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215)화 (215/454)



〈 215화 〉56. 할 땐 하는 남자.(3)

큰 기대감 없이 문을 열자.



“어?”


눈앞엔 검은 전신 갑옷의 누군가가 자리하고 있었다.
체격 문제 때문에라도 여성인지 남성인지에 대한 구별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물론 여성이라고 매번 늘씬하고 왜소한 체구인 건 아니지만, 가슴 부위가  튀어나온 형상이라면 아무래도 그쪽을 의식하는 게 타당하기도 하고.


문제는… 체격이  낯이 익다는 점.



“잘 지내셨어요?”




매력적인 음성이 더해지니 곧장 기억이 떠올랐다.

“어, 그러니까….”



누군 줄은 안다.
문제는 제대로 소개를 받은 적은 따로 없었다는 점.

당시 패왕녀와 함께 이곳을 방문했던  기사 중 여성되는 분.
묘하게 핵심을 짚어 이쪽 인상에 깊게 남은 것과는 별개로… 누군지까진 따로 소개받지 않은 여기사 분이셨다.

그런 그녀가 별 위화감 없이 말을 걸어오는  아닌가?

“축제 중인데  안에 얌전히 머물고 계시는군요?”


이에 에드릭은 어색하게 미소 짓는 걸로 답을 대신했다.

“오셨으니 우선, 안으로 드시죠. 그러니까….”




뭐라 불러야할까 살짝 고민하는 찰나, 그녀가 에드릭을 지나쳐 안쪽으로 향해 객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선 그대로 다리를 꼬더니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역시나 이런 면으론 융통성이 없는 건 여전하군요.”
“……?”


마치 잘 안다는 듯한 그 태도에 에드릭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이윽고 그녀가 자신의 투구를 벗자, 객실 소파로 향하던 에드릭이 놀라 입을 쩍 벌렸다.

“어…어?”
“왜요?”
“아니, 왜 여기에….”

잘못 본 게 아닐까 싶어 한참 눈을 동그랗게 뜬 에드릭.
그러니까….



“팀장님?”
“얼굴만 똑같을 수도 있는데 대뜸 그리 말하면 어쩐답니까?”
“아, 그러게요.”




내심 아차 했으나, 반응 자체만 보면… 이미 확정 사항인지도.
아니면 자신도 모를 어떤, 상상조차  할 수단이 엮여 환상을 보고 있다던가….


체내에 생리학적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싶어, 다급히 몸속을 체크해봤지만, 향정신성 물질이라던가, 아무튼 감각에 영향을 주는 어떠한 체내 작용은 전혀 일어나지 않은 상황.

그러면 이건 시각을 제어하는 무슨, 그런 부류의 환각이나 착각을 일으키는 마법?




“여기서는 멜크리우스 라 불리고 있으니, 평소엔 그렇게 부르면 돼요.”
“예….”


아직도 뭔가 얼떨떨해서, 어쨌든 맞은편에 앉은 에드릭은, 아차하며 다시 몸을 일으켜선 차를 준비할까 하다가… 또 당황해서 일단은 물을 따라 건네는 걸로 대신했다.


“고마워요.”

편하게 받아 목을 축인 그녀.
그런데… 현실상이나 여기나 외모가 똑같으니, 지금 여기가 저쪽 세계인지 이쪽 세계인지 잠시 분간이 가질 않았었다.



“그래서, 아까 물은 걸 다시 확인해보죠. 축제인데 왜 방안에서 청승 떨고 있는 거죠?”
“…그야, 일단 부군 경선으로 온 건데, 너무 헤프게 싸돌아다니면 점수 깎이지 않을까 싶어서요.”
“뭐, 그럴 줄 알았어요.”


태연스러운 웃음.



“일리 있는 추측이긴 해요. 사람인 이상 자기 짝이 될 이가 다른 여자며 사내와 뒤엉키는 꼴을 반기는 이는 없을 테니까요.”
“그렇죠?!”
“그래도 그건 여길 너무 몰라서 하는 이야기인 거 같은데요?”
“??”
“그리고 그게 중요했다면 처음부터 자격 요건 가운데 동정이라는  내세웠겠죠. 그걸 확인 못  것도 아니고.”



그리고 그랬다면, 에드릭은 진작 제외됐을 건 말할 여지도 없을 거고.



“그보다… 팀장님께서 여기 계시다니는 건…?”
“우리 부서가 뭐하는 부서인지는 알죠?”
“그야….”

솔직히 아직도, 뭐가 뭔지 헷갈리는 건 매한가지.
지원 부서라는 막연한 부서명을 내걸고는 있지만….

