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226)화 (226/454)



〈 226화 〉59. 그는 다 계획이 있었다?

“소문보다 더 괴팍하군.”

멀쩡한 것처럼 보이더니 상상도   짓을 벌여주는  아닌가.
칠흑처럼 어두운 갈기를 지닌 자신의 말이 없는 전우, 애마(愛馬)를 쓰다듬으며 왕도 밖을 둘러보던 그녀가 수행 차원에서 대동한 이들을 통해 사태의 전말을 파악했다.



“그래서 다음은?”
“그게 끝이옵니다.”

목욕하면서 먹고 마시고….
그렇게 흥건하게 취해 몸도 마음도 풀린 상태에서 대사가 시작되겠거니 했는데… 죄다 정중히 돌려 보내버리는 게 아닌가.




“감당하기 어렵다는  알아 꾀를 부린  아니겠는가?”
“그런 추측도 있사오나….”
“하면?”
“여럿이서 하는 것도 좋으나 하게 된다면  사람  사람에게 마음을 쏟고자 한답니다. 도전적으로 이러한 걸 행하는 건 물론 자신도 기쁘기 한량없지만,  번쯤 다시 생각해보라며 사양했습니다.”
“그게 그거 아니더냐? 말이라는 건 꾸미기 마련. 결국 감당하기 어려워 술책을 꾸민 게로구나.”
“체면 문제가 있을 수도요.”
“흐음….”

사내 혼자서 여기사들을 죄다 감당 가능하다고 치면, 그거야말로 정력적인 걸 떠나 그쪽으로 왕 소리 들어도 모자람이 없을 터.
…카일론에선 그러한 정력가가 영웅호걸이라면 대체로 반기는 입장이다.

유능한 이의 핏줄은 많이 뿌릴수록 뛰어난 인물이 탄생한다는 건, 동서양을 막론하고 유사한 면이 있었다.

유전학적인 개념이 퍼지지 않은 시점에도 막연하게 그렇구나 싶었는데, 여기에도 빛과 어둠이 갈려 있다.

이러한 개념이 심화 되면 혈통에 대한 자부심이 과해 문제로 번지고, 그런 게 고착화되면 근친 교배로까지 이어져 나중엔 혈통 자체가 세상에서 지워지는 사태로까지 번지니.

단순 기형아, 장애, 미숙아 등의 문제는 별 게 아니다.
왜냐면, 권력자가 권력자로서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방식은, 당대에 누리고 있는 그러한 권한이 누대로까지 계승된다는 확신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가진  많을수록 안정을 추구하게 되며, 그러기에 권력 구도의 유지는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기도 했다.

간단 예로, 경쟁을 통한 랭크제 게임을 했다 쳤을 때, 랭크 최상위에 올려둔 뒤 세이브 할 수 있다면, 사람은 그걸로 그냥저냥 만족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하지 않으면 점수며 등급이 떨어지니 결국 그걸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되고, 치열하게 빠져드는 건데, 단순 게임조차 그 지경인데 현실은 어떠할까.
그런 의미에서 왕족이 신의 자손, 후예며 신의 목소리를 듣는다던가, 아주 오래 전 신이며 위대한 존재의 핏줄임을 주장해 대의명분을 공고히 다지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우린 뛰어나며, 고귀하기에 지배자로서 있는 건 당연.
그러한  세뇌해 내리박고, 사상적, 물질적, 제도적 정비를 통해 공고히 다져 몇 세대가 지나면… 그건 어느 순간 상식이자 순리로서 받아들여지게 된다.


물론… 세상엔 그런 걸 용납하지 않는 이들의 등장으로 파국을 맞이하지만, 이조차도 혼란기가 아니면 좀처럼 지각 변동이 일어날 여지 자체가 없는데….



“체면이란 말이지.”

그런 면에서 볼 때 카일론 왕국 역사상 여성이 왕이 된 사례는 일찍이 한 차례밖에 없었고, 문제는 그 여왕이 워낙 뛰어났던 터라… 패왕녀 알브레시아스 칼 에스클리오네는, 오랜 옛날… 영토가 따로 정해지지 않아 말을 타고 유목 활동을 하던 당시 부족을 이끌던 고대의 여 부족장, 그녀의 현신이란 명목을 대의명분으로 내걸고 있기도 했다.


그리고 이럴 수 있던 이유는 철왕이라는 현 국왕의 열린 사고와 개혁을 통한 야심에서 비롯 된 바.

결국 전쟁이 이루어져 국가가 혼란기에 빠져든다 치면, 짓쳐 드는 적을 쳐부수고 짓밟으며, 언제든 그들의 영토로 진격해 그들의 기반을 잿더미로 만듦은 물론, 그들의 재산을 아무렇지 않게 몰수해 자국의 이익으로 전환할 수 있는 야심가이자 패왕,  전쟁 군주 된 이가 왕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철왕은 확실하게 직감하고 있었다.

