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202)화 (202/454)



〈 202화 〉52. 만나면 좋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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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참한 처자 구해서 결혼만 하면 되겠는데… 이제 출장 안 가고 귀가하고 그런 쪽으로 어떻게 안 되겠니?”


어머니의 말에 태민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게 어디 제 마음대로 되나요.”
“회사 쪽에는 마음에 드는 여자 없고?”



불쑥 팀장님이 떠올랐지만, 태민은 능숙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은요.”
“아니, 사내 새끼가 고자도 아닌데! 한창 나이 때에 그러면 어쩌니? 너… 혹시 이상한 쪽에 취향이 있고 그런 거 아니지?”
“…이상한 쪽이라니요?”
“그거 뭐냐. 여자아이 그림 그려진 베개 같은 거 끌어안고….”



아이고 맙소사.

“아니, 그런 건  어디서 주워들으신 거예요?”
“TV에 나오더라. 요즘 결혼 안 하는 애들 중에 만화며 게임하면서 이상한 쪽으로….”
“그거 다 편견이에요. 그리고 막무가내로 결혼하다고 인생 순탄해지고 뭐 그러겠어요? 이혼율 미쳐 날뛰는 요즘 시대인데, 자칫 잘못하다 엮이면 나중에 내내 고생하고 그러다 찢어지면 위자료에다 심적 고생에 스트레스까지 더하면 그걸로  들어 병원비가 더  텐데….”
“아니  살아보지도 않은  벌써부터 뭘 얼어 죽을 이혼이야 이혼은!”
어깨를 손바닥으로 때리다 등짝을 따악 때리시는데, 이건 또 오죽 아파야지.
“말이 그렇다는 거죠.”
“말은 무슨!”
“아, 뭐가 그리들 시끄러워?”



현관문을 열고 아버지께서 들어오셨다.




“이건 뭐 닭 새끼들보다 시끄러워.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나, 힘이 아주 넘치지?  일 없으면 비닐도  정리하고… 그 뭐냐.”
“우리가 죽자 살자 일하려고 여기 왔어요?! 좀 쉬엄쉬엄해요!”
“농사 일이 원래 그런 거야! 다 안다면서?!”
“아니,  정도밖에 안 하는데 그렇게까지 손길이 필요한지 누가 알았어요?!”
“에잇! 그러면 아예 하질 말자고 하던가!”
“해도 정도껏 해야죠!”
“하려면 기본은 해야지!”



…또 시작이시다.

저렇게 허구연  싸워도 칼로 물 베듯 아무렇지 않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거 보면, 참 대단도 하시지.


“그보다 태민아. 너도 나와서 좀 도와라.”
“…저 휴가 나온 건데, 굳이  부르셔야겠어요?”
“군대에서 삽질 좀 해봤지?”



아이고, 아버지. 제발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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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푹 쉬고 4일 구르고, 막판에 다시 쉬고 배웅받고는 본사로 복귀.
어쨌든 생각할 시간은 충분했다.


“어때요?”


팀장님은 태연하게 물어왔고.




“…궁금한 것들 몇 가지 있습니다.”
“편히 말씀해보세요.”


그녀는 말해보라는 듯 눈웃음 지었다.
태민은 그런 그녀의 얼굴을 잠시간 홀린 듯 바라보다, 이내 정신 차리곤 목을 한 차례 가다듬으며 물었다.

“처음부터 이런 목적으로 절 키우신 건지요? 아, 이건 에드릭을 말하는 겁니다.”




태민의 말에 윤미라 팀장은 태연히 고개를 저었다.
태민이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항시 열어두는 법이죠. 그런 의미로 보자면, 반에 반쯤은 정답에 가까울 수도요?”
“…경선 절차는 어떻게 진행되는 건가요?”
“그건 직접 가봐야 알겠죠?”
“그렇…군요.”



태민은 고민하다 다시금 물었다.



“제가 카일론 왕국 쪽에 뿌리를 내려, 본사에 이바지하길 바라시는 건가요?”
“그런 목적이 없진 않겠죠. 이조차도 어찌 될지 장담하긴 어려워요. 무엇보다 되고 안 되고를 우리 쪽 의도대로 컨트롤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혹여 시도했다 쳤을 때, 실패하거나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아마 지금 하는 일들하고 큰 변화는 없을 겁니다.”
“…….”


의도가 무엇인지, 어떤 목적으로 날 그쪽으로 보내려는지가 사실 짐작이 가질 않았다.


그보다 이게 나한테 손해 보는 제안인지 아닌지조차도.
강제적인 건지, 선택 사항인지조차.


“팀장님께선 제가 어떻게 했으면 싶으신지요?”
“태민  마음 아니겠어요?”


떠넘김이  통한다.
명령이 아닌 이상, 선택 사항인데… 이건 아무리 봐도 답이 정해진 제안인 것도 같고.