“정확하게 우리 부서는  가지 역할로 나뉘는데, 첫째가 이번처럼 주력 권력 계층에 안사람을 파견하는 일이에요. 지금 에드릭의 역할이 그거죠.”
“흐음….”
“두 번째는 안사람은 못돼도 그에 준하는 위치에 놓이게 한다던가.”
“그래서… 몸을 굴리는데 거부감이 없는 이들을 많이 받고, 그런 건가요?”
“기왕이면 그게 맞죠. 남자든 여자든. 물론 그게 끝은 아니지만, 그러면서 상황에 따라선 적성에 맞게 다른 쪽으로 옮길 수도 있는 거고, 부서 성향이 이렇다 해서 무조건 이럴 순 없는 거니까요. 누가 어떤지는 대략 짐작은 가죠?”

에드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면 팀장님께서는?”
“저는 전체 관리다 보니 구태여 안 그러죠.”


묘하게 속으로 안도감이 생겨나는 이유는 뭘까 싶었다.



“그리고 이번 경선의 경우에서도, 내외적으로 많은 기대를 걸고 있으니, 에드릭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맡도록 하세요.”
“흐음….”



그러니까 이건….


“팀장님이 직접 도움을 주신다 이 말씀이신 건가요?”
“그게 아니면 제가 여기 있을 이유가 있나요?”


웃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이는 그녀.
안도감과 동시에 불안감이 생겨나는 건 무슨 연유인지.

“그리고 이번 활약에 대한 건 왕녀 전하께서도 알 정도로 소문이 자자해졌으니, 그런 식으로 차차 분발해서 유력자로서 입지를 다지도록 하세요.”
“예에….”
“그리고 새색시처럼 여기서 꿍하게 있지 말고, 패기롭게 싸돌아다니고요. 그건 다른 의미로 편견을 안겨줄 수도 있으니까요.”
“음, 그래도 어차피 구석에 처박혀 있는 부군을 원한다 치면, 이런 식으로 두문불출하는 걸 태생적으로 좋아하는 인상을 주는 것도, 또 알아서 자기 주제에 맞게 잘 꿍해 있는 걸 더욱 반기지 않을까요?”
“그건 수집된 정보를 토대로 객관적인 분석에 의한 결론인가요, 아니면 자신의 사고  편견에 의거한 짐작, 결론인 건가요?”
“…후자입니다.”
“일리 있는 추측이긴 해요. 그런 의미에서, 거기에 후회 안 할 자신은 있고요?”
“…….”


갑자기 그리 말하시니 내심 불안해지는데.



“거기다 이곳에 온 이래 요즘 들어 가장… 금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걸로 아는데, 참을 순 있고요?”
“공과 사는 구분해야죠.”



에드릭의 대답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하군요. 그런 마음가짐을 지킬 수만 있다면, 앞으로도 큰 지장은 없겠어요.”

그리 말하곤.


“좋아요, 그럼 따라와요.”
“……?”
“그렇지 않아도 개척 군주의 위용을 견식하고자 하는 이들을 몇 분 대기 시켜 놨으니, 다른 의미로 점수를 따보는 건 어떤가요?”
어느 의미로 이게 본론이 아닐까, 순간 생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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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이 축제라는 명목으로 풀어진 반면, 성채 안으로 향할수록 어째 긴장감이 격화되는 듯 느껴졌다.
그리고 한참을 이동해 어느 연병장 비슷한 곳에 도달하니.


“오, 왔나 보네.”



사내며 여성 몇몇이 가벼운 차림새로 한창 훈련에 열중하던 모양인지 땀이 줄줄 흐르는 후줄근한 상태로 우리 둘을 향해 반갑고도 사나운 얼굴로 그런 우릴 맞아주고 있었다.


“멜, 역시 넌 능력자라니깐!”
“정말로 데리고 온 거야?”
“진짜네….”




왜들 저런 반응들일까?

“야야, 저 샌님은 이 상황이 뭔지 모르는 거 같은데? 제대로 설명해주고 데리고  거야?”



여성이고 남성이고 앞뒤 분간 없이 친근감을 과시해오는데….

음, 대충 짐작해보자면….

부군이라 쳐도 허여멀건 애송이보단, 역시 강인한 자가 좋다, 뭐 그런 건가?
카일론의 기본 베이스는 강자존(强者存).

그렇다고 약자를 멸시한다는 베이스가 깔린 건 아니지만, 어쨌든 강자에 대한 선망과 경외가 기본 바탕이기에, 잘 났다고 소문이 자자한 내게 흥미를 보였다던가?

사실 부군 후보 가운데 에드릭처럼 젊으면서도 입지전적의 위치를 이룬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나마 최대 경쟁자라 해도 어느 왕국의 계승 순위에서 한참 밀려나는 왕자라던가, 유력 가문이라 쳐도 비슷한 입장.