그게 패왕녀를 왕태녀로 택한 이유였고,  때문에 그는 아무렇지 않게 자기 혈족 중에 그녀의 방해가 될 이들을 형제고 외척이고 할 거 없이 척살해버렸다.
그로 인한 원한 관계까지 고려해 가신이며 식솔들마저 말이다.

그러기에 그가 병이 들었다는 명목으로 수년간 패왕녀에게 권한을 넘겨 대리청정을 시켜놓곤 뒤에서 하하호호 하며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누구도 감히 그 모습에 현혹돼 철왕을 괄시하거나 무시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백성들을 위한 명목으로 통치해 호응을 얻으며 귀족들을 마구 쥐어짜 왕권을 강화하고, 중앙 집권화를 이루어 놓은 그의 영향은 아직도 진득하게 남아 있었다.
그러기에 수년은 풀어줬다 쳐도 대부분의 귀족들은 아직까지도 뚜렷하게 기억을 하고 있었다.

 국왕이 철왕이라 불리게  이유를.
한편으론 이러한 것에 불안을 느끼는 이들이 없는 건 아니었다.
패왕녀에게 혹여 문제가 생길 시, 이를 어찌 감당하겠는가.
자칫 잘못하면 왕가의 존망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었다.


그런데 패왕녀는 몸을 그다지 사리지 않는다.
사냥이 취미이고, 심심하면 일련의 병력을 이끌고 어딘가를 토벌하러 먼 길을 떠나기까지 한다.
돌아와선  날 며칠 정사를 돌보고, 중신 회의를 주관하며 국사를 논하는 등.

몸이 하나여도 부족한데 이걸 죄다 해내고 있었다.

에드릭이 이런 그녀의 사정을 들은 직후, 떠올린 건 조선의 정조대왕 마냥 자칫 잘못 하다가 과로사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정도였는데, 정조대왕이 독살을 당했다 어쨌다… 하는 이야기도 나름 설득력을 얻고 있다곤 하나, 정조는 당시로서도 어마어마한 골초에 술고래였다고 한다. 몸이 아무리 좋아도 그렇게 무리하다간 몸이 남아날까. 그런데 잠도 제대로 안 자고 미친 듯이 정사를 돌보고 이것 저것… 현대에서 정조의 일과를 살펴보면 독살이 아니라더라도 과로로 숨졌다 해도 전혀 위화감이 없는 독한 스케줄의 연속이었다.

…타고난 워커홀릭들은 그래야 사는 맛이 난다, 어차피 쉬라고 해도 할 게 없으니 그냥 일하게 된다, 그게 편하다라고 하는데, 스스로도 약하게나마 워커 홀릭이라 생각은 하나, 상대적 개념에서 심하게 일에 종사하는 이들과 비교하면, 에드릭은 아직도 풋내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곤 하나 감당 가능하다면 마다할 필요가 있었을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어필할 중요한 기회였을 터다.”
“그는 이국 출신입니다. 어디인지는 아직도 확정이 나지 않았지만, 여태 지나온 행보를 보아도 그는 여성과의 관계에 진지한 입장에 속한 사내로 추측됩니다.”
“진지하다?”
“혼약을 맺고자 하진 않으나, 애인 관계 기준으로 성심성의를 다한다는 평입니다. 신대륙에 넘어가선 거기서도 그곳 분위기에 맞게 잘 적응해왔는데, 거기선 그가 신의 가호를 받은 신의 대행자란 명목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그와 관계를 맺길 희망했었다는군요.”
“그리고 하기까지 했다?”
“예. 그래서 현재는 남성미를 상징하는 신의 사도 정도로까지 추대되며 우상으로까지 여겨지고 있다는군요. 그의 남성기를 본뜬 조형물까지 소유하려 든다고 할 정도니까요.”
“대단도 하군.”

패왕녀가 투구 속에서 질린 기색으로 쯧쯧 하고 혀를 찼다.

“그리고….”
“고할 게 또 있는가?”
“아시다시피 그가 무턱대고… 공사를 진행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땅이 넓고 좁고 많고를 떠나… 허락을 받았다 쳐도 무작정 그런 조치를 취한 건, 여러모로 문제가 되기 충분한 요소였다.


무려 왕가의 사유지다.


손님들을 모시는 객실이라 쳐도 손님 된 자로서 이건 조금 어떨까 싶은 상황이 펼쳐진 거긴 한데.

이걸 알고서 고의로 저랬는지, 생각 없이 머릿속이 꽃밭이라 저랬는지,  의도가 내심 궁금해졌다.


