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화 〉50. 많이 긴장했단다.(2)
아니나 다를까.
위태롭게 달려오다 펄쩍 발을 잘못 디뎌 바닥 위로 철푸덕 하고 넘어지려 하니….
뒤따르던 시녀, 메이드가 깜짝 놀라 화급히 붙들려 하나 한 걸음 늦고 말았다.
하지만.
“???”
넘어지려던 아이의 몸이 허공에 둥실 떠오르는 게 아닌가.
다급히 손을 뻗은 에드릭에 의해 그녀의 몸이 마치 물방울 속에 스며든 듯 둥실 떠올랐다.
“에드릭?”
테티아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에드릭이 나이답지 않게 허허, 하고 웃어 보였다.
“다칠까 봐요.”
어렸을 때야 넘어지면서 크는 거긴 해도, 그러다 잘못 머리부터 박아서 이빨이라도 나가거나 얼굴이 상하면 어쩌겠나.
무릎이 까지는 정도는 그러려니 해도, 고개부터 파묻는 식으로 넘어지는 건 두고 보기 참 어렵단 말이지.
그러다 또 울고, 울면서 아픔을 배우고, 배웠기에 넘어지지 않고자 더 노력하고… 그러다가 또 까먹고 기분에 취해 펄쩍펄쩍 뛰다 넘어져서 또 다치고. 그러다 나중엔 넘어질 때 자세를 어찌 취해야 덜 아프고 덜 다친다는 사실도 본능적으로 배워가면서….
그게 자라난다는 걸 테지.
아마도.
그래도 가끔은 좋지 않은가.
넘어지려 할 때, 그걸 붙들어주는 이가 있다면.
물방울이 통하고 터지자 안에 있던 꼬마 아이가 그대로 허공에 팽개쳐졌다.
그러나 이미 그 아래에 대기하고 있던 에드릭이 가뿐히 그 아이를 받아낸 터라 전혀 문제 될 건 없었다.
“우웅?”
아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큼지막한 눈이 연분홍빛을 내는데, 어쩜 이리도 순수하게 보이는지.
아이니까 순수한 게 당연하려나?
에드릭은 조금, 아니 많이 신기한 기분을 느꼈다.
머리색은 연푸른빛에서 약간 더 연한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테티아나하고 프리지아가 연푸른빛, 소다며 솜사탕의 색소 마냥 연한 색감이라면, 이 아이는 오히려 그보다 더 옅은 색을 하고 있었다.
하늘색에서 더 연해지면 아무래도 푸른 기가 도는 백발, 은발에 가까울 수밖에 없는데, 실제로 아직 꼬마 때라 특징이 두드러지지 않는 건지는 몰라도, 자라난 머리만 보면 그쪽에 마냥 가까웠다.
“누규?”
한창 시기라 그런지 많이 앳된 느낌이 드는 목소리.
말을 많이 해대면 어린 나이에도 발성이 그럭저럭 잡혀갈 테지만, 사실 저 나이엔 그런 걸 억지로 잡는 것보단… 알아서 서서히 잡혀가길 바라는 게 맞겠지.
억지로 걸음마를 시키기보다는 네발로 기는 걸 시작으로, 차츰차츰 자연적으로 걸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게 더욱 자연스러운 걸 테고.
말도 그렇다.
물론 키우는 입장들이야 다 제각각이고, 옳고 그름을 논하기 전에 각자의 교육 방식이 있으니 에드릭으로선 딱히 그런 점을 지적하거나 강조하고, 어떻게 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었다.
파라메라 대륙의 경우 일정 나이를 먹으면 시련을 안겨줌으로써 성인이 됐을 시 강인한 정신력, 생존력을 지닐 수 있도록 지도하고 인도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그 덕에 무모함이 과해 오히려 생존률이 떨어지는 경우가 생겨 안타깝기도 했지만, 그조차도 하지 않고 움츠러들면 사실상 영토를 뺏기고, 식량을 포함해 자원의 주도권을 쥘 수 없기에 그들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걸 테지만.
