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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182)화 (182/454)



〈 182화 〉46. 신수하고 썸 타본 적 있나?

크기를 축소해 인근까지 온 바헬루스는, 그럼에도 코끼리 정도는 쉽사리 물로 끌고 들어가 간식 삼아 잡아먹을 법한, 위용 넘치는 규모의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워낙 덩치가 크다 보니 영화에서 나올 법한 초대형 악어를 즉각적으로 떠올릴 크기였는데, 이건 아득한 과거, 무려 8000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 후기에나 있었을 법한 데이노수쿠스(deinosuchus)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런 게 고작 10미터도  안 떨어진 부근에 자리 잡고 있으니, 긴장이 안 되는 게 이상한 걸 테지.

그러나 에드릭은 자신의 뒤, 불바위 거북 등껍질에 설치해둔 좌석에 앉아 한껏 거드름을 피워대고 있었다.


“…크기 더  줄이냐? 왜? 수틀리면 입 벌려서 덮치기라도 하게?”


[…….]


바헬루스의 크기가 한층 더 줄었다.

그래도 전체 길이가 5미터는 거뜬해 보였지만, 상대적으로 이미 무지막지한 걸 봐서 그런지, 이건 조금 적응이 됐다.


화산 구덩에이서, 그쪽 산 중턱에 눌러앉았을 때도 엄청났지만, 한편으론 자신의 체구를 조절할 수 있다는 거 자체로 이미 신수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가뜩이나 더워서 짜증 났는데, 잘도 귀찮게 해줬어? 응?”


[…….]

“이게 말을 씹네?”

[차, 먼저 찾아온  그대들이 아닌가.]


“어? 내가 찾아오겠다는데 그게 불만이야? 꼴리면 나보다 강하면 되잖아?”

[…….]




자기가 한 말을 아주 제대로 되돌려 받는 통에 바헬루스도 할 말이 없는지 묵묵무답이었다.




“또 씹네? 씹으면 뭐 사는 게 만사형통 잘 풀려? 하늘나라에서 누가 내려와서 보살펴줘? 뭘 믿고  다무는 건데?”


[원하는 게 무엇인가….]


악어가 침울해하는 모습을 생전 처음 보게 된 에드릭.
웃자니 신수가 불쌍해지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상황이 퍽 웃기고.



“잘못된 씨앗을 뿌렸으니 그걸 거두어가는 것도  녀석 몫 아니더냐? 왜? 내가 심심해서 너 짓밟고 분풀이하려고 여기까지    아냐? 할 일 없게? 귀찮게?”


[내 신명을 받드는 이들을 얌전히 다독여라… 이 말인가?]


“그걸로 되겠어?”



응?
코넬의 요청은 뭔가 에드릭과 상의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흐름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저기요?”



에드릭이 의아한  그녀를 돌아보자.
가만있으라는 양 눈치를  코넬이 재차 밀어붙였다.

“네 녀석이 싸지른 똥이니  녀석이 직접 내려가서 처리하시지?”

[…….]

이렇게까지 요구할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는지, 다시금 말을 잇지 못한 채 잠자코 고뇌에 잠긴 바헬루스.



“뭘 고민해? 안 내려가면 아예 이 산도 무너뜨리고 너도 죽이고 이 일대도 다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릴 건데. 억울하면 나보다 강해지면 되잖아? 네가 했던 개소리 그대~로? 응? 맞아 틀려?”

[……크으.]


약자의 입장이 되면 사실 이보다 파렴치하고 불합리한 게 따로 없을 터.
그러나 본인이 여태 강자라 생각했던  신수는,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아마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거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내려가서 내가 무얼 어떻게? 차라리 이곳에 미물들을 불러다가 명을 내리는 편이 더욱 적절하지 않은가? 내가 직접 내려갔다간… 그것들도 감당키 어려울 거며, 그것들 또한….]

