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209)화 (209/454)



〈 209화 〉54. 패왕녀.(3)

“조언을 받고 말고는 오로지 본인 문제이며, 그에 따른 책임은 언제나 본인이 지기 마련이지요. 저는 조언가들의 말을 귀담아들으나, 이를 판단에 재료로써 사용하지, 거기에 꼭두각시처럼 휘둘리고 그러진 않습니다. 그러다 문제 생기면 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면, 그거야말로 어리석음의 소치지요.”
“그래, 그건 잘 알고 있군.”




패왕녀는 투구 사이로  마음에 든다는 어조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느 위치에 있는지에 대한 분간은 확실하군. 그건 곧, 귀공은 어느 위치에 서든 그 위치에 가장 합당한 자세를 취할 자신이 있다 이거로군?”
“음, 한 가지 일화를 하나 들려드려도 되겠습니까?”
“해보도록.”
“제가 아는 나라에 옛이야기인데, 어느 왕에게 이웃 나라 왕에게 포로로 붙잡힌 일이 있었는데, 이때 이웃 나라 왕이 자신의 질문에 답해주면 목숨을 살려주고, 답을 모를 시 목숨을 거둘 거라 하였습니다, 그러고 1년 말미를 주었다죠. 왕은 인덕과 인품이 무척 훌륭해 자기가 맹세한 약속을 지키는 이로 유명했습니다. 그러기에 왕은 이웃 나라 왕이 낸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지 않으면 자신을 죽여도 좋다 맹세하고, 이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누구에게 물어도 이에 대한 질문에 해답을 찾을  없었지요.  질문이 무엇인지 짐작은 가시는지요?”
“어떤 질문인가?”
“바로 ‘여성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문제였습니다.”
“흥미롭군.”

음, 관심은 끌은 건가?
에드릭은 계속 이어 설명했다.



“그러던 어느 날, 왕은 어느 늙은 마녀에게 도움을 받고자 했는데,  늙은 마녀가 왕에게 요구 조건을 내걸었죠. 바로 왕의 신하며 기사  가장 외모와 인품이 뛰어난 사내와 결혼 시켜달라 말입니다.”
“호오….”



꽤 흥미로웠을까.

“이에 왕은 고심했으나, 이때 한 기사가 자신이 그 늙은 마녀의 부인이 되겠다며 자처하게 됐죠. 왕은 고마우나 한편으론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고 합니다.”
“저런.”
“늙은 마녀는 척 봐도 상태가 심각했죠. 등이 굽었고, 이빨이 한두 개밖에 없으며, 몸에서 항상 악취가 풍겼고, 얼굴도 뒤틀려 외모가 몹시 추했다고 전해집니다.”
“흐음!”


추임새를 넣어주니 말하기는 참 좋네.




“결국 기사는 왕에 대한 충성을 다하고자 스스로 이를 자처했고,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됩니다.”
“그래? 그거 참으로 훌륭한 자로군!”
그러면서 슬쩍 고개를 좌우로, 뒤를 응시하는 척 제스처를 취한 패왕녀.
“그래서 어찌 됐느냐?”
“이로서 왕은 늙은 마녀에게 해답을 듣게 됩니다. ‘여성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에 대한 해답. 그건 바로….”
“바로?”
“남녀 구애 없이, 오로지 자신의 삶을 스스로의 의지로 주도하고 이끄는 것.”



예컨대.



“그녀 자신들 스스로 자신들 삶을 주도하는 것. 이를 이웃 나라 왕에게 전하니, 이웃 나라 왕은 정답이라 하여 목숨을 보장해주었고, 이로써 왕은 죽음의 위기로부터 벗어났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래. 그건 흥미롭군.”

흥미로울 수밖에.
애초에 에드릭이 여성을 대할  추구하는 모토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아주 예전에도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한테 했던 거 같은데.


“그 고명한 기사만 하염없이 불운하게 됐군.”

음, 충성을 할당받는 당신이 그런 식으로 표현하면, 뒤에 듣던 이들이 뭐라 생각하겠는지요?


오히려 그 고명한 기사 나리를 칭송해야 뒤에 계신 부하들이 이를 본받으려 노력하지 않을까 싶다만… 어떠려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음?”




마저 해보라는 듯 턱짓하듯 고개를 주억거린 패왕녀.

“늙은 마녀는 결혼하기 무섭게 많은 무례를 범했습니다. 심지어 주변 이들로 하여금 욕설과 비방을 일삼으며, 추악한 행태를 보이기까지 했다죠.”
“허….”
“그럼에도 기사는 자신의 아내이기에 최선을 다했다고 합니다.”
“……흐음.”




어마어마한 미덕처럼 보이긴 하지. 딱 여기까지만 듣고 보면.