그러나 그렇기에, 그들은 더더욱 자기 입지를 다지고자 눈에 불을 켜며 자신을 단련 시켜  유력자들인데, 문제는 에드릭은 어릴 적엔 장사로 입지전적의 위치를 다졌고, 조금 머리가 자라서는 신대륙을 휘젓고 다녀 그곳에서도 몇 손가락 내에 꼽힌 개척 군주라는 타이틀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본인이 마음만 먹었다면 부족 연맹을 위시한 나라마저 세울 여력까지 갖춘 건, 스스로 초개처럼 내다 던지고, 그들 토착민들을 위해 솔선수범하여 자기 자리를 내던지듯 뿌리치고, 그들의 권리와 여력을 다져줬다는 점은, 대의명분 측면에서는 정의롭다며 눈을 반짝이는 이가 있는가 하면, 다된 먹이를 대놓고 놓아줘 썩게 만든 이상주의자란 식으로 매도를 받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오히려 일부 음흉하거나 정치적 처세로 이는 대단히 탁월한 결정이란 평도 적지 않은 추세기도 했다.


그래도 어쨌든, 의문에 여지가 없는 건 개척 군주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막대했으며 성과도 남달랐다는 내용 하나만큼은 확실하기도 했고.

에드릭 스스로도 소문을 긁어모아 정리함으로써 알게 됐는데, 과장된 거며 이상하게 퍼져 나간 내용까지 더하면, 오히려 개척 군주라 불러주는 쪽이 미화된 케이스고, 악의적으로 퍼져 나간 소문으론 이종족 시체를 목에 내걸고 다니며, 종족을 불문하고 여자들의 구멍이며 처녀를 가장 먼저 취하는 탐욕스러운 색마에다, 이종족의 신의 축복을 받은, 알그리타의 종교적 관점과 시각으론 악마의 주구 가운데 그냥도 아니고 대악마 급, 그래서 일부는 정말로 마왕까진 아니어도 악마 군주 급으로 여기는 이들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터무니없는 오해지만, 애초에 종교가 확고한 이곳 알그리타 기준으론 그렇게 퍼져도 사실 이상할  없었고, 더군다나 에드릭을 경계하고 대착점에 놓은 이들 기준으론 그게  알맞으니 그런 모양이긴 한데….


거기다 에드릭은 시스터 카멜린과 친하다는 이유로 소브릴 정교회 측과 친분을 과시하며 다진다는 명분 덕에 더더욱, 정치적 모략으로 그런 식으로 몰아가는 움직임이 격화되고는 있다는데….

아마 본사의 입김이 없었다면, 아르세이유에 닿은 시점부터 꽤 골치 아픈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멜크리우스, 팀장님의 동료라 치면 이건 그러니까… 패왕녀 직할 흑성 기사단, 즉 그쪽 단원 사람들이라 보면 되려나?

갑옷들을 걸치지 않아 티는 안 났지만, 가벼운 옷차림을 통해 비치는 그들의  단련된, 그저 잘 단련됐다는 식으로 커버치기엔 무리가 따를 정도로 무지막지한 몸들을 보니, 괜스레 이쪽의 무난한 몸 상태를 대뜸 의식하고야 만다.


…뭐, 근육질이라고  쫄 필요는 없지.

애초에 근육이란 걸 너무 과도하게 그러는 것도 좀 문제 아닌가?그래도 저들처럼 전신 철갑을 걸치는 중무장 기사라 치면, 저 정도 몸이 아니면 장기적으로 움직인다는 건 말이 안 될 테니, 저들 기준으론 이게  타당하게 보이긴 하는데….


이때, 자신을 아르세우스  소개한 여성이 나무로 된 검을 어깨에 걸친 채 이리 말했다.



“오신 김에 한 솜씨 보여주시죠.”



거기다 대놓고 직구.


에드릭이 무심코 전신 갑주를 걸친 자신의 팀장님, 멜크리우스 쪽으로 시선을 던지자.




“후훗!”




투구 사이로 어렵사리 웃음소리가 들리는 걸로 보아, 그녀도 제법 이 상황이 재미났던 모양이다.


“쩝.”

애초에 여길 데려온 시점에 답 나온 거지.
그러니 에드릭도 빼지 않고,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심심한데 잘됐네요.”

그 반응이 내심 기뻤던 탓일까.



“오오! 화끈하시네요! 반할  같네! 얼굴도  취향이고! 우리 왕녀님 부군 자리 때려치우고 제 애인 하시는 건 어떠세요?”



화끈하기가 남다른지 대놓고 저런 무례한 소리를 돌직구로 내던지는 게 아닌가.
음, 이건 다른 의미로 반할 것만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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