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2화 〉61. 상대 평가 + 반가운 인연.
거두절미하고 본론.
왕도를 떠나게 됐다.
이유는 간단.
남은 스무 명의 부군 후보들에게 일방적인 지령들이 떨어졌다.
“각 군소 영지에 방문에 그곳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이를 개선하라….”
양피지에 적힌 지령서엔 구체적 사안들이 적혀 있었다.
에드릭이 방문하게 된 곳은 왕도에서 한참 떨어진 부근으로 무려 국경 지역에 해당하는 위치인데, 꽤 복잡한 사정이 얽혀 있는 장소였다.
…아무리 봐도 군소 영지가 아닌데?
“국지전도 빈번하고, 신경전도 그렇고, 외지에서 도적 떼며 마물들도 들끓고….”
나라의 실세 중 하나라는, 무려 변경백이 자리 잡은 영지.
카일론 내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에 중앙군을 제외한, 사병 기준으로도 최정예 군사력을 지닌 실속파의 영토가 그곳이었다.
브레나임 백작령.
국경 자체로는 무려 나라 2개와 접견하고 있으며, 평야하고도 접하고 있다 보니 적절한 시기에 도래하는 유목 깡패들(…)들하고도 신경전이 장난 아니란다.
그나마 일부 토착 유목민들은 그렇다 쳐도, 초원 계의 돌연변이라 취급받으며 숲보단 초원, 평야, 들판, 황무지를 넘나드는 초원 엘프들하고는 여러모로 갈등을 빚어대고 있는 듯 보였다.
무역로 개선을 위해 분쟁은 가급적 삼가며, 초원 엘프 부족들이 대거 이동하는 시기엔 국지전이며 신경전조차 내려놓고 서로 합심할 정도라는데, 어쨌든 전시가 아닌 한 크게 밀리는 바 없이 영역을 굳건하게 지키는 거 자체로도, 그러면서 무역 및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결과만 놓고 봐도 그가 결코 세상 물정에 어둡거나 독선적이고, 판에 박힌 인물이 아니라는 건 분명했다.
어쨌든 파견지에 대한 정보가 한 무더기였기에, 마차를 타고 이동하며 보는데 만 해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아예 작정하고 막장인 곳에 던진 거네.”
달리 말하면 그만큼 능력을 높게 산다는 의미일 터.
동시에 이쪽에서 능력껏 잘 풀어낸다면, 무려 변경백의 호의를 사는 건 물론, 지원마저 받을 수 있다는 거니, 이것만 보면 그리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무력이 모자란 것도 아니고.”
싸우는 건 싫지만 마다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정작 에드릭에게 기대한 건 아마도… 상인으로서의 재능, 능력이 아닐까 생각됐다.
‘시장을 크게 열고, 상거래를 장려한다 쳐도 한계는 있지.’
활성화가 되기에 돈이 되는 게 아니다.
합리적으로 돈을 얼마나 잘 뜯느냐가 중요하고, 군상(軍商)과 행상이 얼마나 판을 잘 깔게 만들어 거래량을 늘리냐에 의의가 있다.
그래야 온갖 명목으로 세금을 잘 뗄 테니 말이다.
관문 통과할 때도 통행세, 자리 트고 상가며 상점을 열 때도 자릿세를 포함해 기타 등등.
그 외에 자릿세를 내지 못하는 보부상이며 보따리장수, 팔게 얼마 없는 몇몇 이들에게 자비를 베푼다는 명목으로 은연중 무료로 여는 시장, 일종에 현대로 치면 중고 시장이나 바자회 느낌의 시장조차 이 시대엔 꽤 중요한 수입원으로 작용했다.
애초에 1년 365일 내내 시장을 활성화 한다는 게 여간 어려운 시기다. 아직 산업 시대도 아니고, 물건을 제아무리 팍팍 찍어낸다 쳐도 결국 가내수공업을 포함해 수작업을 통한 거고, 장인들이며 기술자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많은 시대도 아니다.
그나마 길드며 온갖 협력 업체, 단체 등이 즐비하기에, 또 마법이란 예외적 사항마저 첨부돼 에드릭이 사는 현대와는 다른 방향성으로 흘러갔다 쳐도 한계는 확실했다.
“흠, 관련 세금 제도라던가, 시장이 어떤 식으로 굴러가는지 살피는 것도 나쁘진 않겠군.”
그리고 이런 곳은 어찌 됐든 뒷골목을 포함해 파락호며 건달들이 엮이지 않을 수 없는 법인데, 그렇다고 그것들을 죄다 몰아내자니 그건 그것대로 문제고.
애초에 하고 싶어도 장사며 상 행위를 할 수 없는, 빌어먹을 족속들이 있는 법이다.
농지가 있어도 농사짓기 싫은 놈도 있을 테고, 그러면 결국 힘 좀 쓰는 놈들의 행보는 뻔한 거고.
그나마 병력은 늘 충원 되야 하기에 사병을 늘린다 쳐도, 이것도 죄다 비용이고, 병사로 들이기엔 상대적으로 의욕이며 질이 떨어진다거나, 단체 생활에 적응 못 하는 이들도 있는 법.
