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3화 〉56. 할 땐 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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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두르는 건 일종에 의식의 작용.
예컨대 멀쩡히 머리로 이렇게 돼라! 하고 눈만 부릅뜨는 것과 손을 휘저어가며 연상하는 것.
칼을 내리칠 때, 우리는 내리친 칼이 어떠한 결말에 이르게 될지 내심 짐작이 가능해진다.
이건 익숙해질수록 더욱 심화 되고, 구체화 된다.
식칼로 식자재를 썰다 보면 처음엔 얼떨떨해도 나중엔 눈 감고도 한다.
어떻게 썰리고, 그 감촉이 어떤지조차 눈을 감고도 이해가 가능해진다는 것.
파를 썰 때, 양파를 썰 때, 무를 썰 때도 그렇고.
그러니 이러한 행위, 그게 비록 할리우드 액션이더라도 그걸 진지하게 믿어 의심치 않으며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의식을 활용한다는 확신으로 연결되면, 그 자체로 의미가 생성된다.
그러기에.
손을 휘두른 부근을 기점으로 물줄기가 가로 방향으로, 칼날처럼 그것들을 꿰뚫었다.
물이 강가에만 있는 게 아니다.
대기 중에도 수분이 없겠는가.
거기다 없다 치면 정령계에서 빼내면 되는 거고.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한 차례 물줄기로 적들을 밀어버렸지만, 이게 수압으로 구성된 고압 칼날도 아니고, 당연 적들을 쓸고 지나갔다 해서 모조리 토막 나고 그런 말도 안 되는, 먼치킨스러운 이적이 발생하진 않았다.
다만.
생채기보다 깊게 파인 상처들, 그 흔적들 사이로 그것들 몸에서 피어나는 푸른 핏물들이, 일제히 주변으로 폭발하듯 뻗어 나갔다.
그리고 그것이 주변 이들의 두꺼운 가죽을 용케 흠집 내 몸에 아주 미약한 상처를 이어갔고, 다시 그 상처를 바탕으로 푸른 핏물이 터져 나오며….
그러한 현상이 주변을 시작으로 기하급수적으로 퍼져나갔다.
덕분에 에드릭의 시야가 미치는 곳 일대의 괴물들이 단숨에 바닥 위로 꼬꾸라졌다.
죽은 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탈수 증세 혹은 빈혈 증세.’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살짝 발만 걸어주면 제풀에 걸려 넘어질 것들이었다.
거기에 한 손 보탠 정도?
거기다 제법 체력 유지를 잘한 것들은 의도적으로 상처를 비집고 혈액을 역류시켜, 일부 혈액이 심혈관에 응어리져 심근경색 전조 증세까지 일으켜줬다.
굳이 이렇게 한 이유는?
“쳐라! 다 나자빠졌다고 방심 말고!”
원래 우두머리, 상사가 공을 전부 낚아채면 아랫사람들은 뭘 먹고 사는가?
좋은 상사, 윗선이란 아랫사람들을 잘 챙겨주는 이를 말한다.
물론 얌체 같은 것들은 공만 가로채고 나머진 나 몰라라 하겠지만, 개념 잡힌 부하들이라면 그깊은 뜻을 이해해 더욱 충성심을 다지겠지.
거기다 남들이 못하는 짓을 태연히 해냈다는 거 자체로 이미 경외 받는 건 당연한 수순.
하지만.
‘이 정도론 부족해.’
전쟁에선 의외로 비겁한 행각에 대해선 불편한 눈초릴 보내온다.
왜냐하면, 그것이 어쨌든, 비겁하다 생각하기 때문.
비겁하다는 건, 공정하지 않다는 거고, 이는 사실 두려움에 기이한 거라 보면 된다.
예컨대 치사하고, 그 치사한 행각은 아니꼬움도 포함돼 있지만, 나한테 저 사태가 똑같이 발생하면 오죽 무서울까 하는 공포심도 내심 포함돼 있다는 건데.
괜히 생화학 병기며, 비인도적 병기들, 독들이 적아를 막론하고 적대감을 불사르게 만드는 게 아니다.
아니, 총탄에 얻어맞든 독가스나 바이러스 병기가 뭔 차이가 있다고?
에드릭은 이런 기준이 참 어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전쟁 자체가 이미 막장이고, 그러면 아군 피해를 최소화하며 이겨야지, 거기에 인도적 도리나 윤리를 따져? 전쟁이 무슨 기사도의 낭만을 구가하는 그런 로맨스 현장인 줄 아나?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면, 그건 그 자체로 역겹다고 생각했다.
…하여간.
어쨌든 에드릭에게 속한 병력이 그런 식으로 쉽사리 주변을 정리하는 와중에, 에드릭은 단독으로 다시 더욱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에드릭이 굳이 지휘권을 넘긴 이유 중 하나도 이것.
이래야 혼자 날뛰기 좋지 않은가.
더불어 지휘권을 적절히 이양하곤 부하들에게 먹거리(?)도 남겨줬으니, 이 문제로 점수가 깎일 여지도 적을 거고.