마치 짐승들의 주도권, 영토 분쟁과 비슷한 케이스였다.
그러기에 오히려 위계질서가 무척 철저했었다지?
그러나 평화로운 시대의 육아 및 교육은 온실 속의 화초를 가꾸는 것과 비슷한 흐름으로 접어 드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들은 철저하게 제도화된, 시스템적인 흐름으로 큰 굴레 속에 집단을 밀어 넣는 식이기에, 오히려 개인의 자율성이 억압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이건 오히려 반대다.
생존에 내몰려 핍박당하는 쪽이 사실 더 부자유스러운 것임에도, 그들은 살아가야 한다는 목적, 생존 의식에 의거해 살아가기에 오히려 그러한 굴레를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자유를 찾는다.
반면 외부 위협이 없이 세상만사가 꽃밭과도 같다 생각한다면, 과수원이며 온실이라 생각한다면, 기이한 노릇이지만 온실이 자신을 지켜주는 방벽이 아니라 굴레라 여기게 된다.
과연 어느 쪽이 좋고 나쁨을 논할 수 있을지는….
성향이나 취향, 아무튼 각 특성의 문제일지도.
원체 과격한 부류는 전투 민족에 가까우니 그런 환경이 좋을 거고, 조용하고 소극적이며 사색을 즐기고, 고요함을 미덕으로 삼는 이들이라면… 그러한 과격한 문화며 사회 구조 속에선 아무래도 도태되기 마련이겠지.
정반대여도 그럴 거고.
평화의 시기에 과격함은 분쟁과 갈등의 요인이다.
그곳엔 배려와 침묵, 느긋함이 미덕이 될 테지.
에드릭은 묘한 회한에 잠겼다.
잠깐이었지만, 두 손에 들린 꼬마 아이를 마치 어느 애니메이션에서 개코원숭이가 꼬마 사자를 들어 올린 것처럼 번쩍 들어 올린 상태로, 방향만 돌려 자신에게 향하게끔 하여 지긋이 눈을 마주할 따름이었다.
“네가 루이샤구나?”
“아저씨? 오빠?”
“…….”
크게 영향을 받을 게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 아이가 자신으로부터 비롯됐다는 걸 떠올리니, 조금 이상했다.
이걸 대체 뭐라 표현해야 한담?
“나는….”
뭐라 소개해야 할까.
무릎을 낮춰 아이를 내려놓곤, 머리를 쓰다듬으며 에드릭은 한 차례 침묵했다.
그리곤.
“그래,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려무나.”
나는….
“우선은, 에드릭 코넬이라 한단다.”
이상하게, 에드릭이란 이름을 밝히는 것조차 조금, 가책을 느끼고야 말았다.
전혀, 그럴 게 아님에도.
“어머니?”
쫄랑쫄랑 걸어 테티아나의 드레스 자락을 붙든 채 다리 부근에 바짝 달라붙은 아이가 호기심과 미약한 경계심을 안고 그런 에드릭을 올려다보았다.
“그래, 인사하거라. 앞으로 많이, 자주 보게 될 수도 있을 테니. 자, 루이샤. 어서.”
자애로운 어조였으나 어조는 살짝 엄하게.
그러자 테티아나의 드레스 자락으로부터 손을 뗀 소녀가 옆으로 두 걸음 정도 비틀대며 물러서더니.
“안녕하세요. 저는 데이엔 남작 가의 루이샤라고 하옵니다!”
“그래, 반갑구나.”
에드릭은, 꼬마 아이의 그 다소곳한 인사에 자그맣게 웃으며 응답해줬다.
에드릭은 눈치 못 챘지만, 루이샤와 헤어지고 객실로 안내돼 차를 대접을 받을 때가 돼서야 루이샤가 놀랐다는 걸 테티아나를 통해 듣게 되었다.
“신기한 능력을 접해 저 아이도 많이 놀랐나 보더구나.”
“그런가요?”
“본래라면 막 달라붙어 나이에 걸맞게 소란 부리며 칭얼댔을 텐데, 저리 여우 짓을 하는 걸 보면, 네가 쏙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겠구나.”