그 가운데 능력이라도 있다면 용병이랍시고 사설 의뢰를 받거나 용병 길드에 속해 정규 의뢰를 받거나, 아예 나라를 떠서 모험을 가거나 용병업에 종사할 수도 있겠지만, 그조차도 못마땅하거나 그럴 능력이 없는 것들은?
“…편견을 가질 필욘 없겠지만.”
세상 어디에든, 개떡 같은 놈들은 있는 법.
술 퍼마시고, 하는 거 없이 주변에 시비 걸어대고… 그런 주제 자기 잘되지 못한 건 남 탓으로 돌리고.
카일론의 왕도, 카젠드라조차 빈민 구역이 있을 정도다.
졸지에 불구가 됐거나, 가정을 잃었거나, 거처며 기반을 상실했거나….
사람이란 하나부터 열까지, 누가 됐든 사정이 있는 법.
세상이 존재하는 한, 성공과 실패, 위아래는 늘 있어 왔고, 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순간 이동 서비스를 받는다면 어땠을까 싶었지만, 왕도에서 말을 타든 도보로든 출발하라 했기에 마차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덩달아 주변이 어떠한지도 관찰할 수 있어 나쁘진 않았지만.
여행하는 맛이 난다고 할까.
사실 이곳 세계에 와서 이런 식으로 먼 길을 넋 놓고 지새운 기회가 얼마 없었던 점도 있던 터라, 제법 마음에 들었다.
시기상 가을에 접어드는 터라, 추수가 코앞이다 보니 밭들이 마지막 황혼을 불사르는 광경을 두 눈에 담는 것도 퍽 나쁘진 않았다.
“이야….”
타들어 가는 노을, 그것에 물들어 끝없이 펼쳐진 밀밭들이 향연이란….
바람에 고개를 수그렸다 떨치는 모습들이 물결치듯 넓은 영역에 걸쳐 이루어지니, 장관이 따로 없다.
물론 해가 저물기 무섭게 그 이상으로 을씨년스럽고, 무시무시한 광경으로 느껴졌지만 말이다.
…뭔가 집채만 한 늑대가 밀밭을 헤집고 모습을 드러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밀이 바람에 치여 부대끼는 소리들이 자연스레 주변을 어지럽혀대기에, 은신하며 움직이기엔 아주 딱 좋은 구도가 아닐 수 없었다.
…왜 자꾸 이런 쪽으로 불안이 스멀스멀 피어나는지 원.
마치 금방이라도 밀밭에서 누가 무장하고 튀어나오거나, 엄한 괴물들이 ‘갑툭튀’ 해도 전혀 위화감이 없을 정도인데, 심지어 마차 끌고 지나기엔 길이 좀 비좁았어야지.
지름길이랍시고 마부가 그쪽으로 이끈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그가 장담한 것처럼 별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오밤중에 숲길에 접어들어 랜턴을 달고 움직이는데, 급할 건 없으니 적당하 속도로 이동해대는데, 마물이 덮쳐오질 않나….
그런 식의 적당한 우여곡절을 만끽(?)하다 도착하게 된 브레나임 백작령은 생각 이상으로 영토가 꽤 넓은 형편이었다.
국경 지대이기에 병력 확충을 위해서도 크고 작은 여러 마을들이 여럿에 백작이 기거하는 곳은 마을이라기보다는 소도시에 가까웠는데, 거기서 반나절도 안 되는 거리에 다시금 요새가 자리하고 있으며, 크고 작은 숙영지들을 통해 병력을 분산해 넓은 영토를 세세하게 감시하고 관리하고 있는 형편으로 보였다.
요새의 성벽은 지도상으로도 표시가 될 정도로 넓었지만, 성벽이 자리하지 않은 산맥 지역은 개간하고 주변을 고르고 다져 성벽을 쌓기엔 너무 험했기에 방치하고 있는 형편이란다.
물론 그곳으로 대규모 병력이 진입할 일은 없을 거라 하지만, 에드릭이 살던 세계엔 그런 곳을 넘나들며 적들의 숨통을 조여댄 무수한 역사적 예시가 있었기에… 그쪽이 괜스레 신경 쓰였다.
“이 정도면 숙지할 건 숙지한 건가.”
이쪽 문제로 누가 말 걸어도 큰 문제 없을 정도로 기본 상식, 정보 등은 숙지한 거 같긴 한데… 이래도 막상 겪어보면 또 부족한 점이 밑 빠진 독 마냥 터져 나오겠지.
이론으로 숙지하는 건 어쨌든 한계가 있다.
결국 진짜로 그 일이며 사정을 파악하고자 한다면, 눈으로 보고 귀로 직접 듣고, 느껴봐야 할 수밖에.
어쨌든 몇몇 마을을 거쳐 이윽고 브레나임 백작령 직할 도시에 해당하는 브레드린에 도달할 수 있었다.
멀리서 보고 느낀 점은 어쨌든 성벽이 따로 없단 점.
영역 구분을 위한 돌담은 있으나 거의 방책 높이 정도라 성벽이라 하기엔 무리가 따랐다.
