선수 치듯 다른 종교 인원들도 속속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미 터줏대감 마냥 일찍이 자리 잡고 있던 덕에 소브릴 정교회의 영향력은 시스터 카멜린, 그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막강했다.


그리고 이번 일도 그랬다.
싸우는 이들을 중재하고자 그녀가 나서게 됐다.


“이웃 대하길 가족을 대하듯, 어머니 아버지를 대하듯, 형제 대하듯 하라 배우지 않으셨는지요?”
“그건….”
“이들은 이웃입니까, 아님 전혀 문외한 자들입니까? 이웃이란 무릇 무엇입니까? 가까이에 머물며 언제고 눈을 마주하며 인사말을 나눌 수 있는, 도움이 필요할  도우며 도움받는 그런 관계가 아닌지요?”
“하지만 저들은….”
“돈에 눈이 멀어, 이익에 눈이 멀어 인간 됨을 잊고자 함입니까? 타인의 것을 더욱 과하게 탐하고, 그마저도 빼앗고, 빼앗고,  빼앗아… 배를 불린다 한들 진정 만족이 있겠습니까? 죽어서도 가져갈 속셈이십니까?”
“아니, 왜 저한테만….”
“이것 보십시오. 잘못에 가슴이 묵직해지고, 안타까움에 절로 손발이 떨려 오기 앞서, 억울함에 울분이 차올라 이조차도 인내하지 못해 불길처럼 분기를 토로하려 하지 않습니까? 무엇이 잘못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걸 알고자 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장사요? 상업? 하나를 더 얻기 위해 신경전을 벌이고, 눈치 싸움을 하는 건 좋습니다. 언성이 높아질 수도 있지요!
하지만! 빼앗지는 말아야지요. 몰라서 당했다? 무지에 대한 대가로 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상대의 집안 기둥마저 뽑아내려 든다면 당신으로선 단순 이익을 위한 정당한 행위였다 자부할지라도, 결과적으로 누군가의 가정을 파괴하고, 그들의 삶을 불행의 구렁텅이로 파묻은 악마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신대륙에 발을 들이다 보니 눈마저 멀어버린 것입니까?”
“어허! 시스터! 말씀이 지나치지 않소?!”



그때 누군가가 일단의 무리를 대동한 채 들이닥쳤다.



“그만! 왠 소란들이냐?!”
“헛!”




그곳에 있는 이들 가운데, 그를 몰라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수려한 외양에 이제 막 서른에 올라 한창 물오른 외양을 지닌 사내.
붉은 수염이 인상적인 그는 서국 회사 임원 중 하나이자, 무려 신수 바헬루스의 가호를 받은 이였다.


그는 뻔히 알면서도, 마치 우연이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비꼬는 어조로 투덜대기 시작했다.



“시스터, 이번엔 또 무슨 일로 저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계시오? 날이면 날마다 지겹지도 않소이까?”
“이국의 신을 모시다 보니 근본마저 잊어버린 겁니까, 플레얀트 공? 이 문제는 공이 규율을, 규칙을 바르게 수립하지 않기에 생겨난 문제 아닙니까?”
“흐음, 규율상으론 전혀 문제가 없다고 알고 있소만. 어떤가?”


그러자 한창 카멜린에게 쓴소리를 듣던 사내가 허겁지겁 고개를 수그리며 비굴하게 웃음 지었다.

“무, 물론입지요! 플레얀트 공자 나리! 저희는 전혀! 거리끼는 무언가를 한 예가 없사옵니다!”
“악덕 고리대금업자도 이 정도는 아닐 겁니다! 국가가 없어 저들을 보호할 그런  없다며 이런 식으로 자기들 멋대로 규율이랍시고 정해 돈 많은 부호들의 배만 불려주는 경우가 어디에 있습니까?!”
“…아쉬우면 빌리질 않으면 되는 거 아니오? 선택은 저들의 몫인데  그렇게 야단법석인지….”
“플레얀트 공, 그대는 스스로 바르고 정당하다는 가정 하에, 만약 악행을 일삼는 지인이 있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악행에 기준이 어떤가 싶지만, 만약 그가 천인공노할 악적, 역적이라면 당연 관계를 끊을 것이오.”
“그렇다면 법을 집행하는 법관들이, 악인을 옹호하며 선인을 핍박하며 누명을 씌우는 악적이라면, 당신이 그의 위치를 정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그를 어찌 처리하시겠습니까?”
“내가 그 위치를 정할 수 있다면, 당연 그런 악인은 내쫓아야… 아니, 시시비비를 철저히 가려 쫓아내기 이전에 처벌을 먼저 내려야 마땅하지 않겠소?”
“그렇다면 나라를 망가뜨려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리는 악독한 왕이 있다면! 그리고 그 왕이 당신이라면 당신은 어찌하시겠습니까?”
“…….”



왕이라 말해준 건 좋다. 거기에 살짝 마음에 뺏겨 그러려니 하고 듣다 보니… 대답하기가 썩 곤란해졌다.



‘이건 순리 상으로 내쫓아야 한다고 말하라 부추기는 꼴이 아닌가?’


당했구나 싶었다.
그러나… 이런 거에 일일이 동요해서 쓰겠는가?



“왕의 실수는 참담하나,  또한 극복해야 할 과정이라 보오.”
“그렇습니까?”




의외로 시스터 카멜린은 담담하게 그의 말을 받아주었다.