“그러다 마침내 첫날밤에 이르게 됐고, 아무리 인성이 올곧은 기사라 하여도  상황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현실을 피할 순 없었기에, 각오를 다지곤 늙은 마녀, 아내가 머무는 침실로 들어섰다고 하지요.”
“…….”
“그런데 놀랍게도, 침실에 들어가니 전혀 본 적 없는 미인이 침대 위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으음?”
“마녀는 이리 말했죠. 자신이 추하고 무례했음에도 그대는 자신을 아내로서 인정해주고, 존중하고 배려했기에, 이에 대한 감사로 하루에 반나절은 이 모습, 반나절은 늙은 마녀의 모습으로 있겠다고요. 그리곤 그 기사에게 2개의 선택지를 제시했습니다. 낮에는 추한 마녀, 밤에는 절세 미녀로.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반대로 지내겠다고 말이죠.”
“호오….”
“낮에 미녀의 모습을 보인다면 주변의 많은 부러움을 사겠지요. 그러나 잠자리는 혹독해질 겁니다. 그 반대도 곤란하긴 마찬가지고요. 기사로서는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 여기서 과연 그 기사는 어떤 선택을 했을 거라 생각되십니까?”
“난제로군.”

패왕녀는 고민에 빠졌다.
…그래도 답을 바로 재촉을 안 하는  보니, 이건 이것대로….

“경들은 어찌 생각하나?”


어느 정도 판단이 섰는지, 5분이 채  돼 뒤돌아보는 시늉을 하며 뒤에 시립한 이들에게 묻는 패왕녀.

그러자.




“난제로군요.”

사내인 자가 패왕녀와 마찬가지로 앞서 답하자.

“그러니까 묻는 게 아닌가? 솔직하게 말해보도록. 경이라면 어느 쪽을 택하겠나?”



그리고.



“저는 알 것도 같습니다.”
“호오? 그래?”


여성성이 다분한 음성, 투구 안에서 들리기엔 생각보다 훨씬 더 곱고, 조숙한 음성이 들려와 살짝 놀랐다.


‘목소리가 참… 곱네.’




허리춤에 차여진 험악한 검  자루만 안 채워져 있었다면, 다른 의미로 오해할 뻔했다.

저런 거 옆에 차고 서 있는  자체가 중노동인데도, 전혀 미동 없는 거 자체가 허당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긴 했는데….

“경은 아직도 답을 못 냈는가?”
“…신중히 생각해보렵니다. 한 번 잘못된 판단을 내리면 평생  실태를 안고 가는  아니겠습니까?”
“쯧쯧… 답이야 이미 나온 문제인데 그걸 고민하다니. 경도 사내로서의 권위에 취해 본질을 제대로 못 보거나, 이야기를 집중 않고 거저 들었군.”
“송구스럽습니다.”
“하면 경은 답을 알고 있다 하였지? 하면 말해보도록.”
“…그 전에 왕녀님께서 먼저 저희 모자란 이들에게 가르침을 주시는 건 어떠신지요?”

오, 당돌하네.


“본 왕녀의 대답은 맞을 수밖에 없기에, 경들에게 기회를 주는 거네. 이런 세심한 배려를 헤아리지 못하다니, 안타깝구나. 안타까워!”



능청 떨며 과장되게 혀를 쯧쯧 차는 패왕녀 전하.
…이거 생각보다 꽤 재미난 사람일지도?


실제로 여성 기사는 그 태도가 웃겼는지 실소하는 음색을 내비쳤다.
투구 안쪽에서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말려 울림이 더해지니.



“왕녀님께서 말씀하신 예처럼, 답은 이야기 본문에 있었지요.”
“흐음….”



마치 조언을 주듯 사내 기사 쪽에 고개를 향한  첨언을 덧붙이는 여기사.


“전하, 솔직하게 답해도 되겠습니까?”
“말해보도록.”
“관심이 없습니다.”오… 거기서 그런 말을  줄이야.
“이유는?”
“아시다시피 저는 훗날 전하께서 폐하가 되시는 날, 근위기사단에 입단해 결혼을 않겠다 사전에 서약했습니다. 그러니 그런 쪽으론 크게 무관하다 여겨집니다.”
“근위기사단이라 하여 결혼 말라는  너무 불합리하지 않던가?”
“가정을 지닌다는 건 약점을 얻는 것이며, 가문을 형성한다는 건 어찌하였든 권력에 좌우될 여지가 생겨나는  아니겠습니까. 오로지 왕을 위해 살아가며 죽어가야 하는 이가 다른 것에 관심과 열정을 쏟을 무언가를, 만들어선 안 될 테지요.”
“…그래, 그걸 곧이곧대로 말할  있다는 것도 감탄스러운 일이로군.”


어처구니가 없는 건지, 감탄한 건지… 어쨌든 그걸 방패 삼아 대답을 회피하다니, 이건 이것대로 무서운 분이시네 그려.