“말이 왜 이렇게 많냐? 너 한 곳에서 고고하게 틀어 박혀 있는 게  잘난  같냐? 실은 미물들하고 어울린 적이 한 번도 없이, 위에서 잘난 체만 하다 보니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

[그건 무슨 의미인가? 이 주변 모든 곳이 전부 내 땅이거늘, 그것들은 고작 내 땅에 얹혀사는 버러지들에 불과하다! 당연히 내가 몸소 하산하게 되면, 받들어 모시게 될 건 두 말하면….]

“그럼 내려가면 되겠네. 나중에 그것들이 딴 마음 먹고 난리 치면 우리도 귀찮아지니까, 네 선에서   처리하면 되잖아?”

[그럴 거면 내가 하산해야 할 이유가….]


“귀찮으니까.”


[……?]


“폭력이며 공포는 눈앞에 있어야만 의미가 있는 거거든. 내가 귀찮다고  신경  쓰는 그 순간 네 녀석이 딴마음 먹고 날 귀찮게 할 거 같은데, 내가 그걸  배려하며 자비를 베풀어야 하지? 힘을 지닌  의지, 내 의도대로 세상을 굴러가야 하는데, 너는 지금 그게 적절하지 않다고 나한테 반발하고 반항하는 것처럼 들리는데, 맞아 틀려?”


[그…….]

“네 입장이 중요해? 아니면 내가 하는 말, 의지, 뜻이 중요하냐?”

그래, 얼마나 불합리하냐. 힘 있는 놈이 갱판 치며 어리광이건 억지 부리기 시작하면 답이 없는 것도 이런 이유다.


즉, 코넬은 어쨌든 오래된 후배에게 선배 된 입장에서 세상 물정이 뭔지 알려주려는…  그런 긍정적이며 건전한 의도로서 저러는 거라면… 내심 이해  할 건 아니지만… 그게 아닌  같은 이유는 또 뭘까?


“왜  말을 씹어대냐? 대답 제때제때  해?”

[…어떻게 하란 말인가?]


“슬슬 말이 짧아진다? 벌써 눈에 뵈는 게 없어지나 봐?”


다시금 검붉은 기운을 코넬의 전신을 감싸며 넘실넘실 피어오르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바헬루스.

…초대형 악어가 화들짝 놀라는 건  처음 보네. 고양이도 아니고.



[…나보고 무엇을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내려가자니까 말을  알아들어 먹네.  파충류 새끼가. 왜? 붙잡아다가 저기 저편에 던져줄까? 그냥  발로 체면 차리면서 곱게 내려갈래, 아니면 여기 네놈 터전, 화산지대 망가지고 초토화되는 김에 버러지처럼 등 떠밀리듯 도망치게 만들어줘? 어느 게 좋니?”


[…내 발로 내려가겠소.]

“그럼 뭐 해?”

[……?]


“그 모습으로 내려가게? 왜? 여기 기특한 거북이처럼 우리 태워서 가려고?”

[…….]

잠시 고민하던 바헬루스가 이윽고 코넬의 말을 이해했는지, 그의 몸체가 이윽고 불길로 뒤덮이더니…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건 인간 남성의 형상을 한, 마치 조각품으로 빗어 만든 것만 같은 사내 놈 하나가 떡하니… 알몸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오….”

에드릭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키만 거진 2미터에 피부 톤은 구릿빛, 거기다 적절하게 근육질로 뒤덮인 몸은 누가 보더라도 감탄사를 터트릴 법한, 아주 훌륭한….


“야  새끼야.”

그런데 감탄하던 에드릭과 달리, 코넬은 곧장 삿대질하며 분노를 표출했다.


“누가 사내 새끼로 하래? 너 버러지들하고 짝짓기해서 씨 뿌리려고 그래? 이 새끼 이제 보니 아주 사악한 새끼네?”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가?”
“사내 새끼 종특이 씨 뿌리기인데, 네 녀석이 씨부려대서 하프 블러드 양산하면 세상 꼴 잘 돌아가겠다?”
“오오….”