그래도 저 정도면 평범한 이들은 오르길 포기할 정도의 높이긴 했다.
6미터는 족히 넘었으니까.
그런 도시를 쭉 타고 가면 이윽고 성채가 나오는데, 거기서부터는 해자까지 달린 적당한 규모의 도시 내 성채 겸 자그마한 요새가 모습을 드러낸다.
전쟁이 벌어지면 결국 저쪽 성채의 도개교를 닫고, 해자를 바탕으로 버틸 수 있어 보였지만, 도시민들이 피난을 포함해 몸을 피하려는 목적으로 몰려들면, 과연 전부 수용이 가능할지 조금 의문스럽기도 했다.
그것만 제외한다면, 그러니까 전쟁 때 침략당한다는 전제만 제외하면 제법 훌륭한 도시였다.
“요새 쪽에 아주 목숨을 걸겠네.”
요새 쪽 뚫리면 도시 개판 되는 건 순식간으로 보였다.
아마 이쪽 주변까지 성벽을 쌓을 정도로 자금이며 자원 사정이 여의치 않았나 보다.
성벽을 굳건히 쌓기보단 병력의 질과 장비, 기타 등등에 자금을 쏟아부었는지도.
돈이라는 건 남아도 부족한 법이고, 특히 백작령 내에 석재며 철 등을 따로 구한다 치면, 이것도 따지고 보면 전략 자원으로까지 분류되는 건 둘째 쳐도, 외부에서 공수해온다는 거 자체가 죄다 돈. 그것도 무게가 무게다 보니 천문학적인 비용이 요구된다.
돌도 마구 쓰면 되지 않냐 싶지만, 방식에 따라선 돌을 깎아내기도 하고, 특정 석재를 사용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를 가공하는 건 또 어떻고?
그리고 석재라는 건 비단 성벽뿐만 아니라 온갖 곳에 쓰이는데, 대형 건축물에도 쓰이며, 이게 대중화되면 당연 목재보다 튼튼하니 목재보단 석재로 집을 짓길 원하는 이들이 태반.
물론 가난한 이들이라면 목재로 기반을 다지고 싸구려 진흙이며 돌로 때우는 일도 있겠지만, 이조차도 기술자, 건축업자의 손이 닿았냐 아니냐에 따라 내구도며 편의 등이 천차만별로 갈리게 된다.
그래서 타협 좀 보자면 목재로 기둥이며 근본을 다지고 나머지를 혼합한 것들로 채워 넣는 방식인데….
“오호.”
마차 창으로 주변을 살피며 이런 점을 꼼꼼하게 살펴뒀다.
도시민이 늘어나서 그런지 외곽으로 갈수록 목재 건축물이 대세라면, 성채, 백작이 머무는 곳에 접어들수록 목재와 석재가 섞인 단층 건물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새로 발급받은 신분증을 보여주니 프리패스로 쭉쭉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특히 성 앞에 당도하니, 마차와 함께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을 규모의 도개교가 위험천만하게 자리하고 있었는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중세 드라마며 영화에서 본 것 같은 도개교와는 규모 자체가 달랐다.
건물을 짓는 이들조차 일부는 마법의 도움을 받는 시대다 보니, 아예 작정하고 고위급 귀족이며 영향력 넘치는 권력자들의 건축물들은 뭔가 규모 자체가 한 차원 이상 벗어난 것 같은 위엄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달리 말하면 백성들은 에드릭이 살던 원래 세계의 그곳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라 치면, 이곳의 귀족이며 왕후장상, 잘난 부류들은 그 이상의 혜택을 독점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
여기도 천만 다행스럽게도 주변에 똥내가 진동하지 않는다는 점이 무척 고무적이었다.
어쨌든 마차째로 통과돼 그로부터 10여 분도 채 안 돼 마차에서 내려선 본성 내부로 들어서게 됐다.
“…안내인도 없이 알아서 찾으라니.”
무성의함도 정도가 있어야지.
그렇다고 따로 친절하게 성 내부 약도가 그려진 것도 아니고.
어쨌든 허가를 받았기에 지나가다 마주친 이들에게 묻고 묻는 식으로 향해야만 했다.
…환상이 다 깨지는군.
뭔가 귀한 대접 받으며 인도되는 것까지 기대한 건 아니지만….
그러면서 사정도 듣게 됐는데, 백작 자신은 현재 요새 부근에 나가 있기에 당장은 만나볼 수 없다고 하며, 현재 백작 대리로서 그녀의 여식이 영지에 머물고 있기에 그녀를 만나란 조언을 지나가던 가신의 입을 통해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음, 이것도 재미있네.”
성을 제멋대로 헤맬 수 있다는 것도 제법 신선한 기분이고.
그러다 엄한 곳에 들어가 너 누구냐?! 여길 감히 어떻게?! 여긴 아무나 들어와선 안 된다! 하는 반응을… 내심 살짝 기대했지만, 정작 중요한 위치엔 보초병이며 순찰하는 병사들이 있었기에, 얼마 안 가 영주 대리인 백작의 여식이 머무는 영주 집무실에 도달할 수 있었다.