“…하하하.”
그저 웃지요.
“그보다 그 능력은 신대륙에서 얻어낸 성과인가?”
“예, 겸사겸사죠. 원래 밑바탕은 여기서 틈틈이 갈고 닦았는데, 그 덕분에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지요.”
“듣기로 그곳에서도 상당히 잘 나갔다고 들었는데, 오늘 그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 있을 거라 기대해도 좋겠느냐?”
“얼마든지요. 그래도 너무 기대하시면 실망감만 커질 텐데요?”
“그럴 리가 있을까.”
테티아나를 기대된다는 듯 찻잔을 입가에 기울이며, 차분히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보라는 양 눈치를 주었다.
“그러면….”
에드릭도,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천천히 말문을 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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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거지.’
내심 이게 정상이구나 싶었다.
건전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다 식사 시간이 돼서 다 같이 식사하고… 다시금 마주한 루이샤하고도 그럭저럭 환담을 나눌 수 있었는데, 아까 전보다 경계심이 풀렸는지 마구 물어와 대서 대답해주느라 진땀을 빼야만 했다.
애초에 만나마자마자 반가워! 자 옷 벗어! 떡 치자! 이런 3단계로 계속 연결된 게 말이여 막걸리여?
아, 물론… 간만에 해서 좋기야 좋았는데, 어차피 왔으니 할 일이야 많은데 뭐가 그리 바쁘다고 회포조차 떡으로 풀자는 건지….
‘어, 음. 이것도 많이 느슨해진 건가. 아님 배가 불러서?’
열이면 열이 배가 처 불러서 떡을 마다하는구나 하고 피눈물을 쏟을 법한 소리를 태연히 머릿속에 품은 에드릭이었지만, 내심 어쩔 수 없는 게, 그게 에드릭이 된 이래 떡을 오죽 많이 쳤어야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벌써 씨가 말라 복상사하지 않았으려나 싶을 정도인데 오죽하겠나.
그런 의미에서 아바타가 튼튼한 것에 대해 만만세를 외쳐줄 수밖에.
체력이 후달리면 떡 치는 것조차 힘겹고 버거워진다.
마치 젊을 적에 마스터베이션을 열렬하게 해댈 때와, 30줄 넘어간 것만으로 여러 번 못하고 한두 차례로 간신히 만족하게 된 예 마냥.
…오죽하면 모태 솔로가 딸을 잘 치기 위해 운동을 한다는 예가 있겠나.
사실… 에드릭도 윤 팀장님을 만나 기회를 얻지 못했다면, 지금도 요령 없는 모태솔로로서 단순 취업조차 제대로 안 돼 막연히 세상을 원망하며 후회를 곱씹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을지도. 그러다 알바나 뛰면서… 어쩌지? 하면서 불안에 떨고 있었을지 누가 알리.
그 시기엔 마치 세상 전체가 자신을 몰아세우고, 무시하고, 괄시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게 아니지만, 현실이란 언제나 잔혹하기만 했으니.
하지만 잔혹하다 느낀 것조차도, 어찌 보면 내가 스스로 그걸 너무 과대평가해서, 두려워했던 건 아니었는지.
스스로의 눈으로 보고, 듣고, 느껴야 했는데, 인터넷이며 주변 사람들의 말에 너무 혹해 막연히 두려워했고, 또 그걸 벗어난 방도를 누가 일러주지 않아서 그랬던 건지도.
…그런 의미에서 자신은 운이 아주 좋은 편이라고 에드릭은 생각했다.
그러기에, 결코 기회를 잃을 상황을 만들지 않고자, 항상 주의에 주의를 거듭하고 있는 거고.
행복이든 만족이든, 기회라는 건 손에 쥐었을 때 최선을 다해야 한다.
막연히 누리고, 음미하기만 하다간, 언제 손아귀에서 뛰쳐나갈지 모를 일이니.
지금의 흐름만 이어진다면, 내심 더할 나위가 없다.
그러니 노력한다.
지금을 위해서.
말 그대로 이게 제대로 된 소확행 아니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