무엇보다 단신의 능력자가 영웅 마냥 주변을 헤집으며 흔쾌히 적들을 파탄 내는 건, 과거 현재를 막론하며 회자 되며 높이 평가되기 좋은 건수기도 했다.
아무튼 하기로 한 만큼, 에드릭도 일단 주변 놈들이 안 시비 걸게끔 철저하게 한 번은, 제대로 보여줄 속셈이었다.
그렇기에.
최대한 화려하게.
…본래라면 주변에 널린 핏물을 활용하면 더 효율적이었겠지만, 굳이 정령계에서 새로이 물의 정령들마저 대거 소환해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대기 시작했다.
자기 휘하들에겐 은밀하면서도 두려움을 심어주는 편이 좋으니 좀 전처럼 이해 불가능한 영역의 무언가를 보여준 거기도 한데, 대외적으로 신위를 떨치는 척 할 때는, 최대한 화려하며 박력 넘치게 보이는 게 중요했다.
그러기에, 일부러 효율은 거지 같음에도 눈에 띄는 화려한 기술도 몇 차례씩 섞어가며 말이다.
정치에 능한 자라면, 보여주기… 예컨대 쇼맨십을 잘해야 한다.
그게 적절해야 하며, 효율도 좋은 것처럼 보여야 하는 건 덤.
어쨌든 그런 식으로 자기 PR에 전념하니, 의외로 하기 전까진 회의적이었음에도 막상 하니 이건 이것대로 꽤 재미있는 것도 같고….
생각해보니 이런 식으로, 정당하며 합법적으로 무쌍을 찍을 상황이 있긴 했던가.
내심 평화주의자, 온건주의자라 생각했던 스스로의 성향이 의심될 정도로, 에드릭은 아주 화려하게 날뛰어 주변의 이목을 단박에 사로잡기에 이르렀다.
…의도한 것보다 훨씬 더, 과장된 형태로 말이다.
허공에서 물 폭탄이 쏟아져 내려 그것들의 허리 높이까지 잠길 듯한 기세로 밀어닥치자, 당연 지친 그들로선 밀려드는 물줄기에 저항하듯 서 있는 게 고작. 일부는 버티지 못해 널브러지고 휩쓸리면, 그 시점에 반쯤 익사 당하는 건 예외가 없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물줄기는, 철저하게 적진 내부를 휘젓는 데만 집중시켰다.
그러다 보니 드문드문 발생하는 피해마저 단번에 종식 시키고, 이윽고 도주하던 인원 태반이 휩쓸려 무력화되니, 다른 측 병사며 용병들이 요리하기 좋은 상태가 돼버렸다.
덕분에 피와 땀이 빗발쳐야 할 전장의 기세가 묘하게 수그러든 건 덤.
거기다 널브러져 물속에 파묻힌 것들은 정말로 익사해버려 병력 일부는 시작부터 시체가 된 상황.
물에 잠긴 것들은 마치 물이 살아있는 뱀처럼 자신의 코와 귀, 그리고 무심코 벌린 입안으로 그게 밀어닥쳐 폐를 물로 잠식시키고, 몸 내부를 마치 세척 하듯 물이 휘저어 고통에 절다 호흡조차 제대로 못 하고 익사하듯 가버리니, 고통도 이런 고통이 없을 거다.
내심 조금 더 편하게 보내줬으면 했지만, 아직 그 정도로 능력 활용이 섬세하진 못했다.
“어디 보자….”
주변을 그런 식으로 정리해버리니, 생각보다 훨씬 빨리 상황이 정리됐다.
본래라면 모루로서 적들을 지연시키는 역이었는데, 아예 일대를 무력화시켜버렸으니, 그 공백은 고스란히 다른 괴물들에게로 피해가 전파됐고, 이는 모루가 역으로 망치질이 발생하기 전, 적들 일부를 괴멸에 가까운 피해로 연결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뭐….’
여기까지 하면 되겠지?
이 이상하면 다른 의미로 눈에 띄고 공을 세우려 했던 이들의 공마저 낚아채 눈총받기 딱 좋았기에, 더 할 수 있어도 여기까지 하기로 했다.
‘경외 받되 시기심, 질투, 경계를 사진 말아야 한다는 건데.’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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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이렇지만, 이것들은 어디서 이렇게 많이들 튀어나오는지.”
얼마 안 되는 것처럼 보여도 몇천 단위만 넘어가면 시각적으로는 엄두 내기 어려울 만큼 많아는 보인다.
그리고 그건, 익숙한 이들조차 예외는 아닐 거다.
부관인 아르반과 같이 주변을 돌다 에드릭이 앞서 언급했다.
“저희가 전부 처리한 건 아니니 양보할 건 적당히 생색내곤 양보하고 그러세요. 다들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운 전우들 아닙니까.”
“물론 그렇죠. 그래도 나리께서 전부 한몫 거드신 건데, 그런 식으로 내버려 두면 뭔가 아쉽지 않습니까?”
