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화 〉45. 말이 안 통할 땐 예로부터...
파라메라 대륙은 넓다.
이미 현실 세계, 지구상에 대륙이란 게 여럿 되며, 이조차도 어마어마하게 넓다는 걸 잘 아는 만큼, 본사에 속한 인원들에게 있어, 이곳은 단순 판타지 세계라는 걸 떠나 지도상에 일부를 과장되게 표시하는 정도론 결단코 만족할 수 없는 시국에 이르렀다.
그러기에 개척은 꾸준히 지속되고 있으며, 자원을 찾으며 정착지를 구성해 경제적 활동, 무역까지 가능한 구역으로 형성하기 위한 노력을 감행하고 있는 게 서국 회사 임원 중에서도 에드릭을 비롯한 몇몇이라면, 그 중 일부는 그런 거 상관없이 개척의 선발대 마냥 무작정 개척하며 지도의 면적을 늘리고 구체화하는 작업에만 열을 올리는 이들도 있었다.
내륙으로 진출하지 않아도 끝 모를 대지가 펼쳐져 있는 듯 보이며, 한참을 개척해 나아가고 나아가고, 심지어 비행체 위에 탑승해 종일 날아도 땅끝에 도달하기란 요원하기까지 하다.
그렇게 한참을 나아가더라도 점점 확대되어 나중에 아예 올려다보는 것조차 불가능한, 무지막지한 크기의 산맥 하나를 기점으로 다시 울창한 정글 지대와 사막 지대까지 반으로 나누어져 펼쳐져 있으니, 산맥이 워낙 높아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날씨는 급격히 추워지다 못해 눈발이 미세한 얼음 결정으로 화해 휘날리기까지 한다.
당연하지만 산꼭대기에 올라간다는 건 택도 없는데 심지어 그곳에 오른 자가 무사히 귀환했다는 소식을 들은 예가 없는, 신성한 영역이기도 했다.
그런 산맥 뒤에 다시 끝도 없는 영역이 펼쳐져 있으며, 거기서 더 나아가야만 새로운 문명과 조우할 수 있다는데, 내륙을 가로지를 바엔 차라리 배편이나 비행체를 이용해 탐사하는 게 훨씬 건설적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4대 신수가 총괄하는 일대는 전초 기지 목적 때문에라도 확실하게 목줄을 쥐어야 한다는 게 일부의 방침이기도 했는데, 이건 다분 제국주의적 사상, 그에 입각한 방침이기에 이를 꺼려하는 태도를 보이는 이도 적지 않았다.
당연 호전적이고 야심이 깊은 이들은 이런 꾸물꾸물한 태도가 만족스러울 리가 없었을 터.
애초에 알그리타 대륙에서 이주민을 포함해 온갖 개척민들이 들어서기 이전부터 그들은 투쟁으로 삶을 개척해오며 발전시켜오곤 했다.
이러다 보니 훼방꾼들이 나타난 걸 고깝게 생각할 수밖에.
그러나 그들로 인해 사고가 트이게 된 것도 사실.
그러니 손잡고 같이 다 먹어 치우자는, 호쾌하고 호방한 제안에 입맛을 다시게 된 건, 어느 의미로 너무나도 당연한 흐름이었는지도.
이 와중에 에드릭은 결국 이들을 설득하고 어쩌고 하는 건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아니, 설득은 하겠지만 적어도 당장은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게 있었으니.
신수 바헬루스는 전신이 시뻘건 악어 같은 형상의 신수였다.
불과 암석의 신수로 불리는 그것이 머무는 주변은 무지막지한 열기 덕에 익숙지 않은 이들로선 숨도 쉬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돼 있었다.
동시에 이곳 환경에 익숙한 이가 외부로 나서면, 주변의 기온에 적응 못 해 봄 날씨에도 동사하는 웃지 못할 사태가 발생하는데, 이건 당연하다고 해야 할지, 어처구니없다고 해야 할지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에드릭도 이곳에 들어선 이해 숨쉬기가 몹시 불편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의 몸은 정령의 그것과 유사해 그럭저럭 버티는 거 자체는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따라나선 코넬로선 짜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나 보다.
“…더워 죽겠는데?”
“조금만 참아요.”
심지어 이 주변의 열기에 적응 못 한 것들이 태반이라 비행을 통해서 접근하는 것도 무리.
이곳에 적응하고 있는 불바위 거북이라는 걸 타고 움직이고는 있지만, 가만히 있어도 땀이 비 오듯 흐르고, 물을 주기적으로 마셔줘도 금세 목이 마르기에… 오죽하면 소금마저 쳐서 보충해주고 있는 실정이었다.
보통 인간이었다면 그 정도로는 못 버텨 벌써 혼수 상태에 빠졌겠지만, 둘은 그래도 시간이 갈수록 환경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더럽게 짜증나네.”
물론 코넬 양께서는 엘프 특유의 곱디고운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지리멸렬한 표정으로 인상을 와락 구겨대고 있었지만.
“수틀리기만 해 봐.”
“하하하….”
에드릭은 그저 웃을 수밖에.
알헤디나 때도 그렇지만 이쪽 신수도 꼭대기 쪽에 자리하긴 매한가지.
문제는 여긴 화산 지내다 보니 꼭대기에 오르면 결국 화산 구덩이 속에 넘실대는 용암을 구경하는 게 고작인데, 구경하려다 얼굴이 그을리지나 않으면 다행일지 모르겠다.