설명 또한 명확하지 않은 점이 조금 걸렸다.
너는 이런이런 역할을 맡게 되고, 이런이런 이점을, 이득을 얻게  거다.
이런 식으로 세밀하게 설명해주는 쪽이 이쪽도 편하긴 한데… 굳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이조차도 시험에 일환이라던가?

“저희가 태민 씨에게 리스크를 짊어지게 할 거 같아 불안하세요?”
“…그건 아닙니다만.”

그게 단순 리스크인지, 다른 의미로 패착인지는 사실 이쪽이 판단하고 자시고 할 문제가 아니었다.

어차피 에드릭의 삶이란, 내가 주도하는 듯 보여도 실상은 본사의 입맛에 맞게 조율되며 좌지우지되고 있는 것과 매한가지이니.


그게 딱히 불만스럽다거나 불안하다거나 하진 않지만, 쌓아둔 게 있어서인지 괜히 신경 쓰게 된다고 할까.

특히나 태민은 에드릭 이외에 아직 다른 아바타를 다뤄보지 않은 입장.
그래서 더욱 몰입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태까지는 이렇게 해라, 어디로 가라 하고 명했는데, 왜 이건 선택지를 부여하는가, 그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건가요?”
“아예 아니라고  순 없을 거 같습니다. 의도며 목적이 당장 이해가  가는 점도 있고….”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신중함이 과하면 추진력을 잃기 마련이죠.”
“…….”
“그만큼 보수적이니 신변 보호엔 적합한  보이나, 항상 몸을 움츠리는 게 정답은 아니랍니다. 침몰하는 배 안에서 살겠다며 구석에 틀어박히는  올바른 방어 수단은 아닌 것처럼요.”
“…….”
“기회며 운이란 게 언제나  수호하고 있다는 착각에선 벗어나는 게 좋아요. 회사라는 건 이익을 목적으로 굴러가고, 제아무리 도움이 된다 하여도 늦장 부리고 태만한 이에게 일방적 혜택을 부가할 정도로 어리숙하진 않답니다.”
“…….”

이건 다른 의미로, 여태 투자한 게 있으니 슬슬 결실을 보여라, 이 말인가?
아니면…….

“경선에 실패하든 참가를 안 하든, 제가 하는 일 자체는 크게 변하는 일은 없을 거라 말씀하셨죠?”
“그렇죠.”


…스스로도 느끼고 있지만 태민은 실패가 누적되고 열정이 수그러든 덕에 청춘을 허무하게 날려 보낸 경험이 후회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무언가를 시도하거나 무모한 결단을 내리는데는 아무래도 소극적일 수밖에.


여태의 성공에 어깨에 힘이 들어갈 법도 했지만, 그조차도 결국 어디서 그러한 결실이 기인했는지, 태민은 누구보다  알고 있었다.



“겸손하고 겸허한  좋죠. 그러나 진취적이지 않은 이는, 그가 원하든 원치 않든 도태될 수밖에 없답니다.”
“저는 현상 유지하며 평온하게 지내는 게 목적이기도 해서….”
“선택은 자유죠. 그에 대한 책임도 온전히 본인 몫이지만요.”

한편으로는 이해가 됐다.
어느 의미로 현재 에드릭이란 인물이 최정상, 최고 주가를 달리고 있는 시점이 지금이란 점을.

그런 식으로 가격이 높게 책정된 시점에 적절한 가치에 처분한다 치면, 지금보다 더 적절한 시기가 과연 있을지도 의문이고.

어쨌든 이곳 세계에선 젊은 시절에 혼약을 맺고 결혼하지 않으면,  가치는 날이 갈수록 추락할 수밖에 없기에.


사회적 명성도, 권위도… 가장 기본적인 가정을, 집안을 꾸리지 못할 시엔 모든 것이 유명무실해지는 바.

그래서 여성은 결혼을  하겠다면 수도원에 보내버리거나 서약을 맺게 하는 건데, 남자라고 완전히 예외라 볼 순 없었다.


나름 남녀 관계를 맺고, 아이를 낳는다는 거 자체가 이곳 세계에선 특권이자 권리로 취급되기에.

가장 낮은 노예들조차도 자식을 낳을 권리가 있는데, 그걸 포기한다? 세상천지가 비웃을 일이지.

무엇보다 여태껏 일이 너무  풀렸다고 태민은 생각했다.
그리고  모든 게, 내가  나서가 아니라 뒤쪽에서 보이지 않게 손을 써준 무언가가 있었다면?

그러한 보이지 않는 작용이 거두어진다 가정한다 치면, 이후로부터는 과거처럼 일이 막연히 잘 풀릴 거라 기대하기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대놓고 알려주는 것도 문제인데, 아닌 것도 문제다.