“생각이 있으니 했을  아닌가.”
“일단 벌리고 보자는 주의일지도요.”
“그래서?”
“그도 문제점을 파악했는지, 자진해서 이를 책임지겠다고 밝혀 왔습니다.”
“어떤 식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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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래도 대형 목욕 시설을 짓겠다니…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일전에도 찾아온 바 있는 귀족 청년인 바리우스와 그러한 의구심을 드러냈다.
이에 에드릭은 웃는 얼굴로 응답했다.


“나쁠 게 따로 있습니까?”

국민, 백성의 여가  생활 여건을 개선하는  국가의 의무 중 하나다.
이게  이루어지면 엄한 곳에  돌리는데, 그걸 제외한다 쳐도 스트레스가 꾸역꾸역 쌓이면 일이 터지고, 그런 식으로 불행은 점차 스노우볼 굴러가듯 크기를 부풀려 간다.

고작 목욕 시설 하나로 이게 해결될 텐가?
이에 대한 대답은 NO.
하지만 단순 목욕 시설로 꾸밀 생각은 없었다.



‘다목적 겸하는 테마파크 급 사우나 시설을 만들면 되는 거니.’

목욕만 하는  아니라 술만 없다 뿐 어지간한 여가를 죄다 누릴  있도록.
에라힘, 화려하기 짝이 없는 19금 향락 시설처럼 난리를  생각은 아니나, 15금 정도로 누릴 수 있는 온갖 서비스들을 첨가하면 나쁘지 않겠거니 싶었다.


우리 세계식 카페에 여러 음식 점포, 거기다 목욕 및 사우나에 부가적인 전신 케어를 겸한 관련 서비스까지.

아르세이유에도 이런 곳들이 많긴 하나 거긴 단일 규모가 적당한 상태로 여러 곳에 지점처럼 분포돼 있는 형편이었다. 아르세이유가 워낙 넓다 보니 충분히 타당한 선택이기도 했고.


…그런데 입소문이 퍼지고 청결을 중시하는 문화가 발전하며, 특히 놀러 온 귀족이나 머물고 있는 귀족들이 자리를 틀기 시작하다 보니, 유행으로 번져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규모가 확장돼 확장 공사를 바탕으로 다시금 내부 구역을 나누기까지 했다.


어쨌든 귀족은 평민을 비롯한 이종족과 함께 욕탕에 들어서는데 거부감을 드러내는 게 일반적.


이건 에드릭의 선배인 철영이 강력하게 밀어붙여 아르세이유 문화로 정착시켜버린 것 중 하나였다.

어차피 벤치마킹은 우리나라에 널리고 널린 사우나 시설을 참고하면 되니.
동시에 귀족 가문의 커다란 저택 내에 사우나와 열냉탕을 번갈아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첨가한 리모델링 서비스까지 추가해 이걸로 꽤 많은 성과를 이뤄냈다 전해 들었다.

그리고 현재는 알그리타 대륙 내에서 이러한 유행은 차츰차츰 넓혀가고 있는 실정인데, 카일론에도 하나 마련하는  어떨까 싶어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넣어 대충 조율한 끝에, 카일론 측에서 허락하면 적극 밀어준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끝내놨다.

‘반응들이 나쁘진 않았으니까.’


애초에 목욕이 물을 끼얹어 씻는 식은 물을 뜨는 그들에게 있어선 대단히 불합리한 방식이기에 강가에 가서 찬물에 씻으며 옷도 마저 빠는 식이 일반적.
상하수도가 발전했다 하여 현대 마냥 수도꼭지만 돌리면 물이 나오는 식이 아니었다.



‘겸사겸사 이쪽도 연계하면, 이거 자체만으로 대공사라 떼돈은 확정 사항이니.’



물을 뜰 필요가 없는 시점에 인간은 상상 이상의 여가 시간이 확보된다.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에드릭… 태민은 학창 시절, 나이가 지긋한 선생님께 현재와는 달리 그놈의  때문에 꼭두새벽에 일어나 졸면서 작게는 수십 분, 길게는 한 시간 이상 걸어 물을 뜨고, 힘겨움을 무릅쓰고 고생고생해가며 집에 돌아와 물 항아리에 물을 담아대었단 이야기를 들었다.


그뿐인가. 씻을 때조차 씻은 물 같이 재활용해서 사용하고, 식사며 설거지도 전부 그렇게 처리했다 들었는데….

‘그나마 판타지 세계라 마법 때문인지 생각보다 열악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좋다고 보기엔 여전히 아쉬운 점이 어디 한두 가지여야지.



“저는 좋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때, 마찬가지로 일전에 방문한 바 있는 귀족 여식, 엘핀네스가 푸른 눈을 반짝이며 관심이 있음을 어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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