“어쩔 수 없군. 내 일러줄 테니 잘 듣도록. 아까  에드릭 공이 마녀에게 얻은 해답이 이러했었던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의 의지로 주도하고 이끄는 것. 맞나?”
“예, 맞습니다.”
“그 말대로라면, 마녀가 내놓은 해답을 그대로 적용해 그대 의지대로 하소서, 하였겠군. 맞나 틀리나?”
“…맞습니다.”



편견에 휩싸여 있으면 맞추기 힘들지만, 사고가 열려 있다면 의외로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문제.




“…내 한 번 예상해보마. 결국 마녀에게 네 뜻대로 하라는 식으로 답을 했을 거고, 거기서 마녀는 자기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했을 것이겠지. 늙은 모습, 위장된 형상을 버리고, 기사가 원하는 모습을 보여줄 테며, 또한 기사의 훌륭한 인품이 널리 퍼져 이는 미담이 되어, 세간에 널리 퍼졌을 것이겠군. 흐음, 맞는가?”

에드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게, 제가 여태껏 여성들을 대한 태도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군.”

나름 적절한 어필이  거라 예상한 것과 달리, 의표를 찔러대는 왕녀님.



“만약 상대가 정도를 모르고 걸핏하면 권위를 침탈하려 들며, 무례를 저지르는 무뢰한이라면, 그러한 태도는 흠밖에 되지 않을 터인데. 그건 어떠한가?”
“흠은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 그걸 고칠 수는 있지요.”
“고치지 못한다면? 하지 않는다면?”
“왜 그런지 물을 것이며, 그 근본 문제를 찾아, 해결할 수 있다면 해결하는 쪽으로 방향성을 선회할 겁니다.”
“그런데도 안 된다면? 그럴 필요가 없고, 의지며 동기도 없으며, 지금의 자신이 옳다며 정도에 벗어난 행위를 계속 지속한다면? 그럼에도 그자에게, 그녀에게 자유를, 헌신을, 배려를 할 텐가? 부부라는 이유로?”
“…….”


무슨 의도일까.
에드릭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부부 관계란 서로 이해와 헌신, 배려가 필요한 것이지요.”
“그래?”



불만족스럽다는 음색이다.



“하지만.”
“?”
“저는 소신을 다해 제 몫을 다 하고, 노력을 다해냈음에도 상대방이 그럴 의지가 없다면, 저로서도 그 이상은 그렇게 해야  이유가 없겠지요.”
“호오? 그래?”“정략혼이며 억지로 달라붙어 부부가 된 예조차도, 결국 그렇게 살아야 한다며 체념하고, 그렇게 애를 낳으면 결국 어쩔 수 없이 거기에 적응하듯, 버텨내듯 자리 잡는, 체념의 삶이 결코 적진 않을 거라 봅니다.”
오히려 많겠지. 아주아주.
“그럼에도 이를 통해 행복을 얻는 이도, 새로이 찾아가는 이가 없을 거라 생각은 않습니다.”




얼굴  번   없이 약혼 맺고, 나이 차기 무섭게 결혼해서 부부가 된다.
이것이 무조건 비극이라 할 순 없다.

모두가 그런 식으로 맺어져, 나이가 차면 자연스럽게 부부가 돼 가정을 꾸리거나 합류한다던가.


한 마을에서 평생 살아가는 이는 어차피 맺어진다 해봤자 마을 아이들 중 하나일 테고, 결국 친한 이웃이며 건너편 마을이나 이웃하고 맺어지는 게 일반적일 테지.
마을 내부의 미인이 최고의 미녀로 손꼽힐 거고, 마을 내 미남이며 능력 있는 훈남이 최고의 신랑감을 뽑힐 테고.

오히려 그런 소박함이, 상대적인 비교 기준이 미흡해 무난한 삶을 이어 가는데 있어 효율적이리라.

인생이 무척 스펙타클하다거나, 스릴이 넘치지야 않겠지만.


하지만 많은 걸 보고 듣고, 꿈꾸다 보면 작은 걸론 만족하지 못하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눈은 높아질 수밖에.

어느 것이 최선, 최고다  순 없을 거다. 사람은 각자가 다른 법이니.

공주님이며 왕, 나랏님에 대한 선망과 경외는 이렇듯 무지에서 비롯돼 우상화된다 해도 과언은 아닐 거다.

우리야 뉴스든 기사로든 언제든 대통령이며 유명인들을 자주 접하지만, 고대적엔 평범한 이가 왕 얼굴을 코앞에서 매번 마주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을 테니.

신비를 불식시키는 방법은 익숙하게 만들고, 우스꽝스럽게 격하하고, 상대를 이해 가능한 범주로 만들어버리면 된다.

이해가 되니 자동적으로 상대에 대한 판단이 서고, 우스꽝스러우니 경외할 여지가 없으며, 익숙해지다 보면 거기서 거기인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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