…그리고 이 모든 가정이 단순 태민 자신의 불안에서 기이한 착각일지 또 누가 알리.



“후우.”

그럼에도.


“결국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거군요.”
“선택지는 많죠. 어느 걸 택할지는 본인의 문제지만요.”

 말이 그 말 아니려나.
이것도 의아할 수밖에.

왜 '대놓고 가세요~!' 가 아니라, '하고 싶음 하고 아님 말고!' 의 태도를 아직까지 고수하고 있는지.


뭔가 그럴듯한 이유가 있을 텐데, 그게 짐작이 안 된다.
애초에 철영 선배에게 들을 때만 해도, 당연히 강제 혹은 발령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이건 이것대로….


“그럼 제가 경선에 참가해 그, 패왕녀란 분과 맺어지게 되면, 이후론 어떻게 되는 건가요?”
“저도 거기까진 모르지요. 상황에 따라 다를 테니까요.”
“끄응….”
“그보다 너무 고민하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의외로 별거 아닐 수도 있잖아요?”
“말씀 주신 조언대로, 생각이 복잡해서 추진력이 미적지근한 탓인가 봅니다.”



태민은 살짝 자학적인 어조를 빌려 답하곤 미간을 긁적였다.



“그러면 경선 참가 쪽으로 가닥 잡으면 되겠네요. 확실한 거죠?”
“예, 떨어져도 크게 문제는 없다 하셨으니….”

그렇게 해서 미적지근한 태도로, 마지못해 참가한다는 듯한 태도를 보인 태민.
에드릭으로 돌아온 그는, 막상 팀장님 앞에 섰던 것과는 다른 태도로 고민에 빠졌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세간에 밝혀진 에드릭의 신분은 다분 과장됐거나 불명확한 것들이 대부분.
그러나 기본적인 부귀영화를 누리며 적당적당 살기엔 이만한 신분이  없기도 했고….

그래서 내심 대단히 만족스럽기도 했는데, 생각해보니 좋은 일은 항상 영원하지 않은 법 아니겠나.

그런 의미로 봤을 때 이번  몇 없는 인생 역전의 기회이자, 굳히기일지도.
다른 의미로 이제, 자유는 물 건너간 셈이려나.
머릿속이 아주 복잡해져 갔다.


저택이  박혀 그런 식으로 생각을 정리하며 멍 때리는 사이.
릴리에나가 찾아왔다.

“여기 있었네요.”




저택이라 해도 넓이가 있다 보니 어디에 틀어박히면 찾기도 참 껄끄러웠다.



“나중에 어떨지는 몰라도 잠깐은 헤어지게 될 거 같아요.”
“그래?”
“카일론 왕국 가신다면서요?”
“…소문이 벌써 퍼졌나요?”
“그쪽에 패왕녀 부군 후보 경선이 있는데, 숲의 현자라는 분이 선배 추천했다는데요?”
“응?”

숲의 현자?



“아르세이유의 부마(駙馬:임금의 사위), 신대륙의 젊은 개척 군주, 푸른 호수의 주인. 이런 식으로 불려대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누가? 내가?”

아르세이유에 있을 당시도, 파라메라 대륙에 있던 당시에도 들어본 적 없는 괴상한 호칭? 별칭? 이런 게 난데없이 내 이름이며 명칭 앞에 붙었다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안 좋은 의미로.



‘벌써 밑작업 이뤄놓은 건가.’



아니, 수락한 지 얼마나 됐다고 소문을 이렇게나….



“에드릭이란 캐릭터를 키우는 거 같아 보여 대강 예상은 했는데, 본 목적이 그런 거였다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네요. 전 파라메라 대륙에 있던 당시, 거기서 왕이나 그에 준하는 위치를 차지할 거라 기대했었는데, 선배가 되려 그렇게 될 상황을 무마시켜버려 솔직히 의구심이 들기도 했었거든요. 그런데 카일론 왕국이라면 알그리타 대륙 내에서도 보란 듯이 패권을 장악할  있는 천년 왕국 후보  하나이니, 확실히 아쉬울 게 없는 선택이겠다 싶은데… 어디까지 생각하신 건가요? 아님 선배만 특수하게 언질을 따로 받았다던가?”
“몰라… 나도.”


애초에 출세 안 하고 싶고, 모험하다 꼬꾸라질 바엔 여기서 마음 편히 넋 놓고 현상 유지하자 주의인데… 아아, 일이 번거롭게 흘러가고 있네. 이젠 정말 빼도 박도 못하게….


“아무쪼록 힘내세요. 출세하면 저도 잊지 마시고요.”
“…잊고 말고 자시고.”


그런  본사한테 부탁해야지, 일개 개인이 뭘 어쩌겠나.
아아, 귀찮다.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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