화산 활동이 잦아들고, 완전히 꺼지게 된다면… 화산 주변 일대에도 생명이 피어나겠지만 아직은 멀고도 먼 이야기.
비가 내리면 일부는 호수처럼 물을 채워갈 거고, 잡초들이 무성해지며, 한편으론 새로운 환경이 조성될 테지만, 물론 그 전에 화산재로 뒤덮인 특유의 형태가 한동안 일대를 가득 메우게 될 터다.
…그건 그것대로 진풍경이겠네.
물론 지금은 시커먼 돌과 새빨간 물들이 끈적한 꿀 덩어리처럼 아래서 밀려드는 줄기에 밀려 타내려 흘러대면서도 여전히 막대한 열기를 뿜어대고 있었지만.
어쨌든 한참을 올라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곳까지 오니… 아무래도 미리 파악한 정보대로 이곳은 알헤디나의 대사제, 헤일린과 같은 존재가 따로 없었는지 아무도 맞아주는 이가 없었다.
‘신수에도 급수가 있다 했지.’
헤일린에게 듣기로, 알헤디나는 신수 내에서도 유독 독보적인 존재라 들었다.
애초에 차원을 넘나들 수 있는 존재는 신수 가운데 알헤디나 님이 유일하다 했던가?
무력적인 면을 떠나 경지? 아무튼 급수 차원에서 높다는 이야기인데, 사실 무력적인 것도 그렇지만 상성 문제, 그리고 주변을 고려한 덕에 내버려두는 거지, 실질적으로 접전이 이뤄지면 최소 신수 둘이 전력을 다하지 않는 한 비비기도 힘들단다.
물론 그 시점에, 그 주변에 살아가는 모든 종족들에게 있어선 대재앙이 닥쳐 괴멸적인 사태로 번질 테지만.
사실상 그 문제로 알헤디나 님이 자중을 하고 있다 한다.
애초에 먼저 시비를 걸어온 것도 저들이라 하고.
일종에 꼬맹이가 어른한테 힘자랑하다 두들겨 맞는 경우인데, 문제는 그것들만 맞으면 다행인데 그 여파에 고래 싸움 새우 등 터지듯, 주변 생명체들이 모조리 초전박살이 난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
거기다 꼬맹이라 해도 저런 것들이 셋 이상 모이면 그건 그것대로 골치 아프다는 게 헤일린의 설명이었다.
아무튼, 그렇다 치고.
묵직한 진동과 함께 불기둥이 치솟으며, 전신이 시뻘건 용암 덩어리로 구성된 듯한, 가죽의 이음매가 마치 선처럼 시뻘건 용암을 줄줄이 흩뿌리며 구덩이 위로 솟구쳐 올라온 모습은 솔직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난잡한 냄새가 나는구나. 고고하기 짝이 없는 이 빌어먹을 물 내음이라.]
목소리도 엄청 터프했고.
시뻘건 두 눈, 그 주위조차 용암과도 같은 주홍빛이 선명한 그것이 흰자처럼 자리잡아 굉장히 신비하면서도 신묘한 모습을 자아내고 있었다.
솔직히 알헤디나를 처음 목도했을 때 느꼈던 충격에 비하면 평범했지만, 이건 이것대로 엄청났다.
‘개쩔어!’
크기도 어마어마했는데, 그런 게 구덩이를 빠져나와 화산지대를 거닐고 매달려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게 무척이나 멋지게… 크흠, 아무튼.
에드릭은 솔직히 반쯤 홀린 눈치였다.
현실은커녕 심지어 게임이며 만화에서조차 볼 수 없었던 저 위용 넘치는 자태를 보라!
딱히 공룡이나 로봇, 아무튼 무언가에 심취하고 거기에 마을이 끌리는 케이스가 아니었지만, 이건 이것대로 남자의 로망, 남심을 흔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물론 계속 그런 감탄에 감탄을 터트릴 순 없었기에, 잠시 뒤 마음을 추스렸지만.
“크흠, 바헬루스 님. 실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찾아뵙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왔다는 건 그에 준하는 각오를 하였다는 건가?]
“허례허식 접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시건방지군.]
묵직한 음성이 대기를 뒤흔들었다.
[그래도 헛소리를 지껄이며 내 낮잠을 방해해대는 것들보단 낫군. 좋다, 기회를 줄 테니 말해보도록. 허나 쓸데없이 입을 놀린다면, 여기서 살아 돌아갈 생각은 말아라.]
말은 저렇게 해도, 저들 기준에선 필시 미물일 텐데도 구태여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나타나준 것만 해도, 에드릭으로선 감지덕지할 따름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다른 수단을 발휘해 난동을 부렸을지도.
그렇게 되면 정말 이판사판이었을 텐데 말이지.
‘그게 더 나으려나?’
한편으론 그렇게 생각하나, 그건 그것대로 곤란했다.
“제가 여기까지 온 이유는, 실질적으로 이 일대의 모든 종족들에게 도움이 될 제안을 드리기 위함입니다.”
[도움이 되는 제안.]
악어가 코웃음 치면 저러할까.
그 뉘앙스가 그대로 느껴져 내심 기가 막혔다.
‘엄청 리얼하네.’
발성 구조가 없기에 뇌리에 음성을 전달하는 선에 불과했지만, 그게 저토록 리얼하다는 것만 봐도 이미 보통은 아니라는 건데.
알헤디나 때도 그렇고, 이곳의 오래 산 짐승… 신수들은 뭔가가 다르기는 확실히 다른가 보다.
그래, 알그리타 대륙의 드래곤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