“왕을 깨우치는 이들이 더욱 노력해 그를 깨우쳐 바른 길로 인도하게 함이 올바를 터. 백성을 대신할 순 있으나 왕을 대신할 자는 없소.”
“…….”

고리타분한 수녀 따위가 어딜 감히.


이미 고대 중세 현대라는 역사를 송두리째 머릿속에 담아둔 그였다.
왕이란  신의 대행자, 동시에 고귀한 존재라는 사고방식으로 물들여진 이곳 세상에서, 민주주의적 발언은 오히려 신성 모독, 반역도, 역적 모의를 했다 몰아쳐도 할 말이 없는… 대역죄다.

부모를 죽이는  용서해도 왕을 모독하는  용서치 않는다.
안 보이는 곳에선 나랏님도 욕할 수 있다?


그조차도 경계하고 두렵게 해야 경외가 유지되는 터.
그래야만 무지한 것들을 혼란으로부터 바로 잡아, 온전히 이끌 수 있는 법.


왕도 사람인 이상 실수?  수도 있지!
그러나 중요한 건 그 이후가 중요한 거다.
그로 인한 희생, 헌신은 시대적으로 당연시 여겨져 왔다.


형식적으로 백성을 위한다 뭐다?
예로부터 잘난 왕들일수록 철저하게 이기적이었다.
단지 쇼맨십, 이미지 관리, 정치질을 잘했다 뿐이지.
또한 전시는 차라리 폭군 쪽이 훨씬 낫다는 건 역사가 증명하지 않았던가?

그런 의미에서 자신은 어쨌든 서국 회사의 임원이며 현재 이 일대에선 대표로 군림하는 존재.

그리고 그 기반을 탄탄하게 하기 위해선, 부호를 포함한 자본을 갖춘 이들의 절대적 지지가 필요했다.

어차피 개발 및 개척 또한 돈으로 이루어지는 거니, 돈이 곧 능력이며, 능력은 곧 성과로 이어질 터.

더군다나 어수선한 시기다. 확실하게 고삐를 쥐지 않으면, 다들 혼란스러워 할 건 자명했기에, 그는 철저하게 자기 측에 선 이들을 편애하여 더더욱 세를 늘리는 쪽으로 편 가르기를 유도했다.

“하면 악덕한 자, 간신을 옹호하며 그들의 간언에  기울인 끝에, 정작 그 왕국이 도탄에 빠졌다 치면, 그들이 과연 목숨 걸고 왕인 그대를 위해 자신의 일신을 받칠 수 있다 자부하십니까?”




그리고 시스터 카멜린은,  와중에도 동요하는 바 없이 담담한 표정으로, 하지만 힘 있는 음성으로 그에게 묘한 질문을 던졌다.



“왕이 왕의 자격이 없다면, 흩어지건 도주하건 벗어나건, 뭐든 하는 법이지. 그 정도로 무조건적인 신뢰, 신의, 충성심을 강요할 정도로 제가 모자라진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약육강식을 선호하는 이들, 태생이 강자며 기득권층에 있던 이들, 그 와중에도 잘났던 부류들은 언제나 자신이 흥행가도를 걸을 거라 생각하곤 한다.
그러기에, 몰락한 것들을 오히려 멸시하고, 무시하고, 방치하는 것도 그러다 보면 너무나도 당연해지는 바.


한편으론 이렇게 대놓고 편을 갈라대는 부류를 좋아하는 이들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된다.

거기다 자기 편에 한에서는 확실하게 챙겨준다면?
잘난 놈들은 대부분 이기적이기에, 아랫것들이 배를 굶던 사정이 어렵건 별로 신경을 안 쓰는 게 일반적.


그런데 그 잘난 분이 자기 휘하에 있는 이들을 철저하게 배려하고 도움을 준다? 대우해준다?


상대적으로 안 그런 놈들 투성인 세상에선 이보다 매력적인 윗분이 또 있을까?

물론 능력이 보장되어야 하겠지만, 오히려 능력을 인정받고 쓰임 당하고자 하는 이들에겐… 무능한 돈 많은 돼지, 신분만 드높은 버러지보다야 이쪽이 백배, 천 배는 나을 거다.

그런 의미에서 플레얀트 3공자는 확실히, 나쁘지 않은 주군이 될 재목이었다.


적어도 그가 세운 계획대로, 상황이 순풍 타듯 잘만 굴러갔다면.
그러나 현실은, 종종 그런 기대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법 아니겠나.

그때, 누군가가 잽싸게 달려와 3공자의 귓가에 입과 손을 가져가 은밀히 무언가를 쑥덕이더니.



“뭐, 뭐라고?!”



공자의 입에서 기함이 터져 나게 만들었다.

“??”


당연, 주변에서 그 모습을 목격한 이들의 의구심도 커져 갔는데.




“…시스터. 이쯤에서 하고 물러나시오. 난 바빠서 이만 물러날 터이니….”


그러고는 정작 상황을 해결할 여지도 없이 발 빠르게 자리를 뜨는 게 아닌가.
수행인  무리를 동행하고 온 것치고는 실로 허무한 결말.
당연 시스터는 다시 타겟을 돌려….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시지요.”
“저, 시스터…? 공자께서 이쯤에서….”
“그렇게 끝내면요? 그대의 배는 점점 불어날 테지만 힘없는 가정을 이룬 이들은 오늘도 부조리함에 배를 굶고, 심적으로 고통받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겠지요? 만약 내 말에 틀린 점이 하나라도 있다면  시원히 말씀해보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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