의외로 코넬은 대단히 매서운 부분을 지적해대고 있었다.
…정말로 그게 커다란 문제인지 아닌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그럼 어쩌란 말인가?”
“암컷으로 바꿔 새끼야. 아님 뭐? 너 태생이 수컷이냐?”
“……아니다. 바꿀  있으니 너무 채근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윽고 다시 불길이 전신을 뒤덮더니, 몇   지나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건….

“오오…….”

개인적으로 구릿빛 피부하면 아직도 환락의 도시 아즈라엘에 있는 에라힘에서 만났던 로메리스가 불쑥 떠올랐지만….



“그래, 그건 좀 낫네.”

코넬이 뭔가 음흉한 얼굴로 한껏 칭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눈앞에 놓인 그녀도 마찬가지로 2미터에 가까운 체구에 가슴이 상당히 부푼, 그리고 체구도 굉장히 여성적이지만, 전체적으로 발달한 신체만 보면, 발그리드 인종처럼 체구가 거대한 듯 보이나 겉 외양 자체는 훨씬 인간적인 면이 두드러지게 느껴졌다.



“근데… 키가 너무 큰데?”
“이 정도가 기본 아닌가?”


바헬루스가 의구심을 표하자, 코넬도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는지 대충 고개만 까닥거렸다.


파라메라 대륙의 인종과 알그리타 대륙의 인종, 인간과는 차별점이 워낙 두드러지긴 했지만, 어쨌든 이곳 일대의 인간과 유사한 체형에 외형을 지닌 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발그리드 인종 마냥 인간과 오크의 다부진 체형을 일부 믹싱한 듯한, 헷갈리는 외형은 아니었으니까.

거기다가… 여성적인 상징들이 워낙 두드러져서 말이지.


알몸인 덕에 구릿빛 가슴은 그대로 노출됨은 물론, 당연 하복부 아래, 가랑이 사이의 그것도 고스란히 내비치고 있었는데, 털이 수북해서 무척 야성적인 면이… 크흠!

거기다 이곳 인종들 특유의 삐치거나 굵직한 모발이 아니다 보니 주홍빛에 가까운 저 이색적인 머리칼도 상당히… 뭐랄까. 유니크한 인상을 가져다 주고 있었다.

길디길되 반 곱슬머리라니. 이건 이것대로….




“이건 이것대로 먹기 좋겠네.”




응?




“스르릅!”

혀를 훔치는 소리에 무심코 고개를 돌린 에드릭.

“왜?”



태연한 표정으로 능청을 떨어대는 코넬을 보며, 에드릭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 그러네.’



생각해보니 코넬의 유희랄까, 인생무상을 표방하는, 유사 미물 체험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건….


‘떡 치는 거였으니까.’

그것도 그냥도 아니고 지고의 쾌락을.
그러나 단순 육체적인 쾌락을 넘어… 그 이상을 누리는  그녀가 추구하는 심미안이랄까.


왜냐면 그녀도, 지극히 폭력적으로 압도적인 힘 덕에 이해며 교류며 사랑이니 하는 걸,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존재 중 하나였으니까.

그러나 최근… 물론 그녀 입장이지만 천년 정도 전쯤에 그나마 애정 비슷한  느꼈단다.

그게 코넬이 저런 식으로 약자 코스프레(?)를 하며 이것저것 미물, 필멸자의 기분으로 유희에 전념하는 이유였는데, 그 와중에 에드릭 자신하고 엮여버린 케이스다.
당연 몸 대화는 아직, 놀랍게도 단 한 차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물론 소문으론 이미  데까지 갔다는 식으로 퍼져 나갔지만.

심지어 릴리에나도 당연히 덮쳤을(?) 줄 알았는데 안 그랬다 해서 기함했을 땐, 도대체 날 뭘로 보고 그러냐며 한탄까지 했을 정도였다.

어쨌든  무시무시한 존재는 지금, 유사 사랑 체험, 애정 체험을 하기 위해, 자기 딴에는 상당히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물론, 그렇다 해서 완전히 놀고 즐기는 걸 포기한  아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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