“저야 언제든 기회가 있지만, 다른 분들은 이곳에서 한몫 챙겨 가야 배도 불리고, 가족들도 먹이고, 명예도 얻고 그럴 거 아닙니까? 그리고 이런 식으로 심적으로 빚이라도 얹어두면, 나중에 한 마디라도 좋은 소리 듣고, 목 마르면 술이라도 한 잔 얻어먹을 수 있으니 또 좋을 거고요. 안 그렇습니까?”
“오호, 그런 거까지 헤아려주시는 겁니까? 이게 업계를 주름잡았다던 군주의 아량이란 거군요. 감탄했습니다!”
아량까지야….
에드릭은 낯부끄러워져 애써 무심한 척 주변을 둘러보기만 했다.
전후처리에 한 손 거들까 했지만, 위엄이 떨어진다 어쩐다 하는 조언을 들었다.
그걸 감수하고서도 도울까 싶었지만… 어느 게 더 나을까 생각했다가 친숙함보단 적절한 경외심을 사는 게 추후 낫다고 판단해 위엄 있는 척하기로 결정.
그래서 부관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논하며 다른 의미로 적당히~ 바쁜 척 연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전투든 전쟁이든 내심 전후 처리가 가장 복잡한 요소기도 했다.
시체를 방치하면 썩고 썩으면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그러나 저 중 일부는 야생을 거니는 금수(禽獸)들 하며 벌레들이 알아서 잘 처리할 테니, 나머진 각 진형에 따라 어느 정도 성과를 냈는지, 이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이들은 저것들의 왼쪽 귀를 잘라내 포대에 한데 담아대는 이들까지.
개중에 오른쪽 귀로 성과를 과장 시킬 요량으로 섞어두는 꼼수를 저지를 수 있으나, 그거 걸리면 모든 공이 허사가 되니 누구도 그런 뻘짓을 용감히 감행하진 않을 거라 본다.
용케 잘 싸웠는데 그 뻘짓 하나로 전공이 죄다 날아간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 아닌가.
이게 만약 왕도며 인근 마을, 도시 주변이었다면 이 시체들은 전부 소각시켰을 터.
딱히 종교적 의미를 두는 게 아니라, 이로 인해 전염병이나 또 다른 질병이 야기될 수 있음을 이해하기 때문이란다. 이 시기에 이런 걸 알다니, 새삼 이런 점은 신기했다.
마법 때문에 과학 문명 발전이 더뎠다 뿐, 생각 외로 의학 쪽 발전은 꽤 진행된 듯 보이는데, 그런 의학조차 신성력으로 퇴보되지 않을까 생각됐지만, 오히려 신성력이 외과적 수술 역량을 키웠단 소리를 듣곤 고개를 갸웃거리게 됐다.
알고 보니, 신성력은 재생 및 복구를 하는 거지, 이걸 바로 잡아주는 건 아니란다. 그래서 자칫 잘못 다루면 온전한 신체가 단순히 잘 복구된 피륙이 되니, 온전한 복구, 치료를 위해 이를 바로 잡는 외과 수술이 선행되게 됐다나?
예컨대 화살이 박힌 채 회복 마법 써버리면 화살이 박힌 채로 아물어 뽑아낼 수도 없게 돼 난감해진다? 이렇게 이해하면 쉬울 거다.
용병과 병사 포함해 이번에 도입된 병력의 총수는 2,000이 좀 못 됐다.
반면 적은 2배 가량인 줄 알았는데, 대충 눈짐작으로 보니 4,000보단 적어 보였다.
그래도 이조차도 초반엔 매복조에다 나누고 쪼갰으니, 사실상 4,000의 수를 거의 총 병력의 2/3 가량으로 상대했다는 거 자체를 무시해선 안 될 거다.
그만큼 이들이 군대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단 점.
개개인의 무력이 뛰어난 거야 큰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군대는, 병사란 개인의 무력보단 집단의 무력이다.
그리고 그러한 집단이, 개개인이 집단으로서 역할에 충실하기 시작하면, 개인으로서의 역량에 배에 달하는 무력이 산출된다.
그런 의미에서 카일론의 병력은, 수만 많은 오합지졸이 아니라는 게 확실하게 증명됐다.
거기다 이건, 카일론 특유의 중장기병, 궁기병, 승마보병, 궁마병이라는 특수 병종, 기사단 정예들이 등장하지 않고 이룬 성과니, 사실상 훈련까지 겸한 경우라 봐도 무방했을 거다.
중장기병, 궁기병은 전쟁사를 여럿 봐본 이들에겐 익숙한 기마 병종이라 쳐도, 승마보병은 일종에 현대로 치면 차량화 보병 혹은 기계화 보병.
즉, 행군 안 하고 말 타고 이동해 내려 무장 들고 싸워대는 이들.
그리고 궁마병은 말 타는 마법사를 말하는데, 이건 카일론 왕국과 구 제국에서나 있던 병종이다.
비병(飛兵)이라 하여, 비행 병종이 적은 카일론으로선 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긴 했을 거다.
“정리하고 숙영지 돌아가 쉰 다음, 내일 출발하고, 그런 답니까